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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en 매거진 Dec 14. 2023

삐딱하지만 밉지 않은 디자인 문구점

레터에잇 인터뷰

‘혹시 사돈이십니까? 남 말의 귀재이십니다!’
‘악의가 타고 있어요’
‘앗! 내 월급 신발보다 싸다!’

마음 속에 조용히 똬리를 튼 삐딱한 생각들을 밖으로 끄집어내니, 일상 속 시련도 웃어 넘길 수 있는 귀여운 문구들이 탄생했다. 레터에잇은 공사장에서, 벽걸이 달력에서, 전단지에서 한 번쯤 보았던 것 같은 익숙한 문장에 ‘현생’을 살아가는 우리네 솔직한 마음을 엮어, 삐딱하지만 그래서 사랑스러운 문구류를 만든다. 지난 여름 서울 일러스트 페어를 뜨겁게 달궜던 그 부스, 문구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하나쯤은 갖고 있다는 ‘내가 해냄’ 도장의 원작자. 삐뚤지만 밉지 않은 디자인 문구점, 레터에잇을 만났다.


ⓒ레터에잇

소모임에서 브랜드로

레터에잇은 글자 조형으로 만들어진 디자인 문구류를 판매하는 브랜드다. ‘레터에잇’이란 이름은 ‘글자 팔자’를 영문으로 직독직해해 만들었다. 엉뚱한 두 단어를 결합했을 때 생기는 유쾌함이 마음에 들어 이런 이름을 붙였다. 브랜드 이름을 지은 배경만큼이나 판매하는 제품들도 엉뚱하다. 홍보 전단이나 명함, 표지판 등 일상 속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디자인을 패러디한 것이 많다. 언뜻 보면 전단지 같은데, 자세히 들여다보는 순간 피식 웃음이 터진다.

“날것의 속마음에 공감하며 웃되, 밉게 보지는 말았으면 하는 마음을 섞어 ‘삐뚤지만 밉지 않은’이란 표현을 썼어요. 실험실처럼 하고 싶은 걸 마음껏 해 보고, 안 되면 접고 다른 걸 하자는 마음에서 ‘디자인 랩’이란 이름을 붙였죠.”


레터에잇은 대학 취미 동아리 내 소모임으로 시작됐다. 다이어리 꾸미기가 유행할 때, 자신의 글씨로 스티커를 만들어 판매해 보고 싶은 사람들을 모아 작은 마켓을 연 것이 계기가 됐다. 당시 참가자들이 온라인으로 재고 판매를 시작한 것이 레터에잇의 전신이다.

ⓒ레터에잇

팀원 중 한 명이 회사 서류나 마트 전단, 길거리 홍보 명함 등이 ‘B급 감성’을 자극하는 면이 있다 여겨, 이를 디자인에 결합하는 시도를 하면서 점차 지금의 ‘레터에잇 스타일’이 만들어졌다. 너무 익숙해서 단조롭게 느껴지는 것에 웃긴 내용을 더하면 재미가 배가 된다고 생각한 것이 센스 있는 B급 감성을 기다려 왔던 소비자들의 니즈와 맞아떨어지면서, 레터에잇은 트위터 내에서 서서히 인기몰이를 하기 시작했다.

운영 초기에는 주로 구글이나 네이버 폼을 사용해 주문을 받거나 입금을 확인했지만, 보다 효율적인 운영을 위해 네이버 스마트 스토어를 열었다. 반복적으로 수익이 생기는 경우 사업자 등록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정식으로 사업자 등록도 마쳤다. 소모임에서 브랜드가 된 순간이었다.



부딪히고 깨지며 얻은 운영 노하우
초기에는 여유 자금이 충분하지 않다 보니 제작이 가능한 스티커나 지류 제품을 주로 판매했다. 하지만 지금 레터에잇은 지류 굿즈 뿐 아니라 도장, 키링, 배지 등 여러가지 디자인 문구를 선보이고 있다. 더 많은 고객을 만나기 위해 선택한 방법이다.

“우리 디자인을 좋아해도 스티커를 잘 안 쓰는 사람이라면 구매까지 연결되기 어렵잖아요. 이럴 때 배지나 키링, 마우스패드 같은 다른 선택지를 보여줄 수 있다면 좋을 것 같았어요. 요즘 어떤 제품이 인기인지, 포장은 어떻게 하면 좋을지 시장 조사도 거르지 않고 있어요. 제작 조건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나는 경우가 많아 시도하지 못하고 접는 경우도 많지만요.”


ⓒ레터에잇

브랜드를 운영하는 것은 그야말로 ‘산 넘어 산’이었다. 입점처를 찾는 것이 첫 번째 미션이었다. 문구 작가들과 입점처 SNS에서 정보를 얻은 다음, 직접 입점 문의를 넣었다. 일러스트레이션 페어나 플리마켓 행사에도 종종 참여하며 레터에잇이란 이름을 알렸다.

처음엔 제안 받는 대로 입점을 진행했지만, 매출 부진으로 퇴점을 권유 받거나 매출보다 입점 수수료와 입점비를 합한 금액이 더 큰 경우도 있었다. 지금은 입점을 결정할 때 매장 방문층이 레터에잇의 주요 소비층과 일치하는지 여부를 꼼꼼히 따진다. 매출 적자 신호를 발견하면 미리 유예 기간을 정해두고, 방문하는 고객층과 성향에 대한 상담을 거친 후 매대 물품을 바꾸는 등 여러가지 시도를 한다. 홍보 효과를 고려해도 적자가 크다는 판단이 서면 그때 퇴점을 결정한다.

제작과 발주도 쉽지는 않았다. 제작 단가가 높아져 수요가 있음에도 제작이 불가능해진 상황에서 비슷한 상품을 판매하는 업체가 등장해 속앓이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레터에잇의 오리지널 디자인을 존중하며, 판매 재개를 기다렸다가 제품을 구입하는 소비자들이 있어 포기하고 싶은 날도 견딜 수 있었다.


ⓒ레터에잇 트위터

SNS는 개인 사업자들에게 중요한 홍보 창구가 된다. 레터에잇은 트위터와 인스타그램 등의 SNS를 통해 소비자들과 자주 소통하는 편이다. 주요 소비층인 20~30대를 타겟으로, 재미를 찾는 브랜드라는 점에 맞춰 편안한 기조를 추구하는 것이 핵심이다. 제품을 구매한 사람들이 올리는 후기에 적절한 멘트를 붙여 트윗을 작성하기도 한다. 친구가 쓴 글 같은 친근함이 레터에잇 SNS의 매력 포인트다.

뿐만 아니라, 레터에잇은 SNS를 통해 소비자들이 원하는 제품 트렌드를 읽고, 새로운 제품 구상의 힌트를 얻기도 한다. 실제로 2021년 여름부터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던 ‘내가 해냄’, ‘이걸 해냄’ 도장은 판매용 제품 제작 계획이 없었으나, 연출 컷에 등장한 것이 SNS 팔로워들의 관심을 받아 판매용으로 전환하게 된 사례다.
 

계속 유쾌할 수 있도록

ⓒ레터에잇

팀원 간 역할 분담, 세금, 돈, 법, 디자인 보호 등 많은 주제를 고민해온 레터에잇 운영진은 요즘 브랜드를 계속해서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을 고심하고 있다. 어떻게 하면 레터에잇만의 매력을 이어갈 수 있을지 고민하며, 새로운 프로젝트 운영 방식을 도입해 보고 있다. 누구에게도 상처주지 않는 특유의 유쾌함을 유지하면서 브랜드를 유연하게 운영해나가는 방법을 찾는 것이 목표다.

복잡한 서류도 마음을 다잡고 볼 수 있는 끈기가 브랜드를 운영하는 데 가장 필요한 자질이라고 생각했는데요즘에는 애정이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브랜드에 대한 애정이 끊이지 않아야 그만 두고 싶은 순간에도 브랜드를 이어갈 수 있다고 봐요애정을 유지할 수 있는 것도 능력이죠.”

ⓒ레터에잇

'단전에서 우러나온 비명들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조형을 찾아주는 마음'으로 디자인 작업을 하고 있다는 레터에잇. 선거철 포토 프레임, 민간신앙을 주제로 한 굿즈 팩 등 새롭게 선보이고 싶은 제품들도 많다. 내년에는 카페를 빌려 자체 팝업 스토어를 열어보고 싶다는 포부도 밝혔다. 컵 홀더와 컬래버레이션 메뉴가 있는 레터에잇 생일 카페나, 현수막을 걸어서 꾸민 ‘창고 대방출 세일’ 콘셉트를 그리고 있다.

분명 삐뚜름하지만 도저히 미워할 수 없는 디자인 문구점, 레터에잇. ‘이상하고 웃긴 곳’으로 기억되고 싶다는 그들의 엉뚱하고 삐딱한 상상이 계속되길 기대해 본다. 



ㅣ 덴 매거진 Online 2023년

글·사진 김보미(jany6993@mcircle.bi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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