짠하다.
구구단은 못 외워도 급식메뉴는 외우는 학생들. 참 신기하다. 우리 학교 학생들은 식생활관을 학교이름을 붙여 땡땡맛집이라 부른다. 학교 급식은 학교구성원 모두의 관심사다. 반면 급식을 책임지는 영양교사에 대한 관심은 그다지 없다.
영양 선생님은 우리 학교에 전입 온 1년 차였다. 3월만 해도 활기가 넘쳤었다. 학교에서 늦게까지 보건업무를 하던 3월 우연히 교내 메신저를 봤다. 영양선생님과 내 메신저만 켜져 있었다.
3월의 토요일마다 4주간 시간 외 근무를 해야만 했다. 모든 교사에게 3월은 지독한 달이다. 나는 세워야 할 교육계획만 여섯일곱 개는 되었다. 그날도 영양선생님의 메신저가 켜져 있었다. 함께 커피 한 잔 하자고 메신저를 보냈다.
영양 선생님께서 보건실에 오셨다. 전임지가 소규모 학교였단다. 갑자기 대규모 학교에서 일하니 머리가 어질어질하고 감이 잡히지 않는다고 했다. 모시고 있는 조리 종사원들도 열명이 넘는다고 했다. 조리법이 조금만 복잡해도 전처리 과정이 조금만 많아도 여기저기에서 아우성이라며 너무 힘들다고 했다.
영양선생님은 인사 내신을 낼 때 학교가 집과 가깝다는 이유로 우리 학교를 희망했다고 했다. 아무래도 인사 내신 쓸 때 잠시 미쳐서 이 학교를 지원한 것 같다며 후회하셨다. 나도 집하고 가까워서 이 학교에 왔다. 우리는 우리 학교는 무슨 복이 있어서 신규들만 가는 대규모 학교에 우리처럼 숙련자들이 오게 되었냐며 자화자찬하며 웃었다.
나는 학교는 좀 어떠냐고 물었다. 영양선생님은 업무가 너무 많아 3월 내내 끝없이 매일 초과근무하고 집에 일을 싸간다고 했다. 이렇게 큰 학교에 사무 보조원이라도 있어야 되지 않냐고 교육청에 민원 넣으라고 했다. 영양선생님께서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교육청 급식담당에 장학사도 없거니와 영양교사가 한 명과 행정 주무관들이 업무 지원을 하다 보니 실무자의 고충을 전혀 모른다고 했다. 보건, 영양, 상담 등 비교과가 모두 그렇다. 전문 영역인데 이상하게 현장경험 없는 주무관이나 초등교사 출신의 행정가들이 교육청에서 이 업무를 담당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니 현장 배려 없는 정책들이 끊임없이 만들어진다. 그래도 보건교사는 다른 비교과 교사보다 낫다. 교육청에 장학사나 장학관이 한 두 명 있으니까. 영양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교육 지원청에서 하는 일들이 장학의 형태가 아닌 감사나 적발을 하기 위한 행정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양 선생님의 신세한탄에 짠한 마음*이 들었다. 내가 도울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다만 힘내라고, 우리 학교는 관리자가 다른 학교처럼 상가시게 하지 않는다는 말 이외에 해 줄 말이 없었다.
영양선생님은 그렇게 3월, 4월, 5월을 넘기면서 생기를 잃고 있었다. 처음 전근 왔을 때의 활기참은 점점 사라졌다. 3월 말인가 4월 초 정도로 기억한다. 관리자들과 비교과 간담회가 있었다. 간담회가 2시 예정이었으나 나랑 기간제 보건선생님은 교내 응급환자가 생겨 뒤처리하느라 늦게 참석했다. 상담교사가 자신의 고충을 말하고 마무리가 되어가는 시점이었다. 관리자가 보건선생님도 업무고충이 있냐고 물었다. 우리는 없다고 했다. 이런 자리에서 업무고충을 말해봤자 일만 더 복잡해지고 해결되는 게 없다는 걸 나는 잘 알고 있다. 관리자가 초등교사 출신이라 백 번 천 번 말해도 절대 이 영역을 이해 못 한다. 물론 지금의 우리 학교 관리자들은 현명해서 이해하려는 노력은 하신다. 그러지 않은 관리자도 많다. 무작정 너희는 비교과 교사이니 행정업무도 많이 해야 하고 담임교사보다는 편하지 않냐는 식이 대부분이다.
영양 선생님 차례였다. 소규모 학교에 있다가 큰 학교에 오니 적응이 안 된다는 말했다. 행정실과 업무 갈등으로 너무 힘들다고 토로했다. 관리자들은 난감해했다. 행정실과의 업무갈등에서 그들은 해결점을 찾지 못했다. 지금까지 봐 온 많은 관리자들은 행정실과의 업무 갈등에서 "행정실이 업무가 너무 많습니다."라는 말로 바쁘지 않은 비교과는 그냥 업무를 해라는 식이었다. 그러나 우리 관리자는 그런 말씀은 다행히 하지 않았다. 그런 말을 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우리 학교 관리자는 정말 좋은 분들이라 생각한다. 그들은 상황이 이런데 학교가 도와줄 수 있는 게 없다는 말을 하며 영양 선생님께 미안해했다. 나는 관리자에게 "영양선생님께서 그렇게 힘들다면 사무보조원이라도 학교에서 채용하면 안 되나요?"라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관리자는 그런 규정이 없어 불가하다고 했다. 규정이 없으면 교육청에 건의하고 만들면 되지 않을까? 만약 자신들이 그 입장이라면 규정에 없다고 손을 놓았을까? 그렇게 아무런 대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간담회는 끝났다.
6월에 발가락이 골절되어 병가 중인데 영양 선생님께서
-보건샘, 발가락은 좀 어때요?
-그냥 그럽니다. 선생님은 요즘 어떤가요?
-아이고 말도 마세요. 교통사고 났는데 진단 2주 나왔었요.
-그럼 2주 쉬었어요?
-아니요. 학교에 일이 많아 이틀밖에 못 쉬었어요. 우리 일이 남이 못해주는 일이라서요. 제가 안 하면 그 누구도 못 해요.
-으메. 그래도 쉬워야 할 텐데.
-어쩔 수 없죠.
-선생님도 안 계시고 맘 둘 곳이 없네요.
-아이고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세요.
-선생님, 잘 쉬시고 병가 끝나면 봬요.
-네. 전화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생각해 보니 지금까지 학교에 근무하면서 영양 선생님들이 쉬는 걸 보지 못했다. 밖에서 보기에는 조리종사원이 다 조리하고 영양선생님들은 식단만 짜면 될 것 같은데 무슨 업무가 그리 많은지 모르겠다. 모든 학교의 영양교사들의 교내 메신저는 언제나 학교에서 가장 오랫동안 켜져 있다. 교통사고로 2주 진단받고 이틀밖에 못 쉬었다니. 짠하다. 정말 짠하다. 학교에서 정말 영양선생님들의 고생이 많은데 그들은 왜 그에 대한 적절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는 걸까? 오히려 영양사가 로비해서 교사 되었다고, 행정실 직원이 교사 되었다고, 어떻게 영양교사가 교사냐고, 어떤 관리자는 교사로 인정 못한다는 의도로 영양교사가 영양교사라고 불러주라고 당부했는데도 끝까지 영양사라고 부르기도 했다. 영양교사들이 무슨 잘못이 있다고 그들을 비난하는가. 당장 영양교사가 없으면 많은 이들이 자녀 먹거리로 고생해야 한다.
9월 개학하고 영양 선생님이 근무 중에 보건실에 오셨다.
-선생님 잘 지내시죠? 제가 발가락 다쳐서 급식실에 못 가고 요즘 점심 싸 오고 있어요. 오랜만에 뵙네요.
-네. 선생님
-커피 한 잔 하고 가세요.
라고 말하고 카누 커피를 한 잔 드렸다.
-선생님 이제 좀 적응이 되셨나요?
-아니요. 갈수록 힘드네요. 어제도 저 늦게까지 일했어요.
-시간 외 근무는 내시고 하시죠?
-아니요. 이 학교 오고 날마다 늦게까지 일하잖아요. 날마다 시간 외 쓰면 능력 없는 사람처럼 보일까 봐 그냥 일하는 날이 더 많아요..
-선생님, 여기 관리자분들 그런 걸로 뭐라고 안 하세요. 오히려 더 시간 외 쓰라고 하세요. 그래도 괜찮은 분들이에요. 정말 좋은 분들입니다. 이런 분들 만나기 쉽지 않아요.
그렇다. 우리 학교 관리자들은 정말 좋은 분들이다. 이런 분들을 관리자로 만난 건 그나마 행운이다. 절대 비교과 교사라고 무시하거나 함부로 대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이 학교가 크지만 비교과 교사들이 맘 편하게 일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몸이 힘든데 관리자가 마음까지 힘들면 이렇게 큰 학교에서 비교과 교사는 살아남을 수 없다. 생각보다 비교과 교사라고 대놓고 무시하고 힘들게 하는 관리자들 많다. 6 학급의 비교과교사와 50 학급이 넘는 학교의 비교과 교사의 업무량은 하늘과 땅차이다.
영양선생님께서는
-선생님 저는 요즘 제가 능력 없는 인간처럼 느껴질 때가 있어요. 이렇게 오래 일했는데 일을 탁탁 쳐내지 못하는지 모르겠어요.
-선생님, 학교가 커서 그래요. 저도 기간제샘 없이 혼자 근무했다면 이미 다른 학교로 희망내신 내서 나갔을 거예요. 선생님께서 능력이 없어서 일을 못 쳐내는 것이 아니라 일이 많아서 그러는 겁니다. 이건 구조적 문제이지 선생님의 문제가 아닙니다. 자책 마세요.
-근데 저는 제가 무능한 것 같은 생각이 드네요.
-선생님, 곧 적응될 거예요. 적응해서 내년에는 저랑 웃으면서 이야기할 거예요.
라고 말했다. 나는 영양선생님이 짠하게 보였다.
- 종사원들은 좀 어떤가요?
- 종사원이 10명이 넘잖아요. 아이들 대하는 것과 어른 대하는 것이 얼마나 다른지 선생님은 모르실 거예요. 여기 종사원들이 다른 곳의 종사원보다는 좋기는 해요. 각자 자기 일도 잘하고 사이도 좋고요. 그런데 간혹 각자의 개성이 있으니 다툼이 있는 날도 한 번씩은 있습니다. 그럴 때는 또 중재해야 하잖아요. 종사자가 적으면 아무래도 중재할 일도 적은데 저는 워낙 종사자가 많아서요. 그래도 이 정도는 괜찮습니다.
학교에 발령받고 정말 이해되지 않는 것이 있다. 성인을 관리하는 사람들은 다 수당이 있다. 교장은 교장수당, 행정실장은 행정실장 수당, 부장은 부장수당. 그런데 영양교사들은 많은 성인을 관리하는 관리자로 일하는데 고작 영양교사 수당은 3만 원 밖에 되지 않는다. 내가 지금까지 만난 모든 영양선생님들은 언제나 자신의 돈으로 학기마다 종사원들에게 식사를 대접하고 있었다. 또한 조리종사원들을 관리하느라 엄청 고생하는 이들도 봤다.
나는 10월과 11월 급식이 거의 끝날 시간인 2시 넘어 두어 번 영양교사실에 갔다. 갈 때마다 책상 위에 서류들이 난잡하게 놓여 있었다. 교사실 옆에 조리실에서는 식기들을 부딪치는 소리와 세척 소리가 끊임없이 들렸다.
-진짜 시끄럽네요. 어떻게 일하세요?
-하루이틀도 아니고 그러려니 해요. 일하다가도 식기들 부딪치고 내려놓는 소리에 깜짝깜짝 놀래요.
라고 말하면서 웃었다. 그런데 그 웃음이 슬프게 보였다.
-선생님, 햇빛이 좋아요. 좀 나가서 걸어요.
함께 교정을 좀 걸었다. 선생님은 발령받고 교정을 걸을 만큼의 여유를 부리는 날이 손에 꼽힌다고 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나도 좀 한가했다면 영양선생님을 챙겼겠지만 나도 큰 학교에 있다 보니 영양선생님까지 챙길 여유가 없었다. 선생님은 방학이 될 때 즈음에는 엄청 지쳐 보였다. 그렇게 영양선생님의 일 년이 흘렀다.
나는 올해 이 학교 3년 차다. 작년까지는 3월 토요일마다 출근해서 업무를 정리했지만 올해는 어느 정도 일이 익숙해졌기에 3월의 주말에 굳이 시간 외 근무를 할 필요가 없었다.
3월 말 교직원 문화체험의 날이었다. 2년 동안 제대로 문화체험을 나가지 못했다. 그런데 올해는 예쁜 벚꽃을 보며 동료 교사들과 바깥나들이를 즐기고 싶었다. 상담 선생님과 영양 선생님, 함께 근무하는 보건선생님께 이번만 눈 딱 감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교직원 문화체험을 가자고 제안했다. 상담선생님은 학생 상담을 미루기로 했다. 나는 교무실무사 선생님께 오늘은 부득이 보건실을 비우니 아픈 학생들이 보건교사들 찾거들랑 담임교사가 해결할 수 있게 해달라고 했다.
2시 우리는 옆 보건선생님의 차를 타고 학교를 벗어났다. 학교 근처 공원에서 벚꽃이 조금씩 피고 있었다. 영양선생님께 올해는 좀 어떠냐고 물었다. 여전히 시간 외 근무를 내지 않고 시간 외 근무를 많이 하고 계신다고 했다. 여전히 업무가 쌓이고 있다고 행정실과 경계가 모호한 업무들이 자기에게 넘어오고 있다고 했다. 방학으로 충전되어 다시 출근한 3월의 영양선생님은 파릇파릇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작년처럼 파김치가 되어갈 모습을 생각하니 애잔하게 느껴졌다.
나는 학교 내에서 관리자도들도 힘들고 행정실 직원들도 힘들다는 것을 잘 안다. 부장들도 힘들고 담임교사들도 힘들다는 걸 알고 있다. 그들이 힘들다는 것을 학교 안팎에서 모르는 이들이 없다. 그리고 많지는 않지만 그들은 십오만원 이상되는 수당도 받는다. 누구보다 영양교사들은 정말 힘들게 일하고 있다. 그들은 열약한 환경에서 많은 업무를 하고 있고 적절한 댓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많은 이들이 그들의 노고를 알아주면 좋겠다. 또 정책을 결정하는 이들이 하루빨리 영양교사들이 얼마나 힘든 환경에서 근무하고 있는지 알고 근무환경을 개선해 주면 좋겠다.
우리 학교 영양 선생님의 3월과 12월의 모습에 나는 가슴이 저린다. 다른 이들도 영양선생님의 모습을 나처럼 자세히 들여다보면 좋겠다. 교육현장에서 매일매일 고생하고 그에 대한 대접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영양선생님들. 하루빨리 그들의 근무환경과 그들을 대하는 사회의 부정적인 시선들이 개선되길 바란다.
영양 선생님 존경합니다. 수고 많으십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https://v.daum.net/v/20190727044202432
https://v.daum.net/v/202402060603482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