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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en 매거진 Nov 14. 2023

늦가을의 소설 3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휴대전화 사용량이 눈에 띄게 줄었다. 글을 읽고 행간의 의미를 생각하는 재미, 자극적인 릴스와 쇼츠에 가려져 잊어버렸던 그 맛을 다시 찾아 가고 있다. 나만의 세계에 빠져드는 순간의 기쁨은 오직 책만이 줄 수 있다. 최근 읽은 책 중, 시끄러운 일상으로의 스위치를 내리고 독서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는 소설들을 골랐다. 

 

■ 작은 땅의 야수들


이민진 작가의 <파친코>를 떠올리게 하는 대하소설. 기생, 사냥꾼과 그의 아들, 혁명가 등 여러 인물의 삶을 한국의 근현대사를 바탕으로 그려냈다. 서로 다른 가치관과 목표를 가진 인물들은 거대한 역사의 흐름 속에서 저마다의 방식으로 투쟁하고, 사랑하고, 살아간다. 작가는 역사라는 거대한 파고가 개개인의 삶에 남기는 흔적을, 작은 땅에서 살아가는 야수들의 모습을 통해 보다 입체적으로 조명한다. 사랑하는 것과 살아남는 것, 그것이 얼마나 중한 일인지 책장을 덮을 때쯤 새삼 깨닫는다.

책 속 한 구절 | 삶은 견딜 만한 것이다. 시간이 모든 것을 잊게 해 주기 때문에. 그래도 삶은 살아볼 만한 것이다. 사랑이 모든 것을 기억하게 해주기 때문에.
 

■ 불펜의 시간

승패의 논리는 차갑고 날카로우며, 때로는 폭력적이다. 볼넷을 남발해 ‘쿠크다스’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야구선수, 불안장애를 앓는 회사원, 루머에 시달리다 회사를 그만두는 신문기자. 승패의 논리로 바라보면 모두 패전투수인 사람들이다. 하지만 이들은 이기지 않는 것을 ‘선택’하며 승자와 패자로 분류되는 시선을 거부한다. 어떤 내일이 올지 모르지만 마운드가 아닌 불펜에서의 시간을 자신으로서 살아간다. 이기는 것과 지는 것, 그리고 이러한 분류에 참여하지 않는 것. 또 다른 선택지가 있음을 알려 주는 것은 ‘실패해도 괜찮아’와는 다른 결의 위로다.

책 속 한 구절 | 기자님, 이기는 게 중요할까요? 얼마나 중요할까요? 무엇보다 중요할까요? 그런 질문이 몇 년 동안 끈질기게 저를 따라다녔어요.
 

■ 일몰의 저편

한 여성 작가가 ‘요양소’라는 건물에 감금된다. 이곳에서는 작가들을 대상으로 사상 교육이 진행된다. 외설적이거나 폭력적이거나, 체제를 비판하는 글은 쓸 수 없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다. 그들에게 순응해도 ‘요양소’를 살아서 나갈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현 사회를 진단하는 작가의 시선에 고개가 끄덕여질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정치적 올바름, 표현의 자유, 캔슬 컬처(자신의 가치관과 맞지 않으면 팔로우를 취소하는 문화) 등에 대한 다양한 질문과 논의가 이루어질 수 있는 책이라는 점에서는 여전히 의미가 있다. 우리를 좀 더 나은 세상으로 나아가게 하는 지도가 바로 그 논의로부터 그려질 수 있다.

책 속 한 구절 | ”적응한 작품이란 어떤 작품이죠?” / ”올바른 작품입니다.” / “누가 그런 걸 강제할 권리를 갖고 있죠? 아무도 그럴 권리는 없어요.” 어이가 없어진 나는 이미 흥분하고 있었다.  


ㅣ 덴 매거진 Online 2023년
에디터 김보미(jany6993@mcircle.bi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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