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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준 Dec 09. 2021

[영화추천-노매드랜드]①–도망친 곳에 구원은 없다.

1/3

         

Houseless is not Homeless     

 인간은 자기 자신으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진 존재이다. 늙은 말의 목을 부여잡고 엉엉 울던 니체가 그렇게 말했다. 니체는 왜 그렇게 가열차게 울었을까. 무게에 짓눌려 거친 숨을 훅훅 뿜어댄 그 미생마의 콧소리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니체 자신이 지금까지 견뎌온 삶의 편린들을 긍정하며 꾸역꾸역 앞으로 나아간 자신의 모습이 생각나서였을까.

 니체가 위버멘쉬였든, 노쇠한 낙타였든, 정신분열자였든, 파티(Fati)를 아모르(Amor) 했든 상관없다. 요는 나는 니체를 읽으면서 눈물이 났다는 것이다. 적어도 내 주변에 ‘선악의 저편’이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등을 읽으며 울었다고 한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그렇듯, 나에겐 울 자유가 있다.

 노매드랜드를 보았을 때도 울었다. ‘펀(프랜시스 맨도먼드)’이 웃고 있는 장면에서도 울었다. 도통 잘 우는 성격이 아닌데도 울었다. ‘펀’이 행복한 표정으로 핫도그를 먹고 있는 장면을 보며 울었다. 그런 내가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눈물이 뺨에 흐르는 감촉은 인지했지만, 그 원인을 설명할 수는 없었다.

 답답할 때는 책장을 훑어본다. 니체전집이 눈에 들어왔다. 지향성이 체험되는 순간. 그렇게 오년만에 니체를 펼쳤다. 첫 장을 넘기니 니체의 흑백사진과 이력이 적혀있었다. 그 무심하고도 순수한 표정이 핫도그를 먹는 ‘펀’과 비슷해 보였다. 그렇게 니체를 읽었고, 그러다 보니 니체가 왜 울었고, 니체를 읽으면서 나는 왜 울었는지도 생각해보았다. 그리고 노매드랜드를 보며 흘린 눈물의 의미를 해석해 볼 용기가 생겼다.

 이러한 어색함, 혹은 비일상성에 마주하는 용기는 언제나 나를 되살아나게 한다. 기존의 개념이 포착할 수 없는 미지의 영역을 탐험하게 한다. 이때 너무도 인간적인 삶을 살고 있다고 느낀다. 이러한 탐험은 결국 새로운 개념을 찾아내고, 이 발견을 통해 세계의 영토에 균열이 생기며, 새로운 코드가 고개를 내민다. 그렇게 배치는 바뀐다. 그런데 배치가 바뀌면 어떻게 될까. 아마 눈물이 나지 않을까.




외로움이 주는 포근함   
  

 ‘아헤헤하다’, 라는 표현이 있다. 철 지난 코드지만,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 표현할 길이 없으면 제발 좀 닥치라고 비트겐슈타인이 말했지만, 스스로도 지키지 못한 말이니 즈려밟고 말하겠다. 이 영화는 외로움과 상실에 대해 말한다. 하지만 누가, 왜 외로운지 묻는다면 그것참 아헤헤하다.

 ‘펀(프랜시스 맥도먼드)’은 남편 ‘보’와의 모든 추억이 담겨 있는 고향을 떠난다. 지역의 경제를 책임지던 엠파이어의 광산 ‘US 석고’는 파산했고, 아무도 그 안에서 버텨내지 못했다. 끝까지 남아있던 ‘펀’도 결국 무릎을 꿇고 만다. 그렇게 반강제적으로 이주한다. 바닥에 떨어진 유리잔을 줍지 않고 문을 나선다. 깨끗하게 추억의 흔적들을 화장하지도 않는다. 후진 벤 하나에 아버지와의 추억이 담긴 접시 세트와 요강과 이런저런 생필품을 쑤셔 넣고, 한 손에 결혼반지를 낀 채로 ‘뭐 그럴 수도 있지’라는 무심한 표정을 지으며, 그렇게 떠난다. 그녀는 영원한 실향민이 되기로 결심하고, 그 여정의 끝을 실낙원으로 정하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그녀는 좀처럼 울지 않는다. 영화 말미 잠시 들른 엠파이어에서 ‘보’의 명함을 발견했을 때를 제외하곤 말이다. 그녀는 꽤 자주 웃었다. 그런 웃음을 파안대소라고 부르기는 어렵다. 하지만 그녀의 웃음은 의연했고 그녀의 무표정은 비굴하지 않았다. 자동차 엔진도 얼려버리는 살얼음 날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차게 식은 치킨을 뜯는 모습에는 아헤헤한 당당함이 있었다. 티격태격하던 친구 ‘스웽키’가 죽었을 때도, 그녀가 애지중지하던 접시가 깨졌을 때도 울지 않았다. 어린시절을 압축해 놓은 조악한 접시를 바라보며 잠시 멈칫할 뿐. 그녀는 울지 않았다.

 그녀는 외로웠다. 외로워서 더 추웠다. 소중한 미니밴이 니체가 끌어안은 노쇠한 말처럼 거친 숨을 내쉬고, 이제 당신은 더 이상 아마존 컨베이어 벨트의 부품으로 기능할 수 없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녀는 결심한다.

 그렇게 외로운 사람들이 모인 ‘노매드랜드’를 향해 떠난다. 아니 쫓겨난다. 끝끝내 버텨보려 했지만, 결국 무너진다. 영화는 그런 '펀'의 긍정적이면서도 나약한 모습을 수차례 드러낸다. 대사 하나 없이 무책임하게 던져놓은 장면들은 클로이 자오(감독)의 선량한 감수성을 은은히 드러낸다. 그 장면이 우리를 미소 짓게 하지는 않을지 모르지만, 그 의도는 우리를 따뜻하게 한다. 쫓겨나고, 서럽고, 외로워서, 그래서 결국 도망치는 떠돌이가 비굴하지 않을 수 있다는 외침으로 우리를 어루만져준다. 외롭다는 것을 공감할 자격을 갖춘 사람이 많지 않다고 생각했던 어린 시절의 나에게, ‘거봐, 이렇게 외로운 사람이 지천으로 널렸다고’, 라며 위로해준다. 이 영화를 보는 시청자들에게 ‘당신이 외로움에 사무쳐있었다는 걸 솔직하게 인정할 수 있는 2시간이니, 마음껏 외로워해’, 라고 토닥인다.

 '펀'이 모든 것으로부터 쫓겨났지만 가슴 속의 별을 간직하고 있음을 확인하고, 모든 쓸쓸한 노매드가 각자의 보석을 지키기 위해 분투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나면, 그 순간 노매드랜드의 색이 따뜻해진다. ‘슬픔이 주는 기쁨’의 알랭 드 보통이 생각나고, 알랭 드 보통이 예찬한 에드워드 호퍼의 ‘밤의 사람들’이 생각난다. 외로움에 직면하는 그들의 표정은 유쾌하진 않지만, 긍정을 담고 있다. 호퍼의 그림처럼, 노매드랜드는 외롭지만, 아니 외로워서 따뜻한 그런 영화였다. 그래서 아헤헤했다.




노매드랜드와 니체     

 이제 좀 알 것 같다. 핫도그를 먹으며 행복하게 웃는 ‘펀’을 보며 눈물을 흘린 이유를. 그리고 위버멘쉬의 위대함을 외치는 니체의 글을 보며 애절했던 이유를. 왜 노매드랜드를 보고 니체가 생각났고 왜 니체의 얼굴에서 ‘펀’의 향기를 느꼈는지. 그 눈물이 왜 차갑지만은 않았고, 왜 그들을 바라보며 부끄러움을 느꼈는지 말이다. 나는 그들에게서 위버멘쉬를 보았다. 그리고 말세인으로 사는 내 모습이야말로 늙은 말과 같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니체를 보고 운 게 아니라, 니체가 나를 보고 울었다. ‘펀’이 불쌍해서 운 게 아니라, 내가 불쌍해서 울었다.

 

 우리는 이미 안다. ‘펀’은 외로울지언정 슬프지 않다. 그녀는 슬플지언정, 그 비통함의 무게에 짓이겨지지 않는다. 자신의 인생을 저주하여, 모든 것을 새롭게 하기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모두로부터 멀어지는 길을 선택하지도 않는다. 그녀는 만신창이가 되어도 일어났고, 밴에 올랐다. 벤과 함께하는 유목 생활에는 인생에 대한 깊은 긍정이 담겨 있다. ‘펀’은 도망친 곳에 구원은 없다는 진리를 잘 알고 있다.

 ‘펀’은 따뜻한 에덴동산에 눌러앉는 삶에도 구원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는 영화 후반부 언니와 재회하는 장면에서 드러난다. 그녀의 언니는 중산층, 혹은 그 이상의 풍요를 누리고 있다. 누구에게나 내어줄 방이 있을 정도로 집은 여유롭고, 부동산으로 폭리를 취한 부자 친구들이 넘쳐난다. 남편은 한밤의 집 안에서도 랄프로렌 스웨터와 베이직 코로듀이를 입고 있을 것 같은 인물. 꾀죄죄한 모습의 ‘펀’을 기꺼이 환대하는 호인 같지만, 그 속내가 궁금한 인물. 포마드로 넘긴 머리는 모범적이지만 고루한 스타일은 전제적이고, 눈꼬리는 부드럽지만 동공 안에는 이해타산만이 가득한 인물. 심플하지만 얄팍한 사상으로 세상사를 재단할 것 같은 사람. 니체가 보면 말세인이라고 외칠 그런 인물. 그리고 그런 세속인의 성염색체만 바뀐 인물 ‘펀’의 언니.

 그들은 ‘펀’에게 권한다. 함께 있자고. 더 이상 유목 생활을 할 필요가 없다고. 우리와 함께 안식을 누리자고. 주말에는 바비큐 파티를 하고 크리스마스에는 KFC 닭다리가 아니라, 와인을 곁들인 고급 칠면조로 밤을 지새우자고. 큼직한 통조림 통이 아닌 깨끗한 수세식 변기에서 일을 보라고. 하지만 ‘펀’은 거부한다. 그때 자매는 이런 대화를 했다.

 (남편이 죽은 이후에도 꽤 오래 엠파이어에 남아있던 ‘펀’에게 언니가 말한다)

-왜 거기 있는지 이해가 안 되더라-

-언니의 그 말이 내가 여기에 머무를 수 없는 이유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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