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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야 케첩될꺼야' 멋쟁이 토마토

[푸드로지] 태양이 빚은 맛과 영양의 결실 토마토 요리

by 이우석 더 프리맨


대구 수성구 오스테리아 밀즈의 대표 메뉴 카프레제 콜드 카펠리니. 토마토와 치즈를 얹은 카프리 스타일 샐러드 카프레제에다 카펠리니 면(麵)을 함께 내는 파스타다.


■ 세계 3대 식재료 ‘토마토’
안데스 원주민 즐기던 채소… 스페인이 유럽 전파
초창기엔 ‘맨드레이크’ 닮았다며 식용 꺼려
美 독립전쟁땐 워싱턴 독살 시도 위해 썼다가 실패

‘케첩’ 중국어서 기원… 中서도 달걀토마토볶음 인기
한국엔 광해군때 ‘남만시’라는 이름으로 첫 등장
‘리코펜’ 술독 배출 해장 탁월… 항암·항산화 효과도



유월 땡볕에 토마토가 익어간다. 시중에 빨간 맛 덩어리 채소 토마토가 조생종인 ‘도태랑’ 품종부터 출하되고 있다. 단맛, 짠맛, 신맛에 감칠맛까지 두루 품은 토마토는 이제 세계에서 가장 즐겨 먹는 채소가 됐다. 남아메리카 대륙의 지붕 안데스가 감자와 함께 구세계에 준 값진 선물이다. 토마토는 의외로 가짓과에 속한다. 따라서 완숙 전에는 미량의 독성(솔라닌)이 있다. 하지만 빨갛게 익고 나면 사라진다. 16세기에 중남미 침략에 나섰던 스페인에 의해 구대륙 유럽으로 소개됐다. 스페인이 토마토를 가져간 남미 문명인 아즈텍의 원주민은 토마토를 나와틀어(語)로 ‘시토마틀(Xitomatl)’이라 불렀다. 토마토 이름의 유래다.


처음 토마토를 유럽으로 가져갔을 때는 관상용으로만 쓰였다. 토마토를 본 유럽 사람들은 악마의 독사과, 즉 맨드레이크(만드라고라)와 닮았다며 두려워했다. 맨드레이크는 정말 독성과 마취성분이 강한 데다, 교수대 아래에서 자란다는 괴담까지 있어 유럽인들이 취급하기 꺼리던 식물. 가짓과에다 붉은색까지 같은 토마토를 오해한 것이다.


심지어 암살에도 쓰였다. 하지만...

미국 독립전쟁 중 조지 워싱턴을 암살하기 위해 영국 첩자가 토마토즙을 그릇에 발랐는데, 당연히 실패했다. 워싱턴은 유난히 그날 맛있는 만찬을 즐겼을 것이다. 토마토와 함께

이후 토마토의 뛰어난 맛과 영양이 밝혀지면서 단숨에 유럽인의 입맛을 사로잡았으며 특히 강한 일조량과 토양이 재배에 딱 맞는 이탈리아와 스페인 등 지중해 연안 국가에선 주방에 절대 빠지지 않는 채소로 떠올랐다. 특유의 달콤하고 짭조름한 맛과 어떤 식재료에도 어울리는 감칠맛 성분은 다른 어느 채소도 따라가지 못했다. 토마토 자체가 천연 조미료의 대명사가 되는 순간이었다. 토마토의 식용이 일반화된 것은 1800년대. 이때부터 다양한 토마토 요리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토마토는 과육을 그대로 잘라서도 쓰지만 으깨거나 갈아서 수프부터 소스, 주스, 퓌레, 절임, 케첩 등으로 다양하게 가공할 수 있다. 어떤 식재료와 함께 조리한대도 맛이 좋아지니 다채로운 음식에 쓰였다.

혜성처럼 등장한 최고 식재료를 가장 환영한 고객은 이탈리안이었다. 피자와 파스타에 이처럼 어울리는 양념이 없었다. 아마도 한국인이 고추를 받아들인 기분이었을 것이다.


감칠맛과 향을 내는 3대 식재료. 토마토와 치즈, 바질을 쓴 많은 이탈리아 전통 음식이 이때 탄생했다. 이탈리아 국기가 괜히 빨간색, 하얀색, 녹색이 아니었다는 농담이 나돌 정도로 이탈리안 퀴진에선 이 세 가지 식재료를 즐겨 쓴다. 인근 유럽 국가에서도 앞다퉈 토마토를 쓰기 시작했다. 지중해 연안에서 토마토는 귀중하기로 으뜸가는 식재료가 됐다. 19세기 초에는 현재 세계 3대 소스에 명함을 내밀고 있는 ‘케첩’이 등장하기에 이른다.




케첩은 중국어에서 나온 말이다.

케첩에 대한 오해가 몇 가지 있다. 먼저 케첩은 미국에서 처음 만든 것이 아니란 것. 중국어에서 나온 말이다. 남방 중국계 생선소스(魚醬) 중 하나인 해즙(鮭汁)의 푸젠(福建)성 사투리 발음이 ‘꿰짭(koechiap)’이었다. 이것이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시아까지 퍼져나가며 크찹(Kecap)이 됐고 내용물도 견과류나 버섯 등 식물성 재료가 추가되는 등 다양하게 바뀌었다. 다시 영국인에 의해 유럽으로 건너가며 비로소 지금의 케첩(ketchup)이란 이름을 갖게 됐다. 제국주의 영국은 비슷한 시기에 인도로부터 카레를 들였고 케첩까지 유입되며 식탁의 다양성이 강조되던 시대였다. 내용물도 생선이 아닌 버섯과 양파 등으로 만들다가 미국 회사 하인스(Heinz)에 의해 토마토를 사용한 케첩이 처음 탄생했다.

케첩으로 간을 한 나폴리탄 스파게티. 한육감.


토마토 페이스트(회사마다 다르지만 40∼65% 정도)에 소금과 설탕, 식초를 넣은 토마토케첩은 달달한 감칠맛과 그 간편함으로 폭발적 인기를 끌며 순식간에 식탁을 점령했다. 때마침 태동한 미국의 패스트푸드 열풍과 어깨를 겯고 토마토케첩은 원조(?) 젓갈 케첩을 아예 기억 속에 잠재우며 주도권을 장악했다. 지금은 케첩 하면 도저히 다른 재료를 떠올릴 수 없다. 무조건 토마토로 인식된다.


토마토가 채소라는 논쟁은 세금문제 탓

두 번째 오해는 토마토가 과일이 아니고 채소라는 위상 부분에 관한 것이다. 사실 조리해 먹으면 채소고 후식으로 쓰면 과일이란 것도 우습다. 아무튼 이는 과채류란 이름으로 다소 해결됐지만 사실 이 논쟁은 미국에서 수입 관세 문제 때문에 생겨난 것이다. 19세기 미국은 씨가 들어 있는 열매는 무조건 무관세 대상인 과일로 규정했는데 그러다 보니 유럽산 토마토가 대량 수입되며 싼값으로 팔려 자국 농가의 불만이 쌓였다. 그래서 토마토를 채소로 규정하는 새로운 분류를 제시했던 것이다. 유럽에선 여전히 과일이다. 지금 우리나라 관세청에선 토마토를 ‘채소류’로 규정하지만, 농림축산식품부에선 ‘과채류’로 분류하고 있다.


한편 케첩 종주국으로서 이름은 내줬지만 대신 중국은 일찌감치 토마토를 식용으로 받아들이면서 자국 요리문화를 대폭 발전시켰다. 광둥(廣東) 요리를 비롯해 중국 전역에서 수많은 요리에 토마토를 쓴다. 중국은 토마토를 구대륙으로 꺼내온 스페인과 비슷한 시기에 식용하기 시작했다. 스페인 식민지 필리핀에서 토마토를 먹기 시작했고 이를 중국에 전파시킨 것. 덕분에 한반도에도 조선 광해군 때 이미 그 이름이 등장한다. 지봉유설에 남만시(南蠻枾)란 이름으로 토마토가 소개된다.


중국 가정에서 자주 먹는 반찬인 시홍스차오지단(西紅枾炒蛋)은 이른바 토마토 달걀볶음이다. 화교들은 집에서 자주 먹었으나 메뉴로 팔지는 않던 것을 양꼬치집에서 안주로 소개하면서 이젠 꽤 유명해졌다. 달달하고 고소한 맛에 반한 젊은층은 아예 ‘토달볶’이란 애칭을 붙여주며 굳건한 마니아층을 형성하고 있다. 흥건한 국물 요리인 토마토 달걀국(西紅枾蛋湯)도 있으며, 여기다 밀가루 편을 넣은 거다탕(䬣湯)도 있다. 산라탕(酸辣湯), 중국식 오므라이스 단바오판(蛋包飯) 등에도 토마토가 들어간다. 가만 보면 토마토를 달걀과 함께 요리하는 경우가 잦은데 맛과 영양적 궁합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짭조름한 단백질 덩어리 치즈와도 잘 맞는다.



일본에는 그저 차가운 토마토를 썰어낸 ‘히야시도마도(냉토마토)’란 안주를 쉽게 찾아볼 수 있으며, 여름에 먹는 냉라멘 격인 히야시주카(冷やし中華)에도 여름 채소 토마토 토핑이 올라간다. 평상시에는 또 토마토케첩을 소스로 사용한 나폴리탄 스파게티를 즐긴다.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토마토를 요리에 쓰기보다는 과일로 여겨 그냥 먹거나 갈아서 주스로 마신다. 하지만, 토마토의 감칠맛 성분은 글루탐산나트륨(MSG)으로 우리가 아는 조미료의 주성분과 같다. 생으로 먹을 때보다 조리하면 더욱 제맛을 낸다는 얘기다.


해장에 좋은 블러디메리. 복싱타이거,

토마토는 영양성분이 탁월한 채소다. 토마토의 핵심 영양소는 과육의 붉은색 성분인 리코펜(Lycopene·또는 라이코펜)이다. 리코펜은 특히 노화의 원인이 되는 활성산소를 배출시키는 효과가 있고, 항암 효과도 인정받았으며 심혈관 질환 예방에도 좋다고 한다. 특히 여성 유방암, 남성 전립선암에 좋다 해서 많은 이가 찾아 먹는다. 만병통치 과일이다. 토마토는 열량이 낮아 다이어트와 미용에 관심 있는 여성들에게도 인기가 좋다. 칼륨은 나트륨 배출을 돕고 비타민K는 칼슘 배출을 막아주는 효과도 있다. 괜히 세계 10대 슈퍼푸드에 꼽힌 것이 아니다.


토마토의 효능 중 주목할 만한 것은 바로 해장 기능이다. 서양에선 딱히 해장이랄 게 없지만 그나마 토마토로 해장하는 경우가 많다. ‘해장술’ 블러디 메리나 피자, 멕시칸 부리토에도 죄다 토마토가 들어간다. 실제로 연구해보니 리코펜이 술독(아세트알데하이드)을 배출시킨단다. 어찌 알고 해장으로 토마토를 택했을까. 집단지성의 학습효과란 이처럼 뛰어나다. 술꾼들도 대를 이어 몸 바쳐 공부를 하는 모양이다. 봄날부터 작렬한 뜨거운 태양이 맺은 결실 제철 토마토. 이 빨간 보물 덕에 입맛도 살고 몸도 거뜬해지는 초여름이다.


<놀고먹기연구소장>


■ 어디서 먹을까

◇마레 토마토 리소토=스패뉴. 새콤하면서도 깊은 풍미의 토마토 페이스트로 양념한 밥(리소토)이 초여름 떨어진 입맛을 일으켜 세운다. 홍합과 바지락, 새우를 넣어 볶아낸 리소토는 소스가 잘 배어들어 있고 밥알의 익은 정도도 적당해 입에 짝짝 붙는다. 무엇보다 간이 적당해 좋다. 살짝 매콤한 맛도 깃들어 느끼하지 않다. 곁들여 먹기 좋은 ‘고르곤졸라에 토마토’ 피자도 부드럽고 구수하다. 서울 무교동 일대에서 서소문, 그리고 현재는 북창동 시대를 열고 있는 꽤 오랜 업력의 이탈리안 레스토랑이다. 서울 중구 세종대로 82 2층. 1만5900원


◇토마토계란볶음=상해소흘. 연남동에서 화상 스타일이 아닌 본토 대륙의 메뉴를 선보이는 중화 포장마차. 다양한 메뉴를 적당한 양과 저렴한 가격에 맛볼 수 있어 찾는 이가 많다. 토마토 계란볶음의 맛을 완성하는 신의 한 수는 케첩이다. 생토마토를 으깨고 볶다가 케첩을 넣어 마무리하는 것이 정통 스타일이다. 상큼한 토마토가 입맛을 최대한 끌어올리면 고소하고 부드러운 달걀이 뒤를 받친다. 서울 마포구 동교로 272. 1만 원.



◇파스타=오스테리아 밀즈. 대구와 경주에서 맛좋은 이탈리안 퀴진으로 소문난 집. 주택가 이면도로에 있지만 많은 이가 찾아온다. 인기 메뉴 중 카프레제 콜드 카펠리니는 굉장히 특색 있다. 토마토와 치즈를 얹은 카프리 스타일 샐러드인 카프레제에 가느다란 카펠리니 면을 함께 내는 시원한 파스타가 입맛을 사로잡는다. 소면만큼 가는 파스타가 새콤달콤한 방울토마토 절임, 진한 바질 페스토, 수제 브라타 치즈와 잘 어울린다. 대구 수성구 동원로1길 26 1층. 1만7000원.


◇블러디 메리=복싱타이거. 스타터로나 해장술로나 모두 좋다는 블러디 메리(Bloody Mary). 레시피가 생각보다 까다로워 맛있다고 소문난 집은 드물다. 보드카 베이스에 무가당 토마토 주스를 채우고 약간의 소금과 통후추, 타바스코소스, 돈가스 소스, 레몬주스를 일정 비율로 섞어 만든다. 들어가는 재료만 보면 저절로 손이 멈칫하겠지만 중독성 있는 맛으로 마니아층이 많다. 워커힐 우바와 JW메리어트 동대문 그리핀 출신의 유명 믹솔로지스트(칵테일 믹싱 전문가) ‘호야(김형규)’가 오너 바텐더로 운영하는 집이다. 서울 강남구 신사동 510-3. 지하 1층. 2만 원(보드카 지정 가능).


◇토마토커피(달토커피)=하루커피앤도넛. 커피에 토마토가 들어갔다면? 경북과 대구를 기반으로 입소문을 타고 있는 이 카페에는 달성군 특산품 토마토를 활용해 만든 커피가 있다. 이름하여 ‘달토커피’. 달성토마토와 장내 유산균이 유기적으로 결합할 수 있도록 고안한 일명 ‘장이 좋아지는’ 커피다. 예상과는 달리 텁텁하거나 뻑뻑하지 않고 커피 향과 새콤한 토마토 향을 동시에 즐길 수 있다. 시즌 한정이라 여름이 지나면 먹을 수 없다. 바리스타 이안아 대표가 로컬 농산물을 사용해 커피를 내리고 있다. 달성군 논공읍 논공로5길 152. 4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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