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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감유행으로 바쁜 초등학교 보건교사

힘내자. 힘 빠지면 독감 걸린다.

by 민들레
"선생님, 저희 반 독감 3명이고, 열 나서 안 온 애가 6명이에요"


그 전화를 시작으로 A형 독감이 빠르게 퍼졌다. 저번주부터 열나는 학생이 많았다. 그로 인해 지칠 대로 지쳐있었는데 독감과 발열증상으로 일곱 명 넘게 결석한 반이 네 반이나 등장했다.


공식적으로 독감에 걸려 등교중지 중인 학생이 20명이었다. 독감에 걸렸지만 담임교사가 미쳐 보건교사에게 알리지 않은 학생, 독감임을 숨기고 학교에 온 학생, 독감인데 단순 발열로 생각하고 독감검사를 받지 않은 학생 등 비 공식적인 환자도 공식적인 독감환자만큼 될 것이다.


초등학교 내 감염병은 저학년에서 빠르게 퍼진다. 저학년 학생은 어리다 보니 방역수칙을 잘 못 지키고 면역력이 낮다.


직장을 가야만 하는 보호자는 학생에게 '절대 해열제 먹었다고 말하지 마.', '독감이라고 말하면 안 돼.'라는 특명을 내렸을 것이다.


목 아프고 머리 아프고, 기침하고 콧물 나고, 가래차고 어지럽고, 토할 것 같고 배 아픈 학생들이 속수무책으로 보건실에 밀려들었다. 재고 해열제 먹이고 건강관리 쪽지 쓰고 담임 통해 보호자에게 연락했다. 해열제를 몇 개를 썼는지 모르겠다.


보건실 방문 학생은 모두 마스크를 쓰게 했다. 나도 하루 종일 마스크 썼다.


관리자와 교무, 담임교사들에게 교내에 독감(인플루엔자)이 유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렸다. 담임교사들에게 독감에 이환된 학생이 발생하즉시 업무 쪽지를 주라고 당부했다. 쪽지를 쓰자마자 3~4명의 환자가 더 쏟아졌다. 반마다 방역물품을 확인하고 부족하면 보건실에서 가져가게 했다. 손 씻기, 기침예절 등 호흡기 질환 예방법을 학생들이 지킬 수 있게 생활지도를 부탁했다.


감염병환자 발생 시 보건교사는 교육청에 나이스로 발생 보고를 해야 한다. 그래야 교육청도 지역 내 학교에 어떤 감염병이 유행하고 있는지 알고 대책을 세울 수 있다. 작년은 올해보다 더 많은 독감환자가 생겼었다. 한 무리의 감염병을 관리하는 공무원들(교육청, 시청, 구청 등)이 학교를 방문했었다. 그들이 감염병 업무의 힘든 점을 물었다. 감염병에 걸린 사실을 숨기고 보호자가 학생을 등교시키는 경우와 학교에서 학생이 열나서 힘들어하는데 보호자가 데려가지 않는 경우에 힘들다고 말했다. 감염병으로 가정요양이 필요한 학생을 위한 지원대책을 지역사회가 제도적으로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다. 말하면서도 그들이 절대 내 말을 들어주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형식상 왔겠지. 나이 들면서 권력이 한 번씩 탐날 때가 있다. 바로 이런 경우다. 나이스에 들어가 독감학생 발생보고를 했다.


감염병이 유행시 보건교사는 아픈 학생들을 처치할 때 언제나 유행 중인 감염병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열나는 학생이 보건실에 오면 가능한 한 빨리 등교중지 시켜야 했다. 감염병 확산을 막는데는 둥교중지가 가장 좋다.


학생을 데려가지 않는 보호자들이 이번에도 있었다. 학생은 침대에서 끙끙 앓았다. 보호자가 오지 못하는 경우에는 언니, 오빠가 하굣길에 동생을 데리고 가기도 했다. 6학년 학생이 수업 끝나고 동생을 데리러 왔다. 6학년 학생에게 건강관리 쪽지를 주고 동생만 두고 놀러 가지 말라고, 동생 옆에 있다가 동생 아프면 보호자에게 전화하라고 당부를 했다.


학생의 상태를 묻는 보호자의 전화가 오기도 했다. 몸은 직장에 있지만, 마음만은 학생에게 가 있는 부모 모습이 짠하면서도 아이를 빨리 데려가지 않으니 야속한 마음도 들었다.


출석이 인정절차를 묻는 담임교사나 보호자의 전화도 바쁜 나를 더 바쁘게 했다. 독감 검사받으러 간 것도 출석이 인정되냐고 묻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 검사받으러 간 사실만으로는 출석이 인정되지 않는다.


원칙적으로는 질병명과 격리기간이 명시된 진료확인서나 진단서를 결석계와 함께 제출하면 출석이 인정된다. 경우에 따라 독감치료제가 적어져 있는 약봉투만 제출해도 된다.


학교보건법 제8조에서는 다음과 같이 등교중지를 명시하고 있다.

제8조(등교 중지) ① 학교의 장은 제7조에 따른 건강검사의 결과나 의사의 진단 결과 감염병에 감염되었거나 감염된 것으로 의심되거나 감염될 우려가 있는 학생 또는 교직원에 대하여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등교를 중지시킬 수 있다. <개정 2009. 12. 29., 2020. 10. 20.>


감염병 위기대응 매뉴얼을 참고하여 독감 예방 안내문을 만들어 e 알리미로 보냈다.

독감(인플루엔자) 예방 가정통신문


다른 학교도 사용할 수 있게 지역 보건교사회 오픈 채팅방에 가정통신문을 올렸다. A형 독감이 유행 중이라는 댓글들이 올라왔다. 독감바이러스가 우리 학교뿐만 아니라 이미 다른 학교도 강타한 상황이었다.


보건교사는 끝없이 감염병 의심 환자를 본다. 점점 감염병이 유행하면 걸릴까 봐 무섭다. 면역력 떨어지지 않게 잘 먹어야 한다. 보건실 환기와 청소도 자주 해야 한다. KF94 마스크도 꼭 써야 하고 손도 잘 씻어야 한다. 잠도 빨리 자야 한다.


발열환자를 엄청나게 봤다. 몸이 무거웠다. 열만 안 나면 괜찮다.




독감의 등교중지기간은 해열제 복용 없이 정상체온 회복 후 24시간이 경과할 때까지다. 일반적으로 5일 정도 소요 된다. 그런데 등교중지 기간을 잘 지키지 않는 보호자도 있다. 어떤 보호자는 해열제 복용한 상태에서 열나지 않는다고 무조건 등교시키기도 했다. 정확히 해열제 복용 없이 정상체온이 회복된 후 24시간을 경과해야 하는데 그 해석이 어려운가 보다. 저학년은 학생을 돌볼 사람이 없어서, 고학년은 학생이 집에서 핸드폰 게임하고 노는 꼴을 보지 못해 등교시키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학생들 중에는 독감에 걸린 경우 학교는 안 가도 학원은 가기도 한다. 고학년은 학원 가서 친구에게 바이러스를 선물로 준다.


저경력 선생님이 아침 일찍 흥분되어 전화했다.

"선생님, 우리 반에 독감 3명 포함 결석생이 7명인데 우리 반 땡땡이가 등교했어요. 물어보니 해열제를 먹었다는데 기침하고 그래요. 어떻게 하죠? 다른 애들은 다 독감이고 열나면 등교 안 하는데. 땡땡이 어머니께서 이렇게 규칙을 깨버리면 안 되는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선생님, 땡땡이 마스크 잘 쓰게 하고 다른 학생들도 마스크 쓰게 하게요. 다만 마스크 착용을 권장만 하세요. 절대 강요는 안됩니다. 또 마스크 쓰라고 강요했다고 보호자들이 민원 넣으면 골치 아프잖아요. 보호자가 보낸다는데 어쩌겠어요. 보호자도 일정을 빼기가 많이 힘드나 보네요. 대신 땡땡이 힘들어하면 보건실로 보내세요."

"다 같이 지키면 좋은데. 네 알겠습니다."

"어쩔 수 없죠. 고생하세요."


1학년 학생이 39도로 힘들어했다. 해열제를 먹였다. 담임교사에게 보호자에게 연락하여 하교조치를 시키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쪽지를 보냈다. 잠시 후 담임교사의 전화가 왔다.

"선생님, 어쩌죠? 보호자가 지금 데리러 못 온데요. 아이만 혼자 집에 있어야 하나 봐요."

"네. 선생님. 그럼 점심시간에 쪽지 주시면 학생 교실로 보내겠습니다. 그런데 보호자분에게 학교에 독감이 유행 중이니 오후에는 병원 진료받을 수 있게 안내부탁드립니다."

"선생님, 저희 반도 오늘 두어 명 안 나왔는데 점심 먹으면서 아이가 마스크 벗으면 또 옆에 있는 학생들에게 전염될 수도 있는데 걱정이네요."

" 어쩔 수 없죠? 못 데리고 가겠다는데 어쩌겠어요."

"그러게요. 죄송해요. 선생님."

"괜찮습니다."

학생은 끙끙 앓았다.


3학년 땡 반에 계속 독감이 사그라들지 않았다. 그 반은 특이하게 독감에 걸렸다는 학생이 하루만 쉬고 등교하는 특이한 반이었다. 오늘 열나서 독감진단받고 바로 열이 떨어져 이틀 만에 등교하는 것이 의학적으로 가능한가? 내가 이 반 사정을 옆 보건 선생님께 말했다. 그러자 옆 보건 선생님이

" 나 힘들다고 독감 걸린 애 학교 보내면 다른 학생에게 피해 주는 건데 보호자도 상황이 힘드니 어쩌겠어요. 담임 선생님이 야무지게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해야 하는데 담임 선생님도 맘이 약해 매몰차지 못하잖아요."

"맞아요. 보호자가 보내겠다는데 담임선생님이 어쩌겠어요? 그들도 보호자한테는 약자잖아요."

"언제부턴가 보호자가 학교 내 최고 권력자예요."

"그러게요."


독감이 유행으로 아픈 학생들도 불쌍하고, 자녀 옆이 있을 수 없는 보호자도 불쌍하고, 하루 종일 바쁜 나도 불쌍하고 모두가 독감 앞에서는 불쌍한 존재다.

1학기 방학 전에는 코로나가 유행이더니 2학기 방학 전에는 독감이 유행이다. 감염병이 유행해야 방학이 시작되나 보다.



"진짜 5학년 땡반 선생님 왜 그런데요?

"저경력 교사도 아니고 미치겠어요. 자기 반 결석생이 여덟 명이고 그중 독감이 네 명이면, 교실에서 열 재고 열 있는 학생만 보건실로 보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오늘 무작정 자기 반 학생들을 일곱 명이나 보건실에 보내는 것 있죠? 학생들이 독감이 퍼지니까 무서워하면 담임교사가 중심을 잡고 애들을 진정시켜야 하는 것 아닌가요? 교실에 체온계는 왜 있는 거예요? 전시품도 아니고. 이런 경우 사용하라고 있는 거잖아요. 저 오늘 그 선생님 때문에 완전 열받았어요. 낼도 그럴까 봐 무섭네요."

기간제 보건선생님이 오랜만에 불만을 토로했다. 나는

"선생님, 저도 마찬가지예요. 3학년 땡반도 그래요. 어제 연속으로 여섯 명이나 보냈더라고요. 열도 나지 않는데요. 담임 선생님들은 보건실에 학생을 보내면 우리가 열만 재는 줄 아나 봐요. 내과적 질환 학생 한 명 볼 때마다 얼마나 많은 문진들이 오고 가는지도 모르고, 학생들 볼 때마다 우리가 얼마나 긴장하는지 모른다니까요. 자기 반 학생 말고 다른 학생들도 많은데 정말 무작정 보내면 한 번씩 확 올라온다니까요. 담임 선생님께서 한 번 거르고 보건실로 보내야 하는데 말이에요. 그런데 담임교사가 그렇게 보내겠다는데 어떻게 하겠어요. 그렇다고 보내지 말라고 말할 수도 없잖아요. 우리 일이 해도 티 안 나고, 안 하면 티 나고 그러잖아요."

"한 반에 일곱 명씩 보건실에 보내면 보건실에 오는 학생이 하루 삼백 명이 넘잖아요. 너무해요."

"맞아요. 근데 저번에 모임에서 친한 초등샘이 그러는 더라고 요. 학생들은 보건선생님이 괜찮다고 해야 진정된데요. 그리고 아픈데 보건실 안 보내면 보호자들이 보건실도 안 보냈다고 민원 넣는다던데요. 그래서 담임선생님들도 할 수 없이 보내는 경우 많데요. 우리가 이해해요."

"보호자들이 왜 그럴까요? 담임선생님들이 어련히 알아서 하겠잖아요. 그건 보호자가 담임을 신뢰하지 못하는 거예요."

"애들이 귀하잖아요. 모두들 금이야, 옥이야 하면서 키우잖아요. 담임 선생님들도 짠해요."

"선생님. 오늘 1학년 땡땡이 엄마한테 전화해 주라고 해서 전화해 줬더니 자기는 괜찮다고천천히 끝내고 데리러 오라고 하더라고요. 기특하죠. 근데 선생님 저는 속 깊은 땡땡이 때문에 오늘 바쁜데 더 바빴어요. 엄마한테 전화해 줄라, 약 먹일라, 침대에 눕혀놓고 체온 재느라, 급식시간에 맞춰 급식실 보내느라 엄청 바빴네요. 근데 엄마한테 천천히 오라고 하더라고요. 웃어야 하나요? 그래도 귀엽기는 하더라고요. 땡땡이 같은 학생들 보면 힘들다가도 또 힘나고 그래요. 우리가."

"그러죠. 선생님, 6학년 땡땡이를 중간놀이 시간에 와서 어제 동생 잘 돌봤다고 자랑하던데요. 너무 대견해서 하리보 세 개 줬어요. 동생들 하나씩 주고 땡땡이도 하나 먹으라고요. 땡땡이 진짜 잘 컸어요."

"그 애는 요즘 애들 같지 않아요."

"맞아요. 엄마가 힘든 환경에서 잘 키웠어요. 집만 좀 넉넉하면 좋을 텐데."



"선생님, 1학년 학생이 힘내라고 젤리주더라고요. 귀엽죠."

"아이고, 어른보다 낫네요. 오늘 땡땡이 엄마, 땡땡이 데리러 와서 고맙다는 말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데 인사도 안 하데요."

"선생님, 요즘 보호자들은 뭐가 그렇게 잘 났는지 몰라요. 우리를 선생으로 보는 건지, 자기의 하수인으로 보는 건지. 제 쪽도 오늘 인사 안 한 보호자 있었어요."

"우리가 독감 바이러스를 뿌린 것도 아니고 자기 자식 돌봐 주는데 왜 그런지 몰라요. 진짜 학생들이 뭘 보고 배울까요? 인사를 받고 싶은 건 아니지만 인간사가 그런 게 아니잖아요? 진짜 조그만 걸로 너무 섭섭하더라고요."

"그러니까요."

"선생님, 오늘 보건교사회 단톡방에 우리 수당 일만 원 오른다고 올라왔어요. 단톡방에서 샘들이 난리예요. 삼만 원이 22년 갔으니까 이제 일만 원 인상하고 30년은 인상 안 해준다고요. 톡 확인하고 일 할 맛이 뚝 떨어지더라고요."

"진짜요?"

"네. 인자 우리 사만 원짜리 보건교사예요. 독감도 인자 퍼지기 시작했는데. 우리 힘내야 하는데 김 빠져서 어떻게 해요?

"그러니까요."

"퇴근시간 넘었네요. 어서 퇴근해요."

"네."

차라리 올려주지 말지? 맘껏 비난이라도 하게.


독감 바이러스는 2주 후에 학교에서 사라지고 말 것이다. 왜냐면 곧 방학이니까. 곧 모두 다 등교중지다. 힘내자. 힘 빠지면 독감 걸린다. 면역력을 높이려면 웃어야지. 하하하 호호호 히히히 흑흑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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