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삿날 발가락 골절 환자, 드디어 새집에 발을 딛다

집이 좋다

by 민들레

"새집 보러 가는 날 아파트 앞에서 넘어져서 무릎에 멍이 들었었어요. 또 전 주인이 잔금을 치르기 전까지 문을 열어주지 않아 청소도 미리 못했어요. 그리고 이렇게 발가락까지 골절되니까 마음이 좀 찝찝해요."

나는 같은 병실 환자들에게 발가락이 다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이 말을 듣던 이쁜이 할머닌 이렇게 말했다.

"아무래도 집에 수맥이 흐르는 것 같네. 이럴 때는 달마도 그림을 집에 걸어서 액을 막아야 해." 나는 그 말을 듣고 혹했다. 할머니는 내 마음을 들여다본 것처럼 말했다.

"우리 아저씨가 달마도 그림 그려서 절에 팔아. 그럼 스님이 자기가 그린 것처럼 해서 신도들한테 팔아. 애기 엄마도 하나 사. 내가 싸게 줄게."

라고 말하고 핸드폰에 있는 달마도 그림을 보여줬다. 일반인인 내가 보기에도 잘 그린 그림이 틀림없었다. 나는 물었다.

" 얼만가요?"

할머닌 대답했다.

"내가 애기 엄마한테 오만 원에 줄게."

달마도 그림을 사는 것은 괜찮은데 남편과 상의해야 했다. 왜냐면 집에 걸어두어야 하니까. 남편은 내 이야기를 듣더니 웃으면서 말했다.

"이 사람아, 당신 참 귀 얇아. 사기꾼한테 당하기 좋아. 그런 미신 믿지 마."

맞다. 나는 귀가 얇다. 그래서 남편의 사탕발림에 넘어가 이렇게 이십 년간 살고 있다.

이삿날 잠깐 부러진 발가락을 하고 집에 갔을 때 이삿짐 나르던 사촌오빠가 말했었다.

" 액땜했다고 생각해."

나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그래, 액땜한 거야. 크게 액땜했으니까 나는 여기서 이제부터는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거야.'


2018년 5월부터- 2024년 5월 30일까지 우리는 전세를 살았다. 대출을 한다면 충분히 분양 아파트를 피를 주고 살 수 있었지만 피값이 아깝다는 이유로 분양권이 당첨되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결국 분양권은 당첨되지 않았다. 누군가는 피를 주고 아파트를 사라고 했다. 나는 피값이 아까웠다. 한 달 일해서 얼마나 번다고. 지금 생각하면 그때 피 주고 살 걸. 후회스럽다.


남편도 나도 근무지가 고향이 아니다. 우리는 언제가 퇴직하고 고향으로 내려갈 생각이었다. 그래서 빚까지 내서 집을 살 생각은 하지 못했다. 전세 살면서 내 집이 아니기에 못 하나 맘대로 박지 못했다. 반려묘는 이사 시 특수청소라는 특약사항을 계약서에 명시하고 데려갔다. 전셋집에서 나갈 때마다 주인들은 '벽지가 훼손되었다.', '벽이 무너졌다.', '안방키가 없어졌다.' 등의 갖은 이유를 댔다. 그리고 전세금 반환시 일이백을 제했다. 돈 많다고 자랑하더니 그 자랑이 무색했다.


전셋집은 언젠가 곧 떠나야 하는 집이기에 온 정을 주면 안 된다는 사실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결국 언제나 이사 갈 때 즈음엔 고은 정, 미운 정 다 들어 그 집과 헤어지는 것이 쉽지 않았다. 생각해 보면 어떤 공간에서 산다는 것은 숨만 쉬는 것이 아니다. 그 공간에 추억을 쌓는 것이다. 우리 네 식구가 살았던 집에는 언제나 우리 네 식구의 추억이 차곡차곡 쌓였었고, 내 집이 아니기에 언제나 아쉬운 이별을 해야만 했다. 누구나 자기가 살던 동네를 그리워하는 이유는, 결국 그곳에 추억이 덧붙여지기 때문이었다. 전셋집 주인에게 전화하여 집을 팔라고 제안했었다. 그러나 주인은 사정이 있다며 거절했다. 대신 살고 싶을 때까지 살라고 했다. 전세 살다가 벼락거지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경험한 나는 추억을 뒤로하고 집을 사게 되었다. 주변에선 곧 부동산 폭락기가 올 거라며 만류했다. 그러나 남편과 나는 더 늦기 전에, 퇴직하기 전에, 돈 빌릴 수 있을 때 집을 사야 한다고 생각했다. 결혼하고 어쩌면 처음으로 뜻을 모았다. 많은 대출을 감행하여 집을 샀다. 원 분양가라면 대출 없이 사고도 남았을 텐데...... 바보, 나는 완전 바보다. 지금까지 평생을 절약하며 살았다. 절약한 돈을 오른 집값에 다 쓰다니 속이 미어졌다. 남편은 빚을 다 갚을 때까지 아프지 말자고 했다. 가족들과 함께 여행 다니고 행복하게 살기 위해 아프면 안 되는 것이 아니라 대출금을 갚아야 하기에 나는 아프면 안 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이삿날 발가락이 골절된 채 나는 다른 가족들보다 9일 늦게 새 집에 입성했다. 두 발로 딛지 못하고 왼쪽 발만 첫 발을 딛었지만 내 집에 들어오니 행복했다.


아직 짐이 정리되지 않아 집이 어수선했다. 집을 깨끗이 정리하고 싶었으나 너무 피곤했다. 안방에 들어가 침대에 누웠다. 이 모습을 남편과 두 딸아이가 흐뭇하게 지켜봤다. 침대에 눕자 드디어 살 것 같았다. 답답한 병실의 병원냄새를 벗어나 우리 집 냄새가 만들어지는 새집. 잠이 스르륵 몰려왔다.


한 숨자고 일어났더니 이미 밖이 어두워져 있었다. 남편이 자신의 특기인 어묵볶음과 소시지 볶음을 만들어 식탁에 밥을 차렸다. 나는 목발을 딛고 식탁에 가서 밥을 먹었다. 병원 냄새가 없는 곳에서 숨을 쉬니 밥도 맛났다. '앞으로 병원 말고 내 집에서 새 삶을 가꿔야지.'라고 다짐했다.


이 닦고 핸드폰을 조금 보는데 잠 손님이 찾아왔다. 나는 손님을 기쁘게 맞이했다. 그렇게 다음날 아침 9시까지 한 번도 깨지 않고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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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학기간 동안 얼른 마무리하고 브런치북으로 완성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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