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에게 꿈은 구두 끈 같았다. 너무 꽉 조이면 발가락이 아팠고, 조금 느슨히 하면 벗겨져 버렸다. 한때는 배우가 되고 싶었다. 무대 위에서 관객의 감정을 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그런 배우. 하지만 그 꿈은 무대 위가 아니라, 미인대회의 투명 아크릴 포디엄 위에서 몇 번이나 흔들렸다. 막상 서 보니 그곳은 관객의 호흡이 아닌, 시선이 느껴지는 곳이었다. 시선들은 그녀의 몸매 라인을 따라 슬쩍 슬쩍 스켄을 하다가, 결국에는 수상자의 이름이 적힌 곳으로 황급히 달려갔다.
그렇게 몇 번의 실패 끝에, 그녀의 꿈은 조금씩 움츠러들었다. 이제 그녀가 서 있는 곳은 본공연이 아닌, 연습실도 아닌, 연극의 가장자리였다. 단역, 그조차도 때로는 언급되지 않는 엑스트라. 대사 한 마리 없는 꽃장수, 웃음소리만 남기는 파티의 손님, 어둠 속에서 스르르 사라지는 유령 같은 역할들. 무대 위에서 그녀는 빛이 아니라, 빛에 가려지는 그림자와 같았다.
그날 밤, 그녀는 한 편의 연극이 끝나고 홀로 거리를 걷고 있었다. 몸은 피곤했지만 마음은 더 공허했다. 공허함은 배를 채우지 못했다. 발길이 자연스레 익숙한 포차로 향했다.
그곳에 그는 있었다.
포차의 따뜻한 빛 아래, 그는 분명했다. 옷도, 웃음도, 그 옆에 앉아 있는 여자도. 그 여자는, 그녀가 한때 포디엄 위에서 부러워하던 그런 여자들과 닮아 있었다. 반짝이는 드레스는 아니었지만, 정교하게 재단된 실크 블라우스가 그녀의 우아함을 강조했다.
그는 성공했구나, 라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그가 마지막으로 그녀에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꿈 꼭 지켜보자. 우리 함께.” 그 말은 이제 포차의 증기 사이로 흩어져 버린 희미한 약속이 되어 있었다.
그는 옆의 여자에게 말을 건네며 미소 지었다. 그 미소는 한때 그녀에게만 향하던, 든든한 버팀목 같은 것이었는데, 이제는 다른 이를 위해, 더욱 당당하게 피어나고 있었다.
순간, 그녀의 발걸음이 멈췄다. 가서 뭐라고 해야 할까? ‘잘 지내?’ ‘결국 너는 성공했구나.’ 모든 말이 쓸데없는 발꿈치 찍듯한 소리처럼 느껴졌다.
그때, 마치 무대 연출처럼 그의 시선이 홀로 서 있는 그녀를 향해 돌아왔다.
눈이 마주쳤다.
1초, 아마 2초쯤 되었을까. 그의 눈에 스치는 놀라움, 당혹스러움, 그리고 어색한 인사치레 같은 무언가를 그녀는 명확하게 읽었다. 그녀는 아주 살짝, 고개만 끄덕일 뿐이었다. 미약到 눈에 띄지 않을 정도의.
그도 똑같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사이에 흐르는 시간과, 깨진 약속과, 이루지 못한 꿈들이 그 짧은 침묵 속에 모두 갇혀 있는 것만 같았다.
그러고는 그녀는 발걸음을 돌렸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의 시선이 등짝에 느껴지는 것 같았지만, 돌아선 것은 그녀 쪽이 먼저였다.
포차의 빛과 웃음소리는 등 뒤에서 점점 작아졌다. 그녀는 차가운 밤공기를 들이마셨다. 드라이하게, 너무도 드라이하게 목구멍으로 스며드는 공기. 그 안에 섞인 아쉬움의 맛은, 마치 라라랜드의 그 마지막 장면처럼, 서로의 인생에서 스치듯 지나가버린 한 페이지와도 같았다.
그는 그의 인생이라는 연극의 주인공이 되었고, 그녀는 여전히 다른 이들의 연극에서 이름 없는 조연이었다. 단지 그 차이만 있을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냉정한 현재였다.
그녀는 걸음을 재촉했다. 내일도, 그녀를 기다리는 무대는 아마도 다른 누군가의 작은 그림자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