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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en 매거진 Jun 29. 2023

[독특한 휴가] 월드 클래스 테너의 휴가는?

정호윤이 알려주는 나만의 휴가법.

지친 나를 위한 쉼표. 월드 클래스 테너는 휴가 때 커피를 내린다.


정호윤. 서울사이버대학교 성악과 학장. 세계 3대 오페라극장 중 하나인 오스트리아 빈 국립오페라 극장 한국인 최초 주역 테너.



  

휴가 때 커피를 내리면서 좋아하는 것에 빠진다는 게 
그렇게 재미있는 일인 줄 처음 알았다. 
‘노래가 아닌 무언가를 하면서 나를 충전할 수 있구나’ 싶었다.



오페라계의 박찬호, 박지성, 선구자로 불린다. 알고 있나?

과찬이다. 운 좋게도 동양인으로서 세계 3대 극장에 주인공 테너로 무대에 섰다. 2006년 데뷔할 때만 해도 로맨틱한 역할이 많았던 테너 주인공으로 동양인은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분위기였다. 그래도 오디션에서 실력을 인정받아 당시로선 파격적으로 주인공으로 무대에 섰고, 세계 각국을 돌며 쉬지 않고 공연을 해왔다.


그렇게 많은 국가에서 공연하면 일상이 지칠 것 같은데

지치는 줄 모르고 달려왔다. 항공 마일리지가 100만이 될 정도로 전 세계 곳곳을 다녔다. 지난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에 공연이 올 스톱되면서 처음 쉬어봤다. 반강제적으로 휴가다운 휴가를 받은 건데, 그동안 제대로 쉰 기억이 없다 보니 어떻게 쉬어야 할지 몰랐다. 돌아보니 취미조차 가져본 적이 없더라. 충격이었다. 그제야 나를 위한 시간을 갖기로 마음먹고 커피를 배우기 시작했다. 평소 술은 마시지 않지만 커피는 좋아했다. 좋아하는 걸 해보자고 결심했을 때 단연 커피부터 떠올랐다.


커피와 음악, 왠지 잘 어울린다

커피는 음악과 굉장히 비슷하다. 우선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는 점. 같은 시간 동안 같은 양의 원두, 똑같은 방식으로 커피를 볶아도 맛이 다르다. 같은 로스팅 원두라도 내리는 사람의 성격에 따라, 또 내릴 때마다 맛이 조금씩 다르다. 살아 있는 생명체 같다. 노래도 마찬가지다. 똑같은 사람 정호윤이 지금 부르고, 1분 후에 다시 불러도 똑 같은 노래가 나오지 않는다. 이런 점이 굉장히 재미있게 다가왔다. 




로스팅부터 핸드 드립까지 커피에 대한 모든 걸 마스터했나?

이 세상에 마스터가 있을까. 나는 혼자 즐거울 정도로만 한다. 뭐든 너무 깊이 들어가면 스트레스가 된다. 나는 성악가이기 때문에 노래하는 데 목숨을 건다. 하지만 커피는 정말 즐기는 마음으로 대하고 싶다. 모든 걸 프로 바리스타처럼 완벽히 구현하기보다는 즐겁게 로스팅하고, 재미있게 내려 마실 수 있는 정도에 그친다. 어찌 보면 그것이 바로 내가 휴가를 즐겁게 보낼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다. 


커피를 즐기는 나만의 방법이 있나?

음악에 커피를 대입해 본다. 음악을 들으면서 이 음악이 커피라면 어떤 맛일까. 내가 소리를 진하게 내고 있으면 ‘지금 노래처럼 진하게 내리는 커피는 어떨까’ 상상하면서 노는 거다. 커피를 볶거나 내릴 때도 ‘지금 노래로 치면 어떤 과정이겠구나’ 한다. 휴가 때 이런 상상을 하는 것이 나름의 즐거움이었고, 그렇게 정성스레 내린 커피를 누군가가 맛있게 마셔준다면 그 또한 너무 큰 행복이더라. 


커피를 많이 마시면 불면증에 시달리지 않을까?

휴가인데 어떤가?(웃음) 커피를 많이 마신 날 밤 잠을 이루지 못해도 걱정 없었다. 내일도 어차피 쉬니까. 그래서 휴가 때 다양한 원두를 구해 볶고 내리고 마시고. 동시에 음악 들으며 책을 보고 노래도 하고 “재미있다” 외치면서 시간을 보냈다. 꿀맛 같은 휴식이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끝났다. 당신의 휴가도 끝나는 건가?

글쎄, 2023년 초부터 대학에서 학장으로 일하기 시작했다. 공연자의 삶을 살다가 학생들을 지도하고 행정적인 일도 하니 뭔가 새로운 즐거움이 있더라. 그렇다고 테너로서의 삶을 끝낸 건 아니기 때문에 병행하려 한다. 적어도 2023년 한 해는 한국에 머물며 국내 팬들에게 받은 사랑에 보답할 생각이다. 사실 어디에 꼭 놀러 가야만 휴가는 아니지 않나. 충분히 재충전해 다음을 기약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최고의 휴가라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아직 내 휴가는 끝나지 않았다. 휴가 이후의 행보를 기대해 달라.



ㅣ 덴 매거진 2023년 7월호
 에디터 이영민(min02@mcircle.biz) 
 사진 한도희
 포토그래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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