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小女) 김민애, 치과위생사가 되다
나의 이야기는 조금은 특별하다, 우리 집안에는 총 2명의 치과의사가 있었다.
그건 바로 우리 사촌오빠와, 형부이다.
이 두분께 나는 모두 공통적으로 치과위생사 진학을 추천받게 되었고,
막연하게 살다가, 꿈을 갖게된터라 나름 열심히 공부하여 치위생학과에 입학하게 되었다.
처음부터 치위생학과를 꿈꾸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넉넉치 못했던 집안 형편으로
학업을 오래지속 할 수 있는 환경도 아니었을 뿐더러, 치과의사라는 직업을 갖고 있었던
집안 식구들의 조언덕에 빨리 대학이라는 공간을 나와 치과 현장에서 일해보고 싶었던 이유가 컸다.
그렇게, 보건대학을 졸업하고 사회로 나와 치과현장에서 빨리 일하고 싶었기에
그렇게, 나는 치과위생사로서 첫 길을 시작했다.
내가 처음으로 근무했던 치과는. 의사를 포함하여 직원이 2명이었던 매우 작은 규모의 치과였다.
원장님께서는 대형 병원을 이전에 운영하셨었지만, 잠시나마 쉬실 생각으로 '대학병원 검진팀'으로
치과규모를 축소해서 개원하여 병원을 운영하고 계셨었고
아는 선배의 추천으로, 이곳에 입사하여 실장으로 일하게 되었다.
비록 원장님과 나 그리고 체어 1대가 전부였던 '치과 구색만 갖춘' 검진센터에 불과했지만
나는 일이 적성에 잘맞는다는 것을 항상 느꼈었고, 무엇보다 환자들과 소통하고 이야기하는 일을
많이 좋아하고 사랑한다는 사실을 내 스스로 깨닫게되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원장님은 임플란트 수술 실력이 정말 뛰어나신 분이었다고 생각이 든다.
그렇다보니 우리 검진센터에서 검진을 받으신 환자분들 중 <구강 상태>에 대해서
내가 직접 자세하게 안내를 드릴때마다 정말이지 많은 분들이
검진해주신 우리 원장님이 임플란트 수술도 같이해주셨으면 좋겠다는 말을 많이 들었었다.
그러다보니, 나를 통해 원장님께 임플란트 검진을 받는 고객분들이 하나 둘 늘어갔고
치료 결과에도 만족스러워하며 방문하신 분들이 또 다른 환자들을 데리고 오는 경우도 늘어났다.
이러니, 우리 치과에 사람들은 나날이 늘어갔고
임플란트에 대해서 유독 사람들의 재방문율과 만족도가 높아지다 보니, 매출도 늘어났다.
재미있는 점은, 이를 지켜보던 인근 대학병원 내 다른과의 직원분들도
입소문을 타고 본인과 지인들의 진료를 우리 치과에서 받는일들이 정말 빈번하게 늘었다는 점이었다.
나는 일찍이 이때부터, 노력하는만큼 소개환자가 늘어나는 경험을 하였다.
돌이켜보면, 나는 작은 규모였지만 치과의 상담실장이면서, 진료에 직접 참여하게된 치위생사로서
진료시간마다 만나는 환자분들에게 진료적인 소통과 피드백에 정말 최선을 다했다.
조금 낯부끄러운 말을 이번 파트에서는 해볼까한다. 혹시 읽다가 불편하신 분들이 있으실 수 있겠으나 당시 풋풋했던 사회초년생의 귀여운 애교로 봐주셨으면 좋겠다.
당시 근무하던 치과가 점점 유명세를 타고 손님도 늘자, 나 역시 자의반 타의반으로
대학병원 내에 있던 모든 부서 회식에 불려다니고 참석하게 되었다.
다른 부서 사람들의 경조사까지 불려다니고 챙길 정도가 되어서, 몸도 마음도 고되었지만
사실, 이런 친분을 쌓아가는 것이 나는 나쁘지 않고, 오히려 행복하고 좋았던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외적인 활동들과 환경들이 나에게는 큰 영향이자 원동력이 되는 계기가 되었고
첫직장에서 일을 하며 진료시간이나 진료외시간에도 몇년간을 환자유치에 최선을 다 했었다.
그 결과, 내가 처음일했던 작디 작았던 치과는 1년만에 매출이 10배이상 올랐고
내 월급 역시 당시 같은 연차의 동료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만큼 많이 받을 수 있었다.
첫 직장에서 승승장구하던 김민애, 하지만 이내 곧 시련이 닥쳐오는데
과연 그 시련과 여려움은 어떤 것들이 있었는지 밝혀드리겠다.
궁금하다면 다음화를 꼭 기대해주셨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