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실 공백 해소를 위한 구조적 변화가 요구된다
모두의 광장에 올라온 '보건실 공백해소로 학교 어린이 안전공백을 해소해 주세요.'라는 보건교사 노조의 의견에 깊이 공감한다. 그러나 그 해결 방안으로 보건교사의 교실 보건수업을 중단하게 해 달라는 요구에 대해서는 매우 유감을 표한다. 보건실의 공백을 줄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교실에서 이루어지는 보건교육을 포기하게 된다면 더 많은 학생들이 보이지 않는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
보건교육은 건강의 이해와 질병예방, 생활 속의 건강한 선택, 안전과 응급처치, 건강 자원과 사회문화 부분으로 나누어 이루어지고 있다. 이 교육은 단지 이론 전달이 아닌, 아이들의 생명을 지키는 실질적인 힘이 되기도 한다.
한 번은 학생이 교실에서 사탕이 목에 걸리는 응급상황이 있었다. 옆에 있던 친구가 보건수업 시간에 배운 하임리히법을 기억해 즉시 응급처치를 시행했고, 그 덕분에 큰 사고를 막을 수 있었다. 만약 그 친구가 그런 교육을 받지 않았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또, 다섯 명의 학생이 폭염으로 어지럽다며 보건실을 찾았다. 체온을 측정하니 37.9도. 물을 마시게 하고 시원한 곳에서 쉬도록 했더니 20분 후 상태가 호전되었다. 아이들에게 무더운 날씨에 바깥활동을 줄여야 한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이 학생들이 미리 폭염에 대처하는 방법을 배웠다면 보건실까지 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감기에 대한 교육도 마찬가지다. “감기는 대개 바이러스 감염으로, 특별한 치료 없이도 5~7일 정도 지나면 자연스럽게 낫는다”는 내용을 가르쳤을 때, 많은 학생들이 놀라워했다. 대부분은 감기에 걸리면 반드시 약을 먹어야 하는 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 사실을 보호자까지 알고 있었다면, 불필요한 약 복용과 의료비도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보건교사는 학교 학생들의 건강문제를 잘 알고 있다. 그래서 학생들에게 어떤 주제의 보건교육이 필요한지 파악하고, 학생들의 수준과 학교 상황에 맞는 교육을 기획할 수 있다. 외부강사가 하는 일회성 교육은 학생들을 이해하지 못해 이벤트성으로 흐르기 쉽고,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교육임에도 눈높이를 맞추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흡연예방 교육이 지나치게 공포 위주로 구성되어 아이들에게 불안을 심어주거나, 성폭력 예방교육이 오히려 왜곡된 성 인식을 전달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보건교사가 직접 교실에서 수업을 하면, 학생들과 상호작용을 통해 학생을 더 잘 이해하게 되고, 교사 자신의 전문성도 자연스럽게 성장한다.
보건교사 1인 배치교에 있을 때, 내가 보건수업하는 동안에는 담임교사가 보건실을 지키며 간단한 응급처치를 도왔다. 만약 처치가 어렵거나 판단이 필요한 경우, 수업 중인 나를 호출하는 일이 있었지만 그 빈도는 매우 적었다.
때로는 보건수업이 예정되어 있는데 학생이 크게 다쳐 119를 불러야 하는 상황도 있었다. 그런 경우에는 담임교사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수업 일정을 조정했다.
쉬는 시간에 아픈 학생들을 처치하다가 보건수업에 늦기도 했고, 다음 쉬는 시간에 오라고 안내한 적도 있다.
보건실을 자주 찾는 학생들은 대체로 정해져 있다. 실제로 나도 초중고 12년 동안 보건실에 가본 적이 없다. 많은 아이들이 그렇다. 보건실이라는 공간 자체에 익숙하지 않거나, 아파도 참고 수업에 참여하는 경우도 많다. 즉, 보건실에 오지 않는 아이들도 보건교육을 받을 기회를 주어야 한다.
초등학교 시기의 보건교육은 평생의 건강습관을 형성하는데 중요한 기반이 된다. 이 시기를 놓치면, 이후 중고등학교에서 보건교육 기회는 급격히 줄어든다. 입시위주의 교육환경에서 보건교육은 후순위로 밀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지금 우리 사회는 흡연, 음주, 성범죄, 안전사고, 정신건강 등 수많은 문제를 겪고 있고, 이로 인한 사회적 비용도 막대하다. 그렇기에 예방 중심의 보건교육이야말로 아이들의 건강과 안전을 지키는 핵심 수단이다.
보건실 공백은 단지 보건수업 때문만은 아니다. 보건교사의 출장, 연가, 휴가, 점심시간, 교내 각종회의로도 보건실은 비게 된다. 그런데도 이 공백을 모두 한 사람이 메우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이제는 구조적 변화를 요구해야 한다.
2021년 교육부 고시에 의해 36 학급 이상 학교에만 보건교사를 2인 배치하고 있다. 그러나 이 기준은 너무 높다. 학급수가 20 학급만 되어도 학생수는 500명을 넘고, 보건교사 1인이 이 모든 학생의 건강과 안전을 책임지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더군다나 이 기준은 법령이 아닌 행정지침에 따른 권고이기 때문에, 시도교육청 여건에 따라 2인 배치가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도 있다.
이제는 법 개정을 통해 보건교사 2인배치 기준을 '20 학급 이상'으로 낮춰야 한다. 그래야만 보건수업과 응급처치를 모두 책임질 수 있는 현실적인 인력 구조가 갖추어지게 된다.
아이들의 건강을 지키는 것은 보건실 안에서의 응급처치만으로는 부족하다. 건강한 생활습관을 기르고 위기 상황에 대해 스스로 대처할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교육이 반드시 함께 가야 한다. 보건수업을 중단해서 보건실 공백을 메우겠다는 접근은 더 큰 교육공백과 건강위험을 낳을 수 있다.
아이들의 진정한 안전을 위한다면, 보건교사가 수업도 하고 응급처치도 할 수 있는 인력 구조와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그 시작은 보건교사 2인 배치 확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