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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ennis Kim Feb 12. 2024

직업소개소

단편 소설 - 깨질듯 불투명한 블루의 여름 날.

예지하는 것보다 빠르게 인공지능은 특이점을 넘어섰다.

가까운 미래, 인간은 인공지능에 의해 거의 대부분의 직업을 잃었다. 빅테크 기업이 국가를 넘어 인류를 지배했고 인간은 일이 필요했다. 그러자 전쟁이 일어났다.


데이터센터는 비핵 전자기 펄스(electromagnetic pulse, EMP) 공격으로 많은 데이터들이 복구할 수 없을 정도로 파괴되었다. 클라우드 업체에서 성배처럼 이야기하는 멀티 리전 이중화는 큰 의미가 없었다. 거의 대부분의 데이터센터 리전이 UTC +8:00에 맞춰서 공격을 받았다. 


데이터센터에는 인류를 지배하는 초거대 인공지능이 있었기 때문이다.


인공지능으로 유전자의 결합과 질병의 원인까지 파악했던 인류는 많은 과학 기술을 잃어버렸다. 최첨단 공장, 의학 제조시설, 병원의 의사까지 인공 지능에 의지했던 것이다. 


인공지능의 붕괴는 경제와 사회의 붕괴로 이어졌다. 인공지능의 속박에서 벗어난 인류와 사회는 무정부 상태의 야만의 시대를 지나 다시 문명을 만들어냈고 그럭저럭 돌아가는 사회가 되었다. 하지만 우리가 누렸던 인류 문명 정상의 기술들은 이해할 수 없었고 리버스엔지니어링조차 힘든 경우가 많았다. 인류는 다시 20세기의 어느 순간으로 되돌아갔다. 게임에서 장애가 나면 일정 백업 시점 뒤로 되돌아가는 것처럼 백섭을 당한 것이다.


케이라고 불린다. 나는. 


야만의 시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대부분의 어른들도 인류 문명이 정지했던 야만의 시대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꺼린다. 아니 잘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집단 트라우마인 것이다. 


나는 야만의 시대 끝에서 태어나 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취업했다. 내 직업은 하루 반나절만 일하면 되는 직업이다. 선천적으로 스트레스에 약했고 오랜 시간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이 힘들었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큰 야망은 가지지 않고 사람 대면이 적고 의식주를 해결하는 직업을 찾았다.


직업 소개소에서 나는 실업자들의 직업을 소개해준다. 집 혹은 카페에서 대부분 일을 하고 한달에 한 두번 공유 오피스로 가서 결제가 필요하거나 회사 비품을 수령할 때만 상사와 팀원의 얼굴을 본다. 우리 사무실 지부장은 다른 본부의 업무를 겸임해서 출장이 잦은 편이라 아직 온라인 회의 외에 대면할 기회를 잡지 못했다. 마음 한컨에서는 상사를 얼굴을 마주보고 만나야지 했지만, 주저주저했다. 대면 출근하는 날은 마음의 붕괴를 막기 위해 잊지 않고 신경 안정제를 챙겨 먹었기 때문이다. 회식도 강요가 아니라서 상사가 나온다는 다른 본부 통합 회식자리는 아직 참석해보지 못했다. 상사는 나에 대한 병력을 알아 너그러운지 나에게 관심이 없는지 모르지만 대면 미팅을 신경쓰지 않는 눈치였다.


어느 날 '모모'씨가 사라졌다. 도예가인 '모모'씨가 사라지자 경찰은 나에게도 연락이 왔다.아침에 원두 커피를 내려 마시던 중 리듬을 깬 경찰의 전화 한통,이 나를 그에 대한 기억을 불러 냈다. 불과 반 년전, 전 나를 통해 도예 교육을 받고 성공적으로 '도예가'가 된 '모모'씨가 깜쪽같이 사라진 것이다.


예외적으로 화상 미팅 대신 나는 '모모'씨를 카페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회사에서 추천한 여러 직업 중, 적성 테스트 결과에 가장 부합하는 '도예가'를 추천했다. 마침 근처에서 살기도 했고 카페에서 오다가다 눈에 익던 사이라서 신기하기도 했다. 어느날 '온라인 상담'이 잡혀 있었는데 '모모'씨는 온라인 상담 프로그램에 접속하지 않았다. 


비가 부슬부슬 오는 날 우산을 쓰지 않는 그가 카페로 돌진하듯 달려 들어왔다. 카페에는 나와 바리스타 밖에 없었지만 놀라기는 똑갔았다.


"케이씨죠? 온라인에서 보는 것보다 얼굴을 보고 상담 받고 싶었어요!"


그는 빗방울에 젖은 머리를 쓸어 넘기며 환하게 웃었다. 그렇게 그와 상담을 했다. 처음으로 자낙스를 먹지 않고 그럭저럭 사람과 대화했던 생경한 날이었다.


'모모'씨는 나의 설득으로 1달 과정으로 도예 학원에 다녔다. 우수한 성적으로 도예가 자격증을 딴 뒤, 바로 프리랜서로 컵이나 그릇을 만드는 일을 시작했다. 도예 학원에서 도자기 컬렉터 겸 도매상을 소개 받아 빠르게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몇 달이 지나 '모모'씨는 도자기 컬렉터의 후원을 받아 작은 도예 전시회를 열 수 있었다. 오프닝 파티에 나도 초대  받았는데 자낙스를 잊고 갔다가 공황과 불안이 몰려와 그의 행사를 내가 망칠뻔 했다. 야만의 시대 이후에 태어난 사람들의 서로 부끄러워 이야기하지 않지만 상당수가 약을 먹고 있었고 약을 잊으면 간혹 공황 상태에서 사고가 나기도 했다. 그날도 내가 그럴뻔 한 날이었다.


온라인을 통해 경찰에게 '모모'씨 관련 조사를 마친 후, 고민끝에 나는 길을 나섰다. 나는 앱에서 명함을 찾아 도자기 도매상 주소를 찾았다. 도매상은 몇 블럭 떨어진 곳에 사무실이 있었다. 걷기에는 애매했고 그렇다고 값비싼 우버를 부르기에도 애매한 거리였다. 이제는 공유 택시가 인공지능으로 자율주행이 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운전하기 때문에 큰 마음 먹지 않으면 타기 힘든 가격이 되었다. 노인들이 지난 세기를 이야기하면서 값싼 자율주행의 시대가 있었다는 것을 이야기했던 적이 있다. 인간 택시 운전사들은 다 쫓아내자 자율주행 회사들이 가격을 막판에 올리긴했지만 매우 저렴했다고 했다.


이제 택시는 인간이 운전하기 때문에 비싼 교통 수단이 되었다.


나는 걸었다. 이삼십분을 걷고 십분을 쉬고 다시 걷고 쉬기를 몇 차례 반복하고 거의 3시간 반이 지나 컬렉터 겸 도매상의 사무실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 동안 회사에서 급한 회의로 조인하라는 전화와 메시지가 몇 건 왔지만 지금 나에게는 중요하지 않았다. 


도자기 도매상의 사무실은 약간 황량했다. 도자기들이 박스에 아무렇게나 쌓여 있었고 인기척이 없었다. 나는 개미에게나 들릴 듯한 목소리로 점원을 찾았다.


"계세요?"


몇 번이나 기운 내서 외친 끝에 작은 방의 문이 열렸다. 컬렉터 본인이었다.


"무슨 일로 오셨나요?"


나는 사정을 이야기했다. 컬렉터 역시 '모모'씨의 이야기를 이미 경찰에게 한 모양이었다. 같은 이야기를 하자니 컬렉터도 좀 지치는지 외 묻냐는 식의 눈초리를 보냈다. 


"모모씨는 늘 파란색 안료의 색이 잘 나오지 않는다고 고민했어요"


컬렉터 그가 무슨 말을 했는지 모르지만 나는 문득 그의 전시회에서 그가 했던 말이 생각나 입에서 튀어 나왔다. 컬렉터는 눈동자가 흔들렸다.


"블루는 그리 쉬운 색이 아닙니다. 청화 백자 역시 그 푸른 안료 때문에..."


컬렉터의 말이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누군가 문을 열고 왔다. 한쪽에 쌓여있던 눈에 익은 '모모'씨의 작품을 담은 박스를 그는 들고 갔다. 


"저건 모모씨 작품이 아닌가요?"


"네 잘 아시는군요"


그의 깨질듯 불투명한 블루는 유독 내 눈에 띄었던 것이다. 그의 작품을 들고간 사람은 트럭에 작품을 담은 박스를 무심하게 휙 던졌다. 


"저기요 작품을 그렇게 던지시면 어떻게 하나요?"


내가 화가 났다. '모모'씨가 고민하고 사유하던 작품을 막던진 사람에게 내가 '모모'씨가 된 것처럼 화를 냈다. 


"이봐요. 이 도자기는 어짜피 부숴질 건데 왜 참견하는 거요?"


멱살잡이를 하려던 나는 그 인부의 말을 듣고 놀랐다. 되물었고 다시 되물었다. 숨은 차올랐고 호흡은 거칠어지고 정신은 산란해졌다. 그 인부는 도자기를 수거하여 본인의 작은 공장에서 망치로 부수는 일이 본인의 일이라고 했다. 


나는 믿을 수 없었다. 그래서 인부에게 '모모'씨가 얼마나 사유하는 도예가인지 이야기하고 그의 작품이 올라간 사이트를 보여주기도 했다. 짐짓 그는 놀란 표정으로 나를 보더니 따라오라고 했다. 그의 트럭을 타고 그의 작업장으로 나는 갔다. 작업장은 도시에서 벗어난 시골의 경계에 위치해 있었다. 운전을 하던 도중 인부는 자낙스를 차 멀티박스에서 꺼내 물도 없이 삼켰다. 그에게도 대인 기피와 공황 장애가 있던 것이다.


작업장은 작았다. 망치와 몇 가지 도구 밖에 없었다. 운전을 하면서 연신 땀을 흘리던 그는 작업장 한 켠에 있는 수도를 틀고 어푸어푸 세수를 했다. 그저 어푸어푸로 표현하는 것이 정확할 것 같은 그런 세수였다.


한 시간을 서먹서먹하게 간이 의자에 앉아 기다렸다. 6시가 되자 차가 왔다. 작업장 한컨에 이미 부숴놓은 도자기 더미를 누군가 찾으러 왔다. 나는 다시 '모모'씨의 이야기를 하고 그를 따라 갔다. 부숴진 도자기는 그 후 몇 단계를 거쳐 A4 용지 크기의 박스에 세척 후 담겨 '외벽 장식'용 조각 타일이라는 상품이 되어 있었다.


'외벽 장식'용 조각 타일은 상점에서 미장공이 들고갔다. 그리고 어느 집 담벼락의 장식을 하고 있었다. 석양이 지는 아련한 여름의 끝자락에서 집 담벼락에 타일을 붙이는 인부들의 손길은 분주했다. 


그 집은 내가 곧 입주할 새집이었다. 인테리어가 덜 되어서 여름이 끝나는 가을 무렵에 입주할 집이었다. 다시 전화기가 울렸다.


회사였다. 상사가 전화한 것이다. 그것도 지난 몇 시간 동안 지난 몇 달간 나에게 전화한 것보다 많은 전화가 쓰나미처럼 몰려왔던 것이다.


"네 케이입니다"


"케이씨 어디인가요? 지금 당장 본부로 올 수 있나요?"


"무슨 일이신가요?"


나의 상사는 사무실에서 꼭 할 일과 업무 조정이 필요하다고 이야기를 했다. 이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나는 왜 일을 위한 일이 꼬리를 물고 일어났는지 이해하기 힘들었다. 푸드득 비둘기가 무슨 일에 놀랐는지 황급히 날아올랐다. 그리고 정적이 흘렀다.


"그러면 저도 상담 받고 싶습니다."


전화기 넘어로 안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차를 보냈으니 케이씨를 모시고 사무실로 바로 오시면 상담 직원이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해가 지자, 인부들은 사라지고 거리는 적막했다. 몸이 떨려왔고 호흡은 가빠졌다.


"케이씨 자낙스를 먹고 호흡에 집중하세요. 곧 차가 옵니다"


상사에 말에 나는 홀린듯 자낙스를 꺼내 입으로 넣으려 했다. 그리고 자낙스를 툭 내려 놨다. 


"오늘 저의 보스를 만나고 싶어요. 지금 제가 힘들지만 꼭 보스를 보고 싶습니다"


전화기 넘어 나의 상사는 말을 돌렸다.


"오늘 나는 다른 도시 간부 회의가 있어서 케이씨를 다음에 봐야할 것 같습니다"


"가겠습니다. 몇 시가 되던 보스를 뵙고 싶네요"


나는 무언가 희미한 이물감있는 침을 삼기며 다시 억지를 부렸다. 그러기를 몇 차례 억지가 오고갔다. 그러는 사이 차가 왔다.


"일단 케이씨 차를 타고 오세요. 케이씨는 지금 무언가를 이해했군요"


무언가인지는 모르지만 나는 지금 현실같지 않은 현실에 많이 혼란스러워하고 정신이 붕괴될 지경이었다. 차는 도시쪽으로 가다가 보스의 전화를 받았는지 외곽 고속도로를 타고 달리고 달렸다. 배꼽시계는 저녁을 알리고 있었지만 마음의 흐름이 계속 나쁜 시그널을 주고 있었다.


차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궁금해서 폰의 지도앱을 켰다. 지금 나는 지도앱에도 없는 길을 달리고 있었다. 달리는 차는 지금 단 한대였다. 어둠 속에서 거대한 건물의 그림자가 희미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건물은 칠흑과 같이 어두웠다. 검문을 위한 문이 이 있었지만 차는 잠시 정지한 후 문은 바로 열렸다. 


정문에 도착하자 복도에 불이 순시간에 켜졌다. 나는 운전사를 따라 복도 끝으로 걸어갔다. 방이 하나 나왔고 운전사는 전자키를 터치해서 문을 열어줬다. 


인간의 기척이라고는 없는 창백하고 거대한 방에 수백대의 모니터가 사방 벽에 붙어 있었다. 모니터에는 사람들이 무얼하는지, 어떤 직업을 구하고 있는지 지금 무엇을 하는지가 몰래 카메라처럼, 다큐멘터리처럼 볼륨이 꺼진채로 있었다.


방에는 나 외에 아무도 없었다.


나는 십여분 그 적막한 모니터 룸에 있다가 나왔다. 운전 기사는 아무말 없이 나를 집 앞에 내려다주고 사라졌다. 식사도 거르고 나는 지쳐 잠을 잤다. 여름의 더위가 아련히 남아 있는 아침 햇살이 방안을 비췄다. 나는 일어나 원두 커피를 그라인더에 갈아 카페인을 채웠다. 어느 평범한 날이면 텐션을 올리기 위해 들었을 21세기 초 명곡 정반합도 듣지 않았다. 


그 때였다. 메일이 한통왔다.


[사내공지] 케이씨의 지부장 승진을 축하합니다. 


나는 나의 보스 자리에 올랐다. 그리고 더 이상 자낙스를 먹지 않을 것이다. 여름의 끝에서 아침은 창백하게 흐릿하고 여름 장마가 올 것같은 날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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