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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도 수학이 있다면, 그건 교집합의 공식일 것이다

<가족과 잘 만나지 않는 이유>

by 무명치의

결혼을 한 이후로, 나는 가족을 자주 만나지 않는다.

많아야 1년에 서너 번 정도 본다.

여기서 말하는 가족은 내가 원래 속해 있던, 부모님과 형의 가족을 말한다.

결혼 이후 나는 내 가정을 우선한다.

그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물론 부모님은 부모님의 가정을, 형은 형의 가정을 우선할 것이다.

우리 가족은 각자 자기의 가정을 지키며 살고 있다.




2018년에 결혼을 했으니, 이제 만으로 결혼 7년 차다.

그동안 결혼 생활을 지속하면서 느낀 건, 가정의 평화는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는 데서 시작된다는 사실이다.

특히 결혼생활에서는 '해줬으면 하는 일'을 하는 것보다 '안 했으면 하는 일'을 안 하는 게 훨씬 중요하다.

부부가 서로의 ‘안 하기 바라는 것’을 존중할 때, 집은 평화로워진다.

이건 어릴 적 부모님의 관계를 보며 자연스럽게 배운 덕목이기도 하다.


이걸 수학적으로 표현하자면,

'교집합'은 서로 편하게 해도 되는 행동이고, ‘여집합’은 서로 안 했으면 하는 행동이다.

연애는 교집합을 넓혀가는 과정이다.

서로 잘 맞는 부분을 발견하며, 기쁨을 느끼고, 그 겹쳐진 영역 안에서 사랑이 자란다.

결혼은 여집합을 구체화 해가는 과정이다.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하지 않았으면 하는 것을 존중하는 일이다.

두 사람의 교집합과 여집합의 비율이 대략 5:5 정도만 돼도, 꽤 이상적인 커플이라고 생각한다.

완벽하게 들어맞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이 관계에 가족이라는 원을 몇 개 더 추가해 보자.

부모님이나 형 부부가 그 원 안으로 들어오면, 교집합은 눈에 띄게 줄어든다.

'두 사람의 교집합이 50% 일 때'를 가정해서 실제 계산을 해보면,

두 명이던 관계에 한 명이 추가될 때마다, 교집합은 절반씩 줄어든다.

2명: 1/2
3명: 1/4
4명: 1/8
5명: 1/16
6명: 1/32
즉, n명일 때 교집합은 1/(2^(n−1))이다.

단순한 비유이지만, 감정이 체감하는 정도는 꽤 정확하다.

사람이 한 명 늘어날 때마다 '편한 행동의 범위'는 절반씩 줄어들고,

그만큼 서로의 '불편을 피하기 위한 조심'이 그만큼 늘어난다.

결국 부모님과 형 부부까지 만나게 되면,

우리 부부가 편하게 행동할 수 있는 영역은 전체의 1/32,

나머지 31/32은 누군가에게 불편할 수도 있는 영역이 된다.


그 숫자만 봐도 왜 가족 모임이 피로한 지, 설명이 된다.

게다가 이건 ‘두 사람의 교집합이 50% 일 때’라는 이상적인 전제에서 출발한 계산이니,

현실의 체감은 이보다 훨씬 더 좁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가족 모임이 불편하다.

그 불편은 애정이 없어서가 아니라, 서로를 위해 조심해야 할 영역이 너무 넓기 때문이다.

물론 '가족끼리 뭐 그런 걸 따져?'라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이렇게 생각한다.

진짜 가족은, 서로의 행복을 위해 각자의 울타리를 지켜주는 관계다.




자주 만나는 게 가족 사랑의 증거는 아니다.

서로의 삶을 너무 자세히 알수록, 비교가 시작되고, 비교는 시기와 피로를 낳는다.

어렸을 때 명절마다 친척들끼리 비교당하며 스트레스받던 기억, 다들 있을 것이다.

그 관계가 형제 사이일 때는 말로 꺼내지 않을 뿐, 더 강렬하다.

나는 형과 사이가 좋다.

형의 인생과 형이 원하는 바를 자세히는 모르지만, 진심으로 응원할 수 있다.

그 이유는 내가 형의 사정을 너무 자세히 알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내 기준이나 비교 없이, 그저 형의 인생에서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이다.


나는 가족이라는 건 물리적인 접촉보다 정신적인 거리감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물리적인 접촉이 중요한 건 부모님의 보호 아래 있어야 했던 20대 초반까지의 이야기다.

그 이후엔 내 인생의 주체는 나다.

선택도 내가 하고, 책임도 내가 진다.

그래서 내 가족은 내 가정을 중심으로 생각해야 한다.

서로를 멀리서 바라보며 응원해 주는 관계, 그게 오히려 더 단단한 가족의 형태 아닐까.

가족은 매일 얼굴을 보는 사람들이 아니라, 멀리 있어도 서로의 안녕을 빌어주는 사람들이라고 믿는다.

나에겐 물리적 거리보다 마음의 온도가 중요하다.









치과에서 우리들끼리 (치과의사, 직원, 가끔 환자분께) 쓰는 말 12


사랑니 관련

1. 사랑니가 누워있네요.

- 사랑니가 똑바로 안 나고 누워있다는 뜻이다. 발치 난이도 상승

2. 사랑니가 좀 매복됐네요.

- 사랑니가 잇몸 위로 살짝만 나와있다는 뜻이다. 발치 난이도 상승.

3. 완전 매복이네요.

- 사랑니가 겉으로 보이지도 않게 숨었다는 뜻이다. 발치 난이도 최강.

* 누워있음, 매복돼 있음 둘 다 겹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음.

누운 매복사랑니의 표본. 치과 위생사로 같이 일하고 있는 직원으로 내가 고이 잘 뽑아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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