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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en 매거진 Jan 03. 2024

K팝이 환경을 오염시킨다고?

누구도 상처받지 않는, 지속 가능한 K-팝을 위하여.

K팝 소비자 52.7%가 음반 구입하지만
CD로 음악 감상 하는 소비자는 5.7%에 그쳐
앨범 제작·폐기 과정서 탄소·유독가스 배출
과잉 소비 부추기는 시스템 변화 필요  


좋아하는 아이돌의 앨범 사전 예약이 시작됐다. 굿즈는 사지 않아도 새로운 앨범만큼은 착실히 구입하고 있어, 별다른 생각 없이 예약 구매 버튼을 눌렀다. 고백하자면, 이제까지 수십 번 앨범을 사 왔지만 CD로 음악을 들은 건 열 번도 채 되지 않는다. CD를 들을 수 있는 곳도 거의 없다. 자동차나 노트북에도 CD플레이어가 내장돼 있지 않고, CD를 듣기 위해서는 CD플레이어를 따로 사야 한다. 하지만, 에디터를 포함한 K팝 팬들은 꼬박꼬박 앨범을 산다. 한 장도 아니고 수십, 수백 장씩 구입하는 경우도 많다. 


ⓒunsplash

듣지 않는 앨범, 왜 살까

음악 시장은 스트리밍 중심으로 바뀐 지 오래다. 스태티스타는 2022년 스트리밍 서비스가 음악 업계 전체 수익의 67%를 차지했다고 밝혔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도 한국의 음반 구매량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한국음악콘텐츠협회에 따르면, 2019년 2,509만 장이었던 음반 판매량은 2022년 7,712만 장으로 늘었다. 한국조지메이슨대학교 교양학부 이규탁 교수는 <2021 한류백서>에서 '이 현상은 K팝을 중심으로 한 음악 한류의 급속한 확산과 더불어, 코로나19로 인해 오프라인 공연이 거의 열리지 않는 상황에서 글로벌 수요가 포토카드, 사진집을 비롯한 각종 굿즈가 포함된 실물 음반 구매로 몰렸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본래 음반은 포토 북이나 가사지, CD가 전부였다. 그런데 기획사들이 여기에 멤버별 랜덤 포토카드와 팬 사인회 응모권을 추가했다. 원하는 멤버의 포토카드를 얻거나 팬 사인회 당첨 확률을 높이기 위해선 앨범을 많이 살 수밖에 없는 구조를 만든 것이다. 최근 공공연히 쓰이고 있는 '앨범깡(여러 장 구입한 음반을 한꺼번에 뜯어보고, 포토카드 등의 굿즈만 챙기는 행위)', '팬싸컷(팬 사인회에 당첨되기 위한 최소한의 앨범 구매 수량)'이란 단어는 이러한 기획사의 상술을 고스란히 반영한다.


여기에 초동 판매량을 둘러싼 팬덤 간 경쟁 심리가 더해지니 듣지도 않을 앨범을 수백 장씩 구입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K팝 팬들 사이에서 선주문량이나 초동 판매량(앨범 발매 첫 주 판매량) 등 앨범 판매량은 곧 인기의 척도이자 팬들의 화력을 보여주는 지표다. 각종 연말 시상식의 평가 기준이 되기도 하니, 소속사 홍보팀에서도 그룹 홍보 수단으로 앨범 판매 성적을 적극 활용한다. 음악을 듣기 위해 앨범을 사는 것이 아니라, 굿즈를 모으거나 좋아하는 가수의 판매 성적을 위해 앨범을 구입하고 있는 것이다.


2023년 3월 한국소비자원은 최근 2년간 활동한 K팝 팬 가운데 52.7%가 굿즈 수집을 목적으로 음반을 구입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중 CD를 이용해 음악을 듣는 소비자는 5.7%에 불과했다. 그렇다면, 필요 없는 앨범들은 어디로 갈까? 포토카드나 응모권 등을 뺀 앨범은 중고 사이트에서 저렴하게 판매되거나, 기부 단체에 보내진다. 상황이 여의치 않은 경우에는 폐기된다.


ⓒunsplash

환경오염 야기하는 폐기 음반

일반적으로 음반은 CD, 포토북, 굿즈로 구성된다. 폴리카보네이트, 폴리염화비닐, 코팅 종이가 주 원료다. CD는 폴리카보네이트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지는데, 이는 자연 분해에 100만 년이 걸리는 물질이다. 환경호르몬의 일종인 가소제가 들어 있어 소각하는 과정에서도 유독가스가 배출된다. 폴리염화비닐과 코팅 종이 역시 재활용이 어려운 소재다.


재활용과 관리가 어려운 제품, 재료, 용기를 제조하거나 수입하는 업체는 폐기물 부담금을 내야 한다. 매출액 10억원 이하나 연간 플라스틱 사용량이 10톤 이하인 경우에만 면제된다. 2022년 폐기물 부담금을 납부한 연예기획사는 하이브, JYP, YG, 카카오엔터, 케이큐엔터테인먼트, 위에화엔터테인먼트였다.


환경부 자료에 따르면, 국내 기획사가 앨범 제작에 쓴 폐기물 부과물 부과 대상 플라스틱은 2017년 55.8톤에서 2022년 801.5톤으로 증가했다. 앨범 판매량을 고려하면 실제로 사용된 플라스틱 양은 환경부 집계보다 많은 것으로 추정된다. 2022년에 7419만 5554장의 앨범이 판매되었으니, 케이스를 제외하고도 플라스틱 소비량이 1394톤에 이른다. 앨범을 만드는 과정에서의 탄소 배출량도 무시할 수 없다. 비행기 승객 1명이 1km를 이동할 때의 탄소 배출량이 250g인데, 앨범을 100만 장 제작하는 과정에서 50만kg의 탄소가 배출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플라스틱 소비량이 불어나면서 이들이 납부한 폐기물 부담금도 2017년 474만 4870원에서 2022년 1억 9141원으로 늘었다. 그러나 플라스틱 폐기물에 대한 부담금이 기획사들의 수익에 비하면 미미한 수준이라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그린워싱’ 오명 피하려면

환경 오염 문제가 부각되면서 팬들 사이에서도 기획사가 환경 보호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성실히 이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K팝 팬들이 모여 기후 활동을 하는 단체인 ‘케이팝포플래닛’은 기획사들이 친환경 앨범을 제작하고, 팬들에게 앨범 구매 시 본품을 모두 받을 것인지, 포토 카드만 받고 음원은 디지털로 내려받을 수 있게 할 것인지에 대한 선택권을 줄 것을 촉구하고 있다.

가수 이채연이 발매한 포카앨범. ⓒwm엔터테인먼트

K팝이 ‘그린워싱(환경 친화적이지 않은 제품을 환경에 이로운 것처럼 홍보하는 것)’ 오명을 벗기 위해선 두 가지 변화가 필요하다. 우선, 플라스틱 패키징을 최소화한 앨범을 만들어 기존 앨범을 대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사실 CD 없는 대체 앨범을 제작하려는 시도는 2014년부터 계속돼 왔다. 손바닥 반만한 크기의 플라스틱 기기를 휴대전화와 연결해 음악을 들을 수 있도록 하는 키노 앨범, NFC CD를 넣어 키링 형태로 제작한 스마트 앨범, 카드를 모바일 기기에 인식하면 콘텐츠를 이용할 수 있는 네모 앨범 등 종류도 다양하다. 포토카드와 앨범이 결합된 형태인 포카 앨범도 있다. 포카 앨범은 포토카드에 앨범을 다운받을 수 있는 QR코드를 인쇄해 제공한다. CD와 포장 케이스 없이, 포토카드가 담긴 종이 패키지가 전부다. 지난해 9월 아이즈원 출신 가수 이채연의 신보<The Move : Street>는 포카 앨범으로만 발매됐다.


여러가지 형태의 대체 앨범들이 제작돼 왔지만 CD가 들어간 기존 앨범을 대신하지는 못했다. 기존 앨범을 발매하면서 대체 앨범을 함께 발매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 대체 앨범을 구입할 경우 음반 차트에 반영되지 않는 문제도 있었고, 포토카드 등 굿즈를 랜덤으로 제공하는 점도 동일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기획사들이 앨범 종류를 늘려 오히려 플라스틱 배출량을 늘리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대체 앨범 제작보다 더 중요한 건, 앨범을 과도하게 구입하도록 부추기는 시스템의 변화다. 랜덤 굿즈 증정과 음반 구매량을 바탕으로 이벤트 당첨자를 선정하는 시스템, 과잉 구매를 조장하는 음반 차트 시스템이 그대로 유지된다면 결국 팬들은 같은 앨범을 중복 구매할 수밖에 없다. 대체 앨범은 기존 앨범 형식보다 환경에 부담을 덜 준다는 것이지, 환경 오염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제품은 아니다. 제작 과정에서 탄소 배출량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다. 대체 앨범이 기존의 앨범을 대신한다고 해도, 지금처럼 앨범 폐기량이 많다면 또다시 환경 오염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케이팝포플래닛의 플라스틱 앨범 수거 캠페인. ⓒkpop4planet

‘죽은 지구에 K팝은 없다.’ ‘케이팝포플래닛’이 내건 슬로건이다. 곳곳에서 예상치 못한 이상기후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심각해지는 기후 위기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기에, 일상 속에서 환경을 보호하는 것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


지난해 초 YG, SM, JYP, 하이브는 나란히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발표했다. 친환경 앨범에 대한 논의도 시작했다. 하이브는 플랫폼 앨범을 제작하는 미니레코드와 업무협약을 체결했고, YG플러스 역시 친환경 앨범 제조 자회사를 설립했다. 이러한 움직임이 음반 판매를 둘러싼 근본적인 시스템 개선까지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누구도 상처받지 않는, 지속가능한 K팝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ㅣ 덴 매거진 Online 2024년
에디터 김보미(jany6993@mcircle.bi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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