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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en 매거진 Aug 04. 2023

언제나 거기 있었다, 현재진행형 전설 톰 크루즈

톰 크루즈는 지난 40여 년간 영화계 최고의 브랜드였다.

ⓒ롯데엔터테인먼트


톰 크루즈가 지난해 <탑건: 매버릭>을 내놓자 미국 미디어들은 ‘마지막 무비 스타’라는 말로 존경과 우려를 동시에 표했다. 전투기 조종사들이 보는 세상을 실감 나게 구현하겠다며 오래된 IP에 거대 자본을 투입하고, 직접 전투기를 몰고, 후배 배우를 훈련시키고, 이 모든 일을 진두지휘하는 모습은 존경을 자아냈다. 팬데믹 이후 극장 산업이 부활할 수 있을지 불투명한 시점에 그런 시도를 한다는 것부터 톰 크루즈는 이미 고전적 의미의 ‘시네마’를 수호하는 괴짜 성인으로 추앙받을 만했다. 혹은 멸종 직전 마지막 괴성을 지르는 공룡이거나. 


<탑건: 매버릭>은 대성공을 거두었다. 역대 세계 흥행 순위 12위, 톰 크루즈 개인 흥행작 순위에서는 1위였다. 순위권의 다른 작품과 비교하면 <탑건: 매버릭>의 성과는 더욱 의미가 깊다. 역대 흥행 50위권을 점령한 건 <아바타>, 마블 영웅물, <해리 포터>, <반지의 제왕>, <스타워즈>, <배트맨>, <쥬라기 공원> 등 배우 개인의 힘보다 CGI와 스펙터클을 강조한 시리즈다. 


ⓒ롯데엔터테인먼트


배우가 결정적 기여를 한 작품은 4위에 오른 <타이타닉>과 12위를 기록한 <탑건: 매버릭> 정도다. 늙었다고 핀잔을 들으면서도 아날로그 방식으로 젊은이들에게 본때를 보여주고, 오랜 여자친구와 석양 아래서 스피드를 즐기고, 유유자적 악당을 물리치는 1980년대풍 낭만적 영웅의 모습은 CGI로 창조된 미래의 슈퍼히어로들과는 감성을 파고드는 힘이 달랐다. 그런 의미에서도 톰 크루즈는 ‘마지막 무비 스타’라 불릴 만했다. 


톰 크루즈표 액션의 시작, <미션 임파서블>

최신작 <미션 임파서블: 데드 레코닝 PART ONE>의 성공은 톰 크루즈에게 또 한 번의 영광을 가져다주었다. 1996년부터 이어진 27년 장수 시리즈의 일곱 번째 작품이다. 감독 크리스토퍼 매쿼리는 이번 <미션 임파서블>에서 61세의 톰 크루즈에게 ‘디에이징 기술’(디지털로 배우의 외모를 젊어 보이게 만드는 기술)을 적용하지 않았지만 앞으로는 이를 고려해 보겠다고 밝혔다. 올해 해리슨 포드는 81세의 나이로 <인디애나 존스: 운명의 다이얼>을 발표해 42년간 같은 캐릭터를 수행한 대기록을 세웠다. 톰 크루즈가 이를 갱신하지 말란 법 없다. 그가 사고사를 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롯데엔터테인먼트


톰 크루즈는 위험한 액션을 대역 없이 수행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전투기를 몰고, 비행기에 매달리고, 고층 빌딩에서 뛰어내리고, 와이어 없이 암벽등반을 하고, 추격 신에 나오는 차량과 오토바이를 직접 몬다. <미션 임파서블>(1996) 때 이미 영화계는 컴퓨터그래픽으로 못 할 것이 없다는 자신감에 차 있었다. 배우가 스턴트를 한다는 것이 화제는 되겠으나 그가 다치거나 죽어서 얻을 손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에 할리우드에서는 작은 위험에도 대역을 쓰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니 톰 크루즈의 액션이 어리석은 영웅주의나 자아도취라는 비판도 많았다. 하지만 작품이 공개되자 반응이 달라졌다. 액션 신에서 배우의 얼굴이 또렷이 드러남으로써 긴박감과 몰입도는 커졌고, 편집점을 감추기 위해 화면을 어둡게 만들고 정신없이 흔들어대고 빠르게 전환시킬 필요가 없으니 관객의 피로도는 덜했다. 이 시리즈가 현대 액션 영화처럼 스케일 크고 속도감 있고 애크러배틱하면서 고전 액션 영화처럼 몰입감을 유발하는 비결로 톰 크루즈의 리얼 액션이 화제를 모았다. 


ⓒ롯데엔터테인먼트


‘톰 크루즈가 이번에는 무슨 위험천만한 짓을 했을까’가 시리즈의 가장 큰 마케팅 포인트로 자리 잡았다. 이번 7편에서 자신이 사망할 경우를 대비해 촬영 첫날 가장 위험한 스턴트 장면을 찍고 그걸 예고편에 공개한 것처럼 말이다. 톰 크루즈는 이 시리즈의 제작자이기도 하다. 톰 크루즈의, 톰 크루즈에 의한, 톰 크루즈를 위한 프랜차이즈라는 점에서 <미션 임파서블>은 스파이 액션 영화의 또 다른 전설인 <007> 시리즈와도 다르다. 이처럼 영화산업의 비전을 제시하고 스스로 큰 판을 꾸리는 인물이라는 점에서도, 톰 크루즈를 향한 할리우드의 존경은 여느 스타들에게 향하는 그것과 차원이 다르다. 


청춘스타에서 존경받는 영화인으로, 그가 걸어온 길

톰 크루즈는 1962년 미국 뉴욕주 시러큐스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삶은 평탄치 않았다. 엔지니어인 아버지는 한곳에 정착하지 못했다. 3녀 1남 중 셋째였던 톰은 14세가 될 때까지 미국과 캐나다의 15개 학교를 전전했다. 종교에 관심이 많았던 예민한 소년 톰은 14세 때 신부가 되기 위해 세미나에 참석하기도 했다. 하지만 곧 영화가 종교를 대신했다. 고등학교 레슬링부에서 활동하던 톰은 무릎 부상으로 운동을 계속할 수 없게 되자 배우가 되기로 결심하고 18세에 뉴욕으로 향했다. 키는 170cm대 초반으로 작은 편이지만 미국인들이 좋아하는 쾌남상에 강렬한 눈빛과 시원한 웃음이 매력적인 이 청년은 곧 캐스팅 관계자들의 눈에 띄었다.


그의 첫 영화는 <끝없는 사랑>(1981)이었다. 브룩 실즈와 마틴 휴이트가 주연한 세기의 멜로 드라마였고, 톰 크루즈는 마틴 휴이트의 친구로 출연해 몇 마디 대사를 읊은 게 전부였다. 톰 크루즈의 기나긴 전성기는 1986년 시작되었다. 그가 미 해군 전투기 조종사로 출연한 <탑건>은 호쾌한 액션과 사나이를 울리는 낭만적 연출, 강렬한 캐릭터, 미국식 애국주의 가치관으로 대성공을 거두었다. 이 영화 덕에 해군 지원자가 늘었고, 톰 크루즈가 착용한 레이밴 보잉 선글라스 매출이 40%나 뛰었다. 심지어 한국에서조차 미남을 뜻하는 대명사가 알랭 들롱에서 톰 크루즈로 바뀌었다. 


그는 그저 잘생기고 섹시하고 참신한 젊은 배우가 아니었다. 1986년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의 <컬러 오브 머니>(1986)에서 폴 뉴먼과 호흡을 맞췄고, 1988년 배리 레빈슨 감독의 <레인 맨>에 더스틴 호프먼과 투 톱으로 출연해 인상적 연기를 펼쳤다. 이 시기 그의 입지를 잘 드러내는 사건이 있다. <레인 맨>이 아카데미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한 해, 또 다른 출연작 <칵테일>은 골든 라즈베리 최악의 작품상을 받았다. <칵테일>은 제작비 2000만 달러를 들여 8.5배 수익을 올린 기적의 흥행작이다. 톰 크루즈의 연기도 나쁘지 않았다. 아니, 여성 관객들에게는 그의 존재 자체가 작품이었다. 하지만 평단에서 톰 크루즈는 아직 의심의 대상이었다. 

ⓒ리틀빅픽처스


톰 크루즈가 <탑건>으로 확보한 ‘미국의 보수적 가치관이 투영된 젊은 영웅’ 이미지는 이후 베트남전쟁 참전 용사를 통해 전쟁의 후유증을 그린 <7월 4일생>(1990), 군대 내 가혹 행위를 고발한 <어 퓨 굿 맨>(1992), 마피아와 맞서는 젊은 변호사를 그린 <야망의 함정>(1993) 등에서 다양하게 변주되었다. 이런 사회성 강한 드라마는 연기자 톰 크루즈에게 무게감을 더해 주었다. 그사이 <칵테일>에서 현란하게 빛을 발하던 그의 섹시함은 잠시 활용이 보류되었다. 


청춘스타에서는 멀어졌고, 전 세대 명배우들과 어깨를 걸기엔 카리스마가 덜 무르익었고, 이래저래 이미지가 고루해지던 30대 초반, 톰 크루즈는 또 한 번 반전을 불러일으킨다. 1994년작 <뱀파이어와의 인터뷰>는 그가 얼마나 섹시한 배우인지 모처럼 관객에게 상기시킨 작품이다. 한창 떠오르던 브래드 피트가 인간적 고뇌에 시달리는 풋내기 뱀파이어로, 톰 크루즈가 노회하고 여유만만한 선배 뱀파이어로 출연해 경쟁 구도를 이루었다. 이를 통해 톰 크루즈는 청춘스타만큼 성적 매력이 있으면서 그들보다 노련한 배우라는, 기존 영화계에선 흔치 않은 입지를 만들어냈다. 


톰 크루즈가 픽업 아티스트로 출연한 <매그놀리아>(2000), 인간의 암울한 성적 욕망을 그린 <아이즈 와이드 셧>(1999), 반전 판타지 공포 멜로 <바닐라 스카이>(2001) 등이 뒤를 이었다. 톰 크루즈는 거장 폴 토머스 앤더슨, 스탠리 큐브릭, 캐머런 크로 감독의 섬세한 설계를 무너뜨리지 않으면서 자신만의 스타일리시함과 섹시함을 작품에 가져왔다. 이런 작품을 그보다 잘 연기할 배우도, 그보다 매력 있게 소화할 배우도, 그보다 화제성이 뛰어난 배우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모든 능력을 동시에 지닌 배우는 톰 크루즈뿐이었다. 


톰 크루즈라는 역사의 다음 장

가주의 감독들에게 대중의 관심을 끌어다주고 그 결과 관객에게 종종 배신감을 사던 1990년대 후반을 지나, 2000년대 들어 톰 크루즈의 위상은 잠시 흔들리는 것처럼 보였다. <아이즈 와이드 셧> 이후 니콜 키드먼과 이혼하고, 열일곱 살 어린 케이티 홈즈와 결혼하면서 TV쇼에 나와 소파에서 방방 뛰고, 다시 케이티 홈즈와 이혼하면서 그의 종교 문제가 대두되는 일련의 사건이 있었다. 


톰 크루즈는 첫 아내 미미 로저스의 권유로 사이언톨로지에 입문했고, 사이언톨로지를 통해 난독증을 극복하면서 종교에 깊이 심취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이언톨로지 홍보대사처럼 이미지가 굳어지고 나니 이 신생 교단에서 문제가 터질 때마다 그가 비난을 받고, 확인 불가한 가십이 끊이지 않게 되었다. 그 때문에 톰 크루즈를 위험한 광신도나 주책바가지 아저씨쯤으로 보는 시선도 분명 존재한다. <발키리>(2008) 때는 그의 종교 때문에 독일 촬영 허가에 난항을 겪기도 했다. 


그럼에도 그의 영화가 개봉했다 하면 전 세계 수억 명의 대중이 극장을 찾는다. 뭐든 한번 빠지면 끝장을 보는 이 남자에게는 영화가 또 하나의 종교이자 신념, 평생 갈 열정이라는 사실이 분명해서다. 작품을 선택하는 그의 탁월한 선구안, 그것을 실현하는 능력에도 믿음이 간다. 


ⓒ롯데엔터테인먼트


2000년대 들어 톰 크루즈는 액션 블록버스터의 아이콘으로 군림하고 있다. <우주전쟁>(2005), <오블리비언>(2013), <엣지 오브 투모로우>(2014) 등 단발성 작품부터 <잭 리처> 시리즈,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가 연달아 성공을 거두었다. 


관객에게 새로운 영화적 체험을 선사하려는 그의 노력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미션 임파서블: 데드 레코닝 PART TWO>가 2024년 개봉 예정이고, 일론 머스크의 스페이스 X와 함께하는 우주 프로젝트도 준비 중이다. 미국 항공우주국 나사(NASA)도 ‘차세대 엔지니어와 과학자들에게 영감을 줄 대중매체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이 우주 프로젝트에 협력하고 있다. <엣지 오브 투모로우>의 더그 라이먼 감독이 연출을 맡을 예정이다. 물론 톰 크루즈는 이번에도 직접 우주복을 입고 지구 밖에서 연기를 펼친다. 그것이 바로 톰 크루즈이고, 세상 남자들이 이 미친 돈키호테를 ‘톰 형’으로 추앙하는 이유이고, 관객들이 개인적 오호를 넘어 그의 영화를 보기 위해 극장을 찾는 까닭이기 때문이다. 




톰 크루즈 명장면 BEST 5   


<어 퓨 굿 맨>(1992) 

“나는 진실을 원합니다!”


군 내 의문사를 조사하던 젊은 중위가 부패한 장군을 법정에 세운다. 잭 니컬슨이 연기하는 권위적인 늙은 남자에게 할리우드의 새 얼굴 톰 크루즈가 외친다. “나는 진실을 원합니다(I Want the Truth)!” 톰 크루즈는 이미 대배우였던 잭 니컬슨에 밀리지 않는 카리스마를 보여준다. 이는 낡은 질서에 대항하는 젊은이들의 목소리였고, 할리우드의 세대교체를 선언하는 장면이기도 했다.











<제리 맥과이어>(1997) 

“쇼 미 더 머니!”


톰 크루즈가 야심 찬 스포츠 에이전트로 출연했다. 이 영화 덕분에 태평양 건너 한국인들조차 “쇼 미 더 머니!”라는 영어 구문은 확실히 알게 되었다. 톰 크루즈는 <7월 4일생>(1990)으로 처음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고, <제리 맥과이어>로 두 번째 후보에 올랐다. <매그놀리아>(2000)로 남우조연상, <탑건: 매버릭>(2023)으로 작품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수상은 모두 불발됐지만, 톰 크루즈는 상에 연연하지 않는다고.










<미션 임파서블: 고스트 프로토콜>(2011) 

부르즈 칼리파 외벽 액션


톰 크루즈가 세계 최고층 빌딩 부르즈 칼리파 외벽에서 미끄러지고, 뛰고, 매달리고, 떨어지고, 충돌한다. 안전장치를 착용하기는 했지만 제작진은 세계에서 가장 비싼 배우를 죽일지 모른다는 공포에 떨었다.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가 오랜 생명력을 얻게 된 결정적 장면이다.












<미션 임파서블: 로그네이션>(2015) 

이륙하는 비행기에 매달린 에단 헌트


에어버스 대형 모델인 A400M이 지상 305m에서 시속 185.2km로 날아갈 때 에단 헌트가 비행기 사이드 패널에 매달린다.
















<탑건>(1986) 

비행 장면


펄럭이는 성조기를 따라 태양의 후광을 받으며 미끄러지는 전투기, 보잉 선글라스와 항공 점퍼를 착용하고 활주로를 거니는 남자들, 비치발리볼, 오토바이 데이트, 정의를 구현하려 목숨 걸고 작전에 임하는 군인… 노골적인 프로파간다와 섹시즘이 넘쳐 흐르지만 매 장면이 강렬하다. 이 영화의 항공기 전투 장면은 지금 봐도 멋지다.












ㅣ 덴 매거진 2023년 8월호
글 김안녕(작가)

에디터 정지환(stop@mcircle.biz)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리틀빅픽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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