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와 나의 도서관에서

우리는 머리를 맞대고 희망을 꿈꾼다.

by 늘해랑

이사짐센터에서 난색을 표하는 집중에 하나가 책을 많이 보유한 집이라고 한다. 그래서 두 번의 이사를 하면서 우리 집에 오신 분들 모두 같은 말씀을 하셨다.

"사모님 이 집은 책이 많아도 너~~ 무 많아요."

그도 그럴 것이 나의 직업이 독서. 논술 학원을 운영하고 있고, 그전에는 나름 이름난 방문교사였고 또한 아이들 공부 좀 시켜보겠다는 엄마이기 때문이다.

책이 많은 집은 집이 좀 무겁기는 하겠지만 여러 가지 상황상 유익하지 않겠는가? 물론 구성원이 어느 정도를 읽고 있느냐가 가장 큰 관건이긴 하겠지만 집에 책이 많다는 건 무언가 흐뭇한 일인 것은 확실했다. 적어도 나한테는.


아이들을 위해 구비했던 책부터 시작한 우리 집 책장은 방에서 거실로 거실 한 면을 가득히 채우고 현재는 어른의 도서관으로 활약 중이다.

도서관 도서는 경제, 인문, 철학, 고전, 자기 계발서, 교육서, 글쓰기...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동네 작은 도서관 규모 저리 가라네!"라고 말하곤 한다.

도서관의 보유도서는 거의 대부분 우리 집 당근요정님께서 직접 공수해 오셨다.

언제 사온지도 모르게.... 퇴근이 좀 늦어지는 날이면 어김없이... 그윽한 미소로 등에 맨 백팩에서 뭔가를 주섬 주섬 꺼내면서...."이게 구하기 힘든 책인데 어쩌고 저쩌고... 이건 그분이 덤으로 주셨어...." 하며 함박웃음을 짓는 사람.


당근 요정님의 도서 이력을 살펴보자면, 자녀의 학교 교육은 가난을 이유로 본인의 낯이 뜨거워 짐을 이유로 세 자녀의 학교상담을 초등부터 단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어머니 아래서 자란지라 어릴 때 책을 읽어 본 역사가 없는 개천의 송사리로 시작했다. 중학교, 고등학교를 지나 대학교에 가고 취업을 하면서 스스로 독서에 대한 타는 목마름을 느낀 스스로가 책을 찾은 아주 좋은 선례.

그리고 만난 베필이 어느 날 독서지도사를 하겠다 하고, 부부싸움을 하더니 전집을 집으로 막 들이고, 책으로 도배된 학원을 차리겠다고 하고... 그 안에서 우리 개천의 송사리가 당근요정 관장님으로 탄생하셨다.


사실 남자 나이 40이 훨씬 넘어서 안 하던 그것도 책을 읽겠다고 하는 것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먹는 것이고, 춤도 춰본 사람이 춰보는 것이고, 책도 읽어본 사람이 읽는 것 아닌가?'라는 나의 나름의 편견 안에서는 말이다. 그런데 이 묵직한 사람은 어느 날부터 꽤나 두꺼운 책을 이고 지고 다니고 꽤나 어려운 이야기를 틈나는 대로 읽고 어느 날은 전자책으로 어느 날은 종이 책을 읽더니 또 어느 날은 나에게 그것을 설명하기 시작을 한다.

책이 사람을 변하게 한다는 이야기를 학부모님 앞에서 주야장천 늘어놓는 나는 그 놀라운 변화를 50이 머지않은 아저씨에게서 보는 중이다. 참으로 대단하다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내가 브런치 작가에 도전을 했던 이유 중에 하나는 아이들을 상대로 일을 하다 보니 어느 사이 나의 책머리가 성인의 경지에 못 미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 그리고 매일을 글을 쓰라는 잔소리로 시작해 잔소리로 끝을 내는 일을 하면서 정작 나는 하루에 한 줄도 쓰지 않음에 대한 죄책감 때문이었다. 그리고 들어선 '작가'의 세계에는 정말 엄청났고 눈이 부셨고 감히 쳐다보지도 못하는 세상이 있었다. 부랴 부랴 쫓아가보겠다 독서모임도 들어가고 새삼 놀라고 있던 그때 독서모임에서 들어보았던 책들이 우리 집 책장에서 하나둘씩 보이기 시작했다.

"어? 우리 집에 이런 책들이 있었나?" 어깨에 힘이 슬쩍 올라간 요정관장님의 올라간 입꼬리!

결혼 전 반려자에 대한 로망이 '지적인' 남자였는데... 그 무언가 아쉬웠다면 아쉬웠던 그 2%가 결혼 14년 만에... 그득하게 아니 넘치게 채워지고 있다.


아직 우리 집 도서관의 관외 대출률은 높지는 않다. 그렇지만 우리가 눈 감는 그 순간까지... 시력이 허락하는 그 순간까지 읽을 책들이 눈앞에 가득하다는 것만으로도 5성급 호텔 미슐렝 3 스타가 부럽지 않다.

우리는 멋진 골프채를 들고 의상을 갖춰 입고 필드에 나가거나, 이름 있는 등산복과 등산화를 신고 산에 오르거나 혹은 알지 못하는 근사한 취미를 공유하지는 못하지만, 이름 들어본 책이 나오면 서점에 가서 실물영접을 하고, 알라딘 중고목록을 찾아보고 당근 요정 접선 지역을 검색하고 책을 받아오는 기쁨을 나누곤 한다.

그와 나의 도서관에서 어쩌면 우리는 이만큼에 행복하며 쭉 살아가겠지만 운이 따른다면 "우리 인생의 역작이 또 탄생하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꿈꾸기도 한다.

이만큼이면 우선은 집에 돌아오는 매일이 기분 좋은 감사한 귀갓길이 되지 않을까? 가족이 기다리고 내가 좋아하는 책이 기다리는 도서관이 그곳에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당신 덕분에 내가 책을 읽는 삶을 살게 되었어."라고 말해주는 우리 집 도서관장님이 있어 감사한 매일매일이다.



토요일 연재
이전 11화내 남편의 꿈은 '영부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