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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en 매거진 Nov 17. 2023

상속세 개편의 시계는 돌아간다

우리나라는 1950년 상속세법을 제정할 때 
유산세 방식을 채택한 후 현재까지 이를 유지하고 있다.
그런데 정부가 상속세 과세 방식을 
유산세에서 유산취득세로 전환하는 방안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법무법인 가온의 강남규 대표 변호사와 함께,
다른 국가의 상속세 과세 사례와 유산취득세 방식으로의 전환 원인을 짚어 봤다.
© Shutterstock

죽음에 부과되는 세금, 유산세(遺産稅, estate tax)
벤저민 프랭클린은 “세상에 확실하다고 할 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죽음과 세금만 제외하고는”이라는 말을 남겼다. 국민의 세금을 걷어 운영하는 국가를 직접 설계해 본 사람의 ‘뼈 때리는’ 팩트 폭격이다. 그렇다면 둘을 합쳐, 죽음에 부과되는 세금은 어떤가? 대부분의 사람은 세금을 내기 싫어한다. 물론 아닌 경우도 없지 않지만, 소득이나 재산의 상당 부분을 국가에 납부하면서 ‘국가가 나한테 해준 것이 뭐냐’고 생각한 분이 오히려 보통일 것이다. 하물며 투자나 양도처럼 내 자의로 결정하는 것도 아니고,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죽음’에 대해, 평생 이미 온갖 세금을 다 내고 모은 재산에 다시 높은 세율의 세금을 부과한다면 어떤가?

얼마 전 넥슨 창업자 김정주 회장이 세상을 떠난 뒤 유족들은 상속 재산 10조원 가운데 절반 이상인 6조원을 상속세로 내야 했다. 유족들은 상속세를 내기 위해 주식을 팔아치울 수 없으니 현금 대신 지주회사인 NXC의 지분 29.3%(4조7000억원)를 물납했다. 이로써 기획재정부가 단숨에 넥슨 그룹의 2대 주주가 됐다. 역대 최고액의 상속세를 내고 있는 삼성가의 경우 총 12조원이 넘는 고 이건희 회장의 상속세를 2021년 4월부터 분할 납부하고 있다. 이 역시 주식을 팔아치워 낼 수는 없으니 현재까지 총 4조원이 넘는 주식담보대출을 받았다. 지난해부터 이어진 고금리의 영향으로 이들이 받은 대출의 금리는 5%대다. 대출이자만 연간 2,000억원 이상으로 추정된다.

이처럼 우리나라의 현행 상속세제는 유산세(遺産稅) 방식으로 짜여 있다. 돌아가신 분을 중심으로 그가 남긴 전 재산을 상속세 과세 대상으로 삼아 상속세액을 산출하고, 마치 돌아가신 분이 살아서 납부하는 것처럼 유족(遺族)에게 연대로 납세의무를 지워 과세한다.


낡은 상속세 제도에 내포된 모순
넥슨이나 삼성의 이야기는 일반인에게는 거리가 먼 이야기다. 원래 상속세는 다수의 지지로 권력을 갖게 된 ‘정치’의 경제, 즉 ‘금권(金權)’에 대한 통제 도구였다. 과거에는 그랬다.

2000년 김대중 정부 때 상속세제에 대한 손질이 있었다. 그 이후로 거의 한 세대(25년)의 세월이 흘렀으나 상속세는 세율이나 공제액 등이 거의 그대로다. 그 사이 경제는 약 2배 성장했다. 대치동 은마아파트가 1999년에 2억원대였는데 2020년에는 20억원이 되었다. 삼성전자 시가총액은 1999년 25조원에서, 20년 사이에 354조원이 되었다. 비율로 치면 14배가 넘는다. 자산가치는 오르고 공제는 그대로이다 보니, 상속세 신고 금액도 같은 기간 딱 10배 늘어났다. 상속세 납부 금액도 최근 5년 사이에만 거의 2배가 늘었다. 이리 하여 이제 상속세는 강남, 아니 서울에 똘똘한 아파트 한 채만 있어도 나온다. 바야흐로 ‘중산층의 세금’이 된 것이다. 상속세만이 아니라 같은 세법의 규율을 받는 증여세까지 더하면, 상속증여세의 적용을 받는 국민의 수는 현저하게 늘어나게 되었다. 

ⓒDen

유산세 방식은 제도 자체에 모순이 내포되어 있다. “100억 물려준 아버지는 자식이 10명, 50억 물려준 아버지는 자식이 한 명일 때, 상속인들 중 누가 세금을 많이 내는 게 합당한가?”라는 질문을 해보면 이러한 모순은 극대화된다. 자식이 10명이어서 세전으로 따지면 인당 10억원밖에 못 받는 전자의 경우에도, 유산세 방식에서는 혼자 50억을 독식하는 후자보다 많은 세금을 낸다. 선뜻 납득이 되지 않는다. 증여세의 납세의무자는 수증자(受贈者)로 해놓고 상속세는 돌아가신 분, 즉 주는 분을 위주로 세금을 계산하게 한 것도 앞뒤가 맞지 않는다.


나아가 우리 민법상 공동상속인들은 상속이 개시되어 상속재산의 분할이 있을 때까지 각자의 법정상속분에 따라서 이를 잠정적으로 공유하다가 특별수익 등을 고려한 구체적 상속분에 따라 상속재산을 분할함으로써 최종적으로 개개의 상속재산을 누구에게 귀속시킬 것인지를 확정하게 된다.(대법원 2023. 4. 27. 선고 2020다292626 판결 참조) 민법 제1015조에 따르면, 이러한 상속재산 분할의 효과는 상속 개시된 때에 소급해 그 효력이 있으므로, 결국 상속인들은 상속 개시 시점에 피상속인으로부터 재산을 바로 승계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우리 민법의 법리다.(대법원 1990. 11. 13. 선고 88다카24523, 24530 판결 참조)

이러한 포괄승계주의(상속인들에게 바로 법정물권변동)를 취하는 독일, 프랑스, 일본 등의 국가는 모두 유산취득세 체제를 갖추고 있다. 반대로 유산세를 취하고 있는 미국, 영국, 대만 등의 나라는 모두 관리청산주의(상속재산은 인격 대표자에게 잠정적으로 귀속)를 취하고 있다. 결국 우리나라만 민법과 세법이 반대로 되어 있는 셈이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세금은 돌아가신 분을 중심으로 매기면서 공제는 남은 사람들 인별(人別)로 하는 시스템이다. 유일한 상속재산이 10억원짜리 집 한 채일 경우, 배우자가 없는 경우에는 상속세가 8633만원인데, 배우자가 있는 경우에는 심지어 그 배우자가 상속재산을 한 푼도 받지 않고 자녀들이 다 가져가더라도 배우자 상속공제 5억원을 적용해 상속세가 0원이 된다.

이렇다 보니, 공제를 활용하기 위한 온갖 ‘절세 컨설팅’이 판을 치게 된다. 가족 단위의 가산(家山) 개념이 지배했던 과거와 달리, 20세기 이후 우리가 공평하다고 생각하는 개념은 ‘내가 받은 재산에 대해서 과세 당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유산세는 세금의 계산과 공제도 그렇지 않다고 하기 때문에 뭔가 불공평하다는 인식이 생겨났다. 시대에 맞지 않는 옷이 되어버린 것이다.

© Shutterstock

상속세, 다른 나라는 어떻게 하고 있나

이리하여 ‘죽음’에 과세하는 상속세를 폐지한 나라도 꽤 많다. 예를 들면, 복지국가의 상징이자 높은 세금으로 유명했던 스웨덴이 그렇다. 상속세를 폐지하기 전 스웨덴의 상속세 최고세율은 70%에 이르렀다. 상속세가 전체 세수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0.3~0.5%에 불과했지만 상속을 통해 부의 세습과 집중에 따른 폐해를 막아야 한다는 이념에 기초해 고율에 의한 상속세 제도가 시행되었다. 이러한 제도에 변화를 가져온 것이 아스트라 AB(Astra AB)의 상속 사례다.

1984년 스웨덴의 제약회사인 아스트라 AB 설립자의 부인이 사망함에 따라 자녀들이 재산을 상속하게 되었는데, 상속재산의 대부분은 회사 주식이었다. 상속인들은 최고세율 70%에 따라 산정된 상속세를 납부하기 위해 상속한 회사 주식을 매각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소식이 알려지자 회사의 다른 주주들은 상속인들의 주식 대량 매도에 따라 주가가 하락할 것을 우려해 그 전에 자신의 주식을 매각하려 했고, 그 과정에서 주가가 폭락했다. 결국 상속인들이 상속한 회사 주식의 매각 대금이 상속세액에도 미치지 못해 상속인들이 아무것도 상속받지 못하는 결과가 초래되고 말았다. 결국 이들은 자산 상당 부분을 잃은 채 스웨덴을 떠났고 회사는 영국의 한 회사에 인수됐으니, 그 회사 이름이 코로나19 백신으로 유명한 아스트라제네카(AstraZeneca)다.

이러한 사태는 스웨덴의 다른 기업가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세계적인 가구 회사 이케아(IKEA), 우유팩 발명으로 이름난 테트라팩(Tetra Pak)의 설립자 등 많은 스웨덴 기업가가 아스트라 AB와 같은 사태를 겪지 않기 위해 스웨덴을 떠났다. 뿐만 아니라 중산층에게도 과도한 부담을 지운다는 문제 제기가 지속되었고, 2004년 드디어 의회의 만장일치로 상속세가 폐지되었다. 상속세 폐지 이후 스웨덴을 떠났던 기업과 기업가들은 스웨덴으로 복귀했다.

실제로 OECD 전체 35개 국가 중 13개국은 상속세를 폐지 또는 면제했다. 다만, 이렇게 거론되는 나라 중 캐나다, 호주, 스웨덴, 뉴질랜드 4개국은 상속세 대신 자본이득세로 과세하고 있다. 예를 들어, 캐나다는 피상속인이 보유하던 부동산 등을 사망 시점에 처분한 것으로 보아 양도소득세를 낸다. 호주는 사망 시점에 발생한 양도소득세는 실제 처분할 때까지 이연(移延)해 준다. 실제 팔려서 돈이 들어올 때, 그때 한꺼번에 내라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호주의 경우는 사실 죽음을 계기로 과세하는 상속세는 없어졌다고 보는 게 맞다.

가족에 대한 면제 제도를 통해 사실상 상속세를 거의 과세하지 않는 나라도 많다. 리투아니아, 스위스, 슬로베니아, 포르투갈, 폴란드, 헝가리 같은 나라는 배우자와 자녀들에 대해서는 가족이라는 이유로 상속세를 면제한다. 즉 제3자만 공짜 소득에 대해 따로 세금을 낸다. 미국의 경우에는 배우자 공제 외에도 기본적인 공제 금액이 크다. 미 연방정부의 상속·증여세 면제 한도는 개인의 경우 2010년 100만 달러(약 11억4000만원)에서 올해 1170만 달러(약 133억원)로 늘었다. 부부를 기준으로 보면 이 기준이 같은 기간 200만 달러에서 2340만 달러(약 266억원)로 11.7배 높아진 것이다. 이 공제 한도를 넘는 금액에 대해서만 최소 18%에서 최고 40%까지 세금이 부과된다.

OECD 35개국 중 상속세를 시행하고 있는 22개국 중에는 유산취득세가 유산세보다 압도적으로 더 쓰이고 있다. OECD 회원국 가운데 유산세 방식을 택한 나라는 대한민국, 미국, 영국, 덴마크 4개국에 불과하고, 나머지 국가는 유산취득세 방식을 택하고 있다. 여기에서 이번 유산취득세 전환의 당위성이 도출된다.


유산취득세 전환의 전망
‘유산취득세’란, 돌아가신 피상속인을 기준으로 상속세를 계산하는 ‘유산세’ 방식과 달리, 각각의 상속인이 받는 재산마다 별도로 세율을 적용해 상속인별로 상속세를 계산하는 방식이다. 각각 받을 재산만을 과세표준으로 삼다 보니 일단 적용되는 세율이 낮아진다. 상속세 납부 방식을 피상속인 기준인 '유산세'에서 상속인을 기준으로 삼는 '유산취득세'로 바꾸자는 제안은 문재인 정부 초기부터 나왔다.

ⓒDen

당시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산하 재정개혁특별위원회가 2019년 2월 발표한 재정개혁보고서를 보면 “상속자산 전체에 세율을 적용하는 현행 유산세 방식을, 각각의 상속인이 받은 재산마다 별도로 세율을 적용하는 유산취득세 방식으로 개편할 필요가 있다”라고 권고하고 있다. 2021년 11월 기재부가 당시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조세소위 소속 국민의힘 추경호 의원에게 제출한 ‘상속세 주요 쟁점에 대한 검토 의견’ 보고서에서도, 기재부는 이미 당시에 유산취득세 도입을 중장기적 과제로 검토해야 한다고 했다.


말하자면, 유산세에서 유산취득세로의 전환은 이번 정부의 기조인 ‘감세’만이 이유는 아니다. 전체적으로 과세표준이 줄어 감세 효과가 발생하는 것은 맞고, 대상 계층이 어쨌든 상속세를 낼 만한 계층에 한정되는 것도 사실이겠지만, 근본적으로는 유산세 방식이 가진 문제점을 고쳐 국민의 오늘날 컨센서스에 맞지 않는 부분을 제도적으로 바로잡고자 하는 것이다.

다만, 올해 세법개정안에 바로 들어갈 것 같았던 상속세 개편은 결국 포함되지 못하고 일단 미뤄지게 되었다. 기재부가 전문가 진용을 꾸려 맡겼던 용역도 5월 검수 예정이었는데, 여러 복잡하고 까다로운 실무상 이슈들이 나오면서 아직 진행 중이라고 한다. 내년 총선에 미칠 영향도 있을 것이고, 여소야대 정국도 있을 것이고, 정치적 계산도 물론 있을 것이다. 금년 들어 특히 엄중한 세수 상황도 크게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지난 6월 8일 관훈클럽 토론회에서 "아직까지 사회적 공감대 형성이 먼저 필요하다"라며 "배우자, 자식에 대한 공제 등에 대해서 모든 부분을 함께 건드리고 조정해야 하기 때문에 너무나 큰 작업"이라고 말했다. 이어 "올해에 상속세에 대한 전반적인 개편안을 국회에 제출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라고 밝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역도 그대로 진행 중이고, 조세개혁추진단도 여전히 돌아가고 있다. 내년 총선 이후 상황이 또 어떻게 바뀔지 모르겠지만, ‘상속세 개편의 시계는 돌아간다’.


ㅣ 덴 매거진 2023년 11월호
글 강남규 (법무법인 가온 대표 변호사)
에디터 김보미 (jany6993@mcircle.bi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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