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함피플탐구] 커뮤니티실 마케팅팀 이건동 팀장
[더함 피플 탐구] “타인과 함께, 타인을 통해서 협력할 때에야 비로소 위대한 것이 탄생한다”(by 생텍쥐페리). 일을 하면서 좋은 동료를 만나는 것만큼 큰 복이 또 있을까요? 서로 공감하고 협력하며 더함에 다양한 색채와 가치를 더해 가는 사람들을 만나 봅니다
커뮤니티를 이루어 함께 사는 주거방식에 관심을 갖는 분들이 예전보다는 늘어나고 있는데요. 그래도 아직까지는 ‘사회주택’, ‘협동조합형 아파트’라는 개념에 대해 낯설게 느끼는 분들이 더 많은 것 같습니다. 더함의 마케팅팀은 ‘커뮤니티는 힘들고 귀찮은 것’이라는 오해를 풀어내고, 사회주택과 사회적 부동산에 대한 좋은 인식을 전달하여, 수요자와 잠재적 수요자를 모으는 일들을 하고 있습니다. (말 그대로 ‘하드캐리’!)
[더함 피플 탐구] 이번 편은 마케팅팀의 이건동 팀장을 만나 보았습니다. 흔히들 살아온 시간에 비해 경험이 많은 사람들을 일컬어 ‘인생N회차’라고들 하는데요, 이건동 팀장을 한마디로 설명한다면 ‘인생N회차’가 가장 적절한 표현이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비료공장 알바, 군악대 경험을 살린 라이브카페 알바, 설계회사 직원, 국제개발 프로그램 간사, 방송사 사회공헌프로그램의 기획/제작 PD까지…! 다양한 경험들 속에서, 더함에는 어떤 매력을 느끼고 들어오게 됐는지, 재미난 스토리들을 들어보았습니다.
시간을 거꾸로 거슬러 말씀을 드리면, 현재는 더함에서 마케팅 업무를 담당하고 있고요. 직전에는 MBC 사회공헌 프로그램과 공익문화행사를 담당하는 MBC나눔에서 일했고, 그보다 이전에는 ‘서비스포피스’라는 글로벌 비영리단체를 통해 네팔에서 국제개발사업을 했습니다. 대학 졸업 후 근무한 첫 직장은 도시설계회사였어요.
사실은 대학 졸업하고 대학원을 가려고 했어요. 지도교수님께서 대학원 진학을 권유하셔서 면접도 봤죠. 그런데 들어가려고 보니, 대학원의 한 학기 등록금이 당시 기준으로 약 600만 원 정도였던 거죠. 저는 ‘성인이 되면 혼자 자립을 해서 살겠다’라는 인생의 목표가 있어서, 대학에 다니면서도 계속 돈을 벌었거든요(비료공장 아르바이트, 군악대 악기 연주 경험을 살린 라이브카페 아르바이트 등). 학업과 일을 병행하면서, 대학원 학비와 서울의 집값을 감당할 엄두가 안 나더라고요.
이런 이유로 진학을 포기하고, 전공인 도시공학을 살려서 한 설계회사에 인턴으로 들어갔어요. 그런데 설계회사에서 하는 설계 업무가 재미없게만 느껴지고, 더 하고 싶지가 않더라고요. 인턴 기간이 끝날 무렵, ‘서비스포피스’라는 비영리단체의 국제개발 프로그램을 통해 네팔에 가게 됐어요. 제가 대학에 다니던 시절 해외봉사로 네팔을 다녀온 적이 있는데, 당시 알게 된 간사님이 “네팔에 도서관을 짓고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장기 파견자 프로그램이 있다”며 제안을 주셨죠. 당장 해외에 1년 정도 나갈 수 있다는 점, 그리고 학생 때 짧게 느꼈던 해외봉사의 여운을 더 오래 누릴 수 있다는 점 때문에 네팔행을 선택했어요.
네팔 현지에서는 토지를 제공하고, KOICA(한국국제협력단)와 비영리단체 매칭펀드로 사업비를 마련해서 도서관을 짓는 사업이었는데요. 처음엔 금방 건물을 짓고 바로 도서관 운영 프로그램을 진행할 수 있을 줄 알았어요. 그런데 인력도 없고, 축제도 워낙 많은 네팔의 특성을 잘 몰랐던 거죠. 건물을 짓는 데만 6개월 정도가 걸리더라고요. 남은 반 년간 도서관 프로그램을 돌리려 하니 당초 예정되었던 1년이란 시간이 너무 아쉬웠어요. 그래서 1년간 더 있겠다고 다시 신청했어요. 그게 벌써 2009년부터 2011년의 일이었네요.
도서관 프로그램 외에 아동센터 운영도 함께 했어요. 네팔에서는 1960년대 후반 카스트제도가 폐지되었는데, 제가 있던 곳이 워낙 외진 곳이다 보니 카스트제도가 폐지되었음에도 사람들 간의 이념 갈등으로 내전 아닌 내전이 잦았어요. 부모 잃은 아이들이 많이 생겼죠. 부모 잃은 아이들, 한부모가정 아이들, 조손가정 아이들 30여 명을 위한 아동센터를 만들었고, 교육하는 데 많은 집중을 했어요. 당시 제일 컸던 친구는 이제 대학생이 되었답니다.^^
▲ 이건동 팀장은 2009년부터 2011년까지 네팔에서 도서관 건립과 프로그램 운영, 아동센터 운영 등을 담당했다. 당초 1년만 머무를 예정이었지만, 아쉬움이 남아 2년이란 시간을 이곳에서 보냈다.
처음엔 주로 해외 프로그램을 담당했어요. 짧게는 1개월, 길게는 5~6개월 정도 되는 프로그램들이었죠. 가장 길었던 프로그램이 2012년 ‘한국-베트남 수교 20주년 기념 국토종단’이었는데, 사전 준비 기간까지 포함해서 6개월 정도 걸렸어요. 3개월은 한국에서 준비기간을 가졌고, 나머지 3개월 중 2개월은 호치민에서부터 하노이까지 사전답사를 다녔어요. 이어서 1개월간 자전거로 실제 국토종단을 하며 방송을 찍었어요. (방송 링크)
이런 해외 프로그램 외에도 공익문화 행사 기획 등을 담당하였고, 국내외 비영리기관과 기업의 CSR 부서 등과 협업하면서 다양한 사회공헌 사업을 진행했습니다. (링크)
저는 사람에 가장 많은 영향을 받은 것 같아요. 그 중 가장 큰 영향을 받은 사람을 꼽으라면 저희 부모님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게끔 묵묵히 믿어 주신 것이 큰 힘이 되었어요(걱정과 잔소리는 늘 따라다니긴 했지만요). 설계회사 그만두고 네팔 갈 때가 20대 후반이었는데, 처음엔 부모님도 되게 싫어하셨죠. 네팔 간다고 제가 돈을 버는 것도 아니고, 장남이기도 했으니까요. 엄청 설득을 하면서, 부모님과 약속했던 게 있어요. “명절 때는 꼭 영상통화를 하겠다. 일기를 매일매일 쓰고 그걸 부모님께 보내 드리겠다”고요.
일기를 어떻게 매일매일 썼느냐고들 물어보시는데, 많이 쓸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어요. 전기가 잠깐씩만 들어오는 곳이라 할 일이 많지 않았거든요. 또 거기서 제 인생의 은하수, 반딧불들을 보고 왔는데, 그런 걸 보고 나서 쓰는 거죠. 그때의 일기들을 얼마 전에 봤는데, 좀 간지럽더라고요. (웃음) 제가 그렇게 매일매일 보내 드린 일기장을 부모님께서 프린트해서 보관하고 계시더라고요. 한 500페이지 정도 되는데, 나중에 책으로 꼭 내보고 싶어요.
물론 지난 주말에도 사고뭉치 자식인 저는 부모님과 한판 했죠.(웃음) 그게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인 것 같아요. 그래도 서로 믿고 의지하는 때가 있다는 것 자체가 되게 좋은 것 같아요.
MBC나눔에서 해외 관련된 일을 하다가 국내 방송 제작, 공익행사 업무도 하게 되었는데요. 그때 사회적 기업들에 대해 많이 찾아보게 됐어요. 관심 있는 사회적 기업 중에 더함도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입사 전에 이미 사무실에도 방문했었고, 위스테이 별내 착공식에도 갔었네요. 구글에 입사한 어느 엔지니어의 이야기를 인상 깊게 읽었는데, 미국에서는 자기가 가고 싶은 회사가 있으면, 그 기업의 관계자분들을 꾸준히 만난다고 하더라고요. 만나면서 이것저것 물어보고 한다고 하는데, 저도 더함에 입사하기까지 그런 비슷한 과정을 밟았던 것 같아요.
사무실도 들러보고, 커뮤니티하우스 마실 개관 후에도 와보고, 현재 같이 일하고 있는 동료들도 잠깐잠깐 만나 얘기 나누어보고… 그러면서 서서히 마음의 결정을 하게 된 것 같고 지원을 하게 됐습니다.
올해 상반기부터 하반기까지 ‘위스테이 별내’ 입주 마케팅이 가장 중요한 업무예요. 위스테이가 국내 최초로 조성되는 협동조합형 아파트인데, 입주하는 조합원이 자부심을 가지실 수 있도록, 여러모로 세세하게 준비하고 싶어요. 내가 사는 곳에 대한 자긍심을 느끼고 살아갈 수 있는 것, 그게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공감할 수 있는 포인트가 많은 것이 좋은 마케팅이라고 생각해요. 지금까지도 잘해 왔지만, 입주자들이 위스테이라는 생소한 주거 모델을 이해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줄여내고, 고민을 덜할 수 있는 방향으로 디벨롭해 보고 싶어요.
사실 위스테이 지축의 경우, 30대 중후반의 구성원들이 많이 들어왔는데, 협동조합에 대한 이해가 조금은 더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협동조합뿐 아니라 아파트 청약시스템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도 많고요. 이런 내용이 이해되어야 더함의 주거 모델에 대한 이해까지 갈 수 있을 거예요. 그래서 장기적으로 잠재 고객이 될 분들에게, 이런 기초적인 내용을 제공하는 작업부터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마케팅 얘기로 돌아와서, ‘더함의 마케팅 스타일’이라는 것을 정립함에 있어, 지속적으로 부딪혀 가며 고민할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부딪힘의 과정 속에서 더함다운 좋은 마케팅이 될 것이라 생각해요.
평일에 꾸준히 운동을 합니다! 무념무상이 저에겐 곧 스트레스 해소 포인트가 되는 것 같아요.
평일 저녁엔 약속을 웬만하면 안 잡아요. 시간 나면 무조건 운동을 하는데, 몸짱이 되고 싶어서라기보다는, 튼튼해지고 싶어서죠. 저는 스트레스 해소를 달리기를 하면서 푸는 편인데, 집 바로 근처에 있는 난지 한강공원에 나가서 뛰기도 하고, 등산을 가기도 합니다.
인생 모토로 삼고 있는 브랜드 캐치프레이즈가 세 가지 있는데요, 나이키의 “Just do it”, 아디다스의 “Impossible is nothing”, 노키아의 “Connecting people”. 그 세 가지로 저를 설명해 보고 싶어요.
거기에 하나 더하면, “60:40”의 법칙을 말하곤 해요. 세상을 살아가면서 100% 만족할 수는 없잖아요. 40%의 힘듦이 있지만 60%의 좋음이 있기 때문에 이 일을 하고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좋은 게 싫은 것보다 많으니 계속 할 수 있는 거죠.
휴가를 갑니다. (웃음)
동료들에게 행복을 더해 주고 싶어요. 더함 구성원들은 일당 100+@예요. 열정을 토대로 일을 굉장히 잘합니다. 그런데 약간 여유가 없는 느낌은 있어요. 위스테이를 마케팅할 때 그곳에서 사는 사람의 만족도를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처럼, 더함에서 함께 일하는 동료들이 만족을 통해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들에 대해 계속 고민해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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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글은 2020년 3월 12일 사회혁신기업 더함 공식홈페이지에 송출된 인터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