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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밀도 Feb 12. 2024

아내의 부재와 남편의 정체성

상상이라 다행이다

 아내가 갑자기 사라지고 아이 둘과 나만 집에 남는 상상을 해봤다. 슬픔과 같은 감정적인 부분은 제외하고 그런 일이 벌어지면 어떻게 해야 하나 생각해 보았다. 제일 먼저 회사는 계속 다녀야 하니 아이들을 돌봐 줄 시터 이모님를 구해야 한다. 첫째는 7살 그리고 둘째는 이제 막 3살이이어서 하루 패턴이 다르기 때문에 각각 한 명씩 고용해야 안정적일 것이다. 금전적인 한계가 있으니 상주하는 형태 보다는 시간제로 고용해야 한다. 

 

 그럼 나의 하루는 어떻게 될까? 8시 반까지 출근이니 아이들은 7시 50분 까지는 둘 모두를 등원 시켜야 한다. 첫째아이는 초등학생이 되는데 그렇게 일찍 등교를 시켜도 될까? 일단 5시 반에 일어나 씻고 아이들 아침을 준비한다. 6시반에는 아이들을 깨워 아침을 먹이고 씻기고 등원과 등교를 할 준비를 한다. 늦어도 7시 20분에는 집에서 나와 첫째를 학교에 보내고 바로 둘째를 어린이 집에 등원 시킨다. 그리고나서 회사로 출근을 한다. 아빠의 사정 때문에 일찍 등교와 등원을 해야하는 아이들에게 미안함을 느낀다.

  

 회사에 와서 일하는 틈틈이 인터넷으로 장을 보거나 필요한 물품을 산다. 과연 이건 업무 태만일까? 어쩔 수 없는 상황일까? 점심 일정이 없다면 점심시간에 해결해야 할 일 들이다. 과연 아이들이 학교생활과 어린이집 생활을 잘 하고 있는 지 걱정할지도 모른다. 하교와 하원은 제때 잘 될 것인지 시터 이모님에게 떼를 부리거나 하지는 않을지 아니면 반대의 상황이 되지 않을 지 불안에 떨 수도 있다. 


  육아와 회사일을 비교하면 회사일이 그나마 더 낫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회사일이 쉬운 것은 아니다. 정신없이 일을 하면 어느새 모니터로 들어갈 듯한 자세를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바쁠 때면 담배도 피지 않는 나는 화장실 가는 것도 잊고 방광을 세게 조이며 일을 한다. 그렇게 일을 하고 퇴근시간이 되면 더 이상은 일 못하겠다 하는 마음이 되어 모든 것을 체념한체 모니터를 끄고 일어난다. 

 


 

 시터 이모님의 퇴근 시간을 내가 집에 도착하는 시간과 맞물려 놓았기 때문에 서둘러 지하철을 타러 간다. 행여 일이 늦게 끝난다면 택시라도 그나마 택시도 잡히지 않는다면 모범 택시라도 타고 정해진 시간 내에 가야 한다. 시터 이모님을 고용해 본 사람이라면 퇴근 시간에 갑과 을이 왜 바뀌는 지 알 것이다. 잦은 시터 이모님의 퇴사는 이래저래 아이들에게도 나에게도 좋지 않다. 

 

 반기는 아이들을 미안한 마음으로 안으며 시터 이모님에게 낮 동안에 있던 일을 인계 받고 서둘러 빨래를 세탁기에 넣고 돌리고 저녁을 준비한다. 놀아달라는 어린 둘째의 응석을 간신히 떼 놓고 요리를 준비한다. 아니 과연 저녁을 준비할 수 있을까? 아니면 배달음식이 그 자리를 차지할까? 아이들과 저녁을 먹고 나면 산더미 같은 설거지가 남아있다. 설거지를 아무리 빨리 끝내도 8시반 9시 정도일 것이다. 그러면 곧 잘 시간이기에 설거지는 잠시 미뤄 놓는다. 대신 아이들과 잠시 그동안 미뤄 놓았던 정을 나눈다. 동화책도 읽어주고 숙제도 잠시 봐준다. 특히 이제 막 초등학생이 된 첫째아이를 신경 써야 하지만 둘째가 잠시도 아빠와 형을 가만 두지 않는다. 

 

 아이들이 잠들고 나면 슬며시 빠져나와 남은 설거지를 하고 빨래를 넌다. 그리고 나서 널브러진 장난감을 조용히 정리하지만 차마 청소기를 돌릴 순 없다. 청소는 주말로 미뤄둔다. 빨래를 널고 나니 시계는 어느덧 12시에 가까워지고 있다. 새벽부터 자정까지 숨돌릴 틈도 없이 하루를 보내게 된다. 그리고 곧 몇시간 뒤면 내일이 시작된다. 숨이 턱하고 막힌다. 

 

 아이들 중 한명이라도 가벼운 감기에 걸리면 비상사태를 선포한다. 감기면 다행이고 원인 불명의 폐렴이라면 머리가 곤두설 것이다. 하루 만에 열이 잡히지 않는 다면 마음이 초조해 질 것이다. 하루 휴가 정도면 괜찮지만 기약 없는 장기 휴가는 사정이 있어도 마음에 걸린다. 연차를 쓸 수 있는 날도 한계가 있다. 또 어떤 일이 벌어질 지 모르기에 아껴 써야 한다.  가벼운 감기라 할지라도 아픈 아이를 학교나 유치원에 보내는 마음은 너무 아플 것만 같다. 만약 입원이라도 하면 시골에 계신 어머니께 연락을 해야 할 것이다.



 

 상상은 여기까지만 하고 안방문을 살며시 열어보았다. 아이들과 아내가 곤히 자고 있었다. 매우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과거 첫째가 유치원 다닐 때 소풍가는 날이면 도시락을 싸줘야 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도시락을 만들고 뿌듯해 사진을 찍어서 남겼다. 스스로 멋진 남편, 멋진 아빠라고 속으로 자축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건 뿌듯할 일도 자축할 일도 아니었다. 


“집안일 얼마나 도와주세요?” 


가끔 회사에서 이렇게 물어보는 사람들이 있다. 적어도 이제 우리집에는 집안일을 도와주는 사람은 없다. 육아를 도와주는 사람도 없다. 그저 함께 하는 부모만 있다. 집안일을 할 때 그리고 아이들을 돌볼 때 아내가 없다면 하고 상상을 해본다. 그러면 지금 하고 있는 그 일은 원래의 내일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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