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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en 매거진 Jan 25. 2024

800번대 서가에서 고른 책 3

벌써 2월이 다가오고 있다. 올해 목표를 다독(多讀)으로 정했지만 아직 무엇을 읽을지 결정하지 못했다면, 이 책들은 어떨까. 이번 달에 읽은 책 중, 흡입력이 있어 술술 읽히는 소설 세 권을 골랐다.

ⓒ 자음과모음

태양을 훔친 여자

2015년 아이를 치료할 돈이 없어 약을 훔치다 교통사고로 사망한 ‘봄순’. 어찌된 일인지 그간의 기억을 모두 가진 채 1998년으로 회귀한다. 북한에서 ‘인생 2회차’를 살게 된 그는 폐쇄적인 사회주의와 누군가의 아내로 사는 삶을 거부하며 자신의 인생을 개척해 나간다. 여성 사업가로서 기존 사회질서의 강력한 경쟁자로 떠오른 그는 더 큰 꿈을 꾸고, 이내 공고한 성분제에서 오는 그 태양과도 같은 권력까지도 자기 것으로 삼켜버린다.

북한 사회를 배경으로 한 소설은 적지 않지만, 여성인 작가가 북한에서 살아가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직접 그려낸 것은 흔치 않다. 평안남도 출신의 작가가 자신이 직접 경험한 북한 생활상과 강인한 여성상을 손에 잡힐 듯 생생하게 펼쳐놓은 점이 인상적이다. 문체가 다소 거친 느낌이 있지만, 봄순의 활약과 북한 사회의 면면을 담아내기에는 손색없다.

책 속 한 구절 | 많은 이를 죽이고 살렸다가 다시 망하게 하는 변화들. 그런 무시무시한 변화들을 봄순만이 알고 있다는 것은 하늘이 준 기회였다.

ⓒ 문학동네

리틀 시카고

미군부대 앞 골목 ‘리틀 시카고’에는 저마다 상처를 안고 있는 사람들이 모여 산다. 홀로 딸을 키우며 미군 대상으로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사람, 피부색 때문에 체육 대회에서 탈락하는 사람, 사랑하다 죽을 기회를 엿보고 있는 듯 마음 속이 공허한 사람 등등. 12세 소녀 ‘선희’는 이들 사이에서 어른보다 더 어른 같은, 속 깊은 아이로 자란다. 미군부대 이전에 따라 골목 사람들도 하나둘씩 리틀 시카고를 떠나가지만, 엄마의 무덤이 있는 이곳을 떠나고 싶지 않은 선희는 무덤 주변에 장미를 가져다 심기 시작한다.

정한아 작가는 선희의 목소리를 빌려 리틀 시카고의 모습을 묘사한다. 선희의 음성과 시선은 골목 사람들을 ‘불행한 사람들’이 아닌, 상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보듬는 사람들로 그려낸다. 소설 곳곳에서 사람에 대한 애정을 바탕으로 하는 작가 특유의 온기가 느껴진다. <달의 바다>를 재미있게 읽었다면 이 작품도 분명 마음에 들 것.

책 속 한 구절 | 사람들은 인생에서 스스로 선택하지 않은 것들을 결국에는 더 사랑하게 되는 것 같다.
 

ⓒ yes24

그리고 바통은 넘겨졌다
17세 소녀 유코는 세 살이 되기 전에 친엄마를 여의고, 조부모와 친아빠의 보살핌을 받다 새엄마를 만난다. 새엄마가 두 번 이혼해 두 명의 엄마와 세 명의 아빠 사이에서 유년기를 보낸 그는 피가 섞이지 않은 부모들과 함께 살며 다양한 가족 형태를 경험한다. 소설은 유코가 세 번째 아빠 ‘모리미야’와 함께 사는 시점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늦깎이 아빠가 된 모리미야는 책과 영상을 찾아보며 ‘좋은 아빠’가 되기 위해 분투하고, 유코 역시 ‘좋은 딸’이 되기 위해 노력한다. 이후 성인이 된 주인공은 예비 신랑과 함께 부모를 한 명씩 찾아가 결혼을 알리면서 모든 부모가 각자의 방식으로 자신을 보살펴 주었음을 깨닫는다.

1인 가구, 조손가정, 한부모가정 등 현대 사회에 등장하는 다양한 가족의 형태와 두 개의 미래를 일궈 나갈 책임이 있는 부모의 역할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게 하는 작품이다. 지금 나의 곁에 있는 사람들을 더욱 사랑해야겠다고 마음먹게 만드는 책이기도 하다. 나가노 메이, 다나카 케이, 이시하라 사토미 등이 출연한 동명의 영화로도 제작되었으니, 책을 읽은 뒤 영화를 감상해 보는 것도 좋다.

책 속 한 구절 | 진짜 행복이란 누군가와 함께 기쁨을 누리고 있을 때가 아니다. 자기가 모르는 커다란 미래로 바통이 넘겨질 때다. 그날 다짐한 각오가 여기까지 데려와 주었다.


ㅣ 덴 매거진 Online 2024년

에디터 김보미(jany6993@mcircle.bi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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