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거꾸로 한 교육 탁월함을 키우다

친척집에 사는 어떤 동생에게.

by 김태준

방학 후 며칠 책만 읽었다.

트레드밀과 실내 골프 외에는 거실 소파, 침대(나는 누워서 읽기를 좋아한다. 잠이 오면 오는 대로 좋고, 허리에 무리가 없는 것도 좋다), 서재(빨래 건조대가 있는 하이브리드 방이지만) 등에서 시간 날 때마다.

방학이 좋은 것은 널브러진 하루를 아무리 느리게 보내도 죄책감이 들지 않는다는 것. 이 부분은 교사의 엄청난 특권이라고 생각한다. 책을 읽다 지겨우면 유튜브로 야구를 보거나 옛날 애니메이션을 보거나 영화를 본다. 그리고 커피를 마시고, 낮잠을 자고. 커피를 마신 탓에 낮잠이 오지 않으면 강아지와 산책을 하고. 이렇게 하루는 잘도 흘러간다.


대학 때 책과 담배와 커피만 있으면 그 이상은 바라지 않겠다던 남기영 교수님의 말처럼, 나도 언젠가 같은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책과 가족과 친구(나에겐 진실한 친구가 6명이나 있다)만 있으면 그 이상은 바라지 않겠다고. 물론 지금 생각해 보니 여행도 강아지도 골프도 핸드폰도 없어서는 안 되겠다. 무튼 책은 우연한 삶에 가차 없이 내던져진 내 삶의 목적과 방식에 관한 생각들을 일깨워주는,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것이 되었다.

유튜브 구독에 딸려 나온 RIDI북스 무료 이용권을 통해 평소라면 손대지 않았을 책들을 반강제적으로 읽었다. 코미디언 이경규 씨와 배우 박정민 씨의 책은 생각보다 참 좋았다. 역시 선입견은 무섭다. 그리고 시시하지만 읽고 나면 나름의 가치가 있는 자기개발서(참고로 원피스나 진격의 거인에도 나름의 가치는 있다), 그리고 이런저런 인문학 저서. 평소 관심 있던 다케다 세이지의 제자가 현대실재론을 계속 연구한다는 것을 안 것도 나름의 수확이었다(새로운 철학 교과서, 현대 실재론 입문-이와우치 쇼타로).

제자가 빌려준 메이아수 책도 읽어야겠지만, 왠지 철학책은 느긋한 방학에 선뜻 손가지 않는다. 철학 전공자에게도 철학책은 빡세다.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같이 철학자를 소재로 한 자기개발서 책이 아니라면 철학책을 펼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각오가 필요하다. “향유는 의존성을 통한 독립성이다.(레비나스)”등의 문장이 널브러져서 읽기 편하진 않잖은가.





독서 뇌가 워밍업이 됐음을 직감한다. 이제 본격적으로 현대 실재론 책을 건드려볼까 하던 차, 부모님 댁에서 받아 온 책이 눈에 띈다.

<거꾸로 한 교육, 탁월함을 키우다>

보통이라면 이런 책은 안 읽는다. 차고 넘치는 위인들이 정말 다양한 환경에서 상이하게, 심지어는 상반되게 교육받았고 극도로 나쁜 교육 환경에서도 천재성을 발휘했음을 알기에(소크라테스, 카뮈, 루소 등) 탁월성의 인과관계를 양육방식만으로 설명하는 것은 일면적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작가의 의도가 그렇지 않더라도 수많은 자기개발서는 상관성을 인과성으로 곧잘 둔갑시킨다. 그래야 팔리겠지만.

여하튼 이 책의 저자는 내 고모부고, 내 사촌 동생들이다.

아니 친척 집에 사는 어떤 동생들이다.

왜 이렇게 표현하냐고?

그게 공평한 표현일 것 같다.

위 책에서 나와 형은 저렇게 묘사되어 있다.

[그리고 어제 가져온 레고 보따리를 방 한가운데 쏟았다. 친척 집에 갔을 때 이미 연령이 지나버린 어느 형이 자기 레고를 모두 우리들에게 물려준 것이다.]






리뷰를 시작한다.


책을 읽으며 생각나는 사람은 아리스토텔레스, 교육론은 덕 윤리, 구체적인 방식은 유대인 교육. 코어 가치는 성경.


결론은 잘 다듬어진 덕 훈련의 사례.


부모님이(고모와 고모부) 강원도 산골 초등학교 분교로 아이들을 데려갔고, 이후 중학교를 마다하고 홈스쿨링으로 3~4년 두 아이를 교육했다. 첫째는 18세에 카이스트에, 둘째는 17세에 의대에 입학했다. 이후 첫째는 서울대 의전원에 입학, 동생은 서울대병원에서 전문의를 취득했고 현재 의료 스타트업을 병행하는 중이다.

여러 덕(Virtue)이 잘 내면화된 두 형제. 어디 내놔도 손색없는 인성과 실력을 겸비했다. 공교육 불신이 심화되는 가운데 대안 교육을 모색하는 학부모의 시선을 잡아끄는 책이다.


두 형제의 성공기를 나름 분석한다. 이는 곧 덕 교육의 성공 요소와 같다(고 나는 본다).

덕 교육의 성공 요소는 크게 세 가지다. 이 책에는 이 세 가지의 사례가 에피소드, 스토리텔링 형식으로 주욱 소개되고 있다. 어떤 어떤 원칙 등이 등장하는데 결국은 다음과 같다.

첫째 좋은 롤모델

좋은 가치를 제시해야 한다. 유 초등기엔(초등시절까지) 롤모델인 부모님이 “이런 게 덕 있는 거야”라고 제시하지 못하면 아이들은 스스로 덕의 씨앗을 뿌리지도 못하고, 여기서 추가적인 덕이 발아하지도 못한다. 첫 씨앗과 가지치기 등에서 부모의 ‘좋은 모습, 좋은 가치관’을 충분히 보아야 한다.


둘째 실천적 지혜의 발달(본인 스스로 덕이 좋은 것임을 깨달아야 함)

위의 덕이 내면화되어야 한다. 부모가 제시한 덕을 자신이 수긍해야 이 덕을 키워나가고 행위를 해야 품성 상태(Hexis)로 연결할 수 있다. 여기서 부모의 역할이 또 중요한데, 자발적으로 덕을 인정하도록 기다리고 유도해야 한다.



셋째 덕의 실천

스스로 수긍한 덕을 지속적으로 실천하여 습관으로 만들어야 한다. 외부의 유혹보다 무서운 것은 의지박약인데 이때 지속적으로 실천하지 않으면 뻗은 가지도 쉬이 꺾일 수 있다. 즉, 덕이라는 녀석이 품성 상태로 확립되지 않을 수 있다.





그렇다면 사촌 집에 사는 어떤 동생들이 위 세 가지에서 성공한 원인은?


첫째.

고모와 고모부의 가치체계의 근본이 성경이기 때문. 더 이상의 덕은 필요 없다. 예수님은 최고의 덕인이다. 예수님이라면 이렇게 했을 터라고 사고하려고 노력하는 두 분이 제안한 덕이라면 의심의 여지없이 훌륭하다. 물론 예수님이라면 이렇게 했을 텐데, 에는 전달자의 해석이 필요하고, 따라서 모든 덕이 제대로 갖추어질 수는 없겠지만, 코어 가치만큼은 100점짜리를 배웠으리라 생각한다.

둘째.

고모와 고모부의 유대인 식 교육방법. 어린아이들에게 자기 입으로 말하게 하는 훈련, 제법 식견 있는 부모와의 진지한 대화는 학습자의 사고력을 비약적으로 증대시킨다. 고모와 고모부는 나름의 학식을 갖추신 분들이다.


셋째.

연년생 형제의 덕 경쟁. 형이, 혹은 동생이 더 좋은 사람이 되기를 응원하며 거기서 고무받아 나도 더 좋은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긴장감이 아크라시아(의지박약)를 이겨내고 덕의 품성 상태를 기르게 하는 원동력이라고 생각한다.



결론은 부모의 의기투합한 교육철학, 신앙으로 묶인 공동체적 가치 추구, 연년생 형제의 선을 향한 경쟁과 응원이라는 요소가 탁월한 교육을 이루게 했다는 내용(이라고 나는 이해했다).

탁월하고 앞으로도 탁월할 것이라고 확신하는 두 형제. 참 잘 컸고, 나름 자랑스러운 동생들이다. 스펙을 떠나서 가치관이나 인성적인 면에서. 이들의 교육과정을 본 것만으로도 참 좋았다.



하지만 억지로 레드팀을 만든다면

물론 비판하고 싶은 부분도 있다. 이건 덕윤리적인 책이니 삶에서 덕스럽지 못한 부분이 적지 않았음을 제시하는 정도로 마무리하겠다. 오히려 친척 집에 사는 어느 형이니까(너무 짜치는 것 같으니, 이제 이런 표현은 그만해야겠다.) 나는 공정한 심판자가 아닐까.


예컨대

친척의 장례식장에서 슬리퍼를 끌고 온 아이에게 영정사진 앞에서(상주를 앞에 둔 채) “이게 죽음이야 잘 봐”라고 말하는 모습이 덕스럽진 않다.


코로나 시절 요양원에 있는 병들고 노쇠한 할머니에게 유리문을 앞에 두고 함박웃음을 지으며 “지루하시죠. 금방 탈출시켜 드릴게요. 허허허” 하는 모습이 덕스럽진 않다.


이젠 적당히 벌었을 텐데.. ‘관후함’이라는 덕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는가.... 됐다.




나는 느낀다. 롤모델이 부모로 한정되면 왜곡된 덕을 배울 수도 있다. 롤모델도 보고 개차반도 보며 성장할 때 그 뿌리가 더 견고해질 수 있고, 더 종합적으로 위대한 사고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책의 근본적인 한계는 성장기의 롤모델이 극히 제한적이지 않았을까 하는 것. 물론 그 반대편의 이점이 훨씬 크게 작용한 케이스지만. 그리고 다행인 건 성경과 신앙이 있으므로 코어 가치관은 틀림이 없다는 것.

끝으로. 이 참에 내 자랑을 좀 하겠다.

만약 롤모델이 부모라면 (이런 말 하긴 뭐 하지만) 나의 부모님 정도는 되어야 한다. 물론 난 그렇게 덕스럽게 크진 않았다. 이건 내 문제고.

주변의 경제 상황에 메가톤급 관후함을 발휘하고 일절 생색내지 않는 것은 차치하고

자본화되어 버린 내가 배우자의 조건 등을 고려할 때 “그 친구도 행복할 권리가 있다”라는 말로 내 뒤통수를 크게 때리는 부모님.

평소 읽지도 않는 자기개발서를 잔뜩 가져오신 후 나누어주시는 분들(그런 책은 집필자가 친척에게 나눠주는 게 정석인데, 아마 아버지는 정가 그대로, 아니면 훨씬 웃돈을 주고 사셨을 것 같다. 90% 확신)

그래서 나는 생각한다. 이 책을 읽으며. 부모님 감사합니다. 저도 좋은 삶을 살겠습니다.



마무리가 다소 어그레시브해서 미안합니다. 너무 잘 컸다고만 하면 다들 홈스쿨링만 할까 봐 공교육 종사자 입장에서 균형적으로 평가하고 싶었나 봅니다. 학교에서 배우는 것도 많습니다. 요즘 선생님들 좋은 분도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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