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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의 복식, 서프앤드터프

[푸드로지] 한 식탁에 오른 고기와 해산물

by 이우석 더 프리맨

■ 서프 앤드 터프 (surf & turf)

서프 ‘파도’·터프는 ‘잔디밭’ 뜻
고기·해물 한 그릇에 담은 요리
美가 종주국… 버거로 즐기기도
中선 삼선요리·용봉탕이 대표적

日엔 해물·육류 섞은 메뉴 적어
닭·조개 등 구운 ‘야키도리’ 정도



꼭 그런 사람이 있다. 고기 먹자 하면 생선회 먹자고 하고, 매운탕 집에 가자면 육개장이 좋다고 한다.


생각해보면 동서고금에 늘 있던 일이다. 서로 다른 성질의 식재료, 특히 해산물과 육류는 맛과 식감에서 차이가 크다. 그래서 나온 것이 ‘서프 앤드 터프(surf & turf)’다. 요리에서 메인 코스로 고기와 해산물 재료를 각각 조리해 함께 곁들여 내는 것을 말한다. 결정하기가 여의치 않으면 둘 다 먹어보라는 뜻이다.



현대식 누벨퀴진의 프렌치 코스 정식을 예로 들면 전채와 어뮤즈 부셰(amuse-bouche·한입 크기의 간단한 요리), 수프, 샐러드 뒤에 메인으로 간단한 해물 요리가 먼저 나온 후 바로 고기 요리가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 이때 고기 요리에 더해 해산물 요리까지 한 번에 내오는 것을 ‘서프 앤드 터프 메인’이라고 한다. 서프(surf)는 해산물이 살아가는 바다의 파도, 터프(turf)는 가축이 뜯어먹는 잔디밭을 의미한다. 얼마나 근사한 작명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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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에 처음 미디어(로스앤젤레스 타임스)에 등장한 이 요리는 스테이크 등 고깃덩이에 연어, 새우, 가리비, 랍스터 등 해산물을 같이 플레이트에 담아내는 것이다. 일찍이 코스 식문화가 발달한 서유럽에서는 사슴과 송아지, 오리고기 등 진한 풍미의 가축 및 가금류를 요리해 송어 등 생선을 구운 토막과 함께 냈지만 딱히 이런 이름은 없었다.



원칙은 붉은색 필레미뇽(filet mignon·뼈 없는 쇠고기 안심 살코기 부위)과 랍스터를 내야 한다. 새우나 가리비 등을 쓰기도 하지만 랍스터(그중에서도 꼬리)를 기본으로 친다. 정의대로 쇠고기와 갑각류만 쓰던 것이 다양한 식재료의 공급에 힘입어 한층 발전해 다채로운 생선과 어패류가 접시에 오르게 됐다. 플레이트를 장식하는 곁들임 메뉴인 ‘가니시(garniture)’에 포함되는 것도 아니다. 양이나 조리에서 거의 주연급은 돼야 ‘서프’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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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 사진은 돼지목살과 붕장어를 함께 내는 ‘돼장’의 서프 앤드 터프 요리. 아래는 키조개 관자, 장흥 한우, 표고버섯을 함께 내는 전남 장흥의 ‘장흥삼합’.



특히 21세기 들어 프랑스 코스요리를 기반으로 한 파인다이닝 문화가 전 세계로 확산될 때 육류 일색이던 메인 디시에 세계 각국에서 잡힌 해산물이 다양하게 도입됐다. 이로부터 ‘서프 앤드 터프’란 용어가 널리 퍼졌다. 레스토랑에서도 환영할 만한 일이었다. 값비싼 재료 두 종류가 메인에 나오니 당연히 가격은 꽤 나갔다. 손님은 두 가지를 한 번에 맛봐서 좋고 레스토랑 측은 값을 제대로 쳐 받으니 장사가 쏠쏠했다.

호주에서는 반드시 쇠고기 스테이크를 쓰고 새우나 튀긴 생선 등을 곁들이면서 ‘리프 앤드 비프(reef & beef)’라 한다. 뜻은 비슷하다. 리프(reef)는 파도가 아닌 산호다. 미국은 서프 앤드 터프의 종주국 격이다. 고기양이 해산물보다 절대적으로 많지만, 대부분의 스테이크 하우스에서 즐겨 취급한다. 아예 햄버거에 새우나 랍스터를 끼워 ‘서프 앤드 터프 버거’로 판매하기도 한다. 스테이크 하우스에서 인기를 끌자 대중화시킨 메뉴다. 버거킹 등 체인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다만 미국에선 고기 패티가 들어가지 않으면 ‘버거(burger)’란 명칭을 쓸 수 없어(‘샌드’라고 해야 한다), 국내의 ‘새우버거’ 제품과 달리 쇠고기 패티와 해산물 튀김을 함께 끼워 먹는다.


중국에도 비슷한 것이 있다. 해산물과 고기, 채소를 함께 요리하는 것을 ‘삼선(三鮮)’이라 하고 이를 확대 적용한 대표 음식이 팔보채(八寶菜)다. 팔보채에 사용되는 8가지 재료는 보통 해삼, 오징어, 소라, 새우, 죽순, 표고, 양송이, 닭(돼지)고기 등인데 해산물의 비중이 높다. 유산슬(溜三絲)도 고기와 해산물을 함께 채 썰어 볶은 요리지만 이 역시 해산물과 채소에 맛보기로 고기를 넣은 격이다. 해산물과 고기가 대등한 비중으로 들어가는 요리는 잉어와 닭을 넣어 끓인 용봉탕(龍鳳湯)이 대표적이다.

진대감 차돌.JPG 진대감 차돌삼합
장흥한우삼합 만나숯불갈비2.JPG



일본에는 해산물과 고기를 함께 먹는 메뉴가 별로 없다. 육류면 육류, 해물이면 해물 등 요리에 단순한 맛을 추구하는 까닭이다. 다만 야키도리(燒鳥) 모둠에서 닭다리살, 쇠간, 호다테(가리비), 가이바시(조개관자) 등 여러 종류를 함께 구워 접시에 담아내는데 이 경우 일본식 서프 앤드 터프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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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돼장’ 붕장어초밥



원래부터 다양한 종류의 식재료를 섞어 조리해 함께 먹는 우리 한식에선 이런 조합을 따로 부르는 이름이 없다. 굳이 정하자면 삼합(三合)이나 이합(二合) 정도가 되겠다. 실제 삼합이라 부르는 음식도 주요 재료는 해산물과 고기다. 홍어와 돼지고기, 쇠고기와 키조개 관자가 주인공인 셈이다. 여기에 김치나 표고버섯 등이 곁들여질 뿐이다. 한국판 서프 앤드 터프다.



결정장애가 있어서 이렇게 두 종류를 다 차려 내는 것이 아니다. 함께 맛보면 더욱 맛있기 때문이다. 고기와 해산물 조합은 서로 식감이 다르고 기름기의 유무 등에서 큰 차이가 나니 맛이 상승효과를 낸다. 고기만 먹으면 기름이 많아 쉬이 느끼해지고, 그렇다고 생선과 해산물만 먹자니 너무 담백하다. 함께 먹을 때 비로소 균형이 잡혀 각각의 요리에 물리지 않고 맛있게 즐길 수 있다.

독특한 풍미를 자랑하는 짬짜면.JPG 짬짜면


복식으로 따지자면 도쿄올림픽 양궁의 안산 선수와 김재덕 선수 격이다.



사실 한국인은 서프 앤드 터프에 익숙하다. 많은 요리를 이렇게 먹어 왔다. 돼지고기에 새우젓을 쓰는 것까지 서프 앤드 터프로 부를 수는 없겠으나, 오징어와 삼겹살을 볶아 먹는 오삼불고기가 대표적이다. 돈가스집에서 먹는 정식(돈가스+생선가스)도 이에 속한다. 해산물 위주인 짬뽕과 돼지고기가 든 짜장을 한 그릇에 담아내는 짬짜면도 따지고 보면 서프 앤드 터프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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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날에 즐겨 먹는 보양식에도 토종닭에 전복이나 문어를 넣고 끓여내 함께 집어먹는 ‘해천탕(또는 해신탕)’이 있다. 낙지와 곱창을 함께 볶아먹는 법도 알아냈다. 고기만 넣으면 아쉬움이 남는다는 사실을 깨달았으니 맛깨나 아는 민족이다.



나름 부지런히 챙겨 먹는데도 뭔가 아쉬운 세상이다. 결정하기 어렵거나 둘 다 욕심이 날 때는 ‘서프 앤드 터프’가 최고다. 지능이 고도로 발달한 영장류는 미각도 뛰어나다. 음식이 생기면 그대로 먹는 게 아니라 실패하기 어려운 메뉴 조합을 고안해낸다.



놀고먹기연구소장




■ 어디서 먹을까



◇키조개 관자+차돌박이 = 차돌삼합. ‘이영자 맛집’으로 소문난 진대감은 일명 ‘강남삼합’을 개발한 곳이다. 특허출원한 차돌삼합은 한우++ 차돌박이와 졸깃한 키조개 관자, 상큼한 묵은지가 한 상에서 만나 완전체를 이룬 음식. 탄생한 지 10년도 넘었는데 나오자마자 입소문이 나서 강남지역 식도락가들로부터 꾸준히 사랑받았다. 서울 강남구 논현동 217-47. 2만5000원.

진대감 차돌삼합.JPG 진대감 차돌삼합



◇장어+돼지목살 = 장어를 목살과 함께 구워 먹는 호사를 누리다니. 돼장이란 상호는 왠지 14세기 고어 같지만 사실 ‘돼’지와 ‘장’어의 약자다. 두툼한 목살은 소금구이로, 싱싱한 붕장어는 소금구이와 고추장구이 모두 가능하다. 와인과 전통주에도 착 맞아떨어진다. 서울 강남구 선릉로155길 14 2층. 목살 3만5000원, 붕장어 2만9000원.

돼장 목살구이.JPG 돼장 목살구이


◇문어+닭고기 = 회춘탕은 강진에서만 부르는 명칭이다. 해천탕이니 해신탕이니 하는 메뉴다. ‘회춘탕’이란 이름을 쓸 때는 강진군이 육수에 쓰는 약재 등 특별 관리하는 레시피를 지켜야 한다. 한정식으로 유명한 은행나무집은 회춘탕을 메뉴로 낸다. 토종닭을 통째 넣고 큼지막한 전복과 문어를 넣은 뒤 팔팔 끓여낸다. 강진군 강진읍 영랑로4길 30. 12만 원.


강진 회춘탕.JPG 은행나무 회춘탕


◇생선가스+돈가스 = 비어할레. 다동의 유명한 호프집으로만 기억하는 사람이 많다. 여전히 생맥주를 마시러 오는 사람이 많지만 점심에는 돈가스를 팔아 인근 직장인들이 식사차 모여든다. 정식을 주문하면 생선가스와 돈가스를 함께 내준다. 얇고 바삭하게 튀겨낸 ‘한국식’ 돈가스는 특제 소스에, 크림처럼 속살이 스르르 녹아내리는 생선가스는 살짝 매콤한 타르타르 소스와 함께 먹으면 그 하모니가 참 좋다. 서울 중구 을지로3길 34. 8000원.

비어할레 정식.jpg 지어할레 정식


◇스테이크+랍스터 = ‘그랩앤고 서프&터프’는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서울 파르나스 그랜드 키친에서 내놓은 서프 앤드 터프 도시락이다. 그랜드 키친의 도시락 ‘그랩앤고’는 매 시즌 새 메뉴로 구성된다. 이번에는 3만 원대 가격으로 랍스터, 스테이크, 보리굴비 등 최상급 식재료를 메뉴에 담았다. 장어구이, 깐풍기, LA갈비 등 여름 보양 메뉴로 구성한 버전도 있고 홈 글램핑을 즐길 수 있도록 4∼6인용으로 마련한 ‘홈 글램핑 투고’도 있다.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 521. 최소 4시간 전 예약 필수. 3만9000원.

인터컨티넨탈_그랜드키친 그랩앤고.jpg 그랜드 인터콘티넨탈 호텔 그랩앤고


◇키조개 관자+쇠고기 = 전남 장흥삼합은 이제 홍어삼합만큼 유명하다. 토요시장과 탐진강변 곳곳에 장흥삼합을 파는 집이 많다. 만나숯불갈비는 장흥 한우에 키조개 관자, 표고버섯을 함께 구워 먹는데, 쌈에 구운 키조개 관자를 얹고 그 위에 쇠고기와 표고버섯을 올린 다음 입에 넣으면 진한 풍미가 입안을 가득 채운다. 장흥군 장흥읍 물레방앗간길 4. 살치살(600g) 9만2000원.

장흥삼합3.JPG 만나숯불갈비 장흥삼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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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친거.png 문화일보 푸드로지 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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