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빵, 세상의 아침을 바꾸다

[푸드로지] 밥을 닮은 빵 한 덩어리는 산업혁명의 산물

by 이우석 더 프리맨

식빵(Loaf bread). 고작 빵 한 덩어리를 갖고 별반 무슨 얘깃거리가 있을까 하겠지만, 우리 모두에게 친숙한 이 빵은 세상의 아침을 바꾼 음식이다. 산업혁명 이후 변화한 삶의 중심엔 늘 식빵이 있었다. 방직공장 급식줄에 버티고 부엌 찬장 한 켠을 지켰다. 광부의 런치박스에 타고 수백m 수직갱도로 들어가기도 했고 봄날 피크닉 장소까지 졸졸 따라다녔다.


리치몬드 밤식빵.JPG 리치몬드 제과의 밤식빵

식빵은 이름처럼 밥처럼 먹는 빵이다. 일본에 서양의 빵 문화가 막 전해진 무렵, 달달한 카스텔라나 크림빵, 케이크 등 빵은 간식이나 디저트로 취급했다. 그 와중에 유일하게 주식처럼 상식하는 ‘밥빵’이라 식빵이란 이름을 붙였다. 일명 쇼쿠팡(食パン)이다. 그 이름 그대로 국내에 전해졌다.


밀가루, 소금, 효모를 물에 반죽해 구운 식빵은 원래 영국에서 유래했다. 그래서 자국의 빵 문화를 과시하는 프랑스에선 특히나 식빵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다. (원래 프랑스인은 대대로 영국인에게 ‘맛없는 음식을 먹는 나라’라고 놀려왔다) 그래서 식빵에 우유와 계란옷을 입혀 다시 구워낸 ‘프렌치 토스트’로 재해석(?)해서 먹는다.


하지만 프랑스인의 멸시와는 달리 ‘영국 빵’은 금세 널리 퍼져나갔다. 미국으로 건너간 식빵은 19세기 들어, 온 세상을 강타한 산업화의 발빠른 전개에 힘입어 가장 보편적인 식재료가 됐다. 빨리 아침 식사를 마치고 현장으로 출근해야 하는 이들에겐 최고의 음식이었다. 저장도 요리도 편리했던 덕분이다.

홍콩의 얌차 토스트.JPG 홍콩의 얌차 토스트(多士)
발명가들도 나섰다. 1912년 식빵을 편리하게 자르는 자동절단기가 보석가공업자 오토 로웨더에 의해 발명됐고 이어 1919년엔 자동 토스터까지 세상에 나왔다.(그 형태나 원리는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다.) 유명한 토마스 에디슨도 몇 종류의 토스터를 고안했을 정도로 전기 토스터는 인기를 끌었다. 절단기와 토스터는 당시 주부들의 가사부담을 획기적으로 덜어주었고, 식빵과 한 세트로 세상의 아침 문화를 바꿨다.

오죽하면 미국에는 뭔가 획기적인 신기술이 등장할 때 “자른 식빵 이후 최고의 발명품(the greatest thing since sliced bread”이라 말도 있을 정도다.

소금과 이스트(yeast)만 사용한 식빵은 크루아상이나 뺑오쇼콜라, 브리오슈 등 그대로 먹어도 꽤 맛있는 프랑스 빵과는 달리 그냥 먹자면 그저 그런 맛이 난다. 한식에서 밥의 개념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따라서 버터나 잼을 바르거나 계란, 햄, 치즈 등을 곁들여 먹는 경우가 많다.

아예 식빵을 굽기 전 반죽 안에 우유, 설탕, 버터를 넣거나 밤, 호두 등 견과류나 건포도를 넣는 경우도 있다.

요즘은 부재료 없이 식빵 자체 맛 그대로를 즐기는 이들도 많다. 대신 반죽을 잘해 촉촉하고 존득하게 잘 찢어지는 식빵을 특별히 선호한다. 그래서 제빵사들 사이에선 식빵이 가장 쉽고도 어려운 빵이라고 입을 모은다.

노르웨이 전통식 오픈 샌드위치..JPG 노르웨이 오픈 샌드위치

밥빵이니 만큼 활용도가 무지막지하다. 토스터에 넣어 굽거나, 굽지않고 그대로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는다. 잼과 케첩, 버터 등을 바르거나 훈제육류, 치즈, 채소를 끼워 먹어도 된다. 빵 조각 위에 모든 식재료를 얹기만 하면 요리가 된다. 아무 것도 없이 빵만 뜯어 먹어도 충분하다.


얼마나 인류의 범용 식재료가 되었냐면, 전 세계 대부분의 호텔 조식 뷔페엔 어김없이 식빵과 토스터를 비치해놓고 있는 것을 생각해보면 된다.

모양에 따라서도 식빵은 구분된다. 틀에 넣고 구운 직육면체 식빵은 단면이 네모나 샌드위치를 하기 좋은데, 풀먼 식빵이라 부른다. 풀먼은 기차를 디자인한 사람이다. 윗부분이 둥그렇게 부푼 식빵은 오픈탑이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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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빵으로 만든 가장 대표적 요리는 토스트와 샌드위치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토스트는 무척 바쁜 일상의 음식이다. 토스터에 빵을 끼우고 커피를 내리고 있을 때 “땡”소리가 울리면 비로소 출근 준비가 시작된다. 입에 토스트 한 조각을 물고 재킷의 소매를 꿰는 행동은 바쁜 현대인을 상징하는 클리셰(cliche)로 영화나 드라마 등에서 주로 쓰인다.


미국에서 전기토스터가 발명된 후에도 식빵 종주국 영국에선 프라이팬에 빵을 굽는다. 베이컨을 구운 후 흘러나온 기름에 계란을 부치고 마지막에 식빵을 올려 한 면만 구워 먹는다.


영국 뉴캐슬 출신 가수 스팅의 히트곡 ‘뉴욕의 영국인(Englishman in New York)’에는 첫 소절부터 “난 커피 대신 차를 마시고 토스트는 한쪽 면만 구운 것을 좋아하지(I don't drink coffee, I'll take tea my dear. I like my toast done on one side)란 가사로 단호히 영국인의 취향을 못박아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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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도심 전철역 앞 토스트 노점은 우리나라 회사원들의 든든한 아침을 책임지고 있다. 한국식 토스트는 외국의 것보다 좀더 푸짐하다. 토스터에 끼우지 않고 번철에 기름을 두르고 직접 굽는 방식이라 더욱 정성이 들었다. 계란과 햄을 부치고 채 썬 양배추와 치즈를 끼워 먹는다. 원래 토스트는 한 장이니 한국식 토스트는 차라리 샌드위치, 그 중에서도 구워낸 크로크무슈(croque-monsieur)에 가깝다. 이 아침 토스트는 회사원의 공복을 책임지며 대한민국 경제의 일부를 지탱해왔다.


홍콩의 차찬탱에서 즐길 수 있는 얌차(飮茶) 메뉴 중에는 두껍게 썬 토스트 한 조각을 밀크티와 곁들이는 것이 있다. 광둥어로 또우시(多士)라 불리는 토스트에는 카야 잼을 바르거나 버터만 녹여 바르고 손에 들고 먹는다.


토스트는 한 장이지만 샌드위치는 두 장 이상이다. 꼭 샌드위치가 아니더라도 2장의 크래커나 빵 사이에 뭘 끼운 것을 줄여서 ‘샌드(sand)’라고 부른다. ‘이것저것 짬뽕’과 같은 원리다. 그중 장년층에게 익숙한 것이 일본식 발음인 ‘산도(サンド)’다. 과자 두 장 사이에 크림을 넣고 팔면서 산도라 불렀다.


‘샌드위치’를 말하자면 억울해할 만한 사람이 한 명 있다. 18세기 중반에 살았던 영국 존 몬터규 샌드위치 백작이다. 평소 카드놀이를 좋아하던 그는 게임 중 식사할 시간을 아끼려 손에 들고 먹을 수 있는 간편식을 고안했는데 그래서 그 음식에 샌드위치의 이름이 붙었다는 것. 이 얘기가 널리 퍼지며 존 몬터규 샌드위치는 졸지에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도박중독자’의 이름이 되버렸다.

하지만 정작 그는 영국 해군성 장관과 국무장관을 역임했을 만큼 다재다능한 군인이자 정치가였다. 존 몬터규는 카드놀이가 아닌 업무에 몰두하느라 빵에 고기와 채소를 끼워달라고 주문했다는 새로운 사실이 훗날 밝혀졌지만 이미 샌드위치란 이름은 ‘카드놀이 중독자’로 전세계에 퍼져나간 후였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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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샌드위치는 가장 간편한 음식, 패스트 푸드, 피크닉 음식의 대명사가 되었다. 햄버거도 결국 샌드위치의 한 종류일 뿐이다. 파티에 주로 나오는 핑거푸드 중 트라메치니(tramezzini) 역시 샌드위치의 축소형이다.

샌드위치는 온도에 따라 핫과 콜드 2종류로 구분한다. 또 빵의 개수에 따라 오픈 샌드위치와 클로즈드 샌드위치로 나뉘며 아예 빈틈없이 가장자리를 막아버린 것은 따로 포켓 샌드위치라 부른다. 뜨거운 철판으로 누른 이탈리아의 파니니(panini)가 바로 포켓 형태다.


이외에도 샌드위치를 바삭하게 구워낸 것을 프랑스에선 크로크무슈로 부른다.(맥도날드에선 프랑스 판으로 크로크맥도를 출시한 바 있다.) 바케트와 하몽을 쓰는 스페인의 보카디요(bocadillo de jamon)를 비롯해 중국 광둥에선 고기를 끼운 빵 주파바오(猪扒包), 베트남에선 바케트 형태 빵에 재료를 끼워넣은 반미(banh mi), 노르웨이는 빵 한 장짜리 오픈 샌드위치 스뫼르레브뢰(smørrebrød) 등 각국 별로 저마다의 샌드위치 문화를 발전시켰다. 대만과 싱가포르에선 잼과 연유를 바르고 치즈와 햄을 끼워넣은 산밍치(三明治)가 인기다.

미국에서 유래한 클럽 샌드위치는 닭이나 칠면조, 베이컨, 양상추, 토마토 등 재료를 차근차근 쌓아 만든 배불뚝이 샌드위치다. 내용물이 두툼하니 먹기 좋도록 삼각형으로 자르고, 무너지지 않도록 꼬챙이를 꽂아서 내온다. 클럽에서 사먹던 것에서 이젠 보편적 샌드위치 이름으로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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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선 종류도 샌드위치 재료가 될 수 있다. 참치 샌드위치야 모두에게 익숙하겠지만 영국과 네덜란드, 포르투갈 등에는 정어리 샌드위치를 먹고 북유럽은 연어, 터키에는 고등어 샌드위치가 명물이다.

사실 샌드위치는 인간의 생활에 필요한 필수영양소, 탄수화물과 단백질, 지방, 그리고 채소 등 각 식재료의 조화를 간편히 즐길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기 때문이다.


식빵이란 이처럼 여러 요리의 주연으로 쓰일 수 있는 주식의 범주에 든다.

버릴 것도 없다. 구워낸 빵의 테두리 부분은 크러스트(crust)라 부르는데 의외로 이 부분을 좋아하는 이들도 많다. 향이 진하고 고소한 맛 때문에 따로 튀겨서 먹는 러스크(rusk)란 과자도 있다. 일본에서도 식빵의 귀(食パンの耳)라 부르며 스낵으로 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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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중국인은 이 근사한 서양 문물을 받아들이자마자 이를 이용한 중식 메뉴를 고안했다. 바로 멘바오샤(面包蝦)다. 멘보샤라 불리는 멘바오샤는 식빵 사이에 으깬 새우살을 넣고 단번에 튀겨낸 요리로, 바삭한 한입 크기 식빵 사이에 향긋한 새우살이 씹힌다. 누구나 싫어하기 어려운 맛이다. 일종의 새우 샌드위치 튀김이다.

이외에도 식빵은 외딴 곳에 거주하는 이들의 비상식량, 목탄화를 그리는 화가의 지우개 용도, 곱창집 번철의 기름 빨아들이는 용도 등 다양한 목적으로 우리 일상 속에 포진하고 있다.

<놀고먹기연구소장>


어디서 먹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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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토스트=을지로 토스트집 버터가 지나간 번철에 채소가 든 계란부침이 지글지글 익는다. 식빵이 옆에 눕고 햄과 치즈가 차례로 빵 위에 오를 준비를 한다. 차곡차곡 쌓이면 완성이다. 뜨거운 토스트를 말아 종이컵에 담아준다. 뜨거운 김을 타고 영양이 몸 안에 채워진다. 단숨에 탄수화물과 단백질, 유지방, 섬유소, 비타민까지 섭취했다. 설탕을 뿌리는 집도 있지만 이 집은 소스도 달지않아 더욱 좋다. 모자란 단맛은 딸기우유로 채우면 된다. 토스트가 오뎅국물과 그렇게 또 어울리는지 몰랐다. 지하철 2호선 을지로입구역 번 출구 앞. 2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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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식빵=리치몬드제과점. 누가 처음 식빵에 밤을 조려 넣을 생각을 했을까. 이 집이다. 1979년 창업해 서부지역 대표 베이커리 노포의 아성을 지켜오는 곳이다. 수백 종의 다양한 제과제빵 상품을 판매하는데 이중 시그니처로 꼽히는 것이 밤 식빵. 누릇 잘 구워낸 겉면엔 아몬트칩이 다닥 붙었고 부드럽게 성긴 속살에는 달달하고 고소한 밤알갱이가 쑥쑥 박혔다. 잼이나 크림, 버터 등이 필요없다. 그냥 먹어도 완벽한 맛의 조화를 이룬다. 종로 카페 뎀셀브즈에서도 아예 ‘리치몬드’라 못박고 빵과 디저트류를 판매한다. 서울 마포구 월드컵북로 86. 86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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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아르토마토파스타=세시파스타. 식빵 얘기하는데 웬 파스타집일까. 이탈리안 파네파스타(빵에 파스타를 넣은 것)를 내세우는 집이라 그렇다. 그것도 직접 구워낸 식빵을 통째 사용한다. 정육면체의 발효 식빵의 속을 파내고 마치 면발과 소스가 폭포수처럼 흘러내리듯 장식해 식탁에 올린다. 소스에 적신 빵을 조금씩 뜯어 파스타와 함께 맛보면 미각도 포만감도 모두 충족시킬 수 있다. 상큼한 파스타 소스가 향긋한 빵 향기와 퍽 어울린다. 토마토와 크림 소스 모두 어울리니 취향껏 선택하면 된다. 서울 서초구 효령로 23. 1만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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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멘바오샤=연교. 과거부터 ‘면보햐’랑 이름으로 중국집 메뉴판에 있었지만 잘 몰르다가 이제와 너무도 유명해진 메뉴다. 중국어 멘바오(面包)는 빵을 뜻하고 샤(蝦)는 새우다. 빵 사이에 새우를 다져 채우고 그걸 다시 튀겨낸 것이니 얼마나 맛있나. 멘보샤의 인기는 21세기 대한민국의 중국집 회식과 술자리 열풍을 견인하고 있다. 연남동 연교는 사오룽바오(小籠飽) 등 만두로 유명한 곳인데 멘보샤도 맛있다. 다진 새우살이 바삭한 빵 사이에 꽉 찼다. 4개 들이 작은 단위로 파니 부담도 적다. 멘보샤로 유명한 서교동 진진은 멘보샤를 에어프라이어 용 HMR(가정간편식)으로 판매한다. 마포구 연희로1길 65 1층. 1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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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박식빵=따순기미. 식빵이 네모난 수박의 형태다. 향도 맛도 그렇다. 겉은 녹색 속은 붉은 색과 흰색이 있어 정말 수박을 닮았다. 습관처럼 껍데기 부분을 버릴 뻔 했다. 수박의 달달한 향도 좋고 식빵 특유의 구수하고 담백한 맛도 함께 살았다. 색은 수박 농축액과 녹차, 우유, 오징어먹물 등을 썼고 씨는 초콜릿으로 박았다. 모든 것과 잘 어울리는 식빵이지만 파운드 케이크처럼 그냥 먹기도 아무런 모자람이 없다. 그저 커피 한잔을 곁들이면 충분하다. 따순기미는 김경오 파티셰가 오븐을 책임지는 베이커리다. 다양한 과일과 채소의 원 형태과 맛을 살린 창의적 제품이 많아 멀리서도 발길을 끌어 당길만큼 인기를 모으는 집. 파주시 동패로 63번길33. 7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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