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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 스카프와 잔물결

by Dennis Kim

스카프와 잔물결


그녀가 떠난 후, 그의 방에는 언제나 비가 내렸다. 창가에 놓인 커피잔에 담긴 빗물이 고여 마치 잿빛 거울 같았다. 그는 그 잔을 들고 창문 너머로 흐릿한 파리 지붕을 바라보곤 했다. 그 잔 속에 비친 자신의 얼굴은 매일 조금씩 이질감을 더해갔다.


"당신은 의처증이야."


그녀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었다. 그 말이 입술을 떠날 때, 그녀의 눈동자에는 어둠 속에서도 반짝이던 세느 강의 등불이 맴돌았다. 그는 그 등불을 따라가다 발밑이 허워지는 걸 느꼈고, 결국 강물에 삼켜진 자신을 발견했다.


그가 준비한 코발트색 스카프는 크리스마스 아침까지 서랍 깊숙이 잠들어 있었다. 손수 고른 메리노 울 소재, 그녀의 창백한 목을 감쌀 생색이다. 하지만 그녀는 그보다 먼저 누군가에게 받은 흰색 스카프를 목에 걸고 나타났다. "추우니까"라고 말하며 웃던 그날, 그녀의 귓불에 맴도는 서리 같은 숨결이 그의 심장을 관통했다.


카페 라투아르에서의 일요일 오후. 그녀는 항상 오전 11시 27분에 도착했다. 계단을 오를 때마다 휘청이는 커피잔 소리, 머리카락 사이로 스민 라벤더 향, 손등에 어른거리는 햇살의 각도까지. 그는 그 모든 것을 신의 계시처럼 믿었다. 하지만 어느 날 그녀가 27분이 아닌 33분에 나타났을 때, 그녀의 목에 걸린 낯선 스카프가 바람에 날리는 것을 보았다. 그 순간부터 시간은 유리조각처럼 부서져 그의 몸속을 긴히 할퀴었다.


밤마다 그는 세느 강변을 걷는다. 그녀와 마지막으로 걸었던 12월의 돌다리를 지날 때면, 발밑에서 들려오는 물소리가 달라진다. 강물이 "미안해"라고 속삭이던 그날 밤, 그는 돌다리 난간에 몸을 기대어 울음을 삼켰다. 강물 아래로 빛나는 도시의 잔상들이 모두 그녀의 얼굴로 변했다.


서랍 속 코발트 스카프는 이제 먼지와 시간의 층위를 이룬다. 가끔 그는 그 스카프를 꺼내 창문 틈으로 새어드는 달빛에 펼쳐본다. 그 순간만큼은 메리노 울의 섬세한 결이 그녀의 체온을 되살리는 듯하다. 하지만 새벽 4시 33분, 옆집 피아노 소리가 멈추면 스카프는 다시 죽은 물건이 된다.


어느 봄날, 그는 우연히 그녀의 흰색 스카프를 목에 건 여인을 본다. 몽소르 거리 끝자락에서 빵을 사는 그녀의 모습이 아스팔트 위에 흔들릴 때, 그는 자신이 여전히 서랍 속에 갇혀 있음을 깨닫는다. 비가 내리는 날의 커피잔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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