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허락
많은 아빠들의 동경의 대상. RC카. 아닌가?
어릴 적.
지금은 안 계신 아버지와의 추억 중 좋은 추억을 꼽으라면 주저 없이 RC카 추억을 꼽는다.
문방구를 운영하셨던 아버지는 항상 바쁘셨다.
본업과 함께 문방구를 운영(어머니와 함께)하였는데, 고집스럽게도 7시 오픈, 11시 마감을 지키셨으니
바쁘지 않을 수 없었다.
각종 문구용품들과 함께 장난감이 함께 있는 작은 문방구였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 조합이 재미있다.
언 듯 매치가 안되는 듯 싶다가도 어린아이들의 시선을 멈추어 세우는데 제격이었다.
그게 벌써 20년도 더 된 이야기이다.
확실하진 않지만 그때 운영하시던 샛별문구사는 아직도 운영되고 있는 듯 싶다.
부모님께서 운영하시다 어머니가 갑자기 쓰러지시는 바람에 꾸준히 이어가진 못하셨던 기억 탓인지,
그 앞을 지날 때마다 애써 고개를 돌려 확인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
무튼,
샛별문구사엔 여러 가지 장난감이 있었는데 그중에 압권은 RC카였다.
왜 그리 크고 비싼 녀석이 동네 구석의 문구사에 재고로 남아있었는진 모르겠지만, 직업상 기계를 만지시던 아버지의 영향인 듯 싶다.
그덕에 나또한 그쪽 계통으로 눈을 빨리 뜬 편이기도 하다.
중학교 진학도 아직 하지 않은 녀석이 RC카 한번 굴려보겠다며 20만 원을 모았으니 말이다.
평소 엄격하셨던 아버지는 쪼그만 코흘리개가 그 당시 장난감 치곤 기계공학의 결정체인 RC카를 갖고 싶다며
20만 원을 모아 사도 되냐며 허락받는 아들이 꽤 대견하셨었던 것 같다.
그 길로 집(속초)에서 한 시간 내외 거리의 큰 시내(강릉)로 함께 나섰다.
마침내 코흘리개 꼬맹이는 가슴보다 큰 박스를 손에 쥔다.
타미야 TA-02 도요타 수프라.
아버지는 친척들 모인 자리에서 아들이 자랑스럽다며 이 조그만 게 이걸 하고 싶다며 돈을 모았다며 연신 칭찬이셨다.
난 그날 조립하느라 밤을 새우다시피 했다.
지금은 이 녀석이 사라졌다.
모터 피니언 기어가 플라스틱이었는데 자주 갖고 놀다 보니 그게 닳아버렸고 어느샌가 짐짝 취급받기 시작했었다.
그걸 어머니께서 정말 짐짝으로 취급하시고 내다 버리셨다.
그렇게 나의 첫 차(?)의 추억은 중단되었다.
그리고 성인이 되어 다시 RC카를 영입했다.
HPI Racing WR-8 Ken-block (중고)
이 녀석 데리고 오기로 한 전날 밤.
예전의 추억과 기대감, 설렘으로 밤잠을 설쳤다.
타미야 TA-02를 조립하던 그 어린 코흘리개 꼬맹이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