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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en 매거진 Jun 29. 2023

[독특한 휴가] 건축사가 휴가 때 다락으로 가는 이유

최준석 건축사의 독특한 휴가법

자고로 휴가란 하던 일을 잠시 끊어내는 것. 다락은 이를 위한 은신처. 



최준석. 나우랩 건축사사무소 대표.  건축에세이 '집의 귓속말' 저자.


 

휴가의 궁극적 경지는 힘들지 않은 여행이 아닐까? 
일과 완벽히 분리되면서 힘은 들지 않고 뭔가 재밌는 경험을 얻을 수 있다면 
그 이상의 휴가는 없을 듯하다.



나에게 휴가란? 

일로부터 나를 분리하는 것. 지금보다 젊었을 때는 놀 때 일 생각하고, 일할 때 놀 생각을 했다. 일과 휴가가 분리되지 않는 느낌이었다. 젊기도 했고, 매사 치열하게 살며 스스로를 다그쳐야 한다는 강박증이 있던 시절이었다. 요즘은 삶이 일과 휴식 두 가지로 심플하게 분리되는 것 같아 다행이다. 


내 일은 건축설계이고 공식 직업은 건축가인데, 사실 건축이란 게 놀면서 일하는 척하기 좋은 직업이라 그 경계가 늘 애매했던 것 같다. 예전에는 놀면서도 건축을 염두에 두는 것 같은 생활이 좋다고 생각했는데, 불필요하게 에너지를 쓰는 비효율을 개선하고자 지금은 일상 속 루틴에서 확실하게 일과 휴식을 분리하고 있다. 


자기만의 휴가 루틴이 있나?

금요일 저녁부터 일요일 밤까지 5일마다 반복되는 주말이 휴가라면 휴가다. 금요일 저녁이 되면 건축을 끊고 영화, 책, 술, 운동 모드로 넘어간다. 요즘은 진저에일과 라임을 섞은 하이볼 한 잔과 캐러멜 팝콘(고래밥이나 와사비 과자도 좋다)을 준비해 다락에 오른다. 흔들의자에 앉아 적당한 음악을 틀어놓고 좋아하는 소설을 읽는다. 


ⓒ최준석


왜 다락으로 향하나?

오롯이 나에게만 집중할 수 있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다락에 머물며 좋아하는 책을 읽고, 글을 끄적거리고, 음악 듣고, 영화도 보고, 운동도 하고, 건축설계에 관한 스케치도 하고. 모든 게 내게 맞춰져 있다. 누구의 방해도 없기에 진짜 나를 발견할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다락을 갖게 된 계기는?

아파트를 떠나 작은 단독주택을 짓고 산 지 6년 차다. 전에는 방 5개, 약 192m2(58평) 아파트에서 부모님 모시고 아이 둘과 살았다. 그 이전까지 합하면 30년 넘게 아파트에서 지냈다. 아파트 생활에서 아쉬웠던 건, 북적대는 식구들에게서 조금도 벗어날 곳이 없다는 점이었다. 2.3~2.4m 정도 되는 균일한 천장 높이의 공간에 방 개수만큼 벽을 갈라 만든 아파트의 구조상 식구들과의 동선에서 벗어나는 건 불가능했다. 평수가 크고 작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집에서 혼자 있고 싶을 때 집 안 어느 구석에 숨어 들어가 식구들 방해받지 않고 머물 공간이 그리웠다. 마침 단독주택을 짓기로 결심하면서 수직 공간을 자유롭게 쓸 수 있게 됐고, 아늑한 다락 하나를 만들었다. 그랬더니 심리적 공간감이 아파트에 살던 때와 완전히 달라지더라. 


우리 집 다락은 나 말고도 아내가 요가를 하거나 아이가 공부를 하는 공간으로 활용된다. 말하자면 오밀조밀한 살림집의 내부 구조에서 다목적의 여백을 만들어주는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딱히 쓰임새를 두지 않고 어떤 용도로든 쓸 수 있는 빈 공간이 사람 사는 주택에는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쉴 때 소설을 읽는 이유는?

소설은 직업인으로서 일하는 내가 지극히 순수한 자아로 돌아가는 과정의 매개체다. 넷플릭스, 영화 등 다수의 미디어를 접해봤으나 소설과의 궁합이 나와 가장 잘 맞았다. 텍스트형 인간이라 해야 할지, 옛날 사람이라고 해야 할지, 뭐라 해도 상관없지만 글자를 읽으며 제멋대로 떠오르는 이미지를 마음껏 상상하는 것이 성향상 잘 맞는다. 


사실 2차원적 선과 문자를 나열해 3차원의 뭔가를 만들어내는 건축가라는 직업 특성과 잘 어울리는 것도 같고. 가끔 가볍게 한잔하며 도면을 그릴 때가 있는데, 적당한 알코올은 소설 읽기에도 좋다. 글자가 이미지로 넘어갈 때 상상력을 좀 더 증폭시키는 효과가 있다.



ⓒ최준석


당신의 휴가 스타일은 어떻게 변모해 왔나?

몰아서 1년에 한두 번 길게 가는 휴가를 점점 지양하게 된다. 앞서 말했듯이 매주 금·토·일요일을 휴가처럼 사용하는 일상적 루틴이 지금은 가장 좋다. 나이 들수록 어지간한 휴가 방식은 이미 경험해 본 데다, 어느 순간부터는 힘이 들고 귀찮기도 해 갈수록 거창한 형식을 버려왔다. 


동시에 무더운 여름에는 집에 있고 봄가을같이 날씨 좋을 때 놀러 다니는 사람도 많아졌다. 올가을 평일엔 도쿄나 타이베이를 며칠 다녀올 계획이다. 특별한 일정은 없고 몇 번 갔던 도시는 그냥 가던 곳, 나만 아는 동네 노포 들르며 이방인의 관점으로 돌아다닌다. 


당신의 휴가 방식을 남들에게도 적극 추천하나?

아니다. 휴가란 내 맘대로 하는 것이 가장 자연스럽다. 이런 휴가도 있는데 나름 쓸만하다, 정도면 충분하다. 행여나 내가 추천한 휴가를 누군가 부자연스럽게 따라 한다면 그리 보람되지 않을 것 같다. 


그럼에도 딱히 특별한 휴가 계획이 없거나 생각해 봤자 이번에도 뻔한 여름휴가가 될 것 같다면 차라리 재미있는 소설을 읽으며 며칠 아무 생각 없이 뒹굴뒹굴하는 휴가를 추천한다. 꼭 소설일 필요는 없다. 뭔가 삶에 도움될 만한, 가령 재테크나 경제 실용서 같은 책도 좋다. 각자 원하는 책을 읽는 것으로도 만족스러운 휴가를 보낼 수 있을 것이다.


ⓒ최준석



휴가 때 읽을 만한 소설을 추천한다면? 

당장 생각나는 건 세 권이다. 마쓰이에 마사시의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집 <대성당>, 김초엽의 SF소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수 있다면>은 모두 여름 분위기와 잘 어울린다.  


휴가 이후에는 어떤 일이 펼쳐질까?

늘 그렇듯 다양한 의뢰인의 건물, 주택을 설계하고 짓고 있을 것이다. 나처럼 집 안에 작은 아지트를 꿈꾸는 이들의 집도 여럿 작업 중이다. 얼마 전 준공한 집은 지하에 아빠를 위한 목공 작업실을 뒀고, 다락은 다목적 가족실로 만들었다. 곧 공사에 들어갈 또 다른 집은 지하에는 아빠의 게임 룸을 겸한 작은 아지트를, 다락에는 비행기 조종석 같은 2평짜리 작은 서재를 설계했다.


사람이 각양각색이듯 집 역시 그곳에 사는 사람의 가치관, 생각에 따라 각양각색이어야 자연스러운 것 같다. 건축가로서 단독주택 설계의 묘미는 그런 다양성에 있지 않나 생각하면서 이번 여름도 누군가의 집을 설계하며 지낼 것 같다.





ㅣ 덴 매거진 2023년 7월호
 에디터 이영민(min02@mcircle.bi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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