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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달한 잠 Oct 21. 2024

벌레의 쓸모.

작고 하찮고 이름이 없어도 쓸모는 있다.

"짝!"

엥~하는 소리를 내며 눈앞을 날아 지나가던 놈.

잡았다.

굳이 손바닥을 펼쳐 확인하지 않아도 느낌으로 알 수 있었다.

양 손바닥을 떼 보았다.

왼손바닥 엄지손가락 아래, 검은 점 하나에 실같이 가는 다리가 널브러지듯 달라붙은 채로 납작해져 있었다.

선명하고 붉은 점은 없는 걸 보니, 안심이 됐다.

나도, 방금 차에서 내린 딸도 이 녀석에게 물리진 않았다는 뜻이다.

물티슈를 꺼내 쓱 닦았다.

그리고 시동을 걸어 출발했다.


벌레, 함께 사는 것은 맞지만 집안 어디에, 어느 만큼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어린 시절, 우리 집에는 벌레가 많았다.

통통하게 살이 올라 보기만 해도 끔찍한 바퀴벌레와 꼽등이, 언제 어디서 날아오고 기어 왔는지 알 수 없는 다양한 나방들과 다지류의 벌레들.

왕파리와 모기는 가장 무난한 벌레들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이 나도 벌레를 무척이나 싫어했다.

싫다는 것보다는 공포스러워했다는 표현이 더 맞겠다.

날개가 있건, 날개가 없이 기어 다니건 폴짝폴짝 튀어 오르건 종과 형태는 달라도 그들이 가진 공통점이 하나 있었다.

어디로 어떻게 움직일지 모른다는 불확실성이었다.

그 불확실성은 내 몸 어딘가에 갑자기 찰싹 붙을지도 모른다는 쓸데없지만 끔찍한 상상을 하게 만들었고 곧 불안과 공포를 몰고 왔다.

그래서, 벌레가 나타날 때마다 소리를 지르며 도망 다니다 엄마에게 시끄럽게 소리를 지른다고 꾸중을 들었지만 내 눈앞에서 그 벌레가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공포와 불안은 끝나지 않았다.


벌레의 쓸모.

사실, 벌레라고 불리는 스멀스멀하고 꿈틀거리며 뭔가 끈적거릴 것 같은 찝찝함을 주는 그들은 여러모로 쓸모가 많은 존재들이다.

미드열풍의 주역인 "CSI" 시리즈에서 길 그리섬 반장은 시체에 어떤 벌레들과 어떤 유충이 있는 지를 보고 살해된 시기를 알아냈다.

부패가 진행되면서 시기에 따라 나타나는 벌레와 알을 까는 벌레가 다르다는 사실에 기초한 결론이었다.

그리고, 벌레 들은 숲 속의 죽은 동물의 시체와 낙엽 등을 먹어치운다. 먹고 난 후 벌레들이 내보내는 배설물들은 좋은 영양분이 되어 식물의 성장을 도와 풍족한 숲을 만드는데 큰 기여를 한다.

이런 역할을 하는 벌레들이 없다면 세상은 아마도 거대한 안치소가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렇게나 거국적이고 생태계에 큰 역할 까지는 아니지만 내게도 "벌레의 쓸모"는 존재했다.

앞서 말했듯, 나는 벌레라는 것에 대해 공포심과 함께 탄탄히 자리 잡은 거부감이 있었다.

오랜 공포와 거부감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내가 과감하게 벌레를 보이는 족족 손으로든 무엇으로든 잡기 시작한 건 아이를 낳고 그 아이들과 첫여름을 보내면서부터이다.

밤이건 낮이건 모기떼들은 달달한 분유냄새를 풍기는 연하디 연한 아이들의 피부를 노렸고, 피를 빨고 그 연악한 피부에 그들의 침을 주입한 흔적을 보란 듯이 남겼다.

모기에 물려 붉게 부어오른 자리는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도 분노를 유발했고, 정작 나는 물리지 않은 사실을 미안하게 만들었다. 또 얼마나 간지러울지 생각만 해도 내 몸이 근질거리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적나라했다.

그런 자국들과 상처들을 보면서 눈에 띄는 모기를 비롯한 모든 알 수 없는 벌레들은 내 아이들을 공격할 잠재적인 적이 되었고  눈에 띄는 즉시 바로 처리해야 하는 것들이 되었다.

살짝 스치기만 하는 상상을 해도 끔찍하고, 계속 피하기만 했던 그 벌레를 즉시 처리하기 위해 맨손을 아무렇지 않게 사용했을 때, 내 손바닥 안에서 납작하게 눌린 벌레들을 보면서 끔찍해하기는커녕 잡아서 다행이라고 안도했을 때, 웃기게도 나는 진짜 엄마가 되었다는 것을 느꼈다.

싫고, 무섭고, 거부감이 있다는 것을 느끼고 인지할 새도 없이 필요한 순간에 몸이 먼저 반응하는 것을 깨달았을 때 '이런 거구나' 하는 것을 느꼈다.

많은 시간이 지나 아이들이 사춘기인 지금, 내 눈앞을 날아다니는 벌레들을 보면 내가 문득 어떤 것을 깨달았었다는 사실이 떠오른다.


그리고, 생각한다.

'아이를 키우는 동안 필요한 엄마의 역할이 벌레를 잘 잡아주는 것만큼 수월하지 않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아이를 위해 벌레를 잡듯 바로 반응해야 맞는 것인지, 좀 더 기다려 봐도 되는 것인지, 아이를 물어서 간지럽게 할 벌레인지 아닌지 구분조차 되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필요한 어느 순간, 어느 시기가 오면, 싫고 무섭고, 거부감이 있다는 것을 생각할 겨를도 없이 몸이 먼저 반응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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