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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들레는 민들레 Nov 10. 2024

보건교사 경찰서에 가다

가정폭력으로 인한 아동학대를 신고했다.

경찰서에서 나오자 갑자기 두부가 생각났다.  마트에 들러 두부를 샀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생두부 반모를 우걱우걱  먹었다. 왠지 그렇게 해야 할 것 같았다. 남편이 옆에서 어이없다며 비웃었다.


보호자에게 가정폭력을 당하는 학생들을  종종 다. 가정폭력으로 인한 아동학대 사건을 접하면서 경찰서에 가 조사를 받은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학교에 전근하고 일주일 정도 되었을 때의 일로 기억한다. 아픈 학생들을 열심히 처치하고 있었다. 한 선생님이 고학년 땡땡이를 데리고 왔다. 대체로 담임교사가 직접 학생을  데리고 보건실로 오는 경우는 큰 사건이다.


담임교사에게 인사하고  학생의 얼굴을 살폈다.  다른 사람에게 뺨을 맞았을 때 나타나는 좁쌀 같은 출혈이 얼굴 한쪽에 넓게 퍼져 있었다. 이런 경우 한대가 아니다. 날마다 수십 명의 상처나 멍을 들여다보고 치료하는 보건교사는  상처를 보면 대강 어떻게 다쳤는지 짐작할 수 있다.


담임교사는 조심스럽게 나를 보건실 밖으로 데리고 갔다. 교실에 들어온 외부강사에게 학생이 얼굴이 아프다며 보건실에 간다고 했단다. 외부강사가 담임에게 학생을 보건실에 보내도 되냐고 물었다. 담임이 학생을 교실 밖으로 불러 어디 아프냐고 물었고 학생은 아빠에게 맞아서 얼굴이 아프다고 말했다고 했다. 담임은 수업이 있다고 교실로 갔다. 나보고 어쩌란 말일까? 자신은 수업이 있으니 나에게 사건경위를 조사하라는 것으로 판단했다. 수업해야 한다는 이유로  담임들은 이런 조사(?)를 나에게 맡기는 경우가 간혹 있다. 그럴때마다 나는 '수업이 그렇게 중요한가? 자기 반 학생이 위기인데 말이야.'라는 생각이 든다.  내 주업이 수업이 아니니 나는 그들을 모를 일이다. 서로 돕고 살면 좋은 것이다.


보건실로 들어와 대기 중이던 다른 학생들에게 갑자기 응급한 일이 생겼다고 쉬는 시간에 보건실에 오라고 양해를 구했다. 점상출혈이 있는 학생의 얼굴을 사진 찍었다.  땡땡이에게 어떻게 맞았는지, 왜 맞았는지, 평상시에도 보호자가 자주 때리는지, 불편한 다른 곳은 없는지 등을 물었다. 땡땡이는 묻는 말에 망설임없이 대답했다. 일반적으로 친분관계가 없는 보건교사에게 이렇게  순순히 대답하는 학생들은 그리 많지 않다. 아무래도 고학년이라서 그런것 같았다.


쉬는 시간에 담임교사가 보건실에 왔다. 담임과 함께 교장실에 갔다.


교장실에 담임, 나, 교장, 교감이 있었다. 가정폭력 업무담당자는 수업 중이라고 오지 않았다. 나는 관리자에게 학생의 사진을 보여주고 내가 보고 들은 것말했다. 관리자가

- 신고해야겠네요.

 그런데 문제는 여기에서 시작되었다.

- 누가 신고할까요? 담임 선생님이 신고하면 앞으로 보호자와 담임과의 관계가 안 좋아질 수도 있는데......

 라며 말끝을 흐렸다. 순간 적막해졌다. 그때 누군가가

- 아동학대는 최초의 발견자가 신고해야 하잖아요. 보건선생님께서 상처를 봤고 학생의 가정폭력 사실을 확인했잖아요.  보건선생님께서 신고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라고 말했다. 모두 날 바라봤다. 나는

- 학교라는 기관에서 아동학대를 최초로 인지했으니 학교가 신고하는 것이지 개인이 신고하는 것은 아니지 안 씁니까?

고 말했다.  하지만 나의 말은 그들을 설득시키지 못했다. 모두들 내 얼굴만 계속 빤히 봤기에 나는 속으로

 '신고가 뭐라고? 왜 다들 안 하려고 하지?'라는 생각을 잠시 하고 112를 눌렀다.

-땡땡초등학교인데요. 가정폭력 사안이 발생했습니다.

간략하게 상황을 설명했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다른 학교에 있었을 때는 가정폭력 사안이 생겼을 때 업무 담당자가 신고했었다. 그런데 그 순간 모두들 내 얼굴만 보고 있었기에 당황스러워 그 사실을 잊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관리자가 조금 미숙했던 것 같다. 관리자도 미숙할 수 있다. 인간이니까.



담임은 교실로 가고 나는 보건실로 왔다. 관리자는 한 일만 대강 해결하고 보건실로 오기로 했다.


보건실에서  땡땡이가 아무렇지 않게 책을 보고 있었다.  땡땡이에게 다가갔다.

-땡땡아, 네가 거짓말을 해서 아빠가 뺨을 때렸다고 했지. 그런데 사람이 사람을  때리면 안 되는 거야. 선생님도 부모님도 어른이다고 해서 아이를 때려서는 안 돼. 학교는 학생들을 교육하고 학생들을 보호하는 곳이야. 또 보호자가 학생을 잘 키우게 교육하곳이기도 해.  학교는 이런 상황에서 경찰에 신고해서 보호자들이 아이들을 잘 키울 수 있게 하고 있어.  일단 너가 가정폭력을 당했다는 사실을 경찰에 신고했으니까 너무 놀라지 마. 선생님들이 널 도와줄거고 너희 아빠도 도와줄거야.

-네. 선생님. 그런데 저희 아빠 나쁜 사람 아니에요. 어제는  제가 거짓말을 많이 해서  아빠가 실수한 거예요.

-그래. 아빠가 실수한거야. 아빠가 걱정되는구나. 걱정하지 않아도 돼. 학교에서 경찰에 신고하는 것은 아빠를 처벌하려는 것이 아니야. 아빠가 널 더 잘 키우게 도와주려는 거야. 걱정하지 마. 괜찮아.

-네

나는 학생과 신뢰관계가 형성되지 않은 상황이라 말 한마디 한마디가 조심스러웠다. 그러나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학생은 상황을 잘 받아 들였다. 그래서 고마웠다. 관리자가 보건실로 와서 학생의 상태를 확인했다. 관리자는 땡땡이를 독립된 공간으로 데리고 갔다.


20분 즈음 후에 경찰이 제복을 입고 보건실에 왔다. 치료 대기 중이었던 학생들이 경찰을 보고 동물원 원숭이 구경하 듯 몰려들었다. 경찰에게 사복 입고 오라고 할 걸 후회했다. 경찰은 나에게 와서 신고했냐며 나의 연락처와 전화번호 등을 물었다. 학교전화가 아니라 내 전화번호를 물으니 공적인 내가 사적인 대상이 된 것 같아 무섭고 두려웠다. 학생이 있는 곳으로 경찰을 안내했다. 경찰은 구청(?)에서도 곧 나올 거라고 말했다. 구청(?) 직원도 내가 신고했다고 보건실로 왔다. 나는 다시 학생이 있는 곳으로 그들을 안내했다.




보건실로 돌아와 일상적인 업무를 처리했다. 점심을 먹고 한시 반정도 되었을 때 경찰서에서 전화가 왔다.

- 땡땡땡 선생님이죠? 가정폭력 신고하셨으니 오늘 3시까지 경찰서로 오세요.

- 네. 제가 신고한 것이 아니라 저는 학교 대표로 신고한 건데 제가 가는 게 맞나요?

학생에 대해 담임교사가 제일 잘 알 텐데 나보고 나오라고 하니 당황스러웠다.

- 선생님께서 신고하셨으니 선생님께서 나오셔야 합니다.

- 네.

전화를 끊고 그제야 모두가 신고를 미룬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관리자에게 3시에 출장내고 경찰서 가야 한다고 말했다. 관리자는 그렇게 하라고 했다.


경찰서는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었다. 내가 죄 지은 것은 아니지만 경찰서로 오라니 왠지 두려웠다. 경찰 친구에게 학교에서 가정폭력사안으로 신고해서 경찰서에  가야하는데 주의할 점은 없는지 물어봤다. 친구는 그냥 묻는 말에 거짓 없이 대답하라했다. 전화를 끊으려고 하는데 친구가 

- 야, 그런데 네가 그 학생에 대해 뭘 알아? 내가 생각했을 때는 담임교사가 가야 가정상황이나 학교에서 학생이 어떻게 생활하는지 잘  설명해야 할 것 같은데? 경찰서에 다시 전화해서 담임교사랑 같이 간다고 해.

친구 말을 들어보니 일리가 있었다.


연락온 경찰서에 전화해서

- 땡땡초등학교입니다. 제가 오늘 학생이 가정폭력 피해자여서 신고했는데요. 저는 보건교사라 학생의 가정상황이나 학교생활 등에 대해 잘 모릅니다. 그래서 담임교사와 함께 가려고 하는데요. 함께 가도 되나요?

- 네. 선생님. 함께 오세요.


경찰과 전화를 끊고 담임교사에게 전화했다.

- 선생님, 경찰서에서 땡땡이 가정폭력 사건으로 조사를 받으러 오라고 합니다. 경찰서에서 3시 30분까지 오라고 하는데요. 선생님 출장내고 함께 가요.

담임선생님께서 당황해하셨다. 담임선생님은

- 선생님 제가 학기 초라 많이 바쁩니다. 오후에 동학년 회의도 있어서요. 할 일이 태산입니다.

학기 초라 바쁘다고? 보건교사는 학기 초에 한가한가? 가뜩이나 학교 옮겨서 필요한 물품, 약품들 확인해 사야 하고, 전교생 건강조사도 해야 하는데 말이다. 3월 내내 토요일말다 시간외 근무하는  나는 시간이 넘치는지 묻고 싶었지만 꾸욱 참았다.  학기초니 이해하기로 맘을 다잡았다.

-그럼 선생님. 4시 30분에 끝나고 4시 50분에 경찰서 앞에서 뵈는 건 어떤가요?

-네. 선생님. 그렇게 해요.

담임교사와 전화를 끊고 아픈 학생들을 치료하는데 담임교사에게서 전화가 왔다.

-선생님 부장님께서 동학년 회의에 빠져도 된다고 해서요. 4시에 경찰서 앞에서 봬요.

-네.

나는 경찰서에 전화해서 4시에 가겠다고 했다.




경찰서 건물을 보고 순간 쫄았다. 담임교사와 함께 담당 경찰관에게 갔다. 화장실 한 칸 정도의 크기에 들어가 조사를 받았다. 좁은 공간에서 경찰과 마주 보고 앉아있으니 심장이 두근거렸다. 나는 금세 주눅이 들었다.


경찰은 먼저 나를 조사했다. 나는 아침에 학생에게 들은 것들을 적은 상담일지를 휴대폰으로 찍어가서 경찰이 묻는 말에 대답했다. 나는 주로 상처가 있는 부위와 상태, 학생과 나눈 이야기를  답했다. 경찰에게 아침에 찍은 학생사진을 보여줬다. 사진을 경찰서 핸드폰으로 전송했다.  답변을 다하고 싸인을 했는지, 지장을 찍었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나의 진술 중 나도 모르게 왜곡되게 표현한 것들이 있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으로 심장이 두근거리고 다리가 후들후들 거렸다. 남편이 늘 나를  놀린다. 간이 콩알만 하다고. 나는 그날 다시 한번 내 간의 사이즈를 확인하게 되었다.


 내 조사가 끝나자 경찰은 담임교사에게 땡땡이의 가정환경이나 학생의 학교생활, 그전에도  폭력의 징후를 본 적이 있는지 등에 대해 물었다. 담임도 나처럼 긴장되어 보였다. 담임도 떨리는 목소리로 최선을 다해 답했다.


담임교사와 함께 가길 정말 잘했다. 담임이 학생에 대한 정보를 더 정확하게 경찰에게 많이 주었다. 담임과 함께여서 나중에는 든든한 마음도 들었다. 혹시 앞으로 누군가 학교에서 가정폭력으로 경찰서에 가야한다면 동행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조사가 끝나고 경찰서에서 나오자 갑자기 두부가 생각났다.  마트에 들러 두부를 샀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생두부 반모를 우걱우걱 먹었다. 왠지 그렇게 해야 할 것 같았다. 남편이 옆에서 어이없다며 비웃었다.


두 번 다시 생두부를 먹는 일이 없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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