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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들레는 민들레 Nov 17. 2024

학교의 가정폭력  피해 아동 학대 신고가 갖는 의미

폭력으로부터 학생을 보호해 준다.

"담임 선생님, 보건 선생님 당신은 가정폭력으로 인한 아동학대  방관자입니다"


유튜브를 보다가 우연히 가정폭력 피해자 영상을 봤다. 피해자는 초등학교 때 자신이 '가정폭력 피해자다'는 사실을 담임교사와 보건교사가 알고 신고하지 않아 오랫동안 가정폭력에 시달렸다고 했다. 그들은 왜 신고하지 않고 침묵했을까?


교사는 본의  아니게 수많은 누군가의 인생에 끼어들게 된다. 나의 말, 행동 하나하나가 신중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위기의 학생이 있다면 절대 모른 척해서는 안된다. 교사가 한 사람의 인생을 망쳐서는 안 된다.




온몸이 멍과 상처투성이인 외로운 들고양이를 아동학대 피해자로 신고했을 때 회의에 참석한 누군가가 이렇게  말했다.

-신고해도 달라질 게  없어요. 여러 번 봤어요. 학생은 몇 주 쉼터로 가고 다시 가정으로 복귀할 겁니다. 어차피  사회가 그 학생을 키우지 않아요. 결국  학생에게 폭력을 가한 부모가 그 학생을 키웁니다. 우리의 신고가 학생을 가정 내에서 더 힘든 상황으로 몰 수도 있습니다.  


학생은 쉼터로 갔다. 쉼터에 한 달가량 머물다가 가정으로 되돌아왔다.  그 후 관리자가 심각하게 나에게 말했다.

- 외로운 들고양이가 요새 도통 보호자 말을 안 듣는다네요. 보호자가 뭐라하면 외로운 들고양이가 아동학대로 신고한다고 해서 집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실정인가 보더라고요. 아이고, 어떻게 해야할지 난감하네요.


보호자도 힘든 가정환경에서 외로운 들고양이를 양육하고 있었다. 비정규직을 전전하며 경제적으로도 넉넉하지 않았다. 부부갈등도 심했다. 특히 어머니는 남편의 폭력, 남편의 바람, 경제적인 지원 없이 세상을 살아야 하는 힘든 위치에 놓여 있었다. 보호자는 어쩌면 자식하나 바라보고 세상살이를 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보호자가  학생이 잘못되기를 바라며 폭력을 사용하지는 않았으리라.  아이를 잘 키우려고 한 행동이 폭력이라니 안타깝다. 폭력이 아이를 망치는 길인데 말이다.


예쁜 반티가 도착한 날. 학생들은 옷을 갈아입으로 화장실에 갔다. 학생 여럿이 우연히 외로운 고양이의 몸을 봤다. 학생들은 담임선생님에게  달려가 자신들이 본 것을 말했다.


담임교사는 학생을 보건실로 데리고 왔다. 본인은 수업을 해야 한다며 학생을 나에게 맡기고 갔다. 외로운 들고양이의 몸통에 멍과 상처가 가득했다. 보호자가 철사로 된 옷걸이를 곧게 펴서  외로운 들고양이를 사정없이 때렸다. 들고양이가 돈을 훔치고 거짓말을 했다는 것이 폭력의 이유였다.


외로운 들고양이는 보호자가  착하다고, 자신이 맞을 행동을 했다고 말했다. 세상에 맞을 행동이 어디 있냐고? 너처럼 소중한 아이를 때려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외로운 들고양이의 커다란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나왔다.

 

외로운 들고양이의 동의를 얻어맞은 부위들을 사진으로 찍었다. 학생의 상처를 치료하고 학생은 침대에서 눕혔다. 업무용 책상에 앉는데 다리가 후들거렸다. 눈물이 나왔다.


중간놀이 시간에 위기관리 위원회가 열렸다.  아동학대 신고가 학생의 성장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가와 학생을 앞으로 학교에서 어떻게 보호할지에 중점을 두고 회의가 진행되었다. 당연히 학교는 가정폭력에 의한 아동학대 사실을 인지하였으니 신고하기로 했다.


아동보호기관에 생활부장이 신고했다. 아동학대 보호기관에서 보건실로 왔다. 학생을 데리고 보건실 내에 있는 상담실에서 상담했다. 이것저것 한 시간가량 물었던 것으로 기억난다. 그들은 학교 관리자를 만났고 내가 상담한 기록지를 복사했다. 그들은 학생을 쉼터로 데리고 갔다.


 교장선생님은  신고 당일 보호자를 교장실로 불렀다. 교장선생님은  "학교는 신고의무가 있습니다. 너무 섭섭해하지 마십시오. "라고 말했다. 교장선생님은 교장실에서 두 시간가량 보호자를 다독였다. 보호자는 교장실에서 한참을 울었다.  이후로도 교장선생님께서는 그 보호자를 학교에 자주 불러 자기 반 학생처럼 위로하고 상담했다. 교감 선생님은 외로운 들고양이를 관리하기로 했다. 교감선생님께서는 외로운 들고양이가 쉼터에 있던 기간 내내 외로운 등하교를 책임지셨다. 




지금으로부터 40년 전  내가 자란 마을에 아빠의 폭력으로 온몸에 상처와 멍으로 힘든 나날을 살던 남매가 있었다. 그 아이들의 아빠는 평상시는 괜찮았다. 그런데 술만 먹으면 정신이 돌아 어린 자녀들을 개 패듯이 팼다. 그 아저씨가 술냄새를 풍기고 비툴거리면 동네 아이들은 그 집 사 남매를 찾아 "너희 아빠  술 취했어. 어서 피해."라고 알렸다. 사 남매는 아빠가 술이 깰 때까지 동네 비닐하우스나 산, 화장실 등에 숨었다.


내가 국민학교 때는 눈이 무릎까지 왔었다. 눈이  온 캄캄한 밤으로 기억한다. 그 집 사 남매가 우리집 문밖에서 "주안이 아빠, 살려주세요. 저희 좀 숨겨주세요"라고 말했다. 문을 여니 맨발로 사 남매가 서 있었다. 아버지가 애들을 집안으로 들어오게 했다. "너희 아버지 또 술드셨냐?"  아이들은  눈물을 뚝뚝 흘렀다. 아버지가 사 남매를 벽장에 숨겨주었다. 그 아저씨는 정말 이상한 게 애들이 안 보이면 애들을 찾아서 때리는 나쁜 습성이 있었다. 우리 집으로 숨은걸 보고 욕설을 하고 문을 발로 차면서 애들 내놓으라고, 숨긴 것 다 안다고 고래고래 소리쳤다. 아버지가 애들 없다고 했다. "자네 왜 그런가? 진짜 술 좀 그만 먹소."라고 하면서 어서 집으로 가라고 했다.  아저씨는 개같이 짖어대고 집 밖에서 우리집 물건들을 마당에 한참을 던지고 사라졌다.


그 집 사 남매는 자라는 내내 옷이 꾸질꾸질했다. 온 뭄에 때꾹물이 흘렀다. 몸은 빼빼 말랐고 공부도 못했다. 동네 애들도 은근 무시했다. 그 집 사 남매의 눈빛은 외로운 들고양이의 눈과  흡사했다.


동네 어른들은 그 아저씨에게 "개만도 못 한 인간, 어서 죽어야지."라고 말했다. 그 집 사 남매는 불행하게 유년시절을 보내고 성인이 되었다. 그 아저씨는 결국 술 마시고 오토바이 타서 교통사고로 생을 마감했다. 그 아저씨 죽음에 눈물 흘린 이 가 있을까  싶었는데 그 집 애들은 울었다고 들었다. 동네 어른들은 그 아저씨가 죽자 "사람답게 못 살고 죽어서 불쌍하네."라고 했다.


그 당시에 가정폭력으로 인한 아동학대 신고 제도가 있었다면 어떠했을까? 그 집 사 남매는 눈빛이  어떻게 변했을까?


자식을 외로운 들고양이로 만들어버리는 매정한 이들.

나는 그들을 혐오한다.  


간혹 그 집 사 남매의 눈빛을 하고 있는 학생들을 본다. 내가 그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학교에 이야기하여 위기관리 위원회를 여는 것 밖에 없다.


학교의 아동학대 신고는 보호자에게  '학교에서 당신을 감시하고 있어. 또 때리면 신고할 거야. 때리지 마. 학교는 학생을 보호할 거야.'라는 경고메시지다. 내 아이가 나만의 아이가 아니다. 나는 아이의 주인이 아니라 양육자다.


외로운 고양이 어머니는 가정폭력으로 학교가 아동학대 신고를 학생이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다고 한탄했다. 자신이 뭐라 하려 들면 외로운 고양이가 "아동학대로 신고할 거예요."라고 말해 답답하다고 했다. 그러나 나는 그 말을 듣고 다행이다고 생각했다.


누군가 가정폭력으로 아동학대를 당한다면 주저하지 말고 신고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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