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부갈등에 대하여
‘고부갈등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여우 같은 남편이 되셔야 합니다.’
명절이 다가올 때면 TV에 등장하는 가족 관계 전문가들이 하는 단골 멘트다. 여우 같은 남편이 되면 모든 고부갈등을 해결 할 수 있을까? 곰과 같은 시어머니와 호랑이 같은 아내 사이에서도 여우의 재간은 빛을 발할까?
야생 동물이 나오는 다큐멘터리를 보면 가끔 먹이사슬의 최상위에 있는 포식자끼리 마주할 때가 있다. 예를 들어 시베리아에서 곰과 호랑이가 마주쳤다고 가정하자. 언뜻 치열한 사투가 벌어질 것이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서로 주위를 조심스레 돌며 탐색전만 벌이다가 둘다 제 갈 길을 떠난다. 서로 치열하게 싸운 들 이기는 쪽이나 지는 쪽이나 심각한 부상을 당할 확률이 높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베리아에서 호랑이와 여우 혹은 곰과 여우가 만났다고 가정하자. 호랑이와 곰은 주저 없이 여우에게 달려들 것이다. 힘의 차이가 확실하기 때문이다. 여우는 곰에게도 잡아 먹히고 호랑이에게도 잡아 먹힐 것이다.
선천적으로 서로 싫어하는 관계도 있을지도 모르겠다. 나의 아내는 선천적으로 고부 관계를 싫어하는 듯하다. 신혼 초부터 시댁에 가는 것을 매우 싫어했다. 문제는 나의 어머니이자 아내의 시어머니는 지배적 성격이 강하다는 것이다. 마치 야생에서 곰과 호랑이가 만난 듯 셋이 있는 자리는 항상 서늘함과 어색함이 맴돌아 난 평온한 척 하긴 했지만 속으로는 안절부절하며 진땀을 흘렸다.
전문가의 말처럼 여우 같은 남편이 되어 보기로 했다. 어머니에게 가서는 아내 흉을 같이 보고 어머니 흉을 보는 아내 옆에서는 같이 맞장구를 치곤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고부 갈등이 줄어들지는 않았다. 오히려 어머니 옆에서 아내 흉을 계속 듣다 보니 속으로는 반발심이 솟구쳐 오르며 한편으로는 속이 썩어들어갔다. 그리고 어머니에 대한 불만을 쏟아 놓는 아내에게는 본능적으로 어머니를 변호하다 말 실수 해서 부부싸움으로 번지고는 했다. ‘여우 같은 남편이 되라’는 말은 마치 ‘직장상사의 폭언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라’라는 말처럼 썩은 뇌에서 나오는 탁상공론에 불과한 것 같다. 물론 여우 같은 남편이 되어서 고부갈등을 해결할 수도 있겠지만 그 경우에는 아마 팬더 곰 같은 시어머니와 고양이 같은 아내여서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불행히도 우리 어머니는 곰이었고 아내는 호랑이라 서로 베타적인 관계이며 심리적 교집합은 찾을래야 찾을 수가 없었다. 서로가 한발 씩 물러나야 했지만 입장 차이는 줄어들지 않았고 결국 쪼그라든 것은 내 멘탈이었다.
명절마다 하루 밤 자고 갔으면 하는 어머니와 당일 치기로 다녀오자는 아내 사이에서 중재자인 나의 역할은 어느 누구의 마음 상함도 없이 한쪽을 물러나게 하는 것이었다. 어느 한쪽을 어르고 달래고 때로는 윽박질러서 물러나게 한 들 항상 상처 뿐인 영광일 뿐이었다. 그러한 일들이 계속 반복되다 보니 명절이 다가오면 가슴이 두근 거리고 긴장이 되는 히스테리적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이것은 한 예시 일 뿐이다.
그렇게 몇 년을 보내다 번아웃이 오고 말았다. 이렇게 양쪽을 상대하며 살다가는 말라붙은 이집트의 미라처럼 될 것 같았다. 더구나 첫째가 태어난 시점에서 육아라는 대 고난까지 겪다보니 결국 여우 짓은 그만하고 확실한 노선을 정하기로 했다.
첫 아이가 태어나니 몸과 마음이 힘들기도 했지만 그래도 무럭무럭 자라가는 아이를 보면 기쁜 마음이 들었다. 이 세상 내 모든 것을 다 내어주어도 후회하지 않을 만큼이었다. 문득 어머니가 생각 났다. 어머니도 나를 낳고 기르며 그러셨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난 어머니께 빚을 진 것일까 내 아이도 나에게 갚아야 할 빚을 쌓아가고 있는 것일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나는 노선을 정했다.
이미 30년을 함께 살아왔던 어머니 보다는 30년을 넘게 살아갈 아내의 편에 서기로 했다. 어머니에게는 썩을 놈으로 보이겠지만 어머니는 나의 과거이며 아내는 나의 현재이자 미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아내는 내 아이의 어머니이기도 하다. 어머니, 아버지 그리고 누나와 함께 했던 가정은 나의 과거의 가정이며 나의 아이들 그리고 아내는 내 현재이자 미래의 가정이다.
결혼하고 신혼 초 명절 때가 생각이 났다. 우리는 본가에 모여 상을 차려 밥을 먹고 있었다. 아버지, 어머니, 나, 아내, 누나, 매형, 조카들 순으로 나란히 앉아 밥을 먹었다. 아내를 제외한 사람들은 모두 나의 과거를 함께한 사람들이었다. 아내 만이 그 자리에서 이방인이었다. 이방인이 그 자리에서 기댈 수 있는 것은 남편인 나 뿐이었다.
노선을 정하고 아내라는 버스에 내 몸을 싣고 나니 갈등 상황에서 중재할 일이 없어져 스트레스가 줄었다. 갈등 상황에서 한쪽만을 상대하고 납득시키면 되니 고부 갈등으로 인한 고통의 총량은 놀랍게도 줄어들었다. 다만 버스가 빈 채로 출발하셔야 하는 어머니에 대한 미안함이 생겨났다. 어쩔 수 없는 비용이라고 생각하지만 그 자리는 과거의 내가 채울 것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