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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복만 챙겨먹어도 福이다

[푸드로지] 겨울진미 복많이 잡수세요

by 이우석 더 프리맨
새해 복 많이 잡수세요~

과연 누가 발견했을까. 실험실도 없던 그때, 복어의 피와 내장을 빼면 아주 맛있는 음식 재료기 된다는 사실을.

2500년 전의 중국 지리서 산해경(山海經)에도 이미 ‘복어를 먹으면 죽는다’는 기록이 나온다. 그땐 제독법(制毒法)이 잘 유통되지 않았던 모양이다.


살집을 제외한 복어 부위에는 독성이 청산가리보다 훨씬 강력한 테트로도톡신이 들었다. 맹독을 제거하는 방법을 알아내야 비로소 먹을 수 있다. 꼭 그렇게까지 했어야 의문이 들지만 어찌됐든 사람들은 복어 독의 비밀을 알아내고 말았다.

시행착오란 곧 죽음을 의미했으므로, 결국 무수한 죽음을 겪고난 후에야 비로소 이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게 됐다. 이 위험한 경험을 바탕으로 지식을 얻어낸 현생인류는 복어의 ‘유일한 천적’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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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과도 바꿀 맛(소동파), 어가에선 복어만 이야기한다(정약용), 복사꽃 무수한 계절에 미나리 참깨 맛이 그리워라. 이제 복어 계절을 또 보낸다(서영보) 등 옛 문인들이 남긴 복어에 대한 글이다.
베스트셀러 에세이 ‘죽고싶지만 떡볶이는 먹고싶어’와는 비슷한 듯 또 다른 느낌의 ‘복어는 먹고 싶고 목숨은 아깝고’(河豚は食べいたし命は惜しし)란 일본 속담도 있다. ‘심지어 복어를 먹지않는 놈에겐 후지산을 보여주지 말라’(河豚食わぬ 奴には見せな 富士の山)는(이상한 의식의 흐름이다) 말을 남긴 일본 문인 고바야시 잇사(小林一茶)도 있을 정도.

주로 한중일 삼국에서만 먹던 생선이지만 유독 복어에 관한 예찬이 많은 걸로 보니 옛사람들은 복어 맛을 특히나 좋아한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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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히 복어라 쓰는데 보통 복이라 말한다. 값진 복어를 먹을 수 있으니 그것이야말로 복(福)이라 그랬던 것인가. 대표적 겨울 제철 생선 복어는 한반도 주변 바다에서 많이 잡힌다.

특히 원양이 아닌 하천과 바다가 만나는 기수역에서 주로 서식해 먼 바다까지 나가지 않고도 잡을 수 있어 예전부터 즐겨먹은 것으로 추정된다.

석기시대인 김해 수가리 패총에서 빗살무늬 토기와 함께 복어 뼈가 나올 정도다. 백제 풍납토성터나 신라 서봉총에서도 복어의 흔적이 출토됐다. 특히 풍납토성 복어 뼈는 항아리 안에서 발견돼 백제인들은 복어로 젓갈을 담가 먹었다는 분석이다. 중국에서도 산동 구가장 유적 패총에서 복어 뼈 화석이 발견되었고, 역시 일본 시모노세키 야스오카 시오마치 패총에서도 나왔다.

대체 누가 이처럼 위험한 식도락을 개척했을까?.

복어 식도락의 역사는 연속된 죽음의 역사였다. 과거로부터 현대에까지 이른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세종 6년(1424년) 복어 독을 이용한 살인사건이 있었고, 성종 24년(1493년)에는 웅천(지금의 진해)에서 복어알이 묻은 굴과 미역을 먹고 주민 24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일어났다고 한다.

이처럼 워낙 많은 이들이 복어를 먹고 죽음에 이르니 일본 위정자들은 복어 식용을 금지하기도 했는데 공교롭게도 귀에 익은 이름들이 나온다. 임진왜란의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복어 금식령을 내렸고 이를 해제한 사람은 일제의 조선 침략을 주도한 이토 히로부미였다.

과거 가끔 신문 사회면에 등장하던 것이 누군가 버려진 복어를 먹고 사망했다는 소식이다. 복어요리 자격증 제도 덕택에 요즘은 많이 줄었다지만 이따금씩 가슴 철렁한 뉴스가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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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어는 본시 겨울이 제철인데 한국과 중국의 문헌에는 의외로 봄날의 복어가 맛이 좋다고 나온다. 허준도 소동파도 그랬다. 이는 산란기인 2~3월 강을 거슬러 오르는 황복을 말하기 때문이다. 참복도 까치복도 있지만 주로 황복을 먹었다.

조선 정부는 왜구의 노략질을 예방하기 위해 툭하면 해안 마을을 비웠으며, 특히 소동파는 ‘강에 사는 돼지’ 하돈(河豚)이라 분명히 못박았다. 봄 얘기가 따라오는 걸로 봐서 대부분 황복이었을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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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어는 그 동그란 몸매처럼 살집이 많다.

양쪽으로 포를 뜨면 투실한 살점이 잔뜩 나온다. 이를 유지(?)하기 위해 엄청나게 먹어댄다. 설치류처럼 날카로운 이빨을 이용해 갑각류나 연체동물을 뜯어먹는다. 이빨은 단단하고 예리해 낚싯바늘을 잘라버리기도 한다. 복어의 라틴어 학명(Tetraodon)에도 이빨을 뜻하는 오돈(odon)이 들어간다.


인간의 미각은 간사하다. 음식 칼럼을 쓰는 이도 그렇다. ‘겨울철이라 기름이 올라 맛이 좋다’고도 하고 ‘기름기가 거의 없고 담백한 맛으로 먹는다’라고도 한다. 겨울철에 제철 생선으로 삼치를 쓰고 그 다음에 복어를 쓰려면 스스로 자가당착에 빠지다.

하지만 변명은 있다. 등푸른 생선은 기름에서 나오는 감칠맛이, 담백한 흰살 생선은 시원한 맛이 좋다. 각각의 조리법이 있는 셈이다.

방어, 삼치, 고등어 등 겨울 제철 생선 중 가장 담백하지만 그 맛에 찾는 이들이 많다. 특히 국을 끓이면 세상에 이만큼 시원한 해장국도 드물다. 그래서 복국, 복매운탕, 샤부샤부 등으로 많이 즐긴다. 튀김이나 불고기로 즐기기도 한다. 생선 중 살점이 이처럼 푸짐한 어종도 없기 때문이다.

그만큼 맛이 좋아 위험을 감수하고 복어 식용에 도전했다. 다른 생선과는 맛이나 식감이 많이 다르다. 두툼한 살은 단단해 씹는 맛도 좋고, 탄력있는 껍질 부위와 뱃살, 등살 등 부위별로 맛이 달라 코스로 즐기기에도 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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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어 살점을 익힐 경우 닭가슴살과 비슷한 느낌이 나지만 훨씬 촉촉하며 담백하다. 씹을수록 살짝 단맛도 난다.

날것으로 얇게 썰어내는 복어회의 경우, 무늬가 있는 접시에 굉장히 얇게 떠내 그 무늬가 비쳐야 한다. 생으로도 살이 단단해 얇아야 오히려 씹는 맛이 좋다.

복어회는 새콤달콤한 폰즈 소스에 살짝 찍어 한점 씩 음미하며 맛보는 것이 좋다. 일반 생선회처럼 먹었다간 파산할 뿐 아니라 그 엷은 단맛을 느끼기 어렵다. 강한 소스가 오히려 맛을 해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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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도 있다. 수컷의 정소인 이리는 복어 내장 중 유일하게 먹을 수 있는 부위다. 한자로 어백(魚白), 일본어는 ‘시라코’(白子)라 부른다. 생선 내장 부위 중 가장 헷갈리는 부위로 알과 난소 등을 총칭하는 곤이(鯤鮞)와 혼동한다.(복어의 알을 먹으면 당장 죽는다)


복어 이리는 명란처럼 유선형에다 뽀얀 색을 띈다. 부드럽고 고소한 맛이 일품이라 특급 식재료로 꼽힌다. 중국의 미인으로 회자되는 서시의 젖가슴에 비유, 서시유(西施乳)란 별칭을 지니고 있을 정도로 인기가 높다.


참고로 황복은 좀더 기름지다. 대개 바다 생선이 민물에 올라오면 유기영양을 듬뿍 섭취하고 몸에 기름을 저장한다. 뱀장어도 연어도 그렇다. 평소 복국 중 맑은 탕이 슴슴하다고 느꼈다면 황복 맑은 탕을 고르는 것이 좋다. 다만 가격이 비싸고 아무데서나 쉽사리 구할 수 없다는 것이 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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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어와 가장 궁합이 맞는 식재료는 바로 미나리. 매운탕이든 맑은 탕이든 미나리를 듬뿍 넣고 끓이면 아삭하고 풋풋한 미나리 맛이 국물에 녹아들어 더욱 풍미가 좋아진다. 겨울에 제철을 맞은 무를 넣어도 시원한 맛이 더하다.


한반도 인근 해역에서 나는 복에는 다양한 종류가 있다. 참복, 까치복, 은복, 밀복, 자주복 등 살집좋은 것부터 금붕어보다 조금 더 큰 졸복과 복섬까지 실로 다양한 개체가 존재한다. 이를 두고 독이 있다고 안먹었을 리는 만무하다.

하지만 제독하는 전문기술 등 인건비가 비싸니 복어가 많이 나도 값은 크게 떨어지지 않는다. 복어는 무조건 복어조리기능사가 잡아야 한다. 인명에 관련된 작업이니 시험도 일명 ‘복 고시’라 불릴 정도로 어렵다. 실수로 알집이나 내장을 터뜨리는 등 제독에 실패하면 여럿이 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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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어는 생선 중 비싼 대접을 받는다. 멸종위기에 이른 참다랑어는 그 희귀성과 조업의 어려움 탓에 값이 천정부지로 뛰지만 복어는 조리의 어려움 때문에 늘 제값을 받는다.

특히 복 수육이나 복 불고기를 먹으려면 상당한 값을 치러야 한다. 이리(정소) 찜도 상당한 고급 식재료다.

그렇다면 이 계절에 가장 저렴하게 복어를 맛볼 수 있는 방법은 뭘까. 정답은 히레사케(지느러미 술)다. 말린 복 지느러미에 불을 붙여 데운 청주 대포에 동동 띄우니 그렇다.

히레사케는 명태포와는 다른 구수한 향이 술에 배니 안주가 따로 필요없다.

맹독을 품었음에도 불구하고 극진한 사랑을 받아온 겨울 진미 복어. 누군가의 희생(?) 덕에 그 치명적 팜므파탈(옴므파탈)의 매력을 지금 우린 식탁에서 충분히 즐길 수 있다.


<놀고먹기연구소장>


어디서 먹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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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철복집=명실상부한 복어 맛집의 아이코닉한 노포다. 30년 이상 다동 무교동 음식골목의 술자리 안줏거리와 해장을 책임져왔으며 그 유명세는 널리 일본에까지 퍼졌다. 양념과 소금구이 등 복 불고기 요리와 전골로 내는 복맑은탕(지리) 복매운탕, 수육 등이 있으며, 특히 복고니구이(사실은 이리)가 인기가 높다. 유명 복어 맛집답게 값은 꽤 나가지만 인근 회사원은 물론 멀리서도 입소문을 듣고 찾아온다. 서울 중구 을지로3길 29. 복매운탕 2만4000원. 복고니구이 3만4000원.
현복집 특이하게 탕을 종이냄비에 끓인다.JPG
◊현복집=일명 ‘종이에 끓여주는 복맑은탕’으로 유명한 강남 복어요릿집. 활복어 수조를 따로 두고 때맞춰 잡은 후 제독 처리를 하고 코스로 내온다. 단품으로 주문할 수도 있다. 복어회, 샤부샤부, 맑은탕, 튀김(가라아게) 등 일식 스타일 복어 요리를 표방하며 질 좋은 참복(도라후구)의 다양한 부위를 맛볼 수 있다. 코스를 주문하면 껍질, 회, 탕, 죽 등을 차례로 내준다. 서울 강남구 도산대로50길 14. 참복구이 복불고기 각 5만5000원. 참복 풀코스A. 9만9000원.
대구 복어를잡는사람들 복불고기.JPG
◊복어잡는 사람들=이른바 매콤한 대구식 복불고기가 유명한 집. 매운 맛을 즐기는 대구답게 철판 솥에 올린 매콤한 양념에 두툼한 참복 살코기를 볶듯이 구워먹는다. 마늘과 고추 양념엔 숙주가 잔뜩 들어가 시원하고 칼칼한 맛을 낸다. 밥을 볶아먹으면 다시 한번 제맛을 느낄 수 있다. 찜과 수육, 탕, 튀김 등 다양한 메뉴도 있어 다양하게 즐기려면 코스로 주문하는 것이 좋다. 대구 수성구 동대구로 209. 참복어불고기 2만5000원. 코스 3만7000원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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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원복집=서울 서부권의 복집 강자. 40여년 업력을 자랑하는 곳으로 맑은탕이 유명하다. 일반복부터 활복, 참복까지 골라서 즐길 수 있는데 가격은 배로 올라간다. 소금구이와 불고기, 샤부샤부, 가라아게(튀김) 등 안줏거리도 있고 아예 코스로 즐길 수 있다. 식사 메뉴로 따로 복어초밥과 복어죽이 있어 간단하게 복어 맛을 느껴볼 수도 있다. 서울 마포구 홍익로 29. 복탕 일반복 2만9000원, 활복 6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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