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둥지 증후군에 대하여
동네를 걷는 도중 가로수 높은 곳에 지어진 새 둥지를 발견하면 항상 의문이 든다. 과연 저 둥지 속에는 알이 있을까? 둥지 속의 알은 부화하여 새끼 새가 태어나고 새끼 새는 부모 새의 돌봄을 받다 때가 되면 나는 연습을 한 뒤 둥지를 떠난다. 그러면 부모 새는 그곳에서 계속 살까? 아니면 자리를 옮겨 새로운 보금자리를 만들까?
빈 둥지 증후군이라는 것을 결혼하고 알았다. 결혼을 하면 부모님과 뜸하게 볼 줄 알았다. 온전히 나의 독립을 인정받을 줄 알았다. 그리고 나의 아내와 알콩달콩 오순도순 둘이서 살 줄 알았다. 하지만 신혼여행을 다녀와서는 부모님께 인사를 가야 했고 주말이면 밥을 먹으러 오라고 하셨다. 오라는 어머니와 가지 않겠다는 아내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끙끙 앓던 내가 생각이 난다. 그 당시에는 힘겹게 한주는 가고 힘겹게 한주는 가지 않았다.
큰 아이가 태어나기 전날 아내는 아이가 태어나면 그날 만큼은 혼자 좀 쉬고 싶다고 했다. 방문객은 없었으면 한다고 했다. 아이가 태어난 날 우리 부부는 감격에 겨웠다. 어머니에게 탄생의 기쁨을 알렸다. 어머니는 병원이 어디냐고 물으시며 아버지와 오시겠다고 했다.
“오늘은 많이 힘들어서요. 며칠 있다가 오시면 될 거 같아요.”
어머니의 성격을 아는 나는 힘겹게 말을 꺼냈다.
“당연히 손주가 태어났는데 어떻게 안가냐.”
어머니는 불같이 화를 내시다. 결국에는 울음을 터뜨리셨다. 단 며칠만 있다가 아내가 몸 좀 추스리면 오시라는 건대 꼭 그 날 오시겠다고 하셨다. 그 날은 나의 아들이 태어난 날이었다.
결혼식을 준비하던 때도 생각이 난다. 어머니는 분주하게 나의 결혼식을 챙기셨다. 사실 나와 아내에게 결혼식이란 그냥 꼭 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예식장도 작은 교회 예배당 같은 곳으로 구하고 시간도 일요일 4시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객들에게 조금은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우리 부부의 결혼식이기에 우리 부부가 결정하는 대로 진행하고자 했다. 입장은 아내와 내가 두 손을 꼭 잡고 함께 입장하기로 했다. 하지만 장소와 시간, 입장 방식을 들으시고는 어머니는 또 불이 되셨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의 결혼은 어머니에게는 독립이 아니었던 것 같다. 어머니의 둥지가 좀더 커지는 것이었고 나의 결혼 후, 어머니 만의 계획과 꿈이 있으셨던 것 같다. 어머니가 마련해준 아파트에서 살고 어머니의 의견이 많이 반영되는 결혼식을 해서 며느리와 서로 등 밀어주는 사이가 되어 자주 보고 연락하고 나중에는 손주가 태어나면 손수 봐주시려고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우리 만의 결혼식을 하고 우리가 가지고 있던 돈으로 살림을 시작해 우리의 자식들을 어찌 됬든 우리의 손으로 키우고 있다.
한 때는 어머니의 빈 둥지를 채워드리지 못해 괴로워하던 나날들이 있었다. 하지만 난 다시 그곳의 알이 될 수도 새끼 새가 될 수도 없다. 어머니도 처음 겪어 보는 빈 둥지의 삶에서 한동안 적응하지 못하셨다. 본인이 괴로우실 때 마다 “너희는 뭐가 그렇게 특별하냐.”라는 말씀을 자주 하셨다. 아마도 어머니 주변에는 빈 둥지로 자주 날아 다니는 다 큰 새끼 새들이 많이 있었나 보다.
마음은 아팠지만 눈을 질끈 감고 빈 둥지를 그대로 두었다. 그리고 아내와 함께 우리의 둥지를 만들어 알을 낳고 새끼를 키우고 있다. 몇 년간 말 할 수 없는 힘든 나날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 어머니는 그 빈 둥지에서 텃밭도 가꾸시고 유투브도 보시고 주식도 하신다고 한다. 얼마 전에는 HTS도 새로 깔으셨다고 자랑도 하셨다.
나도 아이들이 독립하면 빈 둥지 증후군을 겪을 것이고 이를 대비해 나름의 준비를 해야 할 것이다. 다만 힘들더라도 아이들의 독립은 존중하고 인정해주기로 다짐한다. 부디 건강하게 자라서 힘찬 날개로 세상을 향해 힘껏 날 수 있기만을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