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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들레는 민들레 Aug 05. 2024

발가락 골절 환자의 입원생활이 시작되다

입원부터 수술 전까지의 병실에서의 이야기

발가락이 골절되고  입원생활이 시작되었다.  언제 어디서나 적응 하나는 끝내주게 잘하는 나지만 병실에 들어선 순간 위축이 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병실에 문을 밀고 들어서자 네 명의 환자들이 동시에 나를 바라봤다. 전학 온 학생처럼 당황스럽고 부담스러웠다. 오른쪽엔 침상 두 개와 싱크대가, 왼쪽엔 침상 세 개가 있었다. 나는 본능적으로 비어 있는 왼쪽 침상으로 가서 네 이름을 확인했다. 


베개, 분홍색 이불, 환자복이 침상 위에 놓여 있었다. 침상에 앉자 칠십 대 중반으로 보이는 뽀글 머리를 한  뽀글이 할머니께서 다치게 된 경위를 물었. 아침에 있었던 일을 이야기를 했다. 모두들 날 안쓰럽게 날 바라봤다. 뽀글이할머니께서 "이삿날 짐 정리도 못하고 으메 황당하겠네."라고 말씀하셨다. 


환자복을 들고 옷 갈아입으러 화장실에 가려고 했다. 뽀글이 할머니께서 "여자들만 있은 게 그냥 거기입어. 이물 없는 게."라고 하셨다. 나는 부끄럽기는 했지만 아픈 다리로 화장실까지 가는 것이 불편해 시키는 대로 했다.  환자복을 입자 괜히 이제는 완전한 환자가 된 것 같아 서글퍼졌다. 환자복은 골절환자가 입기 편하게 바지 한쪽이 터져 있었다. 작은 아이의 도움을 받아 입원 물품을 개인 사물함에 정리했다. 수저세트를 가지고 오지 않아 작은 아이에게 병원 근처 다이소에서 사 오라고 했다. 아이가 병실을 나가자마자 오른쪽 침상에 계시는 할머니 두 분께서 어디 사냐?, 발가락은 어떻게 수술한다더냐?, 이 병원은 어떻게 알았냐?, 아이가 몇이냐?, 따라온 아이는 큰 애냐? 작은 아이냐?, 이삿짐 정리는 좀 했냐? 고양이를 키운 지 얼마나 됐냐?, '고양이 귀찮지는 않냐? 등을 물었다. 어르신들의 질문이 반갑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불쾌하지도 않았기에 간간이 웃으며 친절하게 대답했다. 나 또한 어르신들은 어떻게 다치게 되었는지 물었다. 뽀글이 할머니는 지인 결혼식장 갔다 오는 길에 버스 정류장에서 넘어져 발목에 금이 갔다고 했다. 한쪽 다리를 보니 초록색 깁스를 하고 계셨다. 오른쪽 출입구가 자리인 70대의 예쁘장한 외모를 가지고 계신 이쁜이 할머니는 고질병인 디스크가 터졌단다.


작은 아이가 수저 세트를 사 왔다. 아이는 날 꼭 안고는 잘 자라고 말한 후 집으로 갔다. 철부지라고 여겼는데 보호자처럼 행동하니 대견스러웠다. 아이가 가고 혼자 남으니 병실이 더 낯설게 느껴졌다. 화장실에 가 세수하고 스킨과 로션을 바른 후 침상에 눕자 간호사가 병실로 들어왔다. 간호사는 나에게 와 '내일 수술입니다. 금식하세요.'라고 말했다. 나는 착한 아이처럼 "네"라고  대답했다. 작은 아이가 집에 도착했다는 메시지를 받고 텔레비전 소리와 코 고는 소리를 자장가 삼아 한참을 뒤척이다가 잠들었다.


4시 30분에 어둠 속에서 누군가 조심스레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핸드폰으로 시간을 확인하고 다시 눈을 감았다. 6시에 리본 모양으로 머리를 올린 50대 후반의 간호사가 불을 켠 후 "잘 주무셨어요. 혈압재러 왔습니다."라고 말했다. 간호사가 밤새 근무했을 텐데 전혀 지쳐 보이지 않았다. 목소리도 경쾌하고 얼굴에 미소도 머금고 있었다. 모든 환자들에게 혈압재러 가서 잘 잤는지 묻고 환자의 팔에 조심스럽게 혈압계 커프를 감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간호사는 혈압 측정치를 알려주며 "좀 높네요.", "정상이네요."라고 말했다. 나이트 근무한 간호사의 활기찬 모습이 너무 어색했다.


 6시 30분, 병실 옆 조리실에서 그릇 부딪히는 소리와  물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뽀글이 할머니께서 텔레비전을 켰다.  텔레비전은 아주 큰 소리로  자신의 힘을 과시했다. 나는 이상하게 텔레비전 소리에도 기가 죽었다. 새 집 새 침대에서 아침을 맞아야 하는 날이었는데 병실에서 아침을 맞이하니 내 신세가 한심했다. 뽀글이 할머니께서 씻고 난 오십대로 보이는 내 양옆에 있는 환자분들이 한 명씩 일어나 화장실에 갔다. 나는 마지막으로 목발을 짚고 화장실에 가서 세수를 했다. 그 누구도 눈치를 주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스스로 움츠려드는 나를 보니 헛웃음이 나왔다.


7시 즈음 간호사가 다시 들어왔다. 간호사는 환자들에게 약 성분을 알려주고 주사를 놓기 시작했다. 나에게는  "환자분은 오늘 수술이니 라인만 잡겠습니다."라고 말했다. 간호사가 자신의 손바닥으로 따닥따닥 전완을 때리며 혈관을 찾기 시작했다. 잠시 후 정적이 흐르고 알콜의 시원함이 채 가시기도 전에 팔이 따끔했다.  간호사는 금세 혈관을 찾고 주삿바늘을 분리했다. 간호사가 나에게 주사 맞느라 고생했다고 부드럽게 말했다. 15분에서 20분가량 간호사가 병실에 머물렀었다. 그런데 한 번도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지지 않았고 목소리는 한 없이 다정했다.  간호사가 웃으며 친절하게 일하는 모습을 보니 저렇게도 즐겁게 간호사라는 업을 할 수도 있는 거구나 싶었다.  간호사가 병실나가고 나는 "간호사가 엄청 친절하네요."라고 말했다. 이쁜이 할머니께서 "여기 간호사들은 다들 친절해. 틱틱거리는 아가씨가 하나도 없어."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대학 졸업 후 1년 9개월간 간호사 생활을 하면서 표정이라는 것을, 다정함이라는 것을 가져 본 적이 없었다. 늘 긴장했고 늘 바빴고 늘 힘들었었기에 환자들에게도 늘 무뚝뚝했다. 환자들에게만은 친절했어야 했다. 정말 후회스럽다. 즐겁게 일하는 간호사를 보니 매 순어떤 일을 하든 즐겁고 재미있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보내야 할 시간이라면 고통스럽게 보낼 필요 없으니까. 또 후회한다고 해도 그 순간이 다시 돌아오지 않으니까. 발가락이 아파 제대로 걷지 못하지만 자생활도 후회 없이 즐겁고 재미있게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간호사가 나가고 환자들은 앉거나 누워서 소소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중 가장 이목을 끈 이야기는 최근 음주운전 뺑소니 사고를 친 트롯가수 '김호중에 대한 이야기'였다.  김호중이 왜 음주운전을 하고 달아났는지 모르겠다, 김호중이 노래 하나는 끝내준다, 인자 김호중은 끝났다, 그렇게 안 봤는데 성이 참 못됐다, 그냥 인정하지 왜 그랬을까?, 연예인이 자기 관리해야지 등의 이야기가 신나게 오갔다. 병원 이나 이나 연예인 이야기는 모두를 하나로 만들어주는 힘이 있음이  증명되었다. 이야기는 언제나처럼 '연예인 걱정은 하지 말자.'로 끝을 맺었다.


7시 50분 즈음 모두들 아침을 먹었다. 나는 수술 전이므로 금식했다. 물리치료사가 병실에 들어와 환자들의 물리치료시간을 정하고 나갔다. 8시 30분 넘어서 의사가 회진을 했다. 의사는 인자한 교사처럼 한 명씩 면담을 했다. 나에게는 밤새 통증은 없었는지 물었고 난  통증이 없었다고 말했다. 12시에 수술한다며 가족들이 올 거냐고 물었다. 아무도 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남편은 직장에 일이 있었다. 나는 하반신 마취로 이루어지는 간단한 수술이고 특이한 병력이 없었기에 굳이 보호자가 필요 없다고 생각됐다.


조리사님이 10시 30분경에  병실에 오셨다. 60대 초반즈음 되어 보였다.  단발머리에 온몸이 근육질로 구릿빛 피부를 가지고 있었다. 60대에 저런 건강미를 유지하고  있는 게 너무 멋졌다. 문 앞 예쁜이 할머니랑 친해 보였다.  나보고 어떻게 하다가 다쳤냐고 해서 또 사정을 얘기했다. 냥냥이를 구하다가 다쳤다는 말에 조리사님은 동물도  키우면 가족이 된다고 하셨다. 가족이기에 창문으로 떨어질까 봐 달려간 것, 냥냥이가 안 다치고 내가 다쳐 천만다행이다라는 나의 말에 깊게 공감한다고 하셨다. 조리사님은 자신이 키우는 반려견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반려견을 얼마나 좋아하시는지 이야기하는 내내 얼굴에서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5년 전에 근교에 급매로 땅을  사서 복숭아 농장을 시작하면서 개들을 키우기 시작했단다. 남편이 개를 너무 좋아해서 진돗개를 분양받아 황도라 이름 지었다고 했다. 황도가 심심할 것 같아 유기견보호소에서 개를 데리고 와 백도로 이름 지었다고 했다. 백도는 품종은 모른데 털이 길어서 달리면 우아하다고 하셨다. 산중에 농장이 있으니 남편 출근하고 쉬는 날에는 황도, 백도가 있어 무서움이 덜 하다고 했다. 백도는 복숭아 밭을 뛰어다니며 쥐, 두더지, 뱀 등을 잡는다고 했다. 조리사님은 병원에 이틀에 한 번씩 출근하는데 아저씨와 조리사님이 출근하는 날이면 개들이 어떻게 알고 외로워서 그런가 기가 푹 죽는다고 했다. 퇴근하고 집에 면  반려견들이 리사님과 아저씨의 몸에 막 올라타 부비부비를 한다고 했다. 아저씨 소리를 들리면  반려견 두 마리가 꼬리를 흔들며 좋아서 날뛴단다. 어떻게 소리를 구별하는지 모르겠다며 영판 똑똑하다고 했다.  쉬는 날 복숭아 밭에서 일하면 조리사님께 놀아주라고 몸을 비비는 애교를 부리는데 그 모습이 너무  우습다고 했다. 백도는 전 주인에게 폭력을 많이 당했는지 그 트라우마로  본인이 빗자루만 들어도 무서워서 숨기 바쁘다고 했다. 이제 잊을 때가 된 것도 같은데 아직도 막대기만 들면 겁내는 모습이 불쌍하다고 했다. 자고로 폭력을 쓰는 사람들은 잊어도 폭력 당한 사람이나 동물은 절대 못 잊는다며 전 주인은  벌 받아야  한다고 하셨다.  약한 사람이나 동물 때리는 인간치고 잘 되는 사람 못 받다고 했다. 맞는 말이다. 내가 가장 경멸하는 인간부류가 폭력쓰는 사람이다. 조리사님은 황도가 다 좋은데 질투가 심해 사료도 백도부터 주면 안 먹는다고 했다. 백도를 쓰다듬기만 해도 황도가 짖어대서 '는 훌륭하다'의 강형욱에게 의뢰하고 싶었다고 했다. 조리사님의 개 이야기는 요즘 이슈인 강형욱 논란으로 자연스럽게 넘어가면서 사람들의 집중력을 더 끌어당겼다.  강형욱이 정말 직원들에게 그랬을까?, 강형욱이 잘 나가서 부러워  헛소문을 퍼트린 거다,  강형욱은 인자 끝났다, 강형욱 그렇게 안 봤더니 너무했다, 강형욱이 그런 사람이 아니다  등의 이야기는 이번에도 또 연예인 걱정은 하는 게 아니다로  끝을 맺었다. 조리사님은 정말 말을 맛깔나게도 했다. 어디 가서 강연을 해도 손색이 없어 보였다. 말솜씨가 타고난 것 같다.


병원 사람들과 하는 소소한 이야기가 재미있었다. 으로의 병원생활이 재미있을 것 같은 기대감이 들었다. 병원이 아니면 만날 수 없는 사람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아침까지 우울했던 감정은 모두 사라지고 그 자리를 즐거움이 대신했다. 사람 사는 곳은 병원안이나 밖이나 다 비슷하고 아무튼 즐겁게 사는 것이 장땡이다 싶었다.


병실전화가  울리더니 간호사가 날 찾았다. 간호사는 12시에 수술한다고 11시 30분까지 간호사실 앞으로 오라고 했다. 나는  침상에서 일어나 수술실로 터벅터벅 걸어갔다.  


간호사 시절에 너무 큰 수술들을 많이 봐서 그런지 발가락 골절 수술을 하는데 하나도 긴장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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