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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en 매거진 Dec 28. 2023

2023년, 한 해의 기록

[Editor's review]

나흘만 지나면 새해가 온다. 2023년을 그냥 보내기 아쉬워 ‘나만의 연말결산’을 하기로 했다. 한 해 동안 나를 열광하게 했던 것들 중 ‘기록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것’ 다섯 개를 추렸다. 자주 손이 갔던 물건들과 좋아했던 순간들이 너무 많아서 추리는 데 상당히 애를 먹었다. 짧았던 한 해 동안 푹 빠졌던 것들이 이렇게나 많았다니. 내년에는 어떤 것들이 나의 세계를 풍성하게 채워 줄까,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 알라딘

■ 올해의 소비
평소 물건을 자주 사는 타입은 아니다. 한 번 사면 고장이 날 때까지 계속 사용하는 편이다. 그런데 올해 초 꽤 오랫동안 사용했던 이북 리더기인 크레마 사운드업이 고장 났고, AS를 맡길지 새 기기를 구입할지 고민하다 과감히 새 리더기를 들였다. 바로 지금 사용하고 있는 크레마 S다.

크레마 S는 한 손으로 잡고 사용할 수 있는 6인치 리더기다. 크기가 작아 미니 백에도, 심지어는 패딩 주머니에도 쏙쏙 들어간다. 어디든 들고 다니기 좋아 자투리 시간에는 휴대전화 대신 리더기를 보는 것이 습관이 됐다.

2021년 출시된 신형 기기인 만큼 반응 속도가 빠른 점도 무척 마음에 든다. 크레마 사운드업은 책 한 권 다운받으려면 느긋한 마음으로 기다려야 했는데, 크레마 S는 여러 권의 책도 동시에 다운받을 수 있다. 물리 키가 없어 겨울에는 핑거홀 장갑을 사용하거나 장갑을 벗어야 한다는 불편함이 있지만, 크레마 사운드업에 비해 화면이 깨끗하고 선명한 데다 잔상도 덜해 만족스럽다.

현재 나의 독서 생활은 크레마 S와 예스24 크레마클럽 이용권, 교보문고 도서관 어플이 책임지고 있다. 올해 새로 산 리더기로 읽은 책 중 가장 재미있었던 작품도 소개해 보자면, 김유원 작가의 <불펜의 시간>과 정한아 작가의 <리틀 시카고>였다. 혹시 아직 리더기 구입을 망설이고 있다면, 이 글을 참고해 보면 좋겠다. 



ⓒ Den
ⓒ Den

■ 올해의 여행
시간이 없으면 쪼개서라도, 혹은 무리를 해서라도 여행을 꼭 간다. 여행지에서만 느낄 수 있는 자유로움을 잊지 못해서다. 지구 반대편에서 휴대전화가 먹통이 돼 내내 종이 지도만 들고 다니거나 벌레가 나와 옷가지와 캐리어를 전부 버려야 하는 해프닝을 겪어도, 몇 달만 지나면 달력을 한없이 넘기며 ‘휴가를 어떻게 붙여 쓸까’ 고민하는 사람이 바로 나다.

여행을 가서는 먹고 걷는 것에 집중한다. 그래서 여행지를 정할 때, 관광청에 접속해 흥미로운 음식이 있는지 먼저 살핀다. 나고야는 나 같은 여행자라면 사랑할 수밖에 없는 도시다. B급 구르메(B級グルメ, 저렴한 가격으로 부담 없이 먹을 수 있는 서민 음식)의 천국이기 때문이다. 된장 우동과 된장 돈카츠, 얇은 면요리인 키시멘, 나폴리탄과는 다른 걸쭉함이 특징인 앙카케 스파게티 등 다른 지역에서는 만나기 어려운 음식들이 많은데, 이를 ‘나고야메시(名古屋めし)’라 부른다.

일본식 다방인 ‘킷사텐(喫茶店)’에서 아침을 먹는 문화 ‘나고야 모닝’도 이곳에서 생겨났다. 새벽에 일어나 찻집을 두세 군데씩 돌며 아침을 종류별로 맛봤던 기억이 난다. 나고야에 방문할 예정이라면, 미소카츠 전문점 ‘라무치이’와 아침을 제공하는 찻집인 ‘하세 커피’만큼은 꼭 들러 보길 바란다.



ⓒ Den
ⓒ Den

■ 올해의 떡볶이
가장 좋아하는 한국 음식을 꼽으라면 단연 떡볶이다. 달착지근하고 걸쭉한 소스를 한껏 머금고 있는 어묵과 떡. 재채기와 사랑은 숨길 수 없다는데, 나는 거기에 하나 더, 떡볶이를 좋아하는 마음을 숨길 수가 없다. 참고로 나는 쌀떡파, 밀떡파 어느 쪽도 아니다. 오히려 ‘쌀떡파, 밀떡파 나누는 시간에 하나라도 더 먹자’라는 주의이기 때문에 쌀떡이라 먹지 않는다거나, 밀떡이라 그 떡볶이 집은 피한다거나 하는 일은 없다. 떡볶이라는 이름 아래 내겐 모두 평등하다.

아무튼 올해도 떡볶이를 참 많이 먹었다. 올해 갔던 떡볶이 가게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곳은 <다산성곽길 산책> 기사에서 소개했던 ‘빨간집 떡볶이’다. 어느 순간부터 떡볶이 철판을 갖춘 포장마차를 찾기 어려워졌는데, 여기에선 본능에 아로새겨진 기억 속의 그 맛을 느낄 수 있다. 커다란 포장 플라스틱 통에 담겨 오는 배달 떡볶이와는 다른, 찐득하고 농후한 양념 맛이 일품이다. 이 맛에 반해 예닐곱 번은 방문했는데, 그만큼 사 먹고도 약수역 근처에 갈 일이 생기면 ‘떡볶이 먹을 시간이 되려나’하며 시계를 확인하곤 한다. 김밥 중에선 훈제연어 김밥이 맛있다. 떡볶이 양념과 잘 어울린다.



ⓒ mgaband

■ 올해의 밴드
K팝 없이 못 사는 난, J팝에도 진심이다. 초등학생 때부터 J팝을 자주 접했기 때문이다. 무슨 뜻인지도 모르면서 가사를 들리는 대로 흥얼거리고, 3분짜리 무대 영상 하나 보려고 번역기를 돌려 가며 온 인터넷 세상을 다 뒤지는 건 일상이었다.

지금, 애플 뮤직에서는 올해 가장 많이 들은 음악 순위를 보여주는 서비스를 하고 있다. 로그인을 해 내가 올해 들은 음악 순위를 확인해 보니, 영광의 1위는 일본 록 밴드인 ‘미세스 그린 애플(Mrs. Green Apple)’이 차지했다. 2위와의 격차는 무려 9,955분에 달한다. 

미세스 그린 애플은 2013년에 데뷔해 올해로 결성 10주년을 맞이한 밴드다. 벚꽃 시즌만 되면 차트에 등장하는 버스커버스커처럼 여름만 되면 일본 음원 차트에 줄세우기를 하는 팀인데, J팝에 관심이 없어도 한 번쯤 들어 봤을 ‘푸름과 여름’과 ‘인페르노’의 원작자다. 힘 있는 보컬과 청량감을 더하는 고음, 위로하는 듯한 가사가 이 팀만의 매력 포인트다.

나는 작년 말 처음 이 밴드의 음악을 접한 뒤 속절없이 빠져들어 지금은 이 팀 이야기가 실린 잡지라면 구매대행 사이트를 통해서라도 구입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미세스 그린 애플의 곡을 처음 듣는다면 ‘푸름과 여름’, ‘케세라세라’, ‘나라는 것’, ‘퍼블릭’, ‘소란지’를 추천한다. 라이브를 잘 하는 가수들이 으레 그렇듯, 이 밴드도 음원보다는 라이브가 훨씬 좋다.



ⓒ 한화이글스

■ 올해의 취미
좋아하는 것이 늘어난다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올해의 큰 수확이 있다면, 야구의 참맛을 알게 됐다는 거다. 야구를 알기 전엔 야구에 무슨 매력이 있기에 저렇게까지 열광하나 싶었는데, 응원하는 팀이 생기고 거기에 애정이 담기니 야구 팬들의 마음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게 됐다.

올해 KBO리그로 야구에 ‘입덕’해 아시안게임, APBC 경기를 모두 챙겨 봤다. 선수들 이름을 자연스럽게 익히고, 몰랐던 야구 룰을 알아 가며 경기를 보니 어느새 매일 여섯시 반만 기다리게 됐다. 1년도 채 안 된 ‘병아리 팬’이 할 이야기인가 싶지만, 때로는 귀가해서 보는 야구 경기가 하루를 견디는 버팀목이 되어 주기도 했다.

공 하나에 울고, 웃고, ‘이런 경기력은 용납할 수 없다’며 화를 내도, 그 다음 날에는 또 텔레비전 앞에 앉아서 응원가를 불렀다. 한 야구 게임 회사에선 광고 카피로 ‘야구를 대신할 수 있는 건 야구밖에 없다’라는 문구를 썼다. 정말 그렇다. 팬이 되어 보니, 야구를 대신할 수 있는 건 오직 야구 뿐이다.  



ㅣ 덴 매거진 Online 2023년
에디터 김보미(jany6993@mcircle.bi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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