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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밀도 Feb 19. 2024

강원도의 추억

저돌적인 아내와 소심한 남편

 2023년 연말은 강원도 인제의 한 리조트에서 눈썰매를 타며 보내기로 했었다. 다행히 싸게 나온 객실이 있어 운이 좋았다 생각하며 바로 결제를 하고 가족 여행을 떠났다. 하지만 막상 가보니 싸게 나온 이유가 있었다. 리조트의 객실이 있는 장소와 눈썰매장이 있는 스키장이 무려 5킬로미터가 떨어져 있었다. 아이들을 데리고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가 아니었다. 평소 여행을 가기 전 준비를 철저하게 하던 것과 달리 김영하의 여행의 이유라는 산문을 읽고 나도 세세한 계획없이 여행을 떠나보자 했던 게 화근이었다. 만약 자가용 없이 떠나는 뚜벅이 여행이었다면 정말 큰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객실에서 1박을 하고 오전에 스키장으로 차를 몰고 떠났다. 스키장에 도착하면서부터 눈발이 조금씩 날리기 시작했다. 인공설이 아닌 자연이 선사하는 소복한 눈위에서 아이와 행복하게 눈썰매를 탈 수 있겠구나 생각을 했다. 그러나 가볍게 흩날리던 눈발은 눈썰매를 타는 동안 점점 알사탕 만큼 커지더니 이내 한치 앞을 내다 볼 수 없을 만큼의 폭설이 되었다. 털모자를 미처 챙겨가지 못한 아내는 머리위로 눈으로 만든 가발을 한겹 더 쓰고 있었다. 어느새 사람들의 스키장 대 탈주가 시작 되었다.

 

 아내와 나는 어서 아이들을 챙겨 주차되어 있는 차로 돌아갔다. 마치 눈으로 만든 자동차처럼 된 차의 트렁크에서 황급히 자동차용 브러쉬를 꺼내 눈을 치워냈다. 겨우 차에 들어와 히터를 켰을 때만 해도 숙소로 돌아가기만 하면 해피엔딩이 될 줄 알았다. 하지만 강원도는 서울 촌놈에게 강원도의 겨울은 이런것이다 하고 알려주고자 단단히 결심을 한 것 같았다. 일렬로 늘어선 차량들은 거북이 처럼 엉금 엉금 겨우 가다서다를 반복했고 아내와 나는 영문을 몰라 답답해 했다. 15분이면 갈 수 있었던 그 5키로미터는 단 300미터도 줄어들지 않았다. 1시간이 지나서야 서울 촌놈의 눈앞에서 뉴스로만 보던 상황을 목격할 수 있었다.


 스키장에서 리조트 숙소로 가기 위해서는 경사진 도로를 따라 구불구불한 고개를 여러개 넘어야 했다. 경사진 도로가 폭설로 미끄러워져 차들이 경사로에서 헛바퀴만 돌리고 있었던 것이다. 마치 일렬로 늘어서 있던 차들은 서로 자기가 해보겠다며 순서대로 경사진 도로를 올라가려다 타이어 타는 냄새만 맡고 차를 돌려야 했다. 무슨 욕심이었는지 아니면 도로의 신이 우리에게만 축복을 내릴꺼라 생각했는지 내차례가 되자마자 신나게 엑셀을 밟았다. 하지만 난생 처음 엑셀을 밟았는데도 차가 뒤로 밀리는 공포스런 경험을 하며 어쩔 수 없이 핸들을 꺾어야 했다.


 눈이 조금이라도 쌓이면 새벽부터 제설차가 분주하게 다니던 서울의 겨울만 경험 했던 지라 강원도에서는 제설이 이렇게 늦다는 것을 처음 경험하면서 더불어 잘못하다가는 오늘밤을 차에서 보낼지도 모르겠다는 불길한 기운을 감지했다. 남은 숙박 기간을 손실 처리 하는 한이 있더라도 서울에 있는 집에라도 가야겠다고 마음먹었지만 서울로 가는 도로에도 여지 없이 제설이 안된 오르막길이 있었고 그곳에서 차들은 미끄러지기를 반복하다 멈춰 섰다. 심지어 구세주처럼 반갑게 등장한 경찰차는 우리가 그토록 기다리는 제설차가 오기는 할텐데  언제올지 모르겠으니 일단 기다리라는 친절한 안내를 하고 다른 곳으로 떠나갔다. 벌써 3시간을 오도가도 못하고 꼼짝없이 차에만 있어 제설차에 대한 희망은 경찰관에게는 미안하지만 버린지 오래였다 . 만약 차에 있는 사람이 아내와 나 단 둘 뿐이었다면 그리고 우리가 풋풋한 20대 연인이었다면 로맨틱한 에피소드로 남을 수 있었겠지만 뒷좌석의 카시트에서는 언제 인내심이 다해 무시무시한 이빨을 드러낼지 모르는 작은 몬스터 두마리가 키득거리고 있었다.

   

 그때 였다. 우리 앞으로 사륜 구동의 지프차가 힘차게 오르막길을 치고 올라 언덕을 넘어갔다.

아내가 말했다.

“자기야 우리도 가자”

“무슨 소리야. 경찰관 말 못들었어? 못간다잖어. 제설차 기다리자”

“제설차 언제 올줄 알고. 여기서 밤샐꺼야? 그리고 저 차는 올라가잖아”

“저건 사륜구동이잖아. 우리는 어차피 차가 밀리는데 어떻게 올라가? 그러다 타이어만 상하고 사고 날 수도 있어.”

“비켜. 내가 운전하게.”

아내의 미간이 심하게 좁혀졌다. 더 이상 티격태격 하다가는 아이들 앞에서 못볼 꼴을 보여 줄 것 같아 운전대를 넘겨 주었다. 사실 아까 경사로에서 밀려본 경험은 나에게도 공포스러웠기에 그 느낌을 한번 더 가지기 싫었던 것이 솔직한 마음이었다. 못이기는 척 아내에게 운전대를 슬쩍 넘겨주고 내 가슴은 콩닥콩닥 뛰기 시작했다. 예상과는 달리 운전석에 앉은 아내는 엑셀을 길게 밟기 시작했고 그에 응답하듯 엔진은 위이윙 소리를 내며 힘차게 반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바퀴는 도로에 꾹꾹 눌러 담은 듯한 눈길을 씹어먹을 듯 헛돌기 시작했다. 혹시나 차가 뒤로 밀리다 사고 나는 건 아닌지 나는 목소리까지 살짝 떨리며 아내에게 말했다.

“거봐 안된다니까. 그만하자.” 

아내는 레이져가 나올 듯 한 전방주시와 반복해서 엑셀을 꾸욱꾹 밟아 생기는 터질 것 같은 엔진소리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리고 핸들을 크게 좌 우로 돌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뒤로 밀릴 것 같은 차는 도로위에 지그재그 표시를 내며 앞으로 조금씩 나아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우리는 드디어 넘지 못할 것 같았던 고개를 넘었다. 내가 지금 와서 왜 핑계를 대는 지 모르겠지만 아마도 앞서 갔던 지프차가 눈을 조금 치워준 것은 아닌가 싶다. 그래도 그 상황에서 애써 침착하며 머리를 굴려 가장 가까운 펜션을 찾아 재빨리 예약했다. 불과 2km 떨어져 있던 곳이었다. 다행스럽게도 우리가 넘은 언덕은 펜션까지 가는 마지막 언덕이었다.

 

 도착한 펜션은 왜 우리가 펜션 홈페이지의 이미지만 가지고 예약을 하면 안되는 지를 잘 알려 주었다. 실내에서는 쿰쿰한 곰팡이 냄새가 났고 타일로 깐 펜션 바닥은 군대군대 깨져 있었다. 낡은 돌침대가 있었고 침대 밑에서는 시체가 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곳에는 낚시터가 있었고 눈이 너무 많이 내려 얼어붙은 낚시터와 그 옆의 길이 구분이 가지 않았다. 다음날이 되어서야 낚시터를 알아본 것에 허탈한 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그래도 차에서 두 어린 아이를 데리고 언제 올지 모르는 제설차를 기다리는 것에 비하면 행복이자 다행이었다.


 이리저리 아이들의 저녁 준비와 잠자리를 준비하는 아내를 보며 내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렇게 느끼는 내가 부끄럽기도 했다. 그때 오르막을 오를 때 엑셀을 밟아야 했던 것은 나였어야 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난관을 극복해야 했던 것은 그리고 용기를 내고 저돌적이었어야 하는 건 나였어야 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같이 들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을 보니 내가 쓸데없는 허세와 관념을 가지고 살아왔구나 하는 새로운 발견을 할 수 있었다. 항상 울지말고 힘들어도 감내하고 스스로 헤쳐나가야 한다고 배워왔지 도움을 구하고 의지하라고 직접적으로 가르친 사람이나 미디어가 있었을까? 힘들때는 의지하고 돕는 동반자로서의 내가 되어야 겠다는 생각을 하며 그날 아내에게 오늘 참 멋있었다고 말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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