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태준 Nov 25. 2024

[단편소설] 무성애자의 화이트보드

소설인 듯하면서, 에세이인 듯한 /  에세이 소설

 한 달만이다. 다시 맞은 뻔한 하루. 복잡한 전선처럼 얽히고설킨 수면 신경이 다시금 제 기능을 발휘한 아침. 몸을 일으키고 목을 좌우로 돌린다. 증기기관차가 리드미컬하게 속도를 올리듯이 시뻘건 피가 상하종횡 이동하며 감각을 일깨운다. 발가락을 몇 번 꼼지락거린 후 침대에서 내려온다. 이윽고 알람이 울린다. 바흐의 미뉴에트. 날랜 스키선수가 세찬 바람을 가르며 백 분의 일 초를 단축하기 위해 수천 번 훈련한 스키장 트랙 마냥 뇌 어딘가에서 기능하는 수면 신경 경로가 다시금 제자리를 찾은 오늘. 지긋지긋하지만 살아있는 시간. 08:00.

 약봉지를 뜯고 벤조다이아제핀을 선별하여 검정 통에 넣는다. 통을 흔드니 제법 묵직한 게 쉬 사오십 알은 될 듯하다. 남은 항우울제와 비타민C를 입에 털어 넣은 후 냉수를 마시며 토스트를 굽는다. 늘 그렇듯이. 프라이팬에 20초, 전자레인지에 30초. 작은 계란 두 개를 풀어 부엉이 눈처럼 동그랗고 허여노란 달걀 프라이를 만든다. 까끌하게 데워진 토스트 위에 누우런 슬라이스 치즈를 올리고 미국산 땅콩 잼을 바른 뒤 달걀프라이 두개를 얹는다. 뜨거운 프라이에 치즈가 살짝 녹아내린다. 그 사이 커피 머신에 캡슐을 넣고 50%의 인텐스로 커피를 내린다. 음미랄 것도 없지만 이 시간이 좋다. 다시 맞은 일정한 아침 식사. 느직느직 멜팅치즈피넛에그후라이 빵을 씹고 싸구려 캡슐 커피를 홀짝인다. 한입에 두 모금. 그렇게 8바퀴. 식사 끝. 시계를 본다. 08:30. 돌아온 일상.

 용변을 본 후 샤워를 하고 옷을 입는다. 패션에 민감한 누군가에겐 고민거리일지 모르지만, 내 경우 위아래 걸치는 데 채 일 분이 걸리지 않는다. 간절기 금요일이면 어김없이 입는 어텀 프라이데이 에디션. 연청바지, 파랑 로고가 돋보이는 가죽 스니커즈, 카키색 오버 후드. 그거면 족하다. 더 이상 어떤 옷을 입고 그녀를 만날지, 전신거울 앞을 기웃대지 않는다. 두툼한 검정 가방을 메고 노란색 Hummer 미니벨로 자전거를 탄다. 얼마 전 구매한 고급 향수를 집었다가 이내 내려놓는다.

 역 앞 자전거 거치대에 범블비(노랑 미니밸로)를 묶고 1호선에 올라탄 시간은 09:02분. 2분의 지연. 하지만 이 정도의 오차범위 내에서 기능하는 지하철에 감사한다. 버스에 대해 말하자면. 음. 아마 버스로 가면 십 분은 쉬 단축되겠지만. 언젠가 버스가 매캐한 연기를 뿜으며 파김치처럼 늘어진 적이 있던 후부터였나. “십 분이면 다음 버스가 올 거니까요.”라는 운 전수의 말 때문이었나. 결국 다음 버스는 삼십 분 후에나 그것도 노아의 방주처럼 꾸역꾸역 불특정 다수를 채워서 왔다. 그 방주 같은 두 번째 버스의 운전수는 얍실하게 입술을 올리며 마찬가지로 “십 분이면 다음 버스가 오니까요. 에헴. 뭐, 살다 보면 그럴 수도 있지 않겠슈.”라고 말했다. 그 이후부터 버스보단 지하철을, 아니 지하철만 타게 되었다.     


 도서관 사서에게 책을 건넨 시간 09:40분. “연장할 수 있나요.”

 예약된 책이라 연장은 어렵다는 대답. 무표정한 얼굴로 아치형 계단을 내려간 후 강의동 옆에서 달짝한 자판기 커피를 뽑으며 담배를 피운다. 팔뚝만한 특대형 제로 콜라를 들고 강의실에 도착한 시간. 09:50분. 뻔한 프라이데이의 루틴. 덕분에 마음이 안정된다.     


 강의실은 하얀색 콜로세움을 축소하여 반으로 잘라 놓은 구조이다. 학생은 관객 위치, 교수는 중앙에서 관객, 아니 학생들을 쳐다보며 이러쿵저러쿵하는 비대칭적 구조라 학생이 벌떡 일어나 춤을 추는 게 아니라면 교수는 알 길이 없지 싶다.

 들어서는 학생들은 하나같이 뒤쪽부터 가방을 올려놓는다. 어떤 학생은 한자리엔 가방을, 한 자리엔 커피를, 한 자리엔 큼직한 휴대용(?) 거울을, 마지막 끝자리엔 노트북을 올려 둔다. 그리고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메시지를 보낸다. 참 잘했어요.

 수강생은 100명을 상회했다. 학생 절반은 노트북을 만지작거리고 뒤편의 삼대 사백은 너끈히 올릴 듯한 남학생 두 명이 허리를 조금 숙이고 김밥을 씹어댄다.

 이윽고 교수가 도착한다. 누군가 안녕하세요, 라고 하면 뱀과 싸우는 고양이의 스프링 탄성처럼 좋은 아침입니다, 라고 말해야겠다는 듯한 씰룩거리는 입술. 주변을 신경 쓰지 않는 척하며 빠르게 좌우로 데굴거리는 작은 눈. 찢어진 청바지에 연갈색 블레이저. 운동을 한 듯 안 한 듯 늘어지지도 탄력 있지도 않은 뱃살과 번갈아 가며 쓰는 금테 혹은 무테안경. 포마드로 단장한 리젠트 파마인지 뭔지 하는 뻔한 머리 스타일. 영미권에서 유학 생활을 마치고 온 40대 후반(으로 추정된다). 한국화된 아메리카식인지, 아메리카화 된 된장인지 도무지 헷갈리는 타입. 그간 내가 겪은 뻔하디 뻔한 영미권 유학파 교수의 전형.

 역시나 티피컬한 강의가 시작된다. 그 티피컬함과 함께 시간이 흐른다.     


 강의명은 <하이트의 ‘옳음’과 주디스 버틀러의 ‘다름’ 이해>. 비싼 교재를 산 만큼 집중하려 했지만, 교수는 십여 분간 당신의 미국 유학 시절 에피소드를 읊어댔다.

 “핫도그를 시키는데 말이죠. 그 미국 핫도그의 크기는…. 아 그리고 처음엔 핫도그라고 했는데…. 그래서 핫독이라고 했습죠…. 결국 홋똑으로 정리되었답니다. 여러분 홋똑입니다. 홋똑. 크크.” 차라리 핫도그를 주문할 때 필요한 동북 아시아인의 발음에 대하여. 라고 강좌명을 짓지 그랬슈 교수 양반.

 점심은 가볍게 홋떡이나 먹을까 생각하면서 핫도그와 호떡 중 뭐가 좋을까 고민하던 차 드디어 그녀가 헥헥대며 도착한다. 한 달 만이지만 그녀는 예전과 같은 그녀일 뿐이다. 나는 속으로 몇 번이고 다짐한다. 소리 내지 않고 심호흡을 한다. 흡흡흡. 10:40분.

 “분명히 인문대였는데…. 이상하지 않아?” 그녀의 첫마디. “음….”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슬쩍 그녀를 쳐다본다.

 화이트 스키니진, 주황색 오버 후드, 마르고 작은 체구. 바람에 날려 조금 헝클어진 웨이브 헤어가 어깨를 스친다. 일전엔 스트레이트였는데. 화장기 없는 듯한 하얀 얼굴. 약간 야위었나. 작지도 크지도 않은 눈이지만 유독 짙은 아이라인이 묘하다. 덩치에 안 어울리는 카모풀라주 나이키 가방을 길게 연결된 아치형 책상 위에 내려놓는다. 동시에 풍기는 시트러스 향 탓인지 앞에 앉은 남학생이 슬쩍 고개를 돌린다.

 “분명히. 인문대였다고.” 강의실을 헷갈린 그녀의 대빨 나온 입술.

 “뭐. 출석은 아직이야. 끝날 때 부르려나 봐. 숨 좀 식혀.” 말하며 제로 콜라를 건넨다. 꼴깍꼴깍. 대수롭지 않다는 듯 같은 빨대로 콜라를 들이켜는 그녀. 교수는 여전히 아메리카 에피소드로 열을 올린다. 그렇게 비싼 강의가 흘러간다.          





 

 그녀와 나는 우연히 친해졌다. 첫 번째 우연은 행정팀 착오로 둘만 신입생 OT 연락을 받지 못한 것. OT를 다녀온 다른 동기들과의 무언의 벽을 느낀 우린 둘만의 핫라인을 만들었다. 첫 학기 수강 신청이 정확히 일치한 게 두 번째 우연. 같은 자전거 동아리에 가입한 게 세 번째 우연.

 타 학과 남학생들이 그녀에게 고백하지 않은 이유가 나 때문이라는 말도 여러 번 들었다. 우 린 항상 어울려 다녔으니까. “선배, A 누나랑 자전거 여행 좀 다녀와도 돼요?” 뭐 이런 식. 시간이 갈수록 나는 그녀에게 끌렸다. 자유로우면서 유연하게 삶을 타개해 나가는 들판의 야생화. 그녀는 은은하고 강인했다. 텝스, JLPT, 하프마라톤 완주, 오시오 코타로의 WINGS 연 주, 자전거로 부산 가기, 올 에이플러스 학점(요건 실패했다) 등 그때그때 최선이라고 여기는 것을 정해진 기일 안에 이루어내곤 했다. 프랭클린 다이어리 사의 모범사례로 뽑혀도 손색없는 계획, 실행, 달성, 반성 어쩌구의 프로세스. 왠지 그녀가 말한 것은 다 이루어질 것만 같았다. 그녀는 세상 풍파를 요리조리 이용하며 골인 지점을 향해 능숙하게 항해하는 일류 요트 선수 같았다. 요컨대 목표지향적이고 실용적인, 최소비용 최대효과를 얻어내는 부류의 인간이었다.

 반면, 나는. 말하자면 낭만파에 속했다. 대학 시절 뭘 이뤄내냐에는 쥐똥만큼도 관심이 없었다. 풀 내음 그득한 도서관 앞에서 관심 가는 책을 휘적대는 게 대학생의 본연이라고 생각했다. 멍하니 본관 분수 앞에서 샌드위치와 커피를 마시는 시간이 일과의 대부분. 그뿐이었다. 책과 커피와 담배만 있으면 그 이상은 바라지 않았다. 일상을 지탱하는 적당한 루틴은 시간을 사건으로 만들며 계절을 변하게 했다. 진리, 불변하는 것, 확실한 기준, 옳고 그름이 뭘까에 대해 생각하다 보면 고작 한 시간도 지나가지 않았고, 그럴 때면 나란 녀석은 홀로 다른 세계에 내던져진 돌연변이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뭔가를 할까 하는 생각이 들면 또 다른 내가 스윽하고 나타나 초를 치곤 했다. “무엇을 위하여 그렇게 황황하게 뛰어다니시나요?”

 <우울증. 이라고 봐야죠> 같은 대학 정신과 전문의는 무책임하게 말했다.

 <당최, 시간이 안 가요. 그것만 좀 해결하고 싶은데> 영원 같은 하루.

 <작은 것부터 하나씩 해보죠. 이 약은 꼭 드시고> 벌레 같은 글씨체로 휘갈겨 쓴 처방전을 건넨 의사. 좀처럼 흐르지 않는 시계를 보며 처방받은 약을 먹고 숨을 들이켜면 어김없이 그녀가 옆에 앉아 이렇게 말하곤 했다.  “그래서 어쩔 건데. 당장 어쩔 건데.”     


 지난달 철학과 정기 MT. 학자금 대출이 1억을 넘었다며 술이나 대판 마시자는 그녀의 권유에 이끌려 간 강촌 엠티촌. 가을의 보슬비, 적잖은 한기, 연신 들이켠 막걸리. 종이에 적힌 단어를 몸으로 표현하는 게임을 하던 중이다.

“잠깐만, 24학번 얘네 어디 갔어?” 다급하게 좌우를 훑으며 학과대표가 말한다. 세 명이 없다. 화장실에도, 바비큐장에도. 아무튼 근처엔 없다.

 핸드폰도 두고 갔네요. 어쩌죠, 노땅의 오블리주를 아시나요. 라는 눈빛이 우리를 향한다. “걱정하지 마. 우리가 찾아볼게. 여긴 몇 번이나 와봤으니까. 대충 뻔해. 그억” 나오는 트림을 억지로 삼키며 부끄러운 듯 눈을 내리깔고 나에게 말하는 그녀. 가자. 후레쉬 챙겨.     


 우리는 갈대밭 자전거 도로에서 손을 잡았다. 밤이니까. 위험하니까. 손 정도야 뭐. 그리고 십 분 정도 더 걸었을까. 순간 그녀는 내 볼에 입을 맞추었다. 무빙뽀뽀랄까. 어쩌구저쩌구. 속삭인 것 같기도 한데 움적거린 탓에 잘 알아들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녀의 귓불에서  새나오는 듯한 시트러스 향은 잊을 수 없다. 공간이 출렁인다. 오감이 활연해진다. 찌르레기 소리가 이렇게 컸던가. 찌찌찌. 심장이 터질 것 같다. 목석같이 서 있다. 흡흡흡. 그녀 또한 멈춘다. 여전히 마주한 두 손이 매개가 되어 무수한 메시지가 스쳐 간다. 수많은 메시지는 맹목적으로 휘몰아치는 토네이도처럼 존재하는 동시에 낚아챌 수 없다. 나는 지금 무엇을 알 수 있는가, 그리고 무엇을 해야 하는가, 무엇을 바랄 수 있는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한동안 말이 없다. 괜히 달을 찾는다. 일그러진 강물 끝에 달빛이 출렁인다. 강이 먼저일까? 달이 먼저일까. 언제부터 달이 세 개나 있던가. 비행체마냥 달빛이 종횡한다.

흡흡흡. 좀처럼 호흡이 돌아오지 않는다. 흐으읍 흐으읍 흐으읍. 다시, 깊게 내쉰다.

얼마나 지났을까. “음…. 난”이라는 말이라도 해야겠다고 결심한 순간. 우왕좌왕하던 빛이 열을 맞춘 후 21세기 폭스사의 빛줄기처럼 우리 둘을 하이라이트 한다. 신입생 세 명이 외친다. 선배 선배.

그들은 “술 깨러 산책 좀 다녀온 건데요 뭐. 이제 성인인데 그렇게 난리 날 줄은 몰랐답니다.”라고 얼버무렸다.     


 이후, 삶을 지탱하던 규칙화된 경로는 시트러스 향으로 하얗게 뒤덮였다. 수면 유도제를 먹어도 도통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그래도 벤조다이아제핀만큼은 필사적으로 걸러냈다.

 센서가 고장 난 로봇 청소기처럼 한참을 침실과 거실을 오가다 모서리에 발가락을 부딪치기도 했다. 원체 뭘 하는 게 좋을지 명쾌하게 결정하지 못했지만, 그때마다 적당한 생활패턴이 무의미한 시간을 사건으로 만들어 주었고 그 덕에 하루하루를 버텨나갈 수 있었다. 하지만 MT 이후, 다시금 나라는 인간이 어떤 인간이었는지, 어떤 것을 지향해야 하는지 가늠하기 어려워졌다. 리듬감을 잃고 루틴에도 균열이 생기자 일주일 치 식재료 주문도 깜빡했고, 뭘 먹을지 결정하는 데도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다.

 좋아하는 소설도 읽을 수 없었다. 책을 펼치고 문장을 읽으면 지각한 글자를 인식하기 전 그 형상은 사라지고 말았다. 페이지를 넘기면 전 내용이 생각나지 않아, 다시 전 페이지로 돌아가기를 수차례 반복했다. 다시금 세계에서 멀어지는 느낌. 그녀의 시트러스 향이 대전제로 기능할 때마다, 영원이자 무인 공허한 세계에서 정처 없이 떠도는 실향민이 된 것만 같았다. 책 장 선반 구석에 있는 벤조다이아제핀에 자꾸 눈길이 간다. 뒤에 꽂혀 있는 책은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 다시 마음을 다잡는다. 흡흡흡.

 며칠 후 ROTC 임관시험 대비 특별 합숙 훈련이 시작되었다. 소대별로 학군단 강당에 틀어박혀 시험을 준비했고, 강제된 목적을 부여받고 조금씩 보통의 하루를 보낼 수 있었다. 여러모로 ROTC는 유용하다.

 입소 전 <나 시험 잘 보고 올게. 합숙 훈련이라 핸드폰은 못 쓸 거야. 나중에 연락하자>, 라는 문자를 남겼지만, 그녀는 아무 대답이 없었다.

 임관시험을 마치고 마지막 야간행군을 앞둔 전날. 그러니까 어젯밤. 퇴소하자마자 핸드폰을 켠다. 즐겨찾기 목록에 찍힌 점 하나. 그녀의 바뀐 메신저 상태 창이 보인다.

<그럴 수도 있지….>

 나도 모르게 소리 내어 세 번 되뇐다.

 그럴 수도 있지. 그럴 수도 있지. 그럴 수도 있지.

 그리고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오늘 아침에서야 나는 뻔한 하루의 루틴을 되찾았다.          






 사소한 착오였다. 강의가 끝나고 편의점에서 크림이 잔뜩 든 빵과 아이스 커피를 사서 세미나실에 들어 온 시간 12:40분.

 불현듯 생각났다. 출석 싸인. 싸인을 깜빡했다. 교수는 강의 시작 전 ‘늦은 사람’은 강단에 놓인 명부에 싸인을 하라고 했다. 아닌가. 늦은 사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싸인을 하라고 했나.

 “므슨 사람은 강단 출석부에 싸인을 해주세요.” 이런 개떡 같은 발음. 모든 일까 늦은 일까. 이 범박한 기억력. 왜 그 교수는 언제나 말머리를 삼키며 얘기하는 거지. 핫똑인지 훗떡인지 호또근지 때문인가. 빌어먹을 잉글리시.

 내가 잘못 들은 걸까. 돌이킬 순 없다. 결과적으로 나도 그녀도 싸인 따윈 깜빡하고 강의실을 나왔다.

 별말 없이 교재만 쳐다보는 그녀에게 홋똑 홋똑하며 실없는 농을 건네려다가 교수의 ‘여기까지고요. 다음 주 텍스트는…’ 이라는 말을 뒤로한 채 인문대 편의점으로 향했다. 나는 크림빵과 커피를, 말없이 따라온 그녀는 잠시 주저하다가 샌드위치와 보리차를 골랐다. 함께 자주 가던 도서관 앞 테이블엔 가을 정취를 느끼려는 학생, 혹은 일반인이 득실댔다. 세미나실이나 갈까. 그러지 뭐. 흡흡흡. 지독한 시트러스 향.     


 그녀는 학점에 민감했다. 전액 장학생 타이틀이 자신의 레종 데트르인 마냥 온갖 열과 성을 들여 학점을 관리했다. 전주 H 중 1등, 서울 D 외고 진학. 엘리트 코스를 밟았지만, 고등학교 성적 경쟁에서 밀려 잠시 방황한 탓에 원하던 대학에 가지 못했다. 대학에서만큼은 탑을 유지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 걸까. 교수 스타일을 알기 위해 수강 전 여러 번 이메일을 보내며 ‘학점 따기 체크리스트’로 종합 분석을 한 후에야 강의를 확정 지었다. 행여라도 자신이 약할 것 같은 강좌는 최대한 피했다. 예를 들면 분석철학처럼 로직 트리로 시험을 보는, 소위 말하는 수학이 많이 개입되는 과목은 그녀의 리스트에서 제거되었다. 전 학기 졸업요건을 충족하기 위해 전공필수 <논리학> 수업을 어쩔 수 없이 들었던 그녀. B+가 나와 한참을 교수와 씨름하다 결국 A-를 받기도 했다. 그로 인해 1등에게 주어지는 전액이 아닌 2등에게 주는 반액 장학금을 받게 되었다.

 “논리학 따위. 그딴 규칙 세상 어디에도 안 통하는데 말야.” 맥주를 마시며 그녀는 툴툴댔다. 그러면 인류는 달에 갈 수 없었어. 라고 잠자코 나는 생각했다.

 “원인과 결과. 이런 것도 다 사후적인 합리화야. 그 반대가 훨씬 많을걸. 자연 논리, 고전역학 그딴 걸 아직까지 세상 이치라고 가르치는 게 무슨 의미냐는 거지.” 뚱뚱한 고양이가 반달 모양의 눈웃음을 짓고 있는 분홍 손거울을 휘휘 저으며 말하는 그녀. 볼이 분홍빛으로 물든다.

 그러면 우리는 뭘 주장할 수 있지?, 생각하며 빈 맥주잔을 쳐다본다.

 “그리고. 음. 그러니까. 모든 건 우발적인 거야. Kraft. 충동. 쇼펜하우어가 맞았어. 그걸 요리조리 예쁘게 포장하면서, 이기적인 것들을 조절하기 위해 말하는 거지. 뭐 뭐는 기본적인 거다. 해야 하는 거다. 옳은 거다. 따위로 말야. 근데 그런 게 있어?”

 지금 당신이 말하는 건 참(T)이어야 그 주장은 성립된다구. 라고 반문하려다 말을 바꾼다. 오백 한잔 더요.

 “그니까, 도덕 수업도 없애야 해. 누가 뭐가 옳다고 무슨 근거로 그렇게 확신에 차서 말하냔 거야. 대학처럼 이런 얘기, 저런 얘기가 있다. 이렇게 윤리학만 가르쳐야지.” 목소리가 커진 그녀. 나는 주위를 한번 쳐다본다.

 “보라니까. 인권 어쩌구도 게임의 룰일 뿐이야. 힘 있는 녀석들이 나름대로 만들어낸, 지들이 배부르면서 적당히 착해 보이도록 만든 룰이라고. 인간이 왜 존엄한데?” 그녀의 일갈. 잠시 숨을 고른 후 젓가락으로 야채볶음을 휘젓는다.

 북한이 패권국이었다면? 생각한다. 머릿속이 혼란하다. 너무 어려운 주제. 수학 과학은 참 쉽다. 인문학은 도대체 칸트 이후로 무슨 발전이 있었는가. 생각하다 말한다.

 “그래서 다시 돌아가야지. 고대 그리스로. 확실히 아닌 것부터 없애 나가야지. 적어도 그게 참이 아니라는 건 안다는 정신이랄까. 그러면 좀 쉽잖아.”

 그녀는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본다. 은근한 미소를 띤다. 그렇게 정적이 흐른다. 이윽고 그녀가 말한다. 그래서 뭐가 아닌데? 뭐는 진짜 진짜 아닌 건데?

 그 학기의 전액 장학생은 나였다.     






 결론을 말하자면 하이트가 어쩌고저쩌고하는 아메리칸 된장 교수의 강의는 출석에 민감했다. 시험이 그런대로 쉬워서 동점자가 나오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때 변별 요소는 출석밖에 없다. 누가 강의실에서 김밥을 먹었는지는 알 길이 없으니까. 애당초 김밥을 먹었다고 A+ 를 안 줄 수도 없고. 그건 비논리적이다. 결국 이 강의에서 A+을 받기 위해선 출석에 스크래치가 없어야 한다. 나도 그녀도 이 사실을 얼마 전에 알게 되었다.

 망설여진다. 자기소개서를 수십 번 퇴고하며 미간을 찌푸리는 그녀의 눈이 매섭다. 옆에 놓인 플래너를 슬쩍 본다.     


1순위. S증권 – 초봉 8000+@.

S(강점): 모의투자 대회 3등 경험.

W(약점): 인턴 경험 없음. 올 A+실패.

O(기회): (논오피셜) 서울 지점. VIP카운터. 젊은 여성, 외모.

T(위협): 신규 채용인원 감소. (논오피셜) SKY 할당 비율 높음.     


 한겨울 농기구 창고에 뱀이 똬리를 틀고 쉬쉬대듯이 취업을 앞둔 그녀는 날카롭고 어그레시브하다. 우리는 불경기 취업시장을 뚫고 직장인 명패를 달기 위해 애쓰는 4학년 2학기 생일 뿐이다. 그럴 수도 있는 이슈가 있었던 친한 친구일 뿐이다.

 솔직하게 말할까. 사실 출석 싸인을 해야 했어. 너무 상심 마. 나도 깜빡했어. 라고 얼버무릴까. 통할 리가 없다. 가을 햇살이 세미나실에 슬며시 들어오며 따사한 용기를 건넨다. 사실은 사실이고 거짓은 거짓이다. 그녀는 어쨌든 지각했다.

 좀처럼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겨드랑이가 축신하다. 하지만 되뇐다. 친구끼리 그럴 수도 있지.

 “출석 싸인을 해야 했는데. 깜빡했네. 쏘리.”

 그녀는 한동안 가만히 있다. 신중하게 표현을 고르는 것 같다. 한 달 전 강촌에 시트러스 향을 풍겼던 그녀. 아마도 (친구끼리) 그럴 수도 있지. 라고 말한, 아니 그렇게 적어 놓은 그녀. 긴장된다. 뻘쭘한 강아지가 코를 핥듯이 나는 오른손으로 하염없이 머리를 넘긴다.

 그녀가 무슨 말을 하려던 찰나, 얼굴을 알 듯 모를듯한 신입생이 들어온다. 지난 학기 ‘역사철학’ 강의실이 몇 호였냐고 물어본다. 아마 강의실의 규모로 강의의 인기를 확인하려던 의도였지 싶다. 표본이 많으면 A 따기 쉽다고 생각했을지도.     

 

“종합강의동 403호” “인문대 304호”     


 잠시 서로를 쳐다본다.

 우리 둘 다 진부하게 ‘내 기억에 의하면’이라는 표현을 하지도 않는다. 단정한다. 그 단정적인 문장은 확고한 명제가 되어 참 거짓을 판별하기 위한 터가 되어 둘 사이에 비집고 들어온다.

 “흑판에 판서하면서 ‘차이와 반복’ 발제했잖아. 그것도 니가” 평소보다 다소 높은 톤의 그녀.

 “화이트보드에 불어로 리좀 설명한 교수님. 기억 안 나? 아무도 이해 못 했지만” 애써 차분 한 척 답한다.

 신축 종합강의동엔 화이트보드가 있고, 인문대에는 흑판이 있다. 정리하자면 나는 종합강의 동의 화이트보드 파이고 그녀는 인문대의 흑판 파이다. 둘 중 하나는 맞고 하나는 틀리다. 그것은 하나의 논리이고 이 세상을 지탱하는 규칙이다. 일명 모순율이라고 하는. A는 동시에 not A일 수는 없다고 하는 논리 규칙. 학기 중 강의실을 바꾸었던 적이 없다는 데에는 둘 다 동의한다. 그렇다면 문제는 누가 맞고 누가 그른가이다.

 직전 강의 계획서를 살펴본다. ‘강의실 미정’이라고 쓰여 있다. 누가 같은 수업을 들었을까 기억을 더듬어 본다. 둘이 떠오른다. 졸업한 선배 A, 자퇴한 동기 B. 전공수업이자 신입생 교양수업이었던 탓에 수강생의 대부분은 타 학과생이었다.

 본의 아니게 전란을 몰고 온 후배가 말했다. “강의 사진 찍은 거 없어요?”

 좋은 생각이다. 하지만 철학과엔 고루한 자존심 같은 게 있다. 교수의 언명을 줄줄이 필기하거나 녹음하거나 칠판을 향해 핸드폰 셔터를 누르는 일은 없다. 진리와 자유 찾는 철학도의 허세랄까. 하여, 강의 사진 또한 유효한 증인이 될 수 없다.

 범인을 쫓는 강력반 형사처럼 다음 해결책을 생각한다. “교수님께 전화하자.”라고 말하는 나.

 “뭘 그렇게까지 해. 쪽팔리게. 말도 안 되는 소리 말고. 인문대야. 확실하다니까. 수업 끝나고 문과대 학생 식당에서 밥 먹었잖아. 출석 사인도 깜빡하는 주제에” 그녀는 날을 세워 말한다. 원래 이런 식으로 말하는 타입은 아닌데.

 아니라구. 흑판은 논리학 수업이야. 역사철학은 화이트보드라고. 아마도.

 솜씨 좋은 장인이 손 본 예리한 카타나처럼 변주된 몇 마디가 서로를 찌른다. 말은 어떤 칼날보다 날카롭다. 질적으로 달라진 세미나실. 신입생이 뭐라 뭐라 하는데 도통 들리지 않는다. 나는 강의 때 줘들은 불교 용어를 들이대며 진리는 화이트보드라고 외쳐댄다. ‘심부재언 목불견’. 마음이 어딘가에 향해 있지 않으면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한다. 어쩌구 하면서 그녀의 감각 이 오류일 수 있음을 수차례 논증한다. 역시 통하지 않는다. 그녀의 반론.

 “넌 맨날 따라만 다니는데. 제대로 기억하겠어?”     


 둘 중 한 명이라도 “그냥 그런대로 져주지 뭐”, 라는 마음을 품었다면 일이 이렇게까지 진행되진 않았겠다. 보통 그렇게 언쟁이 끝나니까. 하지만 왠지 그날 우리는 져줄 마음이 없다. 친구끼리 그럴 수도 있는 게 있고, 그럴 수도 없는 게 있다. 친구끼리 그럴 수도 있다고 말하고 단순히 끝내버리는 실용주의를 찬양한다.

 하지만 화이트보드와 흑판은 한낱 오피니언이 아니다. 그것은 센서블하고 옵젝티브한 물리적 확고함이다. 친구끼리 -입이 아닌 볼따구일지라도- 키스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것 또한 확고한 명제이다. 그렇다. 나는, 지금, 이 순간은 확고한 인간이다. 확고해지겠다. 이 전쟁터에서 나는 자립한다.     


 삽시간이다. 그녀는 나에게 욕을 하고 나도 그녀에게 욕을 한다. 내가 먼저 말끝에 “그만 좀 처 우겨라 이…. 싸”라고 한 것 같기도 하고. 하지만 ‘ㅆ’은 하나의 형태소일 뿐이다.

 이후 그녀는 뒤의 형태소를 음절로, 나는 어절로, 그녀는 문장으로 발전시킨다. 선후 개념이 사라진 세계에서. 상대를 깔아뭉개는 표현들이 난무한다. 대선 후보들의 비아냥과 투기꾼 유튜버의 오만한 표정이 콜라보되어 “명령만 따랐을 뿐인데요”, 라고 말하는 전범 아이히만의 싱긋 비열한 웃음처럼 서로의 뇌관을 자극한다.

얼마 전 출산율 특집 다큐에서 본 신생아의 찡그린 표정은 과연 기쁨일까 슬픔일까 생각한 적이 있다. 그녀의 표정이 신생아처럼 복잡쭈글하다. 치켜든 눈과 떨리는 입술의 공명. 입술이 몇 차례 더 떨린다. 이윽고 그녀는 –그녀의- 손거울을 바닥에 내친다. 바닥에 튀며 유리 조각이 만개한다. 텀블링한 뚱뚱한 고양이 얼굴의 손거울이 학생회실 벽에 붙은 ‘제23회 연합 콜로키움’ 포스터까지 튄다. 쌰악하고 공기를 가르는 소리. 순간 오른 눈이 욱신거린다. 거미줄처럼 얇은 송곳이 눈덩이 어딘가를 찌른 듯한 기분 나쁜 비릿함.

 검붉은 게 오른 시야를 막는다. 욱씬하다. 멀쩡한 왼 눈을 크게 뜬다. 탁자 위 그녀의 핸드폰이 보인다. 이딴 건 필요 없지. 한 달간 읽씹만 하던 그녀의 하얀 핸드폰을 바닥에 내던진다. 지상 최후의 딱지치기 결정전마냥 주저 없이 내친다. 어깨와 팔꿈치와 손목의 모든 스냅을 유기적으로 일체화한 스로우. 처음으로 플립액정이 두 동강 나는 광경을 본다. 그녀는 분주히 시선을 돌려대며 무언가를 찾는다. 이런저런 소동으로 탁자에서 떨어져 있는 내 검정 핸드폰을. 그녀는 나의 검정색 최신 아이폰을 다람쥐가 도토리를 쥐듯 소중히 움켜쥔다. 그리고 죄 없는 ‘제23회 연합 콜로키움’ 포스터에 박친다. 스로우에는 자신이 없는지 일관되게 수차례 박친다. 비정형적인 입술 모양. 나는 그녀의 손을 잡는다. 핸드폰 구출 작전. 헤이 브로 하듯이 마주친 두 손. 동시에 마주친 두 눈. 그녀의 동공에 비친 나는 빨갛다. 괜찮다. 친구끼리 그럴 수도 있지.

 그녀는 여전히 내 핸드폰을 벽에 내친다. 에라 모르겠다. 나도 냅다 그 손을 잡고 핸드폰을 콘크리트 벽에 박찬다. 그래 한번 개박살 나보자. 점차 검붉게 물든 오른 눈 때문에 시선이 고정되지 않은 탓일까. 수 초 후 핸드폰이 아닌 그녀의 손목을 정신없이 벽에 박치던 나는 맞은편 과사무실에서 출동한 선배에게 제압당한다. 그녀는 무릎을 꿇고 손목을 감싼 후 고개를 숙인 채 도통 일어나지 않는다. <정문 옆 K대 병원에 가요>. 신입생이 울먹이며 말한다. 동기 한 명이 내 눈을 살펴본다.

 괜찮아. 실핏줄 터진 거지 뭐. 이런 적 많아. -고등학교 복싱 동아리 시절 스파링 후 실핏줄 이 터진 적이 종종 있다- 흡흡흡. 숨을 들이켠 시간. 13:30. 병원을 향하는 그녀를 보며 생각한다. 잠깐, 그래서 화이트보드야 흑판이야? 그리고, 볼에 입맞춤하면 연인이야 친구야? 우린 지금 굉장히 중요한 이야기를 하는 중이라고.                    





 삐걱삐걱 돌아가는 세상. 오른 눈이 뿌옇다. 왼쪽 시야로만 걸으니 넘어지면서 걸어가는 것만 같다. 겨울철 군고구마처럼 뜨거워진 핸드폰은 전원이 꺼졌다 켜졌다를 반복한다. 절반만 살아있는 슈뢰딩거의 고양이처럼.

 엉거주춤 인문대 계단을 내려와 로비 의자에 털썩하고 앉는다. 무수한 (아마도) 이미지가 쏜살같이 스쳐 가지만 어떤 것도 포착할 수 없다. 반사되지 못한 가시광선처럼 내리쬐는 무언가가 검붉은 무로 흡수된다. 어떤 것도 확정하지 못하는 세계. 사건이 없는 시간. 어떤 사건도 없이 지나간 시간은 무화 된 영원이다. 확고함을 잃어버린 세계. 무한한 리버럴이 주는 그 공허함. 빌어먹을 벤조다이아제핀. 깜빡했다.

 핸드폰 숫자 1을 길게 누른다. 뚜르르르. 뚜르르르. “브로. 지금 수술 들어가야 하는데 좀 이따….” “잠깐만.” 나도 모르게 말이 튀어나온다.

 형. 정형외과지? 손 다친 애 한 명 갈 거야. 어떤지 문자로 알려줘. 바로. 그럼. 하고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는다.


 뚜르르르. 형이다. 뚜르르르. 뚜르르르. 뚜르르르. 받아 임마, 라는 의지가 담긴 벨 소리. 여보세요.

브로. 끊지 말고 들어. 형이 말한다.


 임마, 니 닥터가 나한테 말하더라. 자꾸 벤조다이아제핀 빼는 것 같다고. 근데 말야. 전에도 몇 번이나 말했지만, 벤조다이아제핀 빼고 항우울제를 복용하면 오랜 습관은 굳어지고, 새로운 판단을 내리기 어려워져. 일부 우울증 환자들한텐 그런 임상 사례가 있다고. 우울증에 걸 린 무성애자 임상 결과에 의하면. 어쩌고저쩌고.

형의, 아니 입 싼 정신과 의사 –신고해버릴까- 의 말에 의하면 의미 불확정, 목표에 대한 공허감 등으로 우울감에 빠진 환자는 –그 원인이 유전자인지 뭐인지는 알 길이 없다지만- 항우울제와 수면제인 벤조다이아제핀을 함께 복용해야만 한다. 만약 벤조다이아제핀을 제한다면 뇌의 신경 경로에 이상이 생긴다. 얼어붙은 스키장을 하염없이 바라보기만 하는 스키선수처럼. 즉 시비선악, 미추호오의 가치판단이 어려워진다 이거지.

나는 답한다. 속으로.

 ‘형. 들었어. 몇 번이고. 근데 그걸, 망할 벤조다이아제핀을 먹으면 말야. 일단 대낮까지 퍼질러 자게 되고. 입을 헤 벌리고 이거도 좋고 저것도 좋고. 뭐 이런 게 돼. 영락없는 비합리적 낙천주의자랄까. 피아식별도 없는 돈키호테가 된다고. 산초도 우리 편이자 적이고, 풍차도 우리 편이자 적이고. 남자와 여자와 고양이와 다 함께 섹스해도 그럴 수도 있다고 말하는, 모든 게 다 허용되는 빌어먹을 판타지랜드라 이거야 형. 그리고….’ 순간 핸드폰이 꺼진다. 몹시 뜨겁다. 마지막 말을 내뱉는다. 밖으로.

 “모든 게 좋은 세계는, 빌어먹을 모든 게 그럴 수도 있는 세계는 말이지. 아무 경계선이 없으면, 나란 놈도 사라져버린단 말야.”

 말을 내뱉고 숨을 쉰다. 흡흡흡. 15:00.     

 먹지 않은 벤조다이아제핀 탓인가. 적어도 시트러스가 나풀대던 한 달 동안은. 나는 그저 누가 결정해 주기만을 기다렸던 게 아닐까. 약의 부작용이고 나발이고. 그래 봐야 내 대가리에 있는 뇌일 뿐인데. 덜떨어진 새끼. 여전히 혼란스럽다. 그녀가 나에게 상처를 준 것인지. 내가 그녀에게 상처를 준 것인지. 그녀는 나를 원했을까. 나는 그녀를 원했는가.

 우울증이 심해진 이후, 동시에 약을 선별적으로 먹은 이후. 나는 더욱 정해진 일과와 몇 가지의 (이미 정해진) 목표에 집착했다. 이 회사는 지원해야지. 저긴 별로야. 이 학회는 도움이 되지만 저기는 술판이야. 목표를 정해준 감독은 그녀였다. 물론 그녀 스스로 가열차게 외치고 다닌 것뿐이지만. 그런 스트레이트한 세계가 편했다. 아니, 적어도 시간을 흘려보내는 데 유효했다.

 학교의 커리큘럼, 학군단의 훈련, 취업 준비 과정, 학회의 스케쥴. 그리고 수백 번 반복한 일과. 멜팅치즈피넛에그후라이 따위의 뻔하지만 확고한 시간. 무화 된 세계에 채워진 기계적인, 그리고 수동적인 데생 작업. 깊은 심연에서 빼내 준 동아줄. 그렇게 나는 하루하루 살아갈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 그런 그녀는 없다. 나와 그녀의 세계는 분리되었다.

 눈이 욱신거린다. 통증이 몽롱한 정신을 일깨운다. 다시금 시간이 흐른다.


 할 일이 생각난다. 나는 무엇을 결정할 수 있는지. 아니 무엇을 해야만 하는지. 어떤 사건에 나를 던져야 하는지. 뻔하디뻔한 쳇바퀴 같은 타임테이블에서 벗어나 내가 할 수 있는 게 있다. 옳거니. 형한테는 말하지 않았지만. 나는 무성애자일지도 몰라. 화이트보드만 참이라고 믿는, 호오도 판단 못 하는 병신같은 놈이었지.          





 안대와 인공눈물을 사고 학군단실에 도착한 시간 16:00. 선임 동기에게 묻는다. 낮고 굵직한 목소리로. “야간산악행군. 후미 통제 그거 내가 할게.”

빡셀텐데. 어쨌든 땡큐. 근데 웬 안대? “그럴 수밖에 없으니까.”

뭔 개소리야. 이상한 놈일세. 무튼 고생해라. 수통에 쏘주 넣어 놨다. 두 시간 뒤야.     

부대 차렷. 경례와 함께 야간 급속행군을 시작한다. 18:00.

백칠십 중반, 바싹 자른 머리, 크리스마스 새벽에도 알몸 구보를 할 것 같은 이십 대 중반의 열혈 장교 김 중위. 그는 ‘통제단장’이라는 완장을 자랑스럽게 내보이며 좌중을 훑어본다. 임관시험 마지막 단계이니 잘하자. 오늘은 천천히 가도 돼. 어차피 우회할 거니까. 등 사전 교육을 하던 김 중위가 나를 빤히 본다.

 “귀관, 눈 괜찮나.” 억지로 낮춘 개폼잡는 목소리. 귀관은 개뿔. 절로 웃음이 난다. 틀에 박힌 뻔한 새꺄.

 “괜찮습니다. 살짝 부딪혔습니다. 후미에서 슬슬 따라가겠습니다. 낙오자 있으면 무전 부탁드립니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난다.     

 

 두 시간 후. P-96 무전 소리. 다소 지친 목소리의 김 중위. 원래의 얍살한 톤으로. “통제단장이다. 통제관들 지금부터 왼쪽 기슭 주의 요망. 여름 호우로 천장산 방공호에 매설된 지뢰가 떠내려왔다. 군단 강조사항이니 절대 들어가지 말도록. 아아. 다시 한번 말한다. 호우로 유실된 지뢰로 기존에 가던 A 길을 우회한다. 소요 시간 삼십 분 정도 지연될 예정. 이 상 전달 끝.”

 이미 알고 있던 사실. 어젯밤 선임 동기가 단체메신저로 전달한 내용이었다.

 지금이다. 핸드폰을 켠다. 켜질 확률 반반. 켜졌다. 몹시 밝게 빛나는 사과 모양. 페이스 아이디 실패. 비밀번호를 누른다. 0이 잘 눌러지지 않아 3번만의 성공. 평소보다 긴 로딩. 아 여긴 산이니까. 에베레스트에선 시간도 더 빨리 가니까. 빌어먹을 상대성 이론.     

 두. 두. 두. 두. 진동이 토해내는 문자 메시지들. 꺼지기 전에, 형 문자를 찾는다. 자꾸 오는 새로운 문자, 깨어진 액정 탓에 누구 문자인지 알아보기 힘들다. 괜찮냐, 무슨 일이냐, 뭐 이딴 뻔한 내용이다. 그녀의 메시지는. 없다. 형의 메시지는. 드디어 찾았다.

 <그 여학생 말야. 단일신경병증인데. 오른손가락이 어쩌구. 영구 장애 가능성도 없진 않아. 최악으로 보면 반반 정돈데.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대체. 이거 심각해 임마. 일단 전화해> 역시 우리 형. 반반이라 이거지.

형이 보낸 다른 문자는 없나 확인하다 두웅하고 막 도착한 문자를 나도 모르게 터치한다. 발 신자 D 안경.     

 <고객님. 오후 2시 안대, 선글라스 구매 건으로 연락드립니다. 검사 결과 좌시는 0.8입니다. 우시는 시신경이 없다고 나와서요. 착오가 생긴 듯하니 조속한 시일 내 재방문 부탁드립니다. 불편을 끼쳐 죄송합니다. 감사합니다. -밝아진 눈, 밝아진 세상, D 비치 안경점->     


 산바람이 분다. 검은 입김. 거무튀튀한 낙엽이 산바람에 흐드러진다. 무채색의 숲. 왼쪽 눈은 정상일 텐데. 여튼 세상은 검다. 검어진 눈, 검어진 세상, 새로운 세계. 들고 있던 경광봉을 내려 본다. 검정 빛이 요란하게 점멸을 반복한다. 검은색도 여러 가지 색이 있다. 커피 인텐스처럼. 제각각의 농도로 채색된 검은 세계. 확고함을 잃은 세계. 그래서 진짜 아닌 게 뭔데. 진짜 진짜 아닌 게 뭔데.

 찌찌찌, 알 수 없는 곤충이 내 세계에서 꺼지라는 듯이 어그레시브하게 울어 댄다. 다수라 이거지. 니들이. 다수라고 옳은 게 아니라 이거야 이것들아. 어딘가에서 나타난 뚱뚱한 산고양이. 이 녀석은 검붉다. 그리고 말한다. 그럴 수도 있지. 냐옹.

 수심 200m 압력도 견디는 무브먼트 시계를 본다. 23:30. P-96 무전기의 전원은 꺼져 있다. 그녀의 손을 세미나실 벽에 내친 내 빌어먹을 손에 의해. 다시금 주변을 둘러본다. 천장산 지뢰 지대 옆길을 우회한 후보생 동기들이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또다시 모든 것이 무화 될 것만 같다. 졸졸 그들을 따라가야 할 것만 같다. 차려, 경례, 앞으로 가, 라는 유혹에 멈칫한다. 그녀의 굽어진 손을 생각한다. 강촌의 갈대밭과 대빨 나온 입술이 생각난다. 어디선가 풍기는 시트러스 내음. 벽을 치던 그녀의 눈에 비친 나는 울고 있었다. 그녀도 울고 있었다. 아마도.     

 

 23:50. 수통을 열고 이내 들이킨다. 깔끔한 원샷. 이즈백의 알코올이 세상을 덮는다. 그리고 안대를 벗는다.  오른쪽 눈을 뜬다.


 어딘가에서 나타난 아메리칸 된장 교수.

 “옳음이냐 다름이냐 그것이 문제라니까요. 홋똑홋똑.” 들뢰즈가 나타난다.

 “차이와 차이 사이, 그 다름이 바로 우리가 추구하는 옳음이랍니다.” 데리다가 답한다.

 “아뇨, 그 다름(디퍼런스)이 아니라 이 다름(디페랑스)이라니까요.” 버스에서 라디오가 나온다.

 <독일에서 1만 5천 명이 자신의 성을 선택해서….> 지난 학기 역사철학 교수가 나온다.

 “우리 강의실은 종합 인문동 화이트 흑판이라니까요. 크큿.” 슈뢰딩거의 고양이가 나온다.

 “나는 50%만 살아있으니까요. 아니 50%만 죽은 걸까요? 키키”

 그녀가 말한다.

 “나는 널 좋아하는데. 너도 날 좋아하니? 이 무성애자 새끼야”     


 세상은 하얗다. 모든 것이 확고한 세상. 시시껄렁한 건 다 에포케(판단중지)로 두고 루틴대로 만 살면 되는 거 아니겠어. 이즈백의 두꺼비가 말한다. 꺼져.

 그리고 마지막으로 핸드폰을 확인한다. 그녀의 메신저 상태 창을 본다. 추가된 몇 글자.     

 

 <그럴 수도 있지, S증권 뽀개기>


 다시금 암흑이 온다. 화이트와 흑판이 조응한다. 한 치의 오차도 없는 바둑판 위에 교차 된 흑돌과 백돌처럼. 그 조화가 사뭇 아름답다. 이것은 흑인가 백인가. 흑이면서 백인가. 흑도 아니고 백도 아닌가. 제발. 흑백이라고는 말하지 말아 주길.

 그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 흑백의 세계는 직사면체가 되어 하나의 길을 비춘다. 고속도로 표시선처럼 정교하게 가리킨다. 왼쪽의 A 루트. A 루트에 있는 팻말을 본다. 지뢰XX. 리스에 녹아내린 두 글자. 지뢰 주의냐, 지뢰 경고냐. 알 수 없다.

 군사학 수업을 기억한다. 지뢰 주의 문구는 치사율 30%, 지뢰 경고 문구는 치사율 70%. 이 야. 기가 막힌데. 기댓값 50%.

 군장을 벗고 경광봉을 살며시 내려놓는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옆에서 기웃대던 간신배 고양이 쪽으로 화이바를 내던진다. 빌어먹을 짬타이거 새끼는 온데간데없다. 그녀의 굽어진 손을 생각하고 그녀의 상태 메시지를 떠올린다. 멜팅치즈피넛에그후라이를 추억하고, 벤조다이아제핀을 기억한다.

 시계를 푼다. 동기들이 향한 지뢰 지대 우회로를 향해 힘껏 던진다. 이 세계가 나를 받아준다면, 나에게 더 이상 시계 따윈 필요하지 않으리라. 그 반대라면 시간은 더 이상 흐르지 않으리라. 그 세계는 –어디가 됐건- 나를 허락한 세계이리라.

 어느새 두 발에는 긴 스키가, 양손에는 폴대가 쥐어져 있다. 고글을 쓴다. 외눈박이 고글. 검고 흰 바둑판 같은 슬로프는 얼어붙어 있거나, 완벽하게 푹신하거나. 50:50.

 지뢰XX라는 팻말을 본다. M14 대인지뢰의 근사한 ‘철커덕’ 소리를 기댓값 50%만큼 상상한다. 통제선을 누르고 철조망을 헤쳐 스타트에 선다.     




 수유의 순간, 혹은 영원한 시간. 얼마나 지났을까.

 눈을 뜬다. 천천히.

 생각한다. 자격에 대해.

 숨을 쉬어 본다. 흡흡흡.

 혼란스럽다. 숨을 쉴 수 없는 세계일까. 아니면 흡흡흡 할 필요가 없는 세계일까.     

 때마침 핸드폰이 울린다. 발신자 <그녀>. 00:11분. T도 F도 아닌 시간.

작가의 이전글 [에세이] 인간사가 모두 물화되었다. 그래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