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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en 매거진 Jan 19. 2024

폐지 줍던 어르신, 그림 작가 되다!

신이어마켙 심현보 대표 인터뷰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 인간은 결코 이 세상을 혼자 살아갈 수 없다. 다른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 더 나아가 이 환경 전체와 매우 복잡하게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인간답게 산다는 건 곧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에 조금씩 곁을 내어주고, 그들과 더불어 산다는 것을 의미한다. 2024년은 조금 더 인간다운 삶을 사는 한 해가 되길 기원하며, ‘같이’의 가치를 아는 세 사람의 이야기를 전한다.


"일단 살아 봐, 인생은 내 것이니까"
"아직 젊잖애"
"허허 우서요"


70·80·90 시니어들이 20·30 젊은 세대의 고민에 답장을 보낸다. 삐뚤빼뚤한 글씨로 꼭꼭 눌러쓴 위로와 격려의 말들이 따뜻하게 마음에 스며든다. 폐지 줍는 어르신에게 새로운 일거리를 제공하고, 청년들에게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전하며 세대 간의 장벽을 허무는 신이어마켙은 이미 젊은 세대 사이에서 ‘센스 있는 디자인 브랜드’로 입소문이 났다. 신이어마켙을 운영 중인 아립앤위립 심현보 대표는 두 세대가 서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세상을 꿈꾼다.


신이어마켙 심현보 대표. ⓒ D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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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니어에게 지속 가능한 일자리를
시니어 일자리를 만드는 민간형 기업 아립앤위립의 자체 브랜드 신이어마켙은 심현보 대표의 개인적인 경험으로부터 시작됐다. 친할머니가 소일거리로 폐지를 주워 용돈벌이를 하고 있다는 사실과 함께, 생계 유지를 위해 폐지를 주워야만 하는 노인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된 것. 어르신들을 위한 양질의 일자리가 부족하다는 것을 절감한 심 대표는 지속 가능한 일자리 제공을 목표로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심 대표는 노인과 청년이 교류할 수 있는 곳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세대와 세대를 이어주는 것을 브랜드 콘셉트로 설정했다. 두 세대를 이어주는 매개체는 어르신들의 조언과 따뜻한 한 마디가 담긴 굿즈. 지속 가능한 일자리를 제공하기 위해 시작된 브랜드인 만큼, 그림 작가와 포장 파트타임 일자리를 만들어 어르신들을 고용했다.

“주로 기성품을 사용하던 세대다 보니 처음에는 직접 그린 그림들이 제품이 되고, 누군가가 그걸 산다는 걸 이해하지 못하셨어요. 그 분들을 설득하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어요.”

브랜드 론칭 초반 고물상을 찾아다니며 일자리가 필요한 노인들을 직접 만나려 했지만, 이들의 마음을 열기는 힘들었다. 고민 끝에 복지관과 MOU를 체결해 소득을 기준으로 리스트를 추린 후 사회복지사의 대면 인터뷰를 통해 멤버들을 선발하기로 했다. 현재 이러한 과정을 거쳐 열여섯 명의 어르신이 신이어마켙과 함께하고 있다. 모두 70·80·90 세대로, ‘왕언니’가 91세, ‘막내’가 79세다.


ⓒ Den
정규직으로 근무 중인 강옥자 어르신. ⓒ Den

“어르신들과 함께 일하면서 정규직 전환을 늘려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어르신 중에선 ‘젊은 사람하고 같이 일하다가 내가 아파서, 내 빈자리 때문에 문제가 생기면 어떡하냐’는 걱정 때문에 파트타임을 선호하는 분들도 계시더라고요. 그래서 파트타임을 포함해 다양한 고용 형태로 어르신들을 모시려고 하고 있어요. 세대가 함께 어우러져 일하는 것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열여섯 명의 시니어 중, 79세 강옥자 어르신은 2021년 9월 신이어마켙 정직원으로 채용됐다. SNS에 게시하는 뉴스레터의 발행인으로서 콘텐츠를 기획하거나 댓글을 달고, 그림을 그리는 등의 업무를 한다. 팀원들이 낸 아이디어를 듣고 자신의 경험을 나누어 주기도 한다. 심 대표는 앞으로도 이렇게 다양한 고용 형태로 어르신들의 일자리를 늘려갈 계획이다.

ⓒ D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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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n

■ 신이어마켙이 만든 변화

매주 수요일 오전, 신이어마켙 사무실은 어르신들로 북적인다. 자체 제품이나 컬래버레이션 제품을 위한 그림과 글씨 작업을 하기 위해서다. 인생 선배로서 젊은 세대에게 해 주고 싶은 말들이 주요 주제다. “기왕에 태어났으니까 멋지게 살아봐”, “내 인생 반드시 해뜰날 온다” 같은 따뜻한 말부터 “인생을 즐겁게 살려면 우선 돈이 있어야겠지요”처럼 ‘매운 맛’ 조언도 있다. 직원들은 어르신들이 이러한 조언들을 함축적으로 표현할 수 있도록 돕는다.

작업물이 완성되면 그에 대한 저작권료를 지불한 뒤 그림을 정식으로 구입한다. 이렇게 구입한 그림과 글씨는 스티커, 종이 모빌, 달력, 펜 등의 굿즈로 제작된다. 총 판매수익금 순이익의 10%는 신이어마켙과 함께 하는 시니어 파트너들에게 전달된다.

에어로케이와의 컬레버레이션. ⓒ 신이어마켙
다이소와의 컬래버레이션. ⓒ 신이어마켙

신이어마켙에서 판매하는 굿즈에는 모두 삐뚤빼뚤한 글씨가 적혀 있다. 맞춤법이 틀렸거나 틀린 글자 위에 가위표를 친 것도 있다. 이곳에선 이런 부분을 고치거나 바로잡지 않는다. 디자인 작업 시 원 작품을 최대한 보존한다는 원칙 때문이다. 여기에는 어르신들이 살아온 방식을 존중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젊은 세대가 ‘보기 편한’ 방식으로 어르신들의 이미지를 만드는 것을 피하고, 있는 그대로의 삶 그 자체를 존중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아주 소극적이셨던 분이 한 주 두 주 지나고 나니 표정이 바뀌더라고요. 어느 날은 빨간색 립스틱을 바르고 오셨길래 ‘오늘 어디 가시냐’ 여쭤보니, ‘여기 오는 게 너무 즐거워서 시장 가서 립스틱 사서 발랐다’고 하셨죠. 함께 일한 지 3년이 된 분들도 화요일 밤에는 설레서 잠이 잘 안 온다고 하세요. 어르신들의 삶에는 그런 변화가 있는 거예요.”

이런 진정성이 소비자와 브랜드에게 전달되어 단단한 팬층이 만들어졌고, 스킨푸드나 다이소, 에어로케이, 카카오 등 다양한 기업과의 컬래버레이션도 다수 진행됐다. 브랜드의 비전과 목표가 알려지면서 어르신들의 가족들에게도 지지를 받기 시작했다. 어르신 뿐만 아니라 심 대표 역시 긍정적인 영향을 받았다. “어르신들과 함께 일하며 삶을 새롭게 바라보는 법과 인내하는 법을 배우게 됐죠. 일이 잘 풀리지 않아 애가 탈 때도 한 발짝 물러서서 여유를 찾으려는 시도를 할 수 있게 됐어요.”

ⓒ Den

■ 다시 사회로 나올 수 있는 노인 일자리 절실
한국의 노인 빈곤율은 OECD 국가 기준으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지난달 19일 OECD가 공개한 보고서 <한눈에 보는 연금 2023>에 따르면 2020년 기준 한국의 66세 이상 노인의 소득 빈곤율은 40.4%다. OECD 가입 국가 중 소득 빈곤율이 40%에 달하는 국가는 한국이 유일하다. 심 대표는 이에 대해 “공공에서 노인 일자리를 만들듯 민간 기업에서도 그 역할을 함께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공의 예산과 정책, 기조에 발을 맞춰 협력하면서 현장의 이야기를 전할 수 있는 장이 더 많이 마련되어야 한다고도 했다.

“어르신들이 고강도의 노동을 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일을 쪼개고 세분화해 과업을 전달하면 속도가 느리고 효율이 떨어지더라도 해내실 수 있죠. 그런 일자리부터 만들어내야 하지 않을까요. 어르신들을 분석하고 그에 맞게 일자리를 세팅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심 대표는 노인들을 고용하는 일자리가 많아지면 노년 외로움과 같은 문제도 해결될 것이라고 내다보며, 이들에게는 필요한 것은 심리 상담보다는 다시 사회로 나올 수 있는 일자리일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기계가 할 수 없는 중저강도 업무를 쪼갠 뒤 오전·오후반으로 나누는 방식을 채택하거나, 고학력자와 전문성을 갖춘 어르신을 위한 일자리를 만드는 등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 Den

노인과 청년이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하냐는 질문에, 심 대표는 “각 세대가 서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는 노력”이라 답했다. 신이어마켙이 오탈자와 삐뚤빼뚤한 손글씨를 교정 없이 그대로 사용하는 것처럼, 노인과 청년이 서로의 방식을 존중하고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심 대표는 신이어마켙을 노년과 청년이 공존할 수 있는 공감의 브랜드로 키워 나갈 계획이다. 올해도 기업과의 컬래버레이션과 팝업 스토어 개최가 예정돼 있다. 브랜드를 확장해 더 많은 어르신들과 함께 일하는 것이 신이어마켙의 목표다. “같은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노년과 청년 사이의 벽을 허물기 위해 이 브랜드가 존재하는 거예요. 세대 간의 이야기가 끊기지 않도록, 더 많은 시니어들의 새로운 삶을 조명해 나가겠습니다.” 



ㅣ 덴 매거진 Online 2024년
에디터 김보미(jany6993@mcircle.biz) 
사진 송승훈 포토그래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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