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과 화해하는 얼굴>
동네 아주머니들이 내 볼을 쓰다듬으며 '아이고, 귀엽다' 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의 나는 그저 웃는 얼굴 하나로, 세상과 손쉽게 친해질 수 있었다.
그런데 중학생이 되면서, 사람들은 내 얼굴을 보고 다르게 말했다.
“표정이 왜 이렇게 딱딱해?”
“요즘 힘들지?”
나는 별일이 없다고 답했지만, 사실 그 말은 늘 마음에 걸렸다.
어느 날 거울을 보니, 정말로 얼굴이 어딘가 굳어 있었다.
어린 시절의 그 귀여운 표정은, 조금씩 닳고 있었다.
대학교 시절엔 포항공대에 입학하자마자 선배에게 들었던 말이 “3수 하셨어요?”였다.
나는 오히려 빠른 2월생이라 1년 일찍 들어갔는데 말이다.
그때 처음으로 내 얼굴이 나보다 ‘앞서 보인다’는 걸 자각했다.
아마 늘 긴장하고, 진지하게 굳은 표정으로 살았던 탓일 것이다.
공대생 시절의 나는 전형적인 공대생처럼 고리타분해 보였다.
그러다 치전원으로 진학했을 때, 나를 모르는 보철과 교수님이 수업시간에 말했다.
“너 공대 출신이지? 이거 풀어봐.”
그때 친한 형이 "어디 생긴 걸 타고나고 있어!" 하니, 주위 동기들이 웃었다.
그 말이 농담인 걸 알면서도, 어쩐지 낙인처럼 남았다.
마치 내가 '체크무늬 남방을 입은 전형적인 공대생'으로 규정된 것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 치과의사가 되고 나서, 그 얼굴이 전혀 다른 의미로 읽히기 시작했다.
약 10년 전 치과의사 1년 차 때, 진료실에서 어떤 환자가 말했다.
“선생님, 경력 10년 넘으셨죠? 엄청 경험 많아 보이세요. 믿음직해요.”
그 말을 듣고 웃음이 났다.
같은 얼굴인데, 상황에 따라 해석이 달라진 것이다.
예전엔 ‘노안’이라 불리던 얼굴이, 그때는 ‘신뢰감 있는 얼굴’이 되었다.
그 당시 내 나이, 만 스물여덟이었다.
그 이후로 나는 조금 다른 눈으로 내 얼굴을 보기 시작했다.
얼굴은 단순한 외모가 아니라, 시간을 품은 하나의 언어라는 걸 알게 됐다.
내가 걸어온 길, 견뎌온 날, 책임져온 마음이 조금씩 얼굴에 새겨지고 있었던 것이다.
사람은 결국 자기가 살아온 만큼의 얼굴을 가지게 된다.
나는 그 얼굴에서 '피로의 흔적'과 '경험의 무늬'를 읽는다.
그 얼굴에는 무게와 따뜻함이 함께 깃들어 있다.
중요한 건, 그 얼굴이 거짓이 아니라는 점이다.
억지웃음으로 덮어도, 피곤한 마음은 눈가에서 새어 나온다.
반대로 진심으로 무언가를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은 화려한 조명 없이도 조용히 빛이 난다.
이제는 ‘어릴 때처럼 귀여워지고 싶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대신 ‘편안해지고 싶다’고 생각한다.
지친 하루 끝에서도 무표정이 아니라, '그래도 괜찮아'라는 말이 자연스레 배어 나오는 얼굴.
그게 내가 닿고 싶은 얼굴이다.
요즘은 틈틈이 피부 관리도 받는다.
시간의 흔적을 완전히 지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시간과 적당히 타협하기 위해서다.
'지금의 나'를 유지하는 것도, 하나의 책임이라고 생각한다.
삶을 꾸준히 이어가듯, 얼굴도 그렇게 조금씩 관리하고 있다.
아주 작은 루틴이지만, 그건 나에게 몇 달을 살아냈다는 표시이기도 하다.
얼마 전, 한 여성 환자분이 진료 중에 웃으며 말했다.
“여긴 치과의사가 영계네.”
그 말을 듣고 직원들과 함께 웃었다.
균형 있는 삶을 추구하다 보니, 예전보다 얼굴이 조금은 부드러워졌나 보다.
돌이켜보면, 얼굴은 나를 가장 솔직하게 증언해 왔다.
사람의 말은 거짓을 담을 수 있지만, 얼굴은 그렇지 않다.
그 얼굴 속에는 그동안의 피로와 애씀, 그리고 아주 작게 희망이 섞여 있다.
나는 여전히 진료실에서 매일 새로운 얼굴들을 본다.
그들의 표정에는 아픔과 두려움, 그리고 회복의 의지가 있다.
그 얼굴들을 보며, 나 역시 내 얼굴을 다시 배운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흐르지만, 그 시간을 어떤 얼굴로 맞이할지는 각자의 몫이다.
어릴 땐 귀여웠고, 지금은 믿음직하다는 말을 듣는다.
어쩌면 그 사이 어딘가에서, 나는 조금은 괜찮은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시간은 나를 낡게 만들지 않았다.
다만, 내 얼굴을 ‘내가 살아온 방식’으로 번역했을 뿐이다.
그리고 나는 그 번역이 점점 마음에 든다.
치과에서 우리들끼리 (치과의사, 직원, 가끔 환자분께) 쓰는 말 13
직원 관련
1. 원장님 드릴 말씀이 있어요.
- 곧 그만두겠다는 뜻이다.
2. 원장님 *** 좀 해주세요.
- 아직 다닐 의향이 있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