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드로지] 송이·장어·튀김·잡채·주꾸미… 요리가 살포시 덮은 밥
덮밥만큼 다채로운 음식이 또 있을까. ‘무엇으로 덮느냐’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사진 위부터 서울 무교동 ‘북경’의 송이덮밥, 서울 성수동 ‘기후’의 생참치회덮밥. 서울 반포동 ‘마루심’의 나고야식 히쓰마부시.
이상하다. 그저 반찬거리를 밥에 얹어 내올 뿐인데, 사람들이 열광한다. 그게 요리였든 소스였든 똑같다. 먹는 이들이 반겼다. 만들기 좋고 먹기 편하다. 설거지는 더욱 즐겁다. 짜장밥, 잡채밥, 규동(소고기덮밥), 카레라이스, 오므라이스, 제육덮밥, 불고기덮밥, 회덮밥. 모두 다른 듯하지만 사실 죄다 덮밥의 종류다. 주인공이 밥이니 아시안 식문화의 요리다. 주식과 부식 섭취가 한 그릇 안에서 모두 이뤄진다. 식사의 형태를 완전체로 그릇 하나에 담아낸 것이 덮밥이다.
덮밥은 원래 이 땅에 없던 음식이다. 그래서 사실 이름도 문법에 맞지 않는다. 어간을 바로 명사에 붙였다. 볶은 밥처럼 ‘덮은 밥’이라 해야 할 것을 그냥 덮밥이라 불렀다. 물기가 많은 ‘국밥’에 대응하려는 의도였을지도 모른다. 국밥, 덮밥, 볶음밥, 비빔밥, 눌은밥, 초밥 등 밥 종류 메뉴는 조리방법이나 그 형태를 연상할 수 있다. 비빔밥(골동반)이야 오래전부터 있었지만, 덮밥은 근래에 생긴 요리다. 요리를 해 밥 위에 얹어내는 것은 중국음식점에서 시작됐다. 짜장소스를 밥 위에 얹어준 짜장밥이 그 효시다. 이후 잡채밥, 마파두부 덮밥, 유산슬 덮밥 등이 나왔다. 고추잡채밥도, 야키우동밥도 나왔다. 덮밥 덕에 메뉴가 든든해졌다.
그전에도 분식집에 오징어덮밥, 제육볶음덮밥 등이 있긴 했지만, 일식 ‘돈부리’(どんぶり)가 들어오면서 덮밥의 세계는 더욱 다양해졌다. 우물 정(井)에 ‘점’ 하나를 찍은 이른바 ‘퐁당 퐁’ 자를 쓰는 돈부리. 밥 위에다 찍은 ‘점’은 생각보다 다채롭다. 소불고기를 얹은 규동, 튀김을 올린 덴동(튀김덮밥), 닭고기와 달걀을 볶아 끼얹은 오야코동, 돈가스를 얹은 가츠동, 해산물의 가이센동 등 헤아리기 어렵다. 일본의 대표적 대중식사인 돈부리는 별 반찬 없이 그저 쓱쓱 밥과 함께 떠먹으면 되니 편리하고 나름 푸짐해 한국에 상륙해서도 당장 인기를 끌었다.
규동이야 널리 알려졌지만 최근에는 덴동이 인기다. 어찌 튀김을 밥에다 먹을까 궁금하겠지만 일본에선 덴동의 위상이 의외로 높다. 일본식 튀김요리인 덴푸라를 밥 위에 올려 먹는 덴동은 가격이 놀랄 정도로 비싸다. 규동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다. 제법 알려진 덴동 전문점에선 재료의 면면이 스시에 뒤지지 않는다.
반찬을 이불 삼아 덮고, 사발(또는 접시) 안에 포근히 들어앉은 덮밥. 요리와 밥의 절묘한 궁합을 자랑하는 덮밥 맛집들을 챙겨봤다.
◇송이덮밥 = 중국음식점에는 실로 다양한 덮밥이 있다. 특히 찐득한 요리를 밥 위에 끼얹으면 대부분 덮밥이 된다. 고추간짜장으로 유명한 서울 무교동 ‘북경’에는 송이덮밥이 있다. 정말 자연 송이는 아니고 양송이를 채소와 함께 볶아내 밥에 얹어준다. 부드러운 버섯과 아삭한 죽순, 청경채가 씹는 맛을, 짭조름한 소스는 감칠맛을 더한다. 채식주의자도 쌍수 들고 환영할 만한 덮밥이다. ‘식사부의 제왕’ 잡탕밥의 채식 버전이라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서울 중구 세종대로20길23. 8000원.
◇장어덮밥 = 덮밥의 제왕이라 불러 마땅한 장어 덮밥. 일본 나고야(名古屋)식 히쓰마부시는 보통의 우나동(장어덮밥)과는 약간 다르다. 바삭하게 구운 뱀장어 가바야키를 나무그릇에 담아 내오는 것이 바로 히쓰마부시다. 장어를 얹은 밥을 그냥도 먹고 밥과 섞어도 즐긴다. 우나동보다 좀 더 가늘게 썰어내 밥과 비벼 먹기에 좋다. 마지막에 녹차를 부어 오차즈케로 먹는 방식이다. 서울 반포의 ‘마루심’은 나고야식 히쓰마부시를 잘하는 집이다. 일본인이 직접 전통 방식으로 운영한다. 마포에도 생겼다. 서울 마포구 토정로316성진빌딩. 3만
6000원.
◇튀김덮밥 = 서울 종로의 ‘시타마치 텐동 아키미츠’(이름이 좀 길다)는 일본 덴동 전문점의 한국 직영점이다. 그저 분식집 튀김 정도로 생각했다면 이곳에서 정통 덴동의 화려함에 놀라게 된다. 다양한 덴동을 취급하는데 마니아들의 줄이 길다. 붕장어 살점과 뼈를 분리해 따로 튀겨내고 굴, 새우, 연어, 채소 등을 얹은 시그니처 메뉴 ‘고다이메 덴동’은 보기만 해도 입이 벌어진다. 덴쓰유(덴푸라 간장)도 맛이 좋아 튀김 없이도 밥을 비울 수 있다. 서울 종로구 종로51 종로타워 지하 1층. 2만2000원.
◇주꾸미덮밥 = 오징어덮밥이 아니다. 주꾸미를 칼칼하게 볶아 얹었다. 서울시청 뒤 분식으로 이름난 ‘짱이네’에선 주꾸미덮밥과 오징어덮밥을 같이 판다. 한국에선 덮밥도 보통 비벼 먹는 까닭에 이 집은 주꾸미를 섞어 먹기 좋도록 촉촉한 상태로 볶아내고 김가루도 올려준다. 주문과 동시에 볶으니 탱글탱글한 주꾸미 살과 아삭한 양파의 씹는 맛이 각각 살아 있다. 매콤한 양념이 밥알에 스미면 입맛이 당장 살아난다. 서울 중구 무교로6. 금세기빌딩 지하 1층.9000원.
◇회덮밥 = 회를 얹어 밥을 먹다 보면 회는 요리가 아닌 결국 반찬이었음을 깨닫는다. 어촌에서 누가 날생선만 먹었을까. 듣기만 해도 호사스러운 생참치회덮밥을 파는 곳이 서울 성수동에 있다. 상호는 ‘기후’. ‘보양 다이닝’을 내세우는 이 집은 신선 제철 재료를 일식 요리기법을 사용해 재해석한 메뉴를 오마카세(맡김메뉴)로 내는 집이다. 초고추장을 짜 넣는 한국식 회덮밥과는 다르지만 생참치를 저며 올려낸 덮밥도 새로운 매력으로 다가온다. 한 번에 비비지 말고 고추냉이를 잘 섞어가며 참치를 밥에 얹어 먹으면 하나하나가 초밥이 된다. 서울 성동구 동일로139. 1만6000원.
◇소고기덮밥 = 규동은 일본에서도 육류 요리를 대표하는 식사 메뉴다. 얼핏 우리 불고기처럼 볶아낸 고기를 밥 위에 얹어준다. 서울 용산의 ‘쯔꾸시’는 규동으로 이름난 곳이다. 고기를 얇게 썰어 달콤하게 볶아내는데 그 진한 국물과 함께 밥에 얹어 떠넘기면 입안에서 완벽한 조화를 이루다 사라져버린다. 규동 특유의 소스는 불고기 백반보다 짭조름하지만 계란을 풀어 넣어 꽤 부드럽게 넘어간다. 아삭한 생강을 곁들여 먹으면 좀 더 강한 풍미를 낸다. 새우를 얹은 에비동도 있다. 서울 용산구 한강대로76길. 1만1000원.
◇잡채밥 = 짬뽕으로 이름난 군산에 잡채밥으로 유명한 집이 있다. ‘서원반점’은 주문 즉시 밥과 잡채를 따로 볶아 뜨거운 잡채밥을 낸다. 다소 진한 양념을 한 당면잡채를 볶음밥에 얹어준다. 절묘한 궁합이다. 뜨거운 잡채는 오히려 칼칼해 볶음밥의 느끼함을 감싼다. 아삭하게 볶아낸 채소와 부드러운 고기가 당면과 잘 섞여든다. 젓가락으로 잡채를 살살 얹어가며 밥을 조금씩 떠넘기다 보면 어느새 큰 접시를 비우고 만다. 따로 내주는 짬뽕 국물 역시 명불허전 군산의 짬뽕 맛이다. 군산시 구시장로63. 8000원.
◇미더덕 회덮밥 = 미더덕은 창원 마산합포구 진동면에서 국내 생산량의 70%가 난다. 진동면 ‘이층횟집’에선 제철에 미더덕 회를 팔고 연중 미더덕 덮밥을 차려낸다. 미더덕을 양념해 젓갈 형태로 만들어 놓았다가 밥 위에 얹고 쓱쓱 비비는 덮밥이다. 멍게 덮밥(우렁쉥이)에 비견되지만 사실 맛은 전혀 다르다. 미더덕은 멍게보다 아린 맛이 덜 나는 대신 고소한 맛이 훨씬 강하다. 밥에 비비면 좀 더 잔잔한 향기를 느낄 수 있다. 배추를 넣고 끓여낸 된장국도 시원하다.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동면 미더덕로345-1. 미더덕 덮밥 1만2000원.
<놀고먹기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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