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드로지] 부드러운 돼지고기, 겉바속촉의 외투를 입다
어릴 적 흙바닥에서 놀던 시절에 ‘돈가스’라는 놀이가 있었다. 땅에 원을 그려놓고 주변에서 번갈아 공격과 수비를 하며 “돈∼ 가스!” 구령을 외치고 서로의 발을 밟는 놀이다. ‘돈∼’을 할 때는 원 안을 밟고 ‘가스’ 하면서 상대방의 발을 밟거나 피하는 룰이다. 돌이켜보면 왜 했는지도 모르겠고, 그게 왜 하필 ‘돈가스’였는지는 더욱 모르겠다. 당시만 해도 돈가스는 굉장히 맛있는 음식이었기 때문에 아이들은 돈가스를 먹고 싶은 소망을 담아 게임 이름으로 삼았을 것으로 짐작한다.
서울 성북동 금왕돈까스의 등심돈가스. 30년 업력의 금왕돈까스는 불고기와 백반 일색이던 기사식당의 대표메뉴를 돈가스로까지 확장한 대표적인 식당이다.
돈가스는 어느 식당이나 비슷비슷한 것처럼 느껴지는 메뉴라서 그런지 이름난 맛집은 저마다 다른 ‘포인트’를 갖고 있다. 위 사진부터 서울 마포구 ‘혼가츠’의 치즈돈가스. 서울 예장동 ‘남산왕돈까스’의 등심돈가스. 서울 삼전동 ‘돈까스의집’의 돈가스. ‘요리소녀 파스타앤슈니첼’의 슈니첼.
그 무렵에는 돈가스를 먹는 걸 ‘썬다’고 했다. 가장 먼저 나이프와 포크를 사용한 음식이라, “썰러 가자”고 하면 경양식집 돈가스 외식을 뜻했다. 그만큼 신비롭고도 귀한 체험이었다. 돈가스는 일반 음식 이상의 존재감을 가졌다.
돈가스는 일본에서 전해졌다. 빵가루를 묻힌 돼지고기를 튀긴 음식은 이탈리아에서 유래했지만 코톨레타(cotoletta), 즉 커틀릿(cutlet)은 일본식 조어 ‘돈 가쓰레쓰(豚+cutlet)’의 이름표를 달고 대한민국에 상륙했다. 말이 줄어 돈가쓰로 왔지만, 한국에선 돈까스, 돈가스로 뿌리를 내렸다. 기록상 일본 도쿄(東京)의 양식 레스토랑 렌가테이(煉瓦亭)가 1899년 최초로 ‘돼지고기 커틀릿’을 메뉴에 넣었다고 알려졌다. 현재의 두툼한 일식 돈가스가 아닌 넓게 저며 두드려 튀겨낸 슈니첼(schnitzel)과 비슷한 형태로 팔았다.
한국에는 그 형태 그대로 유입됐다. 돼지고기 공급이 넉넉해진 1970년대 말부터 경양식집을 중심으로 급속도로 퍼져나가기 시작해 1990년대에는 학교 식당과 호프집에까지 등장할 정도로 대중화됐다.
기사식당이나 한식뷔페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지만, 유명 식당가 역시 주메뉴로 취급할 만큼 그 스펙트럼은 다양하다. 크게 일식과 한식 돈가스로 나뉘는데, 따지자면 한식 돈가스는 경양식 돈가스와 분식 돈가스로 다시 구분된다. 번외로 안주용 돈가스도 있다.
기본적으로 기름기를 머금은 구수한 튀김옷, 염지(鹽漬)한 돼지고기, 채소 샐러드와 소스, 된장국(또는 수프) 등을 함께 섭취하니 맛도 좋고 고열량이라 가끔씩 입맛을 당기는 국민 메뉴로 자리 잡았다.
바삭하고 고소하면서 풍부한 기름 맛이 감도니 도저히 싫어할 수 없다. 기사식당 중에 유독 돈가스집이 많은 것이 그 증거다. 서울과 수도권 지역의 맛있는 돈가스집을 모았다.
◇잉글랜드 왕돈까스 =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 배경으로 등장할 만큼 옛 경양식집의 분위기인데 맛은 세월을 따라 진화했다. 두툼하고 촉촉한 돈가스를 큼지막하게 튀겨내 달콤 짭짜름한 소스를 끼얹었다. 당연히 수프가 먼저 등장하고 빵과 밥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바삭한 튀김옷과 함께 고기를 ‘썰며’ 식도락의 시간여행을 즐길 수 있는 곳. 인천 중구 우현로90번길 7 혜성빌딩 2층. 9500원.
◇명동돈가스 = 일식 돈가스를 국내 처음 선보인 돈가스 노포다. 1983년 개업했다. 히레(안심)와 로스(등심)를 선택할 수 있으며 치즈가 든 ‘코돈부루’도 있다. 1층 바에 앉으면 주문과 함께 바로바로 고기에 옷을 입혀 7∼8분 튀긴 다음 접시에 올려준다. 먹기 좋게 썰어 나와 젓가락으로 집어 먹는 일식 돈가스다. 양배추 샐러드와 된장국을 밥과 함께 즐기는 구성인데 고기도 부드럽고 소스도 국도 궁합이 좋다. 매운 겨자를 찍어 먹으면 풍미가 더욱 살아난다. 서울 중구 명동3길 8. 1만4000원.
◇남산왕돈까스 = 도심과 가까운 남산 중턱의 기사식당으로 출범했다. 얼굴만 한 돈가스를 튀겨준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온 일반손님까지 모여 늘 북적이는 집이다. 수프로 속을 달래고 커다란 돈가스를 기세 좋게 썰면 그 바삭한 손맛에 기분까지 좋아진다. 접시에 양배추 샐러드와 콘샐러드를 곁들여 장식하고 깍두기와 단무지도 내준다. 기사식당의 상징인 매운 고추도 빠지지 않는다. 매운 소스도 따로 있다. 서울 중구 소파로 107. 1만500원.
◇곰돌이돈까스 = 신설동 ‘술 마시는 돈가스집’으로 소문난 명소다. 돈가스는 훌륭한 안주가 되기도 한다. 고기튀김이란 점에서 탕수육과 비견되니 맥주는 물론, 소주에도 썩 어울린다. 바삭한 돈가스에 옛날식 데미글라스 소스를 올려준다. ‘겉바속촉’에 옛날식답지 않은 두께감도 제법이다. 매운 소스나 카레를 선택할 수 있으며 함박스테이크와 생선가스를 함께 맛볼 수 있는 정식도 판다. 곱빼기가 있다는 점도 반갑다. 서울 동대문구 한빛로1길 3. 7500원, 곱빼기 8500원.
◇가쯔야 = 안심을 그대로 튀겨낸 히레가스와 이른바 멘치가스로 불리는 다진 돼지고기(minced) 커틀릿이 인기 메뉴. 안심을 갈아 양파와 섞어 뭉친 다음 튀김옷을 입혀 튀겨낸다. 생고기를 쓰는 것보다 속살이 훨씬 부드럽다. 입술로 베어 물어도 뚝뚝 잘리니 나이프가 거들 기회조차 없다. 소스에 찍어 물고 밥과 함께 삼키면 끝. 씹을수록 고소한 육즙이 흘러나오는 히레가스와 생선가스를 곁들인 메뉴도 판다. 저녁 안줏거리로도 좋다. 서울 중구 다동길 46. 히레가스, 멘치가스 각 1만 원.
◇돈까스의 집 = 1984년 개업했으니 잠실 대표 노포라 할 수 있다. 40∼50대까지 웬만한 잠실 사람들은 이 집 돈가스를 먹고 자랐다고 한다. 큼지막한 돈가스를 바삭하게 튀겨내고 특제 소스로 맛을 더한다. 두껍지도 얇지도 않은 고기에 튀김옷이 제대로 달라붙었다. 달착지근한 소스도 입맛을 살린다. 함박스테이크와 생선가스를 조금씩 올린 모둠 메뉴인 ‘정식’이 인기다. 정식엔 달걀프라이도 얹어준다. 서울 송파구 삼전로 100. 돈가스 9000원, 정식 1만 원.
◇혼가츠 = 치즈를 넣은 치즈 돈가스로 입소문 난 집. 때마다 기나긴 대기 줄을 드리운다. 튀김옷을 입히기 전 치즈를 넣어둔 두툼한 고기를 뜨거운 기름에 재빨리 튀겨낸다. 잘린 단면에서 한가득 흘러내리는 치즈는 부드러운 돼지고기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죽죽 늘어나는 치즈를 나이프로 돌돌 말아 입에 밀어 넣으면 고소한 향이 비강 안에 차오른다. 소스와 핑크솔트 등을 조금씩 찍어 먹으면 매번 색다른 맛을 즐길 수 있다. 서울 마포구 와우산로21길 36-6. 1만 원.
◇금왕돈까스 = 기사식당으로 입소문이 나서 돈가스 마니아의 성지순례 코스가 된 곳. 1980년대식 돈가스의 원형을 지키고 있다. 넓게 두드린 등심살을 노릇하게 튀겨 소스를 끼얹어 내준다. 고기는 얇지만 고소한 맛을 품고 있다. 소스가 복고풍이면서도 독특하다. 느끼한 기름 맛을 싹 걷어주면서 밥과도 잘 어울려 마지막까지 싹싹 닦아 먹게 만든다. 깍두기와 매운 고추 역시 이 집의 상징이다. 1987년에 개업했다. 서울 성북구 성북로 138. 1만 원.
◇맛나호프 = 무교동의 이름난 호프집이지만 다양하고 전문적인 메뉴로 인기를 끄는 곳. 2차가 아닌 저녁 식사 때부터 찾게 만드는 메뉴는 바로 돈가스 안주. 두툼하고 고소한 고기를 튀겨 짭조름한 소스를 얹어주는데 맥주 안주로 그만이다. 웬만한 수제 돈가스 전문식당보다 더 푸짐하고 감칠맛이 난다. 식사를 겸해 주문한다면 시그니처 메뉴인 코다리찜과 궁합이 좋다. 서울 중구 다동길 10. 1만3000원.
◇요리소녀 파스타앤슈니첼 = 이름은 슈니첼을 내걸었지만 서양식 소스의 코톨레타에 더 가깝다. 반반 슈니첼은 달콤한 로제 소스와 매운 살사 소스를 뒤집어쓴 안심이 퍽 보드랍다. 공학박사 출신인 오너셰프가 고안했다. 감자와 토마토의 조합인 로제 소스는 첫맛에 식욕을 일깨우고 차가운 살사 소스는 매콤달콤한 끝맛을 살린다. 저염명란 소스를 쓴 파스타와 감자 수프, 샐러드, 빵을 함께 주는 만수르 세트도 있다. 다음 달 이전을 계획 중이다. 김포 김포한강1로97번길 32-25 1층. 9900원.
<놀고먹기연구소장> www.playeat.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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