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그레시브해서 미안합니다만.
<한 달이 훌쩍 지난 지금, 뒤늦게 글을 씁니다. 어그레시브할 수밖에 없는 주제라 미리 양해 바랍니다. 안 그런, 엄청 연구하는 존경할 만한 공교육 교사도 많다는 것 또한 미리 말씀드립니다.>
지난 11월 수능이 끝나고 일주일 정도 후. 모 대학 관련 일로 몇몇 교사와 몇몇 교수가 투숙하게 되었다.
저녁 즈음. 2025 수능 관련 대화가 오갔다. 그러던 중 스티브 유를 닮은 30대의 경영학 남교수(무척 T스타일)가 일반사회 여교사인 A에게 물었다. 건조하게 물었지만 악의는 없다. 적어도 내가 볼 땐. 그런 분위기도 아니었다. 짐작하다시피 그런 자리에선 서로 “오 대단하세요” 이런 말 일색이니까. 프랭크퍼트가 말하는 bullshit들이 난무하는 분위기. 어쨌든.
교수 : 선생님은 수능 보면 다 맞히시나요.
교사 : 물론 아니죠. 어쩌고저쩌고(잘 기억 안 남)
교수 : ……네……
(참고. 교수는 데이터과학 전공이라 그런지 진실 위주로 말하는 스타일이다. 거기서 아 뭐 요즘 수능 어렵죠. 가르치는 거랑 푸는 건 다르죠. 뭐 이런 식의 말을 하지 않았다. 난 그런 게 좋았다.)
위의 대화가 제가 어그레시브하게 글을 쓰는 이유입니다.
A선생님.
물론이란 말을 그렇게 쓰다니요.
최소한 교사라면 “물론” 이렇게 대답해야 하잖아요.
<물론 다 맞히죠. 근데 이 문제는 이러이러해서 오류 논란이 있을 수 있겠네요. 논문 좀 찾아봐야겠어요.>
왜 “물론” 아니죠라고 하십니까. 대부분의 공교육 교사가 그럴 거라 생각할 거 아닙니까.
저는 그러지 않으려고 “물론” 휴직 기간에도 평가원 6, 9 모의고사 시행날이면 논란이 되는 문제가 뭔지 궁금해하며 ebs 게시판을 기웃거립니다. “물론” 수능 날 저녁 7시 즈음이면 제 과목 문제가 무엇이 나왔는지 서치합니다. 이런 내가 유난스러운 건 아니겠죠. 잘난체를 하려는 것도 아닙니다. (가끔 아이들에게 과시하려고 30분에 두 과목을 풀곤 내기를 합니다. 그렇게 하면 실수하는 경우가 아주 가끔 있습니다. 실수는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조금 더 보태면 평가원 모의고사 감독 중이면 눈으로 문제를 풀고 종료 후 (평가원공식 정답은 수시간 후 발표 됨) 제가 푼 문제지를 학생에게 주며 “정답지야”라고 말할 수 있어야지요. 그러면 학생들은 학원이 필요 없다고 생각하지 않을까요.
혹은, 적어도 ”다 맞히죠. 물론 아주 가끔 틀릴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아주 적어요. 그건 분명해요. “ 정도라도 말해주길 바랐어요. 교수도 자기 과목, 교재를 100프로 이해하지 못하니까요.
그날 밤 방에 돌아온 나는 꽤 씁쓸했다. 학령인구는 주는데 사교육 시장은 어느 때보다 왕성하다. 모 기사를 빌리면 다른 분야 소비는 급감해도 사교육비는 우상향한다.
나는 양극화 해소, 지방 분권화의 열쇠 중 하나는 공교육이라고 믿는다. 그런데 왜 A교사는
”물론 다 맞히지 못하죠 “라고 주저 없이 그것도 웃으면서 말하는 걸까. 그녀의 주변 교사도 다 그렇게 말하는 걸까. 부끄럽지 않은 걸까.
아마 그 젊은 30대의 스티브 유를 닮은 교수가 언젠가 대입을 앞둔 자녀가 생기면 학교보다 학원을 신뢰할 것 같다. (학원 강사도 수능문제 다 맞히지 못하는 분이 있을 테지만. 어쨌든.)
그리고 수많은 동료 교수들에게 그 질의응답을 공유하지 않을까. 역시 수능공부는 학원이야, 라는 주제로.
그래서 그 A교사에게 그 자리에서 위와 같은 생각을 (어쭙잖은 배려심 때문에) 제대로 말하지 않은 걸 후회한다. 그 교사가 창피한 것보다 그 분노를 계기로 연구하여 수험생이 푸는 수능 문제를 다 맞히는 게, 그리고 그 정도의 실력과 자격을 갖추고 수업에 임하는 게 공교육 정상화에 훨씬 더 도움이 될 테니까.
적어도 고등학생을 가르치는 교사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