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함피플탐구] 공간기획실 이제균 매니저
[더함 피플 탐구] “타인과 함께, 타인을 통해서 협력할 때에야 비로소 위대한 것이 탄생한다”(by 생텍쥐페리). 일을 하면서 좋은 동료를 만나는 것만큼 큰 복이 또 있을까요? 서로 공감하고 협력하며 더함에 다양한 색채와 가치를 더해 가는 사람들을 만나 봅니다.
‘레트로/뉴트로 열풍’은 이제 더 강조해서 말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대세인데요. 비단 패션과 음악뿐 아니라, 건축물에서 역시 이 열풍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낡은 것에 열광하는 이 기묘한 흐름을 보며, 누군가의 생각과 흔적을 느끼고, 거기에 나의 흔적도 편안하게 남길 수 있다는 데서 많은 사람들이 매력을 느끼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그만큼 삶의 흔적, 생채기들을 포용하는 넉넉함과 여유가 필요한 시기라는 생각도 한편으로 해보고요.
더함의 공간기획실에서 일하는 이제균 매니저는 살면서 채워갈 수 있도록 비워져 있는 공간, 삶의 흔적이 느껴지는 공간이 곧 좋은 공간이라는 의견을 들려주었는데요. 공간을 하나의 작품(master-piece)으로 대하는 설계자(master)들의 인터뷰도 많이 봐왔던 터라, 의외의 답이라는 생각이 들며, ‘참 넉넉한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채우고 고집하기보다는, 비워두고 소통하기를 원하는 제균 매니저와의 인터뷰를 통해, 더함에서 추구하는 공간의 철학과 스타일에 대해 그려 볼 수도 있었는데요. 선 하나를 통해 변화를 추동할 수 있는 설계의 힘을 알기에, 더더욱 이 분야에서의 인식 변화가 중요하다는, 사회적으로도 꼭 필요한 가치 있는 이야기들을 많이 듣고 왔습니다. 더함의 다양한 혁신가들 중 ‘점, 선, 면’을 통해 변화를 만들어 내는 공간 혁신가의 이야기를 여러분께 전합니다.
저는 더함에서 공간기획실 소속으로 건설 프로젝트를 관리하고 있고요. 그 중에서도 설계, 시공 업체와 소통하며 공정을 관리하는 업무를 맡고 있습니다. 물론 제가 A~Z를 다 관리하는 것은 아니고요. 협력해 주시는 업체들이 일을 좀 더 성공적으로 수행하실 수 있도록 퍼실리테이터 역할을 하는 것이라 생각해주시면 됩니다.
특별한 계기는 없었는데, 건축과 관련해서 생각나는 최초의 기억은 있어요. 중학교 때 <기술과가정> 과목 안에 건축제도 시간이 있었거든요. 선과 선이 만나서 딱 떨어지고 도면이 완성되었을 때 느끼는 뿌듯함, 희열이 있었어요. 물론 점수를 잘 받기도 했고요. 이때의 감정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학창 시절에 엄청 날라리였어요. (웃음) 1학년 때에는 심지어 학사경고를 받기도 했을 정도였죠. 군대 다녀온 이후에 점수를 만회하기 위해 정말 열심히 공부를 했고요. 올 A+를 받은 학기도 있었습니다.
건축학과를 나오면 건축사무소에 들어가서 설계를 하는 것이 일반적인 루트인데요. 진로를 고민하던 차에 강사님의 추천으로 타대학원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어려서부터 역사에 관심이 많았는데요. 그 영향으로 ‘전통건축’을 선택했어요. 그러다 학부 담당교수님께서 새로 오픈하는 건축사사무소를 소개해 주셨고, 고민을 하던 끝에 실무를 배워 보고 싶은 마음도 커서 휴학을 했어요.
해보고 아니면 다시 학교로 돌아가려 했는데, 멤버들이 좋았고 일도 재밌었어요. 무엇보다 공동대표님 두 분이 대형 사무소에서 정점을 찍고 오셨던 분들이었기 때문에 배울 점도 많을 것이란 기대가 있었어요. 그래서 대학원을 자퇴하고 직장생활을 본격 시작했습니다. 첫 회사에서 7년 동안 있었고요. 지금도 당시의 동료들과 연락을 하고 지냅니다.
저는 일반 오피스와 상업건물 설계를 많이 했는데요, 아무래도 첫 프로젝트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홍익대학교의 기숙사 설계 프로젝트였는데요, 당시 아무것도 모르던 신입 시절이라 선배들을 따라 현장과 술자리들을 다니며, 어깨 너머로 많이 배울 수 있었습니다.
현재 한국YWCA연합회 건물을 ‘페이지 명동’으로 리모델링하는 프로젝트에도 참여하고 있는데요. 사실 리모델링 프로젝트 자체가 흔치는 않은 작업이에요. 그러다 보니 공간기획실의 다른 멤버들도, 저도 리모델링 작업은 이번이 처음인데요. 난이도가 참 높은 작업이지만, 그만큼 또 기억에 많이 남을 것 같습니다. 협력업체들과 이렇게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 나가는 프로젝트는 드물기도 하고요.
사실 돈이 많다고 프로젝트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는 건 아니거든요. 협력업체들과의 좋은 관계가 성공적인 프로젝트 수행의 키(key)예요. 업체들과 서로 조금씩 양보하며 잘 해보자는 마인드가 중요한데, 이 프로젝트는 그렇게 가고 있는 거 같아요. 함께하고 있는 시공사의 경우,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곳을 리모델링하는 것에 대한 자부심을 말씀 주시기도 했고요, 건물 내의 설계시공을 담당하는 분들도 이런 취지의 말씀을 하셨던 것으로 기억해요.
더함은 우선 ‘사람 목소리가 많이 들리는 회사’인 것 같아요. 기본적으로 ‘건축설계’ 작업은 도면으로 이루어지는 작업이다 보니, 말이 많이 오가지 않아요. 누가 지나가며 보더라도 ‘아 이런 거구나’라는 걸 알 수 있게 표현해 주고 구현해 주는 역할이 바로 설계사의 역할이거든요. 그러다 보니 사실 업계 내에는, 말하는 게 다른 사람들보다 서툴고, 강압적인 사람들도 간혹 있어요. 본인의 주관과 고집을 가지고 100시간 넘는 시간 동안 한 프로젝트에 매달려 생각을 했는데, 고작 몇 초 본 당신들이 뭘 아냐 라는 마음이 생기기도 하는 거죠. 그만큼 자존심도 강하고, 자기가 쌓아온 커리어에 대한 프라이드가 강한 사람이 많아요.
제가 지금까지 일해 왔던 직장들과는 달리, 더함에는 다양한 베이스의 사람들이 많잖아요. 건축 지식을 베이스로 하지 않기 때문에 모르는 것이 당연하고, 그렇기 때문에 소통하면서 이 부분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있어야 해요. ‘아’ 하면 상대방이 ‘어’ 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분위기에서 일하다가, 이 말을 이해시키기 위해 고민하고 조율하는 일들이 처음엔 익숙지 않기도 했어요. 하지만 이러한 소통의 과정에서 제가 몰랐던 것들을 발견하게 될 때 재미를 느끼기도 해요. 기존에는 어느 정도 이미 만든 후에 나중에 수정을 하는 과정이었다고 하면, 지금은 초반부터 많은 것들을 생각하면서 진행할 수 있기 때문에 시행착오를 많이 줄여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웹에서 기사들을 보다가 처음 더함을 알게 되었어요. 그때 본 내용 중 기억에 남았던 것이 ‘용적률을 다 채우지 않고 비워두었다’라는 내용이었습니다(기사 링크). 우리나라 건축법상 대지 면적상 건물을 지을 수 있는 면적의 제한이 있는데요. 아시다시피 일반적으로는 그걸 다 채워야 예상하는 이윤이 나오거든요. 억지로 상향도 하는 판국이다 보니, 더함이라는 회사에 대해 굉장히 궁금해졌죠. 더 자세히 읽어보니, 조합원들이 추가적으로 커뮤니티 시설을 필요로 할 때 더 지을 수 있도록 비워 놓은 것이라 하더라고요. 특이하다고 생각했어요.
이직을 준비하면서 구직 사이트를 살펴보고 있는데, 그때 그 기사에서 보았던 ‘더함’의 공고가 올라와 있는 걸 발견했습니다. 프로젝트 매니징 업무를 해보고 싶었던 차에, 좋은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고, 지원을 하게 되었습니다.
지인들에게 위스테이를 소개할 때 애사심이 생기는 것 같아요. 시행사가 자기만의 브랜드를 런칭한다는 건 굉장히 의미 있는 결정이거든요. 보통은 아파트 이름에 ‘(물질적) 성공’의 의미를 담아내려 하잖아요. ‘캐슬’, ‘노블’ 이런 표현처럼요. ‘위스테이’처럼 자기 회사가 나아가고자 하는 ‘가치’를 담는 경우는 드물어요. 저에게 “무슨 일하세요?”라고 물으면, 긴 설명을 붙이기보다는 “위스테이라는 아파트를 런칭한 시행사(사회적 기업)를 다녀요”라고 대답해요. 그럼, 이제 그 사람들도 위스테이를 찾아보겠죠. 그럴 때 은근 애사심이 들어요.
하루하루 생기는 이슈들에 대해서 고민하고 검토하고, 결정해야 하는 순간이 다가올 때요. 공간기획실의 방향 설정이 이 프로젝트의 성공을 좌우할 수 있는 정도의 중요한 건들이라 그때마다 힘들다고 느끼는 것 같아요.
‘세균맨’을 떠올리게 하는 ‘제균맨’은 같은 실의 종희 매니저님이 지어준 별명이에요. 종희 매니저님은 대단한 작명가이죠! 저는 제 별명이 제균맨이 된 줄도 모르고 지냈는데, 어느 순간 저를 다 ‘제균맨’이라고 부르더라고요. 이 별명 덕분에 부드러운 이미지가 된 것 같아서 만족하고 있어요.
친구들 사이에서는 ‘이프로’라는 별명이 있었어요. 일을 잘할 때는 ‘프로답다’해서, 일을 못할 때는 ‘2% 부족하다’고 해서 이프로예요. (웃음) 중의적인 의미가 있는 거죠.
같은 실에서 일하시는 이성덕 실장님의 “굿!”이라는 한마디요. 더 이상 의견을 덧붙이지 않아도 될 만큼 충분히 만족스럽다는 표현이죠. 실장님의 단전에서 올라오는 특유의 ‘굿!’이 있어요. 다들 들어 보셔야 합니다. (웃음)
결혼 전에는 퇴근 후 친구들과 술자리도 자주 갖고, 수영이나 스킨스쿠버 같은 취미생활을 많이 했었죠. 근데 결혼하고 아이가 생긴 뒤로는 많은 것이 바뀌었어요. 지금은 개인 시간은 거의 없고, 육아에 집중하고 있어요.
조리원에서 처음 아이를 안았을 때, 이제 내가 아닌 이 아이를 위해 살아야겠다는 목적이 생겼어요. 처음 아이가 태어났을 때,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질 거란 얘기를 많이 들었는데요. 요즘 이런 말들이 너무 공감돼요. 마냥 예뻐요. 세상이 아름답고요.
제가 회사에 다니다 보니, 아내가 육아를 전담해서 하고 저는 돕는 정도에 그치는데요. 아무래도 아내가 혼자서 육아를 하려다 보니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어요. ‘육아’는 그 어떤 일보다 협업이 필요한 일이라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제가 맨 처음 더함에 관심을 갖게 되었던 포인트처럼, 다 채우려는 것이 아니라 ‘비워 두는’ 공간이 좋다고 생각해요. 비웠다는 건 다시 채울 수 있다는 거잖아요. 건축물을 설계하는 사람들을 ‘마스터’(master)라고 하는데요. 저는 옛날부터 마스터를 중시하는 관점을 다소 폭력적이라고 생각했어요. 이러한 관점에는 은연중에 이용자들은 마스터가 설계한 대로 입구로 들어와 어느 위치로 가야 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죠. 물론 마스터들은 어느 정도 쌓여진 데이터 내에서 가장 합리적인 것을 선택해 설계를 하는 것이지만, 이용자는 개인마다 다른 성향을 가지고 있으니 불편할 수도 있거든요. 저는 가급적 많은 공간을 비워 두고, 이용자들이 알아서 조정하면서 살아갈 수 있게 하는 게 좋은 공간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누구에게나 불편함이 없는 공간이 곧 좋은 공간이라고 생각해요. ‘유니버설 디자인’(universal design)을 말씀드리는 것인데요. 인간의 생애주기를 생각해보면, 유니버설 디자인은 특정 사회의 소외계층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거든요. 유아차를 이용하는 저와 같은 양육자에게도, 지팡이나 휠체어를 이용하는 고령의 분들에게도 계단과 문턱은 불편한 것이죠. 유니버설 디자인은 모두를 위한 거예요.
요즘은 장애인법이 강화되면서 장애인 관련된 시설들이 많아졌는데요. 이런 부분을 고려하지 않으려 하는 설계자들이 꽤 있어요. 장애인들을 위한 편의시설을 설치하더라도, 어쩔 수 없이, 법적인 사항을 충족하기 위해 최소한의 비용을 들여 만들죠. 이번에 위스테이별내의 배리어프리 세대와 유니버설 디자인 과정을 들으며, 이런 부분에 무심했던 저의 과거에 대해서도 반성하게 됐어요.
사실 이 이야기를 듣기 이전부터, 대표님께서 ‘페이지 명동’의 설계에 있어서, 장애인 이동통로와 엘리베이터에 대해 굉장히 신경 쓰시고 많은 요청을 주셨거든요. 처음에는 투자비용 대비 사용빈도가 높지 않은데 꼭 설치를 해야만 할까 라는 생각을 무심결에 하기도 했어요. 하지만 위스테이별내의 조합원이신 김미연 UN장애인권리위원님을 만나고, 유니버설 디자인에 대해 좀 더 폭넓은 관점을 갖게 되면서, 대표님의 생각을 좀 더 깊게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앞으로도 공간을 설계하는 엔지니어들의 인식이 많이 개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도면상에서 선 하나를 다르게 그으면 정말 많은 것이 달라질 수 있거든요. 엔지니어들의 인식이 바뀌면, 우리 주변의 공간들이 많이 달라질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있는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이요. 가우디가 건축한 것으로도 유명한 이 건축물은 정말 뭐라고 말로 표현할 수가 없어요. 보통 건축물이 넓으면서 높으면 허허벌판이라 재미가 없거든요. 근데 이 성당은 내부 벽면을 다양한 방법으로 분절시켜 사람 시선을 덜 어색하게끔 만들었더라고요. 게다가 사람의 흔적이 여기저기서 느껴지기도 하고요. 예를 들어 난간도 그냥 일직선으로 깎은 게 아니라 사선으로, 곡선으로 깎았어요. 건축하는 사람으로서 이 건물에서 느껴지는 디테일과 서프라이즈들이 참 좋았습니다.
상처를 받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근데 상처를 받지 않는다는 건 불가능하니까, 상처를 받더라도 힘들어하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말이 더 맞겠네요.
많이들 사회초년생 때 상처를 받는다고 하는데, 저는 오히려 그때 상처를 덜 받았던 것 같아요. 그런데 연차가 늘어나면서 책임 권한이 많아지고, 내 능력치를 더 높여야 하는 순간들을 맞닥뜨릴 때 미세한 생채기들이 나는 것 같아요. 물론 이런 과정이 힘들기만 한 것은 아니고요. 가급적 덜 힘들어 하면서 역량치를 더 높여 갈 수 있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해당 글은 2020년 8월 13일 사회혁신기업 더함 공식홈페이지에 송출된 인터뷰입니다.