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함 X 헬로에클레시아 인터뷰
이탈리아어로 ‘매우’를 뜻하는 에스프레소 바 ‘몰또’는 커뮤니티에 기반한 공간과 비즈니스를 만들어 온 ‘더함’과 카페 ‘헬로에클레시아’의 공동 브랜드다. ‘명동성당과 남산이 보이는 탁 트인 전망’, 그리고 ‘좋은 커피와 맛있는 베이커리’. 몰또의 시작은 서로가 가진 좋은 것을 사람들과 나누고 싶은 마음에서부터였다. 이탈리아에서 공수해온 재료로 만든 신선한 베이커리, 그리고 기분 좋은 마무리를 선사하는 에스프레소를 곁들이며 바라보는 명동성당과 남산의 모습은 구태여 고개를 들지 않아도 보일 만큼 편안하다. 마치 유럽에 온 듯한 느낌을 주는 이곳은 오픈 직후 입소문을 타고 많은 이들에게 여행의 기분을 전하고 있다. 이제는 명동을 떠올리면 빼놓을 수 없는 장소가 된 몰또, 앞으로는 단순히 ‘핫’한 곳이 아니라 침체된 명동에 새로운 숨을 불어넣는 흐름의 시작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Q. 두 대표님에 대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양동수(이하 ‘양’): 안녕하세요, 저는 몰또가 자리한 ‘페이지 명동’의 총괄기획 및 운영을 맡고 있는 더함의 양동수라고 합니다. 헬로에클레시아와 함께 ‘몰또’를 기획하였습니다.
최정민(이하 ‘최’): 안녕하세요, 몰또를 운영하고 있는 헬로에클레시아의 최정민입니다. 더함과 함께 몰또를 기획했습니다.
Q. 몰또에 대한 소개도 부탁드릴 수 있을까요?
최: 기분 좋은 바람을 맞으며 명동성당을 바라볼 수 있는, 이국적인 느낌의 몰또(molto)는 이탈리아어로 ‘매우’, ‘너무’라는 뜻이에요. 이탈리아에서는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Molto, delicato! (몰또 델리까또)’라고 말하거든요. 직역하자면 ‘너무 맛있다’라는 뜻인데, 여기에서 영감을 얻었어요. 이탈리아 사람들이 맛있는 걸 먹거나 좋은 것을 봤을 때 ‘몰또’라는 표현을 사용하며 연신 감탄하는 것처럼, 우리가 연 공간과 내는 음식이 사람들에게 그런 감탄을 불러일으킬 수 있길 바라는 마음에서 이렇게 이름을 짓게 됐어요. 몰또를 방문하시는 분들이 이탈리아에 여행 온 듯한 느낌을 받으셨으면 좋겠어요.
Q. 최정민 대표님은 헬로에클레시아라는 카페를 운영하고 계시기도 한데요. 몰또를 열면서 특별히 신경 쓰신 부분이 있을까요?
최: 몰또에는 ‘에스프레소 바’라는 수식이 붙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스프레소만 강조되는 것은 원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에스프레소 외에도 커피를 보다 풍성하게 즐길 수 있게 하는 브루스게따, 까논치니 같은 메뉴들을 함께 준비하였는데요. 이것이 저희의 강점이라고 생각해요. 저희 베이커리 메뉴들에는 이탈리아 풀리아(Puglia) 지방에서 공수해 온 신선하고 수준 높은 식재료들이 들어가 있어요. 헬로에클레시아와 함께해 주시는 ‘밀라노 클라쎄’의 김승현 대표님이 직접 공수해 오는 것인데, 퀄리티와 신선함 면에서 어디에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죠. 특히 한 입 크기의 까논치니는 몰또에서만 만나볼 수 있는 메뉴예요. 물론 에스프레소 바이기 때문에 커피 또한 이탈리아의 맛을 느낄 수 있도록 맞춤 블렌딩했어요. 아메리카노를 즐기는 분들도 많기에 에스프레소와 아메리카노 모두에 잘 어울릴 수 있도록 신경을 많이 써서 로스팅했죠. 신맛보다는 초콜릿 같은 단맛, 명동이 주는 클래식함을 떠오르게 하는 원두를 준비했어요.
아이러니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저는 커피가 누군가를 만나기 위한 매개이지, 주 목적이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우리의 목표는 어떤 절대적인 커피를 만든다기보다, 매개 역할을 충실히 해주는 커피를 만드는 거예요. 몰또에 오면 맛있는 커피도 있지만 그만큼 좋은 사람들도 있고, 내가 알지 못했던 친절이나 따뜻함도 있다는 인식을 사람들에게 심어 주고 싶어요. 커피를 마시는 그 시간과 공간 덕분에 알아가고 친해질 수 있는 누군가가 생긴다면 정말 의미 있을 것 같아요.
Q. 연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여러 매체에 소개되기도 하고, 정말 많은 분들이 다녀가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오픈 후 받으셨던 피드백들 중 인상 깊었던 내용이 있을까요?
최: 많은 관심 덕에 그만큼 바빠져서 피드백을 일일이 찾아보지는 못했어요. 다만 손님들이 반납해 주시는 빈 접시와 잔이 무엇보다 좋은 피드백이라 여기며 일하고 있죠. 평소 커피 한 잔 한 잔을 천천히 정성스럽게 내리는 걸 좋아하고 추구하지만, 요즘은 손님들이 기다리시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 속도도 중요하게 생각하게 되었어요. 그럼에도 한 잔 한 잔 최선을 다하자는 마음에는 변함이 없고, 직원들에게도 이 부분을 늘 강조해요.
Q. 앞서 말씀하신 것처럼 커피는 시간, 사람, 공간의 좋은 매개체인 것 같아요. 그렇다면 최정민 대표님은 언제부터 커피에 관심을 가지게 되셨나요?
최: 항상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직접 해보는 편이었어요. 내가 보고 싶은 영화를 직접 만들고 싶어 관련 대학원을 가보기도 했고요. 커피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아요. 커피는 내가 하고 싶은 것, 주고 싶은 맛을 전달하는 것이고 저는 거기에서 의미와 보람을 느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주변을 돌아보며 내게 주어진 일을 해내는 것이 더 자연스러워지더라고요. 곁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무언가를 해내는 게 좋았고, 커피도 그랬던 것 같아요. 마침 아버지와 지인들에게서 공동체가 모일 수 있는 커뮤니티 카페를 열면 어떻겠냐는 권유를 받았는데요. 그게 저에게는 운명처럼 느껴졌어요. 커피로 성공해야겠다는 것보다 좋아하는 것을 내어드리는 마음으로 카페를 시작했는데, 논현동에서 시작한 작은 가게가 송파로 확장되고, 이렇게 기회가 닿아 양동수 대표님까지 만나게 된 거예요. 무슨 특별한 비법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제가 가진 생각을 나누었을 뿐인데 말이죠.
Q. 그러고 보니 두 분은 비슷한 면이 있으신 것 같아요. 더함 양동수 대표님도 변호사로 업을 시작해 사회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고민하시고 그런 일을 하는 사람들을 찾다가 더함을 시작하셨다고 들었어요. 자신에게 주어진 것, 문제를 느끼는 것을 운명이라고 받아들이고 일을 시작하신 두 대표님의 스토리가 닮아 있는 것 같아요. 더함과의 첫 만남에 대해서 자세하게 이야기 해주실 수 있을까요?
최: 제가 사랑하는 동생들이 회사원으로서의 일상에 무료함을 느낄 즈음, 저희 가게에서 제일 잘 팔리는 몇 가지 메뉴를 가지고 구멍가게를 해보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어요. 회사 앞에 좋은 자리가 났으니 공급만 해준다면 가게를 열겠다고요. 농담과 진담이 섞인 이야기였겠지만, 저는 그들이 저와 같이 원래 가던 길에서 조금은 벗어나 삶을 주도적으로 누리는 데서 오는 즐거움과 역동을 느꼈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같이 자리를 알아봤어요. 그러던 와중에 조경가이신 아버지가 직접 작업을 맡았던 페이지 명동의 공간을 보러 오게 된 거죠.
아버지가 아들을 데리고 명동으로 오라고 하시더라고요. 사실 명동돈까스는 아주 오래전부터 우리 가족이 외식을 하던 곳이었거든요. 그동안 바빠서 명동을 오지 못했었는데, 오랜만에 아버지, 아이와 함께 돈까스를 먹을 겸 페이지 명동에 오게 됐어요. 그렇게 전체 공간을 둘러보는데, 7층에 위치한 작은 공간(“공중 정원”)을 본 순간, 이 곳이라면 동생들이 부담스럽지 않고 재미있게 무언가를 해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혹 입주자를 찾고 있다면 의뢰가 가능할지를 물었고, 그렇게 더함과 만나게 됐어요.
양동수 대표님이 기억하실지는 모르지만, ‘헬로에클레시아가 F&B로서 가지고 있는 장점은 무엇이냐’고 물으셨던 것이 기억에 남아요. 말씀드렸듯이 저는 좋아하는 것들을 정성스레 만들어 대접하는 것일 뿐, 커피나 디저트를 열심히 연구하는 사람은 아니었기에 ‘없다’고 답했죠. 그러고 나서 ‘향후 계획이 무엇이냐’고 물어보시더라고요. 저는 하루 빨리 서울을 떠나 시골에서 사랑하는 가족들과 살고 싶다고 말씀드렸어요. 그 두 가지 이야기만 했을 뿐인데 저희와 파트너십을 하고 싶어하시더라고요. 처음에는 7층으로 논의를 시작해 여러 아이디어를 주고받으며 지금의 3층에 자리를 잡게 됐어요.
Q. 양동수 대표님, 현재 몰또가 위치해 있는 ‘페이지 명동’에 대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양: 페이지 명동이 위치한 이곳은 독립운동가 이회영 선생의 생가 터였어요. 1967년에는 한국YWCA연합회관이 들어섰고, 포스코가 처음으로 사업을 시작한 곳이기도 하죠. 명동은 독립운동, 산업화, 민주화의 역사가 켜켜이 쌓인 동네예요. 다양한 소극장과 다방, 살롱을 배경으로 한 문화예술의 중심지이기도 했고요.
그런데 최근 20~30여 년간 명동은 ‘땅값이 가장 비싼 땅’, ‘쇼핑과 관광에 집중돼 주변 직장인들과 시민들은 더 이상 찾지 않는 곳’으로 바뀌어 버렸어요. 이런 상황 속에서 저희는 명동의 체질을 어떻게 개선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공간을 바꾸면 관계망도 자연스럽게 바뀔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죠. 주차장으로 쓰이던 나대지 위에 ‘커뮤니티하우스 마실’이라는 복합문화공간을 세우고, 그 옆의 한국YWCA연합회관을 ‘페이지 명동’이라는 이름의 커뮤니티 타운으로 리모델링을 진행했어요. 그리고 이 공간에 계속해서 다양한 프로그램과 콘텐츠를 채워 가고 있습니다.
한국YWCA연합회 건물이던 페이지 명동은 원래 모습과 정체성을 해치지 않고 새로운 공간으로 되살리는 재생건축 방식으로 리모델링을 한 곳이에요. 명동을 지금 시대에 맞게 새로운 방식으로 변화시키려면 혁신가들이 모일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는데, 명동성당 바로 앞에 있는 이 건물을 그런 공간으로 마련한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거죠. ‘페이지 명동’을 도심 속에 새로운 공동체를 세워 나가는 혁신가들을 위한 공간으로 만들어보자는 마음으로 기획하게 되었어요.
여기서 혁신가라는 것은 대단한 게 아니에요. 자기 삶에서 조금 다른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하고, 좀 더 나은 삶을 먼저 고민하는 사람들이라고 봐요. 페이지 명동이 새로운 취향, 취미, 지식, 네트워크에 대한 고민과 갈증을 풀 수 있는, 일종의 동네 사랑방 역할을 할 수 있는 곳이 되었으면 해요.
Q. 페이지 명동의 위치와 지향점은 명동이라는 상업지구 안에서도 꽤나 독특하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페이지 명동의 어떤 부분이 최정민 대표님의 마음을 움직였나요?
최: 우선 더함에 대한 첫 느낌이 정말 좋았어요. 양동수 대표님이 짚어 주셨던 것처럼, 이렇게 비싼 땅값을 가진 도심 1층에 녹지를 꾸밀 수 있다는 마음부터가 무언가 조금은 ‘다른’ 거죠. 사업성을 아예 배제할 순 없겠지만, 화려한 시내 중심에 뭔가 의미 있는 걸 담아보고자 시도하는 분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게 흥미로웠어요. 저는 이런 분들을 만나 토론하거나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근원적인 배경을 묻는 것을 좋아하거든요. 모든 부분에서 저와 통할 수는 없겠지만, 이야기를 나누며 큰 흐름을 함께 할 수 있는 분들이라고 느꼈던 것 같아요.
그리고 페이지 명동에서 명동성당을 볼 때 1층, 3층, 7층에서 보이는 각도가 다른데요. 이곳에서 받은, 풍경이 주는 평안함이 있었던 것 같아요. 바깥은 굉장히 시끄럽지만, 거기에서 조금만 올라오면 이 공간만큼은 평온하더라고요. 사람들로 가득 차 왁자한 느낌도 나쁘지 않았고요. 결론적으로는 저에게 주어진 마음을 믿었던 것 같아요. 이 공간과 여기에 있는 사람들이 궁금했고, 어떤 작업물이 탄생할지가 기대됐죠.
Q. 공간을 세팅하시면서 특히 신경 쓰셨던 부분이 있으실까요?
최: 공간의 규모나 쓰임이 제한적이었어요. 같은 층을 공유하는 입주사가 있어 테라스를 가리면 안 된다는 조건도 있었고요. 그래서 제가 하고 싶었던 모든 걸 쏟았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바를 구성할 때만큼은 힘을 줬어요. 실제 대리석을 사용해 공간의 중심을 잡았죠. 다만 찾아주시는 분들이 우리를 보러 오기보다 여기에서 풍경을 바라볼 수 있게 하고 싶었어요. 앞으로도 어떤 요소들을 더 추가하기보다, 꼭 어울려보이는 것들만 추가하면서 지켜보려고 해요.
조경가인 아버지와 옛날에 이런 대화를 나눈 적 있어요. 유럽의 어떤 나라들은 집 바깥의 풍경이 매력적이지 않아 집 내부와 정원을 꾸미기 시작했지만, 우리나라는 멋진 풍경이 있어 집을 비우기 시작했다고요. 근사한 산과 물이 있으니 대청마루를 비워 놓고 그곳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모두 정원인 셈이죠. 그 말에 영향을 받은 탓인지 공간을 최대한 비우는 게 저에게는 이득이었다고 생각해요. 물론 꼭 필요한 것이라면 채우겠지만, 조금은 내려놓고 앉아 주변을 둘러볼 수 있게 하는 데에 초점을 맞추고 싶어요.
Q. 공간의 매력이라는 것이 공간 자체에서 나오기도 하지만, 그 안을 채우는 사람이나 어떤 배치들이 마음을 움직이기도 하는 것 같아요. 몰또에 다녀가신 분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성당의 종소리가 들리는 순간이면 경건해지고, 조금 다른 세계에 와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하시더라고요. 최정민 대표님이 생각하시기에 몰또에서 가장 매력적인 순간이 있으실까요?
최: 명동성당은 오전 9시, 오후 12시, 6시에 각각 종을 쳐요. 이를 두고 삼종이라고 하는데, 사실 저는 종이 울리는 순간보다 1시에서 3시 사이가 좋은 것 같아요. 계절마다 구체적인 시간대는 조금 다르겠지만, 그때면 태양빛이 수직으로 내리쬐다가 그늘로 바뀌거든요. 그러면 빛을 피하던 사람도, 즐기던 사람도 모두 섞여 하나가 되는 풍경이 보기 좋아요.
삼종이라고 하니 생각난 건데, 어머니가 명동성당 안에 있는 고등학교를 나오셨어요. 사실 저는 바빠서 종 치는 소리도 못 들었는데, 어느 날 어머니가 그 사실을 알려주시더라고요. 어머니가 고등학교를 다니셨을 때 훗날 자신의 아들이 여기서 카페를 하게 될 줄은 모르셨을 테죠.(웃음) 어머니의 4-50년 전이 제 앞에 있는 거예요. 신기하고 재미있는 사실이죠.
우리가 ‘핫’하다거나 ‘힙’하다고 부르는 곳들은 대체로 젊은 세대에 치중되어 있는 것에 비해, 명동은 부모님을 모시고 올 수 있다는 점이 좋은 것 같아요. 그러고 보니 저도 명동에 대한 향수가 있는데요. 어렸을 때는 명동에 편집숍들이 있었고, 옷을 사러 자주 나왔어요. 그 이후 관광객이 몰리면서 1-20년 정도는 단절된 채 있었던 것 같아요.
코로나19의 여파로 명동이 비었다는 사실은 조금 슬프지만, 그로 인해 저 같은 사람들이 다시 찾는다는 것은 좋은 현상이라고 생각해요. 몰또에서 에스프레소를 마시는 부모님의 모습을 본다는 게 참 좋아요. 여기에 제 아들도 자주 이곳에 방문하니, 세대를 넘나드는 공간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죠.
Q. 3층 테라스에 카페를 오픈하는 것이 수익성 측면에서 옳은 결정일지에 대한 내부의 반신반의, 내지는 반대가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에 카페를 오픈하기로 결정한 이유가 있으실지요?
양: 몰또를 통해 3층 테라스에서 보이는, 명동성당과 남산타워가 한눈에 들어오는 근사한 뷰가 널리 알려지고 있는데요. 한국YWCA연합회를 리모델링 하기 전에는 3층도, 7층 옥상도 모두 닫힌 공간이어서 시민들뿐만 아니라 건물 관계자들도 접근하기 어려운 곳이었어요. 때문에 리모델링 계획을 세우면서 이곳을 ‘밖에서 안을 바라보는 공간’이 아닌, ‘안에서 밖을 전망하는 공간’으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죠. 나아가 리모델링 과정에서 이곳의 생활자들을 인터뷰하면서 사람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공간은 자연을 충분히 느끼며 그 속에서 쉼을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이라는 사실도 알게 됐어요. 그래서 조경을 기획할 때 도심 속에서 자연을 느끼게 하는 데에 초점을 맞췄고, 가장 전망이 좋은 곳들은 주변 직장인들과 시민들이 쉴 수 있도록 개방하기로 했어요. 3층의 테라스나 7층 옥상, 그리고 페이지 명동과 마실 사이의 골목길 모두 이웃들과 행인들이 산책하고 쉴 수 있는 곳으로 조성했죠.
리모델링을 마치고 나서 이 멋진 전망과 평온을 더 많은 분들이 누릴 수 있게 하고 싶었어요. 나아가 이곳에 방문하는 것을 넘어 먹고 마시며 좀 더 여유 있게 누릴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리테일 공간 자체를 하나의 커뮤니티 공간으로 만들어야겠다고 구상했을 때, F&B가 그 중심적인 역할을 맡아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커뮤니티에 기반한 공간을 만들고 운영한다’는 가치는 어떤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구체적인 삶 속에서 이뤄지는 것이거든요. 먹고 마실 수 있는 공간이 무척 중요한 것이죠. 그래서 이러한 저희의 가치에 동의하고 함께 운영할 파트너를 찾기 시작했어요.
Q. 카페 전문파트너로 헬로에클레시아를 섭외하신 이유에 대해 설명 주실 수 있으실까요?
양: F&B를 하기로 결정했지만 1층, 3층, 7층 중 어디에서부터 시작할지 결정하는 데에 많은 시간이 걸렸어요. 이에 대한 투자나 협업 파트너를 찾는 일도 쉽지 않았죠. 그러다가 페이지 명동 전체 조경을 맡아 주신 씨토포스 최신현 대표님을 통해 헬로에클레시아 팀을 만났어요. 이미 카페를 잘 운영하고 계셨지만, 명동에 잘 어울릴까, 공간 전체를 맡길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은 여전했죠. 헬로에클레시아를 만난 것이 작년 이맘 때니까 1년이 조금 넘었네요. 그 사이 7층을 아주 작게 시작하는 것도 이야기 해보고, 1층 전체를 크게 기획하는 것도 이야기하다가 올해 5월이 되어서야 비로소 3층 테라스에서 해보는 것으로 결정하게 되었어요.
헬로에클레시아 팀과 오랜 기간 얘기를 나누며 F&B를 대하는 자세, 그리고 더함이 추구하는 공동체에 대한 생각들이 참 잘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상황이 여러 번 변하면서 지칠 법도 했을 텐데, 거기에 맞춰 함께 해주시는 모습을 보며 진정성을 느꼈죠. 팀이 가진, 공동체로서의 힘을 봤던 것 같아요. 처음에는 많이 서툴고, 맞춰가는 데에 애로사항이 많을 수도 있겠지만 서로를 믿고 신뢰한다면 길게 갈 수 있을 거라는 마음이 들더라고요. 그렇게 헬로에클레시아와 함께 해왔고, 이렇게 몰또가 탄생하게 되었네요.
Q. 대표님이 생각하시는 이 3층 테라스만의 장점에 대해서 조금 더 말씀해 주실 수 있으실까요?
최: 개인적으로 3층을 보고 ‘정말 좋은 것들을 보여 드릴 수 있고 좋은 음식을 곁들일 수 있는, 우리에게 딱 맞는 스케일의 장소를 찾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명동 거리보다 조금 높은 지대에 위치한 명동성당을 군더더기 없이 편안한 아이레벨에서 느낄 수 있다는 것이 찾아주시는 분들에게 좋은 경험이 될 것 같더라고요. 어제도 양동수 대표님과 이야기를 나눴는데, ‘명동성당과 이 건물은 60년 전에도 있었고, 몰또가 있기 전에도 이 공간은 모두에게 개방되어 있었는데, 아무도 이 뷰를 보지 못했다, 몰또를 만나고 모두가 명동에 이렇게 좋은 곳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하시더라고요. 저도 그 말을 듣고 무슨 말씀인지 단번에 이해가 됐고, 그런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카페를 운영하게 되어 좋기도 하면서 책임감도 느끼고 있어요.
Q. 양동수 대표님께서는 페이지 명동의 기획부터 몰또의 오픈까지, 그 과정 전반을 함께해 오셨기에 이곳의 변화를 누구보다 더 잘 체감하실 것 같은데요. 몰또의 오픈 이후 달라진 풍경, 여기에서 느껴지는 소회가 있을까요?
양: 페이지 명동의 기획에 대한 얘기를 하면서 말씀드렸지만 명동, 특히 명동성당 앞은 역사, 문화적 의미가 큰 것 같아요. 그런데 부모님 세대, 그리고 저와 같이 어릴 적 명동에 추억이 있는 세대 이후, 안타깝게도 ‘외국인 관광객들이 더 많이 찾는 공간, 내국인들은 더 이상 찾지 않는 공간’으로 밀려나게 된 거죠.
하지만 바쁜 가운데 페이지 명동이나 명동성당 앞을 산책하다 보면 가끔 가슴이 뭉클해질 때가 있어요. 층층이 누적된 사건과 기억 중에는 누군가의 인생에서 가장 의미 있는 장면이 있을 것이고, 그러한 장면들이 모여 현대사를 굵직하게 써 내려 갔겠구나. 그 현장이 바로 이곳이구나. 그리고 지금은 이렇게 평온하고 따스하구나, 그렇다면 앞으로 다시 쓰게 될 우리 다음 세대의 이야기는 어떻게 펼쳐질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요. 그런 마음에 좀 더 많은 분들에게 이 상징적인 공간을 다시 돌려드리고 싶었어요. 그 마음이 전해지듯 몰또 때문에 수년 만에 명동을 일부러 찾아오셨다는 이야기, 난생 처음 찾은 명동에서 맛있는 커피와 뷰를 즐기고 평온함을 얻게 되었다는 이야기들을 마주하며 깊은 감사의 마음을 느끼는 중입니다. 앞으로도 최 대표님과 함께 의미 있는 이야기가 계속 이어지는 공간으로 잘 만들어 가고 싶네요.
Q. 따뜻한 공동체의 삶을 지향하는 ‘헬로에클레시아’와 도심 속 커뮤니티를 회복하자는 취지에서 ‘페이지 명동’을 오픈한 ‘더함’과의 만남이 굉장히 의미심장하게 다가오는 것 같아요. 몰또를 통해서 커뮤니티를 실현한다, 라고 했을 때 그 커뮤니티는 어떤 모습일까요?
최: 먼저 사람들이 하루하루를 여행처럼 살았으면 좋겠어요. 저는 정말 그렇게 하거든요. 이곳에서뿐 아니라 아들과 함께 살아가는 일상도 매일이 여행같이 느껴져요. 다른 분들도 몰또를 통해 여행의 기분을 체감하셨으면 좋겠고, 누구와 들르든 좋은 것을 누릴 수 있는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Q. 앞으로 몰또는 어떤 공간이 될까요? 두 분이 바라는, 몰또의 지향점이 있다면요?
최: 몰또가 모두가 찾을 수 있는, 따뜻한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제 아들 이름도 따뜻하다는의미의 ‘온’이거든요. 힙한 것들을 이끄는 특정 세대만 찾는 것이 아니라, 여러 세대가 자기만의 편안함을 느끼며 조화롭게 어울릴 수 있기를 바라고 있어요.
나아가 명동이 관광지이지만, ‘관광지라서 뷰가 다했다’는 느낌이 아니었으면 좋겠어요. 애초에 그렇게 준비하지도 않았고요. 저희는 앞으로도 더 많은 것들을 시도하고, 준비하고 있고 시설과 공간이 허락되는 한 늘려 나갈 것들을 쌓아 놓고 있는 중이에요. 아버지, 아내가 모두 조경가인데 공간에 풀 한 포기 없다는 것도 조금 아쉬운데요, 이 부분에 대해서도 고민하고 있어요.
양: 몇몇 인플루언서나 특정 세대에게만 만족을 주는 곳이 아니라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이 편안하게 드나들 수 있는 힘을 가진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한 명의 사람, 하나의 공간만으로 세상을 바꾸고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 낼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그 흐름을 추동하기 위한 시작점이 되려고 합니다. 명동에는 몰또뿐 아니라, 골목골목에서 자기만의 내공을 펼치는 보석 같은 가게들이 정말 많은데요. 더함에서는 올해부터 로컬콘텐츠 프로젝트인 <이면도로>를 통해 명동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플레이어들을 찾아나서고 있어요. 코로나가 잠잠해지고 명동이 조금씩 활력을 찾을 때, 이 플레이어들이 서로 교류하며 시너지를 일으킬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어요. 페이지 명동에 입점해 있는 주체들도 중요한 플레이어라고 생각해요. 앞으로 명동성당, YWCA와 같은 명동의 오랜 플레이어들, 그리고 이곳을 찾아주시는 시민들과 함께 명동을 변화시킬 재미난 기획, 자리들을 준비해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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