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실은 아이들에게 작은 쉼표다
6학년 인찬이와 민준이가 나란히 보건실로 들어왔다.
속으로 생각했다.
'저 녀석들 또 쉬려고 왔구먼'
"인찬이 선생님한테 와요."
인찬이가 처치용 의자에 앉는다.
옆 보건선생님이
"민준이는 이리 오세요."
라고 말한다.
나는 인찬이를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바라본다.
"어디 아파요?"
"점심 먹고 어지러워요. 어제 학원 숙제 하느라 늦게 자서 그런가 봐요."
"몇 시에 잤는데?"
"12시 30분이요."
"학원숙제 많냐?"
"네..."
"아이고, 어쩌냐? 혈압이랑 맥박이랑 재보자."
혈압 100/60, 맥박 80, 체온 36.5
"모두 정상이다. 공부 더 해보고 더더더더 힘들면 와"
인찬이는 우물쭈물한다.
'언제나처럼 10분만 쉬게 해 주세요.'라고 말하겠지.
"선생님, 10분만 쉬게 해 주세요. 피곤해요."
눈썹과 입꼬리가 아래로 축 처지고
아랫입술이 살짝 앞으로 나왔다.
최대한 불쌍하면서도 귀여운 표정.
연기력은 아마 우리 학교 1등이다.
'아이고, 또 넘어가네. 안돼. 넘어가지 마. 안된다니까.'
"많이 피곤하니?"
"네"
이번엔 목소리에 힘이 하나도 없다.
'정신 차리자, 정신 차려, 정신 차려...'
"그래, 딱 10분이다."
"네"
언제 그랬냐는 듯, 맑고 경쾌한 목소리다.
"여기 누워. 10분이다."
"네"
타이머로 정확히 10분을 맞췄다.
담임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인찬이는 특별한 이상 없습니다. 10분만 경과 관찰하고 교실로 보내겠습니다.'
같이 온 민준이가 옆 보건실에서 시무룩한 얼굴로 나온다.
"민준아, 선생님이 괜찮데?"
"약 줘서 먹었어요... 아픈데, 교실로 가래요.
선생님, 저 10분만 쉬면 안 돼요."
낮은 목소리, 축 쳐진 눈빛
민준이 연기력, 인찬이에게 뒤지지 않는다.
이 아이들이 다 연기자가 되려나.
'안돼! 넘어가면 안 돼!'
"민준아, 많이 아프지? 옆 보건샘이 하라는 대로 해보자. 한 시간만 참고해봐."
"네"
세상 온 슬픔을 품은 듯한 목소리다
"선생님, 따뜻한 물 한잔만 주세요."
"왜?"
"갈증 나서요."
'거짓말, 물이라도 마시면서 시간을 끌어야지. 넘어가지 말자. 정신 차려! 어서.'
"그래"
천천히, 아주 천천히 물을 마신다.
물 한잔이 민준이의 고달픔을 씻어준다.
드디어 다 마셨다.
"잘 가. 민준아!"
민준이는 슬로 모션으로 보건실을 나간다.
띠디디디딕 타이머가 울린다.
"인찬아, 교실 가자."
"네"
세상 밝은 소리.
세상 밝은 표정.
인찬이 눈에서 빛이 났다.
나는 오늘도 폭싹 속는다.
* 인찬이와 민준이의 ‘꾀병’ 뒤에 숨은 피로와 숨 막힘을 나는 안다. 아이가 잠깐 숨을 고를 수 있다면, 나는 기꺼이 폭싹 속아줄 준비가 되어 있다. 보건실은 그런 아이들에게 '작은 쉼표'가 되어야 하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