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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준 Jun 26. 2024

[에세이] 인간사가 모두 물화되었다. 그래도…

가격을 매길 수 없는 게 있을까.

[디즈니 플러스 vs 넷플릭스]


 친구 녀석이 생색내듯 디즈니플러스 계정을 던져주었다. 나는 무려 사 년간 넷플릭스, 그것도 4K 계정을 공유해왔는데, 이놈은 고작 구천구백 원짜리 디즈니플러스라니. 그것도 이제야. 음. 이건 역시 타산이 안 맞아. 지금까지 총 얼마더라, 라고 생각하던 차, ‘우정(같은 것)은 가격을 매길 수 없는 것’, 이라는 칸트의 말이 생각났다. 이제는 인간사가 모두 물화되었다 쳐도(지나가는 초등학생도 저 친구는 월세에 사니 같이 놀기 어렵다는 명석함? 을 지녔다 해도), 없는 주머니 털어가며 생일날 돈까스를 사주던 우리 둘 만큼은 그딴 거 따지지 말자고 다짐했던 입대 전날 밤도 생각났다. 어쨌든 디즈니와 넷플릭스가 몇천 원을 두고 치열하게 싸우던 그 날. 불현듯 칠 년 전 일이 떠올랐다.



 당시 만나던 여자친구는 바보처럼 착했다. 생각해보면 나의 비탈진 면을 위로하고, 그대로 사랑해 준 몇 안되는 사람이었다. 언젠가 그녀를 본 지인이 이런 말을 했다. “얼굴에 그늘이 있어.”라고. 음. 그러고 보니 잡티 없는 뽀얀 피부도 어딘가 투박한 느낌이 들었고, 귀여운 개냥이 표정으로 웃는 그녀를 보면 가끔 ‘비 온 뒤 갬’ 같은 재즈곡이 불쑥 떠오르곤 했다. 계절을 타지 않는 옷을 입어도 잘 소화하긴 했지만, 여느 또래 친구들보다는 옷의 가짓수가 현저히 적기도 했다.

 보통 글루미한 비하인드를 지닌 친구들은 억지로 에네르기를 분출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녀는 또 그런 케이스는 아니었다. 월나라 서시의 찡긋 웃음이 아마 그녀의 미소와 닮았을지도 모르겠다. 무튼 비 오는 어느 날 묘하게 애잔하면서도 예쁜 미소를 짓는 그녀의 옆모습을 보고 디테일한 인생사가 궁금하다며 그녀를 추궁했다. 조심스러우면서도 구체적으로.

 스펙터클한 비하인드를 기대한 탓일까. 대답은 생각보다 시시했다. 아버지가 일찍이 돌아가시고, 여주 공단 근처에 월세 50만 원 방에서 동생과 살고 있으며, 어머니는 식당 일을 하는데 누군가와 함께 살고 있다는 정도. 쳇. 별거 아니네. 빚 없고 마약 중독만 아니면 됐지 뭐.



 청혼은 우발적이었다. 함께 도쿄 디즈니랜드에 놀러 갔을 때였다. ‘해저 2만 마일’ 어트랙션을 타고 나왔을 때,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빗줄기는 거세졌고, 먹구름은 흩어질 줄 몰랐다. 우산을 사기 위해 바로 옆에 있는 캐릭터 샵으로 들어갔다. “우비가 좋아.” 그녀는 말했다. 우산 옆에는 각각 미니와 도널드와 구피를 주인공으로 삼은 세 종류의 우비가 있었다. 셋 모두 웬만한 서양인도 충분히 덮을 만큼 커서 모자로 얼굴이 가려지면 신발 모양으로만 누군지 알아봐야 할 정도였다. 그녀는 미니와 미키가 특유의 개구진 표정을 짓고 있는 우비를 골랐다. 나도 같은 것을 골랐다. 해외에서는 커플룩도 제법 견딜만하다. 우비 표면의 주름을 따라 어깨동무를 한 미키와 미니는 반원을 뒤집어 놓은 듯 가지런한 모양으로 씨익 웃고 있었다. 타원형의 눈동자는 새하얗고 그 동공은 확연했다. 그들은 티 없이 행복해 보였다. 우비를 입은 그녀는 전에 없던 순전한 웃음을 띤 것만 같았다.



 3,500엔의 고가 우비를 산 탓일까. 우리는 예약한 어트랙션을 포기하고, 한 손에는 맥주를 들고, 다른 손은 꼭 마주 잡은 채 커플 아디다스 슈퍼스타를 신고 디즈니랜드를 하염없이 걸었다. 비는 디오니소스의 포도주처럼 몽환적이었고, 묘한 취기는 질서와 조화의 아버지 아폴론을 내쫓았다. 부드러운 빗방울을 튕겨내지 않고 슬며시 받아주는 빨간 우비, 그 우비 안에는 숫자도 월세도 가족관계증명서도 없었다. 부족하면 채우고, 넘치면 흘려보내는 빗물처럼 우리는 개념화 할 수 없는 무언가가 된 듯 서로를 깊이 받아들였다(고 적어도 나는 생각한다). 소우주로서 독립적인, 디바이드할 수 없는 두 인격체의 공존. 이제야 라이프니츠의 공가능성이 현실적인 개념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아니, 사실 그 당시는 라이프니츠고 공가능성이고 개나 줘 버리고, 단지 맞잡은 손에 차분한 광기와 따뜻한 온기가 혼존했다는 것만 기억난다. 그리고 우리가 머금은 미소엔 계산 없는 애정이 그득했다는 것도.

 얼마를 걸었을까. 요의가 생겨서야 두 다리가 뻐근한 걸 느꼈다. 철 지난 죠스가 성내고 있는 어트랙션 화장실 옆에서 그녀를 기다렸다. 잠시 뒤 주춤해진 비에도 우비로 몸을 가린 그녀가 환한 웃음을 지으며 “오래 기다렸지”라고 말하며 나를 향해 다가왔다.






 순간 나는 그녀에게 프러포즈했다. 정확한 표현은 기억나지 않지만, 확실한 건 어떤 가언적인 워딩은 아니었다. 아주 심플하고 컴팩트한 문구. 그런데 이상하게 그 워딩은 기억나지 않는다. 디즈니랜드의 우비의 마력이 타산성을 무력화시켜 학력과 가족관계, 연 소득, 유전적 질환 이력 따위의 것들을 무화시켰다. 누구나 그렇듯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우리는 함께할 거라며 그녀에게 행복을 약속했다(지금 생각해보면 당시 그녀는 그 말을 믿지 않았다고 확신한다).

 결혼 준비가 고생스러워 두 번은 못 한다는 말은 거짓. 전셋집만 있으면 다 끝나는 일. 하지만 제 과정에 필요한 서류는 복잡했고, 서류에 적힌 문자는 그녀의 얼굴에 서린 그늘을 해명하기에 충분했다. 그녀의 어머니는 대부업체와 긴밀했고, 그녀의 친부가 누구인지는 어머니조차 몰랐다. 상견례 전 그녀의 가족을 만나기로 했다.

 디즈니랜드에서 청혼한 지 한 달쯤 지난 어느 날. 나는 그녀와 그녀의 어머니, 그리고 기둥서방쯤 돼 보이는 경마장과 슬롯머신 사이 어딘가에 있을 법한 껄렁한 아저씨와 함께 고급 소고깃집에 갔다. 그녀는 몇 번 와본 곳이라고 했지만, 어쩐지 길을 헤맸다. 식사 중 그놈은 법적으로도 생물학적으로도 아무 관련 없는 그녀에게 딸아, 딸아 라고 부르며 유세를 떨었고, 소고기를 한 점 먹을 때마다 “캬, 거 쒸 쥐기네!”라는 추임새를 넣으며 홀로 소주잔을 들이켰다. 그녀의 어머니는 놈팽이(달리 표현할 말이 없다)의 그런 모습을 보며 미니마우스처럼 맑게 웃었다. 그 모습을 보며 그녀도 웃었다. 놈팽이가 계산서를 들고 의기양양하게 카운터로 향했다. 내가 화장실에 간 사이 그녀가 전해준, 그녀의 한 달 생활비에 맞먹는 오만원 지폐 여덟 장을 들고서.

 집으로 가기 전 그 녀석과 악수했다. 그는 “아따, 이놈, 씨게 잡는 거 보소. 크허허.”라고 말했다. 잠시 후, 그녀의 표정에 못 이겨, 나는 놈팽이에게 택시비 오만원을 건네주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그녀는 미안하다는 메시지를 보냈고 나는 괜찮다고 답했다.



 그렇게 짧은 문자 메시지를 주고받은 지 이주 후. 우리는 헤어졌다(정확히 말하면 헤어지기 위해 만나기로 했다. 물론 그냥 만나자는 말만 했지만). 이주 간 내 침묵은 편파적인 당위성을 띠고 있었다. 그 간 그녀의 주저함은 체념적 순응과 저항적 욕망 사이의 간극 어딘가에 있었을 것이다.

 만나자고 했을 뿐인데, 그 약속이 이별의 순간임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었다. 자동차의 기계음이 시끄러운 도로변 카페 앞. 그녀는 언제나처럼 단아한 옷차림에 한 손에는 빨강 디즈니랜드 우비를 들고 있었다. 그녀는 우비를 바라보고 있었다. 작은 입은 어떤 말을 하려는 듯했고, 그 눈가는 미묘하게 떨렸다. 나 또한 그녀 앞에 서서 멀거니 그녀의 손에 들린 우비만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여기는 더 이상 디즈니랜드가 아니다. 마법은 영속적이지 않기에 마법일 테니. 그렇게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잠시 서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떠났다. 우리는 꽤 사랑했다. 하지만 헤어졌다. 두 사건 사이에 할 말이 이렇게 없다니. 탄생과 죽음 사이에 선택밖에 없다면, 만남과 이별 사이에는 우비밖에 없는 것일까. 분명 우비를 건네받은 것이 나의 선택이었다. 수동을 가장한 능동적 선택. 그렇게 나는 무언가로부터 멀어져 간 것 같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주욱.


 아마 그날 비가 왔으면 나는 어떤 말을 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그날따라 태양은 더욱 빛났고 모든 것이 지나치게 선명했다. 파지 줍는 노인의 리어카 위에 어린아이가 아이스크림 껍질을 버리려는 모습을 보고도 어머 우리 애기 착하네라고 읊어 대는 톰포드 선글라스를 쓴 아줌마를 보며, 이제야 그녀가 왜 우산보다 우비를 좋아하는지 알 것 같았다. 빨간 우비는 딱 오만원 권 사이즈로 접혀 있었다. 놈팽이에게 건넨 오만원권. 그녀가 건넨 오만원권 사이즈의 우비. 그 우비의 미키마우스의 눈은 왠지 무척 처량했고 그런 미키미우스를 보는 내 눈은 그녀의 마지막 모습을 볼 자격이 없다며 한동안 촉촉한 아디다스 신발만 노려봤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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