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퇴원하다
지난 금요일 오른쪽 새끼발가락이 골절되었다. 토요일에 발가락에 고정핀 2개를 X자로 박는 수술 후 드디어 입원 9일 만에 퇴원하게 되었다.
부스럭, 부스럭.
시계를 보지 않았도 알 수 있다. 지금은 4시 30분
예쁜이 할머니께서 기상하고 산책을 준비하는 소리다. 할머니 댁은 병원에서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이다. 할머니께서는 다섯 시가 되면 동네 친구분들을 만나 아파트 주변을 걸으신다. '늙으면 아침잠이 없어진다던데...' 나는 아직 늙지 않았나 보다. 늘 여덟 시 이십 분에 출근해서 그 이전에 집 밖을 나설 일이 없었다. 예쁜이 할머니께서는 다섯 시에 맞이하는 공기가 냄새가 좋다고 했다. 시간마다 공기 냄새가 다르다니 신기하다.. 나는 언제나 새벽시간의 공기냄새를 맛볼까? 발가락이 회복되면 꼭 새벽 다섯 시의 공기냄새를 맡아봐야지.
6시 15분. 예쁜이 할머니께서 산책을 끝내고 들어오셨다. 환자복으로 갈아입고 화장실에서 세수 한 뒤, 다시 침대에 눕는 소리가 들린다.
오늘은 리본머니 간호사가 아니라 젊은 간호사가 당직이다. 리본머리 간호사는 여섯 시, 젊은 간호사는 일곱 시에 혈압을 재고 주사를 놓는다. 병실불들도 빛을 내려고 간호사를 기다린다. 그런데 오늘은 나의 예상을 깨고 여섯 시 반에 젊은 간호사가 병실에 들어왔다.
나는 눈 비비고 손가락으로 머리를 빗어 넘긴 후, 목발을 짚고 화장실에 갔다. 주사에 얽매이기 전에 움직이는 게 편하다. 씻고 돌아오니 모두들 주사를 맞고 있었다. 나는 얼른 침상에 누웠다. 간호사가 "엉덩이 주사 2대 있습니다." 나는 익숙한 자세를 취했다. 알코올 냄새가 코 끝을 찔렀고, 엉덩이를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를 살리겠다고 주사약이 몸에 스며들면서 엉덩이에 아픔이 퍼졌다. 간호사가 고무줄로 왼쪽 팔을 묶더니 주삿바늘을 꽂으려고 팔을 두드린다. 주사를 놓을 혈관을 포착했는지 다시 알코올 냄새가 퍼졌다. 바늘이 들어가니 따끔했다. 주삿바늘이 날 공격하면 나는 눈을 꼭 감는다. 간호사는 오늘 피검사를 한다며 5cc의 혈액을 뽑았다. 그리고 링거를 꽂은 후 테이프로 고 정시 겼다. 나는 작게 말했다. "감사합니다."
6시 45분. 병원식당에서 아무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예쁜이 할머니께서 "어째 밥 하는 소리가 안 들리네."라고 말했다. 일곱 시, 드디어 식당이 움직이는지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병실의 텔레비전도 소리를 내며 하루를 시작했다.
7시 45분. 항생제 때문인지 속이 메스꺼웠다. 7시 50분. 식사를 하고 이를 닦고 다시 침상에 누웠다.
3일 전에 들어오신 70대의 감수성 할머니. 그분의 전화벨이 울렸다. 들으려고 한 건 아닌데 시아재가 돌아가셨다는 이야기였다. 할머니께서는 자식에게 전화해 "큰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한다. 장례식장에 꼭 가거라."라고 말했다. 시아재가 요양원에 들어간 지 8년 만에 돌아가셨다고 했다. 그간 시아재 자녀들도 고생했지만 요양원에서 본인은 또 얼마나 고생했겠냐며 눈물을 찔끔거렸다. 그때 클레오파트라 아줌마가 "아프면 본인도 고생, 가족도 고생이랑게요."라고 했다. 죽는 게 맘대로 되는 건 아니지만 혹시 죽게 된다면 일주일만 아프고 잠자 듯 나도 모르게 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환자가 되어보니, 아픈 게 죄처럼 느껴졌다. 만약 똥, 오줌도 가리지 못했다면 나는 더더더더 죄인이 되었을 것이다. 발가락 다 낫고 다시 학교에 가게 된다면 아픈 학생들의 마음을 조금은 더 잘 헤아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어젯밤 11시가 넘도록 텔레비전이 켜져 있었다. 내 옆침상에 새로 입원한 환자는 친구들과 제주도 여행 가서 문지방에 발가락이 걸려 골절되었다고 했다. 아들과 딸이 서울에서 오느라 늦게 병문안을 왔었다. 그래서일까? 나는 갑자기 피곤함이 몰려와 잠들어 버렸다.
8시 30분 물리치료사가 오늘은 퇴원하니 9시까지 냉각치료를 받으러 오라고 했다. 8시 45분 의사가 회진하러 왔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상태를 묻고, 오늘 피검사와 x선 촬영 후 퇴원여부를 결정한다고 했다.
9시. 물리치료를 받으러 갔다. 여러 명의 물리치료사들이 환자들을 돌보는 사이, 비좁은 침대사이를 목발로 짚고 지나가 냉각치료를 5분 받았다. 치료를 마친 뒤 x선 촬영을 하려고 대기실에서 기다렸다. 대기실에 30명 즈음되는 환자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환자들의 대부분이 60대 이상으로 보였다. '나이가 들면 아프게 되는 걸까?' 갑자기 서러움이 몰려왔다. 근골격계 만성질환이 이렇게 많은데 의대정원 확대에 반대하며 파업하면 어쩌지. 이 많은 대기 환자들을 본다면 파업할 수 없을 텐데. 의사가 진짜 많이 필요한 상황인데 왜 의사들은 의대 정원 확대를 반대하는 걸까? 온 국민을 간호사로 만들려고 간호대학은 사방팔방에 만들면서 말이다. 의사협회는 정말 대단한 이익집단 같다.
X선 촬영을 하러 갔다. 20대로 보이는 방사선사가 붕대를 풀라고 했다. 시키는 대로 붕대를 풀고 자세를 잡아 x선을 찍었다. 촬영을 마치고 방사선사는 바쁘다며 밖에서 붕대를 감으라고 했다. 주섬주섬 붕대, 부목, 털붕대, 뒤꿈치 보호대를 왼손으로 잡고 겨우 왼손과 오른손으로 목발을 짚었다. 방사선사는 목발 짚고 걸어본 적이 없었나 보다. 목발 짚은 환자가 이렇게 많은 부속품을 혼자 들고나갈 수 있으리라 생각한 것을 보면 말이다. 방사선실에서 나와 환자 대기의자에 앉아 아픈 다리를 의자 위로 올리고 주섬주섬 붕대를 대강 감았다.
진료실에서 이름을 불러 진료실에 들어갔다. 의사는 처음 찍은 x선 과 오늘 찍은 ×선을 보여주고 수술이 잘 되었다고 했다. 오늘 퇴원하고 화요일에는 수술부위 소독을 하고, 금요일에는 엑스레이를 찍어 뼈가 잘 붙고 있는지 보자고 했다. 소독실에 가서 소독하라고 했다.
소독실에는 남자 간호사가 계셨다. 내가 감은 엉성한 붕대를 풀고 발가락을 포타딘으로 소독했다. 소독이 끝나고 언제나처럼 솜붕대로 감고 발뒤꿈치에 분홍색 쿠션을 덧 댄 후 탄력붕대를 감았다. 간호사는 수술부위에 물이 들어가지 않게 조심하라고 했다. 주말 동안 물이 들어가면 응급실에 가서 소독하라고 했다. 감사 인사를 조용히 전했다.
원무과에 갔다. 이름을 말하자 아직 정산이 안 되었다며 병실에 가서 기다리면 연락 주겠다고 했다. 그 사이 작은 아이가 병원에 도착했다. 작은 아이의 손을 빌려 사물함을 정리했다. 침대의 시트를 걷고, 화장실에서 가서 변기에 앉아 입원할 때 입고 온 옷을 입었다. 환자복은 벗었지만 여전히 발가락은 그대로라는 사실이 퇴원의 즐거움을 반쯤 빼앗았다. 원무과에서 정산이 다 되었다고 전화가 와서 작은 아이가 내려가서 병원비를 계산했다. 진료비는 2,686,290원 중 환자부담금은 1,535,200원이었다. 이 중 비급여 선택진료료 이외가 1,094,800이었다.
내가 병실을 나가기 전에 다른 분들은 모두 물리치료 가시고 예쁜이 할머니만 누워서 링거를 맞고 계셨다. 목발을 짚고 예쁜이 할머니에게 가서 "어르신 빨리 나으시고 건강하세요."라고 말씀드렸다. 할머니께서도 "아줌마도 건강하게 잘 지내소."라고 하셨다. 305호 병실과 그렇게 조용히 작별을 고했다.
병원에 있을 땐 몰랐는데 밖에 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있었다. 빗소리가 시원하게 들렸다. 병원을 떠나 집으로 간다고 생각하니 내 마음도 시원했다. 남편은 운전석에서 조용히 운전을 했다. 큰 아이와 작은 아이는 퇴원을 축하한다며 미리 준비한 꽃다발을 주었다. 큰 아이가 대학에서 장학금을 받았다며 점심을 산다고 했다. 하지만 비가 와서 수술부위가 젖을까 봐 걱정되어 집에서 간단히 시켜 먹기로 했다.
65도 정도 꺾인 발가락에 핀을 박아 제 자리로 되돌린 의술이 참 대단하다. 내 발을 제 위치로 돌려준 의사, 간호사, 물리치료사, 방사선사, 원무과 직원, 같은 병실 환자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 가족에게 마음속으로 감사인사를 했다.
"감사합니다. 덕분에 병원에서 9일 동안 잘 지내다 이제 이렇게 새 집에 첫 발을 디딥니다. 그리고 그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장밀 병원을 떠나 이사 간 집에 첫 발을 디뎠다.
*작년 이야기를 마무리하고 싶어 다시 발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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