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드로지] '뼈대있는' 뼈다귀 맛집 13곳
뼈째 뜯는 즐거움, 만화 속 고기의 맛
몹시 배를 곯던 이가 음식을 상상할 때, 커다란 고기가 붙은 뼈를 통째 들고 뜯어먹는 장면이 나온다. 만화나 영화의 단골 클리셰다. 영화 ‘플린트스톤’이나 만화 ‘딱따구리’ ‘뽀로로’ 등에서 이런 신(scene)은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로 부지기수다.
그만큼 동물 뼈가 그대로 붙어있는 음식은 보기만 해도 식욕을 자극한다. 프랑스와 중국의 정육점에선 여전히 뼈가 붙어있는 고기를 그대로 판매하기도 한다. 터키에선 큼지막한 뼈다귀에 붙은 고기를 빙빙 돌려 굽다가 칼로 얇게 저며 파는 케밥 카빙 쇼를 펼치기도 한다.
도축 및 정형, 조리법, 식사 예절의 발달로, 현대인은 식용할 고기만 따로 떼 내 섭취한다. 미리 잘라놓은 고기를 나이프로 썰거나 젓가락으로 집어 먹는다. 하지만 큼지막한 고기가 붙은 뼈다귀는 그 자체만으로 여전히 포만의 아이콘으로 유효하다.
우리의 경우 갈비와 족발, 치킨 등에 순살만 발라내지 않고 뼈를 두는 경우가 많다. 아예 등뼈를 삶아 파는 뼈찜, 감자탕, 뼈다귀해장국 등 뼈가 주인공일 때도 많다. 양식에서도 메뉴에 따라 접시 위에 뼈가 등장할 때도 있다. T본, L본, 토마호크, 포터하우스 스테이크, 비프립, 양갈비 등이다. 선사시대의 본능이 여전히 전해지고 있는 것일까.
뼈는 맛이 좋다. 사실 뼈 자체로는 별다른 맛이 없지만 뼈에 붙은 고기는 유독 맛이 좋다는 뜻이다. 뼛속에는 피를 만드는 골수가 있어 뼈 주변 고기에는 꾸준히 육즙이 공급된다. 살코기에 비해 진한 육향도 식감도 좋다.
살코기가 귀하던 시절 뼈를 우린 육수는 그나마 저렴한 육식 행위였겠지만 요즘은 오히려 사골이 비싸다. 명절 선물로 가장 좋은 고기 부위에 버금갈 정도로 값이 나간다. 뼈를 우리면 골수가 우러나 좋은 육수가 생긴다. 사람들은 그것이 맛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우리 사골국과 유럽의 빌스톡(veal stock), 일본의 라멘 육수 같은 국물 요리가 생겨났다. 맛도 좋고 칼슘 등 영양가 면에서도 좋다. ‘이열치열’ 하자면 든든한 ‘뼈 요리’를 찾아보는 것도 괜찮다. 말복이 얼마 남지 않았다. ‘뼈대 있는 맛집’ 13곳을 소개한다.
◇일미집 = 감자탕. 서울 용산 후암동에서 70년 원조감자탕으로 입소문난 집이다. 돼지 척추뼈를 오래 끓여서 감자와 함께 먹는 경기, 강원도식 음식이다. 허드레 부위였지만 척추뼈엔 은근히 먹을 것이 많다. 똑똑 부러뜨려 담백한 살을 발라 먹고 국물에 밥을 말아 고소한 감자와 함께 먹으면 배 속이 든든하다. 얼핏 캔 참치살 같은 척추 사이 사이의 살은 돼지 어느 부위보다 진한 풍미를 낸다. 밥알은 고소한 육수를 머금고 부드럽게 넘어간다. 애초 잘못 알려진 ‘감자뼈’ 같은 말은 원래 없는 말이다. 서울 중구 을지로3길 22. 7500원.
◇미담진족 = 오향족발. 족발은 뼈째 먹기 딱 좋은 고기다. 중국과 독일, 동유럽에선 인기 부위로 꼽힌다. 껍데기째 잘 썰어놓은 살점을 투실한 육젓과 함께 집어 먹다가, 마지막으로 정강이뼈를 만화에서처럼 들고 뜯으면 뼈에 붙은 쫀득한 부위를 즐길 수 있다. 단 한 명에게만 허락되는 호사다. 홍대입구에서 족발맛집으로 소문난 이 집은 다양한 족발요리를 판다. 대표메뉴인 오향족발은 특제 약재 소스에 손수 삶아내 입에 짝짝 붙는다. 부들부들한 껍데기 속에 들어앉은 고기는 쫀득쫀득하다. 서울 마포구 잔다리로3안길 27 1층. 2만8000원부터.
◇라멘트럭 = 한국과 더불어 전 세계 척추뼈의 블랙홀로 불리는 일본. 라멘의 육수를 내는 데 쓰이기 때문이다. 일본식 라멘집이 많기로 소문난 서울 상수역 인근에서도 손에 꼽는 맛집. 척추뼈와 삼겹살 등 돼지고기를 우려낸 육수에 건어물과 닭육수 등을 섞어 고소한 수프를 내고 여기다 심이 살아있도록 삶아낸 매끈한 면을 말아 그릇에 담아낸다. 오랜 시간 고아내 진한 뼈 국물이라 혀에 진득하니 붙는다. 이 집의 인기 아이템인 차슈를 비롯해 숙주, 대파, 반숙계란, 나루토마키(회오리어묵) 등 고명도 맛이나 모양새가 퍽 조화롭다. 서울 마포구 독막로14길 31. 8000원.
◇와와소머리탕 = 우족(牛足)도 뼈 요리하면 빠지지 못한다. 갈비뼈 못지않은 고급 식재료다. 별다른 메뉴 없이 소머리 및 우족을 내는 서울 삼각지 맛집이다. 우족에 붙은 고기는 식감 좋고 살이 부드러워 수육과 탕을 함께 즐길 수 있는 전골로 낸다. 사골 육수에 양지 수육을 곁들인 설렁탕과는 완전히 다른 우족 특유의 진한 고기 맛을 느낄 수 있어 매력적이다. 쫀득하고 속은 부드러운 우족 수육은 씹을수록 꾸준히 고소한 맛을 낸다. 서울 용산구 한강대로62가길 18. 우족전골 5만 원.
◇영춘옥 = 60여 년 서울 종로 극장가를 지키며 곰탕과 해장국을 팔아온 영춘옥에선 암호처럼 통하던 메뉴가 하나 있다. 이른바 ‘따귀’. 소 목뼈 부위를 삶아낸 ‘뼈다귀’에서 유래한 말로 서울 술꾼 사이에서 돈깨나 제법 만졌을 때 먹던 고깃덩어리 안줏감이다. 푸짐한 고기와 젤라틴이 잔뜩 붙은 뼈다귀를 이리저리 발라먹으면 꽤 많은 고기가 나온다. 겉에는 담백하고도 육향 풍부한 살점이, 뼈 사이 사이엔 쫀득한 연골이 들었다. 서울 종로구 돈화문로5가길 13. 뼈다귀 3만7000원.
◇풍년해장국 = 서울 잠실 인근 해장국집 중 가장 든든한 뼈다귀해장국을 파는 집. 뚝배기에 수북하게 올린 돼지 등뼈는 보기만 해도 식욕을 자극한다. 뼈 도막이 굵고 튼실하기까지 하다. 기대보다 많은 고깃점이 붙어있어 다 먹고 나면 배가 불룩하다. 붉은 국물에 잠긴 우거지와 뼈다귀 고기를 함께 집어 먹다가 밥을 말아 국물과 함께 후루룩 마시노라면 포만의 즐거움과 함께 탄성이 절로 나온다. 해장 손님도 많지만 그냥 밥 손님도 득실득실하다. 서울 송파구 가락로 94. 8000원.
◇닭진미강원집 = 가장 값싸게 뼈째 들고 먹을 수 있는 것이 닭다리다. 닭다리를 하나씩 주는 닭곰탕집이 있다. 1962년 개업해 근 60년을 남대문시장에서 닭곰탕을 팔아온 집이다. 양은 냄비마다 큼직한 닭다리가 하나씩 들었다. 큼직한 중닭 이상을 쓰니 치킨이나 삼계탕처럼 작은 다리뼈가 아니다. 먼저 하나를 뜯고 난 후 잘게 찢은 닭고기와 국물을 밥과 함께 말아 먹으면 그 든든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기름지고 구수한 국물은 대파만 넣었는데도 그 풍미가 좋다. 닭다리에 욕심이 더 난다면 아예 살점 수북한 통닭 메뉴를 주문해도 된다. 서울 중구 남대문시장길 22-20. 8000원. 통닭 1만8000원.
◇어림지 = 경북 포항에서 해장국집을 물으면 이곳부터 일러준다. 해산물 좋기로 소문난 포항이지만 생선이 아니라 뼈다귀해장국이다. 커다란 뼈 한 덩이가 뚝배기에 떡하니 자릴 차지하고 있다. 앞접시에 건져내 식힌 다음 고기를 발라내 국물과 우거지를 함께 떠먹으면 해장부터 요기까지 죄다 해결된다. 워낙 두툼한 살점이 붙어있어 집어 들고 뜯어내도 좋다. 고기만 발라먹는 데에도 한참 걸려 국물이 다 식을 정도다. 칼칼한 국물이 고소한 살점에 배어들어 딱히 겨자 간장에 찍지 않아도 충분하다. 포항시 남구 중흥로 74. 8000원. 뼈찜 2만6000원부터.
◇마포 램랜드 = 뼈 하면 갈비, 갈비 하면 양갈비가 빠질 수 없다. 테이블에 뼈를 올리는 것을 꺼리는 서양에서도 양갈비는 그대로 둔다. ‘한국식 양고기 맛집’으로 소문난 이곳은 돼지갈비 굽듯 양고기를 불판에 구워 밀전병에 싸먹는 독특한 스타일의 고깃집이다. 특히 선호하는 삼각갈비 구이와 담백한 수육, 칼칼한 양념의 전골이 있다. 살점은 도려내고 뼈를 들고 뜯으면 무더위가 싹 가실 정도로 힘이 난다. 무릎뼈와 함께 들깨와 깻잎을 곁들여 팔팔 끓여낸 전골은 뼛국물이 고소하게 우러나 보양식으로 딱이다. 서울 마포구 토정로 255. 삼각갈비 2만5000원, 전골 1만3000원.
◇장안문 = 돼지 늑골 뒤쪽 부위가 등갈비다. 아마 뼈를 집어 뜯어먹는 음식 중 비중이 가장 큰 게 등갈비가 아닐까 한다. 양손에 들고 뼈에 붙은 남은 살코기를 뜯는 재미가 쏠쏠하다. 등갈비 전문점 장안문은 바깥에서 숯불 직화로 양념 초벌구이한 등갈비를 가져와 각각 불판에 올려준다. 목살 붙인 돼지갈비나 기름 많은 삼겹살과는 아예 다른 맛이다. 달달 매콤한 양념 맛이 잘 밴 고기가 붙어있어 발라 먹고 나머지는 요리조리 돌려가며 뜯으면 된다. 서울 중구 을지로3길 29. 1만5000원.
◇로앤슬로우 = 음악인이자 육식인(?)으로 유명한 돈스파이크가 운영하는 집. 운영 정도가 아니라 직접 앞치마를 두르고 고기를 훈연한다. 가게 안에 10m도 넘는 훈연 전용 화덕을 설치해 놓고 브리스킷 등 정통 텍사스식 바비큐를 굽는다. 브리스킷이나 비프 립 플레이트를 주문하면 커다란 뼈가 붙은 소갈비(쇼트립)와 차돌양지 브리스킷, 그리고 다양한 가니시를 함께 내준다. 부드럽고 촉촉한 고깃덩이를 잘라 빵에 끼워 먹으면 스모키향과 그윽한 육향이 입안으로 스민다. 셰프가 머리카락이 없어 좀 더 위생적(?)일 것이란 기대가 있다. 후식 육개장도 그냥 넘길 수 없다. 서울 용산구 보광로 126 2층. 3만9900원
◇이치류 = 양갈비를 맛있게 즐길 수 있는 곳. 삿포로(札幌)식 ‘칭기즈칸’ 방식으로 양을 굽는다. 마치 투구처럼 생긴 두꺼운 전용 무쇠 불판에 채소와 양고기를 올려 익혀 먹는 방식이다. 고기는 모두 호주산 1년 미만의 램을 사용하고 생갈비, 살치, 생등심 등 부위별로 판다. 양 특유의 달큼한 냄새가 전혀 나지 않는 부드러운 생갈비를 친절하게 일일이 구워준다. 채소와 고기를 특제 양념 소스에 찍어 먹는 맛이 고급스럽다. 서울 마포구 잔다리로3안길 44. 2만9000원.
◇진주집 = 소꼬리 안에는 단면이 뾰족한 별 모양 뼈가 들었다. 마디마디에 고소한 젤라틴 연골 또한 가득하다. 늘 흔들어대기 때문에 지방이 낄 겨를이 없어 담백하고 진한 육향이 난다. 게다가 한 마리에 꼬리 하나, 얼마 나오지 않는 귀한 부위로 꼽혔다. 국물을 내도 맛이 좋지만 찜을 하면 더욱 좋다. 남대문시장 안에서 꼬리곰탕 맛집으로 명성을 지켜오는 노포다. 꼬리토막을 주문하면 살집 커다랗게 붙은 위쪽 덩어리를 따로 내준다. 서울 중구 남대문시장4길 6-1. 꼬리토막 2만5000원.
놀고먹기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