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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z Oct 01. 2015

결심

3. 실행

어떻게 떠날지를 정하는 건 생각보다 쉬웠다. 너무 오랫동안 고민해오던 것이라 오히려 선택하고 나니 후련함마저 느껴졌다. 


내가 결정한 기준은

1. 최대한 아프지 않을 것.

2.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최대한 주지 않는 것

이었다.


그래서 내가 선택한 방법은 일산화탄소 중독. 


방법이 정해지자마자 나는 빠르게 움직였다. 편의점에 가서 청테이프를 샀고, 마트에 가서 번개탄을 샀다. 약국에 가서 감기약을 사고 방으로 향했다.


안에서 문을 닫은 뒤 도어록의 건전지를 뺐다. 청테이프로 현관문 틈새를 막았다. 창문 틈새도 막았다. 화장실 문도 막으려고 했는데 창문이 커서 테이프가 모자랐다. 


'뭐 그래도 다른 건  막았으니까......'


유서를 썼다. 부모님을 원망하는 내용과 죽은 뒤엔 뼈를 그냥 버려달라는 내용을 적었다. 편지를 접어 테이블 위에 올려 두었다.


그리고 방을 눈으로 스윽 둘러보았다. 보통의 원룸 치고는 조금 큰  방...... 몇 달전까지 살던 닭장 같은 고시텔이 내가 마지막으로 있는 장소가 아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감기약을 먹었다. 한 5알 정도? 불면증이 심해서 웬만하여선 3시간 이상 잘 수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오래 자야만 했다. 휴대폰을 봤다. 9시 13분이었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냄비에 번개탄을 넣었다. 혹시 불이 날지 모르니까 냄비는 인덕션 위에 올렸다. 성냥에 불을 켰다. 불이 생각보단 잘 붙지 않았다. 휴지와 광고지를 냄비에 구겨 넣고 몇 번 시도 끝에 번개탄에 불이 제대로 붙었다. 연기가 피어올랐다. 방은 곧 연기도 가득 찼다. 이부자리에 누웠다.



눈물이 났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이제 마지막이라는 안도감과 함께 외로움이 밀려왔다. 내가 지금 죽어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친구들은 있지만 간간이 연락할 뿐 매일 연락하는 사람은 없었다. 


'아무도 내가 죽는 걸 모르겠구나....... 내가 죽고 며칠 뒤에나 발견이 될까? 그래도 학기 중이니까 너무 길진 않겠지? 시체가 썩기 전엔  발견되었으면 좋겠다......'


눈물을 닦았다. 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자고 일어나면 다른 세상이  눈 앞에 펼쳐질 거다. 그렇게 생각했다.


내가 이 방법을 택한 건 아프지 않고, 조용히 떠날 수 있다는 점도 있지만 실패해도 뇌사나, 뇌손상을 입을 수 있다는 점 때문이었다. 살아도 깨어나지 못하거나, 깨어나도 기억하지 못하거나. 깨어나도 제발 기억하지 못하길 바랐다. 내 모든 걸. 좋은 추억은 기억나지도 않을 만큼 힘든 기억이 너무 많았으니까.




불을 끄고 긴장을 풀고 누웠다. 번개탄 타는 소리가 타탁 타닥 들렸다. 

매캐한 냄새 때문에 다시 온몸에 힘이 들어갔다. 아무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생각했다. 그래 그냥 자는 거라고... 그냥 평소처럼 자는 것이라고 생각하려 했다. 이윽고 난 잠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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