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습관과 부부생활
큰 아이가 아파 큰 병원에 간 적이 있었다. 진료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택시를 잡았다. 택시가 우리를 앞질러 먼 발치에 멈췄다. 차들이 빽빽한 2차선 도로라 급한 마음으로 아내에게 말했다.
“가가가가”
우리 가족은 서둘러 앞으로 갔다. 난 이내 재차 아내에게 말했다.
“타타타타”
돌아오는 길에 아내는 말이 없었다. 얼굴도 조각상처럼 굳어 있었다. 말을 걸어도 단답형으로 짧게 대꾸하고 끝났다. 아내가 평소와 다름을 직감했다.
평소 아내는 화가 나면 왜 화가 났는 지 말을 잘 하지 않는다. 그날도 그랬다. 누군가 나의 행동으로 기분을 언짢아 하는 것을 나는 잘 견디지 못한다. 이것에 관해서는 나중에 따로 글을 쓸 예정이다. 아무튼 그래서 집요하게 묻고 또 물었다.
“왜 그래? 내가 뭐 잘못 했나? 알려줘야 내가 알지.”
“……”
“어서 알려줘. 뭔가 화난 거잖아?”
“…명령조로 말하잖아. 듣기에 거슬려”
명령조의 말투. 30년을 넘게 살면서 처음 듣는 지적이었다. 그때부터 내 말투와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항상 나긋나긋한 어조로 부드럽게 말한다고 자부하는 서울 토박이였다. 그래서 말투에 대한 지적은 그야말로 신선한 충격이었다. 이때부터 나의 명령하듯 말하는 습관에 대한 지적이 날마다 이어졌다.
“빨래좀 해”라고 내가 말을 하면
“빨래좀 해줘라고 해줄래?”라고 지적하고
“오는 길에 맥주좀 사와”라고 하면
“사와 줘 아니면 사다 줄래라고 고쳐줘” 라고 교정하곤 했다.
한 두번이 아니라 매일 수십 나날 동안 지적을 받다 보니 나도 짜증이 슬슬 올라오기 시작했다. 살면서 내 말투가 명령조(이 단어도 아내에게 처음 듣는 것이었다.)라고 생각해 본적도 지적 당해 본 적도 없었다.
잘되면 내 탓 안되면 조상 탓이라고 했던가. 지난 날이 돌이켜 보니 내 말투와 부모님의 말투가 상당히 비슷하다는 것을 느꼈다. 공부해, 숙제해, 이거 사와, 저거 사와, 가서 자, 조용해, 일어나, 학교 가, 일찍 들어와 등등. 항상 부모님에게 명령을 듣고 살아왔고 그것에 대해 의심을 품은 적도 없었다. 부모님 뿐일까? 1980년대에 태어나 90년대에 학교를 다녔던 나는 선생님으로부터 그리고 선배들로부터 항상 명령조의 말투를 당연시 듣고 자랐다. 대학교라고 달랐을까. 그곳에도 선후배가 있었다. 특히나 대한민국 남자들은 군대를 가고 그곳에서 ‘다나까’를 배우고 상명하복으로 하루를 보내곤 한다. 직장을 가서도 상사들은 빠르게 말을 놓은채 반말로 업무와 업무 외적의 명령들을 읊기 일쑤였다. 그렇게 명령의 세계속에 살다가 아내와 결혼했다.
입대를 해 자대 배치를 받았을 때 내가 들어갔던 소대는 전라도와 경상도로 양분 되어있었다. 마치 일부러 만든 것처럼 한쪽 침상은 전라도 출신 사람들이 누워있었고 다른 한 쪽은 경상도가 고향인 사람들이 누워있었다. 서울 출신은 그곳에서 나 혼자였다. 고참들은 서울 출신 신병의 서울 말투를 놀렸다. 슬쩍 지나가면서 다들 보는 앞에서 “밥은 먹 었 니? 이것좀 도 와 줄 래?”하고 말끝을 의도적으로 올리며 낯간지럽다는 시늉으로 호들갑을 떨었다. 지속적인 그들의 놀림이 그다지 반갑거나 기쁘지 않았다. 하지만 아내의 지적은 지극히 논리적인 것이었다.
30년 동안의 상하 관계속에 물들어간 말투가 하루 아침에 바뀌기도 쉽지 않고 그렇게 살면서 지적한 사람은 오직 아내 한 사람이라 이렇게 까지 해야 하나 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명령스러운 말투가 맞았고 한 평생 같이 사는 사람에게 매번 명령 아닌 명령(의도가 그것이 아니었기에)을 하면서 살 수는 없었다. 그리고 아내가 흉내내는 나의 말투도 실제 들어보니 썩 듣기 편한 것은 아니긴 했다.
그래서 무언가 요청이 필요할 때는 말끝에 항상 ‘줘’와 ‘줄래’를 혹은 ‘주면 안될까?' 등등의 부탁의 어조를 붙이기로 했다. 하지만 이미 굳은 입술에 결심을 바른다고 바로 부탁의 어조가 나오는 것은 아니었다. 아내의 눈에서 나오는 레이져 수만발을 맞으며 마음도 몸도 너덜너덜 해지고서야 겨우 입에 붙을 수 있었다. 가끔 ‘~해’라고 내뱉어 버리면 화들짝 놀라 아내의 눈치를 슬쩍 보고는 한다. 이 정도면 노이로제가 올 정도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40대에 들어서니 사춘기가 온 것처럼 세상이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이미 이루어온 것도 상당하지만 앞으로 밀고 나가야 할 것도 산더미처럼 느껴져 마음이 무겁기도 하다. 회사에서는 사오정의 반열에 들어와 밑에서도 위에서도 욕 먹으니 스트레스가 상당해서 그런지 요즘 아이들에게 말끝이 짧아졌다. 그런 아이들은 그래도 나를 사랑해 준다. 하지만 어린 아들 둘다 짧아진 내 말투를 흉내내기 시작했다.
요즈음 즐겨보고 있는 리얼리티 예능 프로그램에 한 노부부가 나온다. 의학박사인 남편은 대화가 잘 통하지 않을 때면 '시끄러'하고 아내를 윽박지른다. 과면 존경받는 의사가 맞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장면들을 보며 말투가 곧 인격의 그릇이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타인을 존중하는 교양있는 말투를 가지기를 다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