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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디 Dec 16. 2023

돌로미테 알타비아 1-3

돌로미테의 변덕


한국을 출발한 지 24시간 만에 트래킹의 시작점인 브루니코 마을에 도착했다. 고단한 몸 덕분에 호텔방에서 더욱더 포근함을 느꼈다. 저녁식사는 정식이었는데 두 시간 동안 느긋하게 앉아 아삭아삭한 샐러드에 토마토로만 맛을 낸 깔끔한 스파게티, 바삭한 대형 감자튀김을 곁들인 왕돈가스 스타일의 양고기를 먹고, 후식으로 티라미수까지 먹으니 이탈리아에 왔다는 게 실감이 났다. 각자 자가의 접시에 피자 라지 한판씩을 두고 먹는 연인들, 가족들의 식사를 방해하지 않고 식탁밑에서 얌전히 기다리는 골든 레트리버를 보면서 문화의 다양성을 느꼈다. 식사 후 뒷동산에 올라 여유롭게 동네 구경을 하며 트레킹 준비를 했다. 이렇게 이탈리아의 첫날밤은 무난하게 지나갔다.

드디어 트레킹 첫날 아침이 밝았다.

작은 조각배들이 떠있는 브라이에스 호수, 그리고 호수를 둘러싼 거대한 백운암 봉들을 보니 ‘정말 돌로미테 트레킹을 하는구나’ 싶어 감동이 밀려왔다. 사진으로만 보던 풍경 속에 들어온 기분.


트레킹 시작 후 얼마 가지 않아 비바람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삼십 도로 시작한 여름날씨는 순식간에 영하의 겨울 날씨로 변하며 추위가 몰려왔다. ‘등산은 장비발’이라는 말이 있듯이 고어텍스 재킷과 오버트라우져를 착용하고 나니 돌로미테의 무서운 공격을 어느 정도 방어할 수 있었다. 쉽게 절경을 보여주지 않겠다는 자연의 위엄함 앞에 현대 과학은 인간이 앞으로 나갈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었다.

그렇게 도착한 첫 번째 산장 ‘비엘라’는 도떼기시장과도 같은 분위기였다. 갑작스러운 폭풍으로 트레커들이 협소한 공간에 몰려들어 수용인원을 훨씬 넘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짜증 내는 사람 하나 없이 질서 정연한 모습에 감탄했다. 이탈리아 답게 이런 난장판에서도 음식이 정식 코스로 차근차근 나오기 시작했다. ‘입구에 가마솥 하나 걸어 두고 돼지국밥으로 메뉴를 통일해서 판다면 참 효율적일 텐데’ 상상하며 분주함 속에서 느긋한 점심을 즐겼다. 식사를 마치고 보니 비바람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뜨거운 햇살이 내리쬐고 있었다. 겨울에서 다시 여름으로 옷이 바뀌는 순간이었다. 이게 바로 ‘돌로미테의 변덕’이라고 한다. 중간중간 또다시 돌로미테의 변덕을 경험하며 포다라산장 에 도착했다. 트레킹의 첫날의 밤이 깊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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